[봉화군 여행] 버저이 음지마에 자리잡은 기헌고택...........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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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여행] 버저이 음지마에 자리잡은 기헌고택...........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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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봉화 여행을 하면서 수차례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봉화는 태백(太白)과 소백(小白), 양백(兩百) 바로 아
래에 있는 땅이다. 예로부터 산이 깊고 물이 풍부해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기 좋은 고을이라 했다. 사화를 피하
거나 병자호란이나 을사늑약 같은 시대의 아픔을 멀리하고 숨어 살기를 자처한 선비들이 줄을 이어 봉화에 숨
어 들었으며. 이들과 관련 있는 누정(樓亭)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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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쩌면 봉화가 숨어 살기 좋다는 얘기도 한양을 중심으로 보는 편견인지 모른다. 안동, 경주를 중심으로
보면 두메일지 몰라도 문화적으로 변방은 아니다. 신라 사람들이 신성시한 태백산 아래에 있고 고구려 문물이
죽령을 넘어 처음 닿는 고을이 영주, 봉화다. 영주에 '태백산부석사'를 세우고 봉화에 태백산을 향해 앉아있는
북지리마애불을 새겼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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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조선 중기에 이르러 이런 저런 사연을 안고 안동 사족(士族)들이 몰려와 집성마을을 이뤘다.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봉화에는 양반문화가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고색창연한 오래된 마을이 여럿 있다. 봉화읍 유
곡리 닭실마을을 중심으로 해저리 바래미마을, 거촌2리 황산마을, 거촌1리, 3리에 외거촌마을이 있다. 물야면
오록리에는 창마마을이, 법전면 법전리에는 버저이마을이 있다. 모두 봉화에서 손꼽히는 오래된 집성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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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곳인 법전리 마을은 그 이름이 재미난 버저이마을로 통한다, 진주 강씨 집성마을로 행정 지적상 법전면
법전리에 있다. 마을 이름은 법전의 옛 이름인 버저이에서 나왔다. 마을은 마을 중앙을 흐르는 작은 천(川을) 중
심으로 음지와 양지마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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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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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마을에 기헌고택, 송월재 경체정이 있고 양지마을에 법전강씨종택, 해은구택이 있으며 마을을 살짝 벗어난
곳에 태백 5현중 한사람인 잠은(潛隱) 강흡(姜恰)의 유덕(有德)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이오당이 있다.
오늘 유랑자가 소개할 봉화 기헌고택은 경북 봉화군 법전리 음지마 중심부에 자리한 고택으로 현재 한옥 숙박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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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헌고택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9호로 등록된 한옥이다. 기헌고택을 처음 연 사람은 첨지(僉知) 강완(姜
浣)이며, 강완의 손자인 기헌(起軒) 강두환(姜斗煥, 1781~1854)이 1845년 완성하였다. 기헌 강두환의 아버지는
골수 노론인 강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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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환 아버지 유생 강락(姜樂)은, 이른바 '홍낙임 채홍원 장시경 등의 역모' 연원을 1728년(영조4) 무신혁명(이
인좌의 난) 핵심 인물인 이인좌 정희량 심유현 박필현 박필몽과 소론 대신 김일경 조태구 유봉휘에 있다고 하
면서, 남인과 소론 등 반대파를 숙청하고 기득권을 강화하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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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기헌고택(기헌구려.起軒舊廬)은 조선 후기 생활상을 담은 건축물로 평가된다. 강두환(姜斗煥.1781~1854).
의 자는 칠서(七瑞), 호는 기헌(起軒)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기헌 강두환은 1807년(순조 7) 문과에 급제하
여 승문원 부정자, 성균관 전적, 사간원 정언, 병조 좌랑, 이조 좌랑(吏曹佐郞), 사헌부 지평, 사헌부 장령, 시강원
필선(헌종 담임선생님), 홍원현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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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헌구려(起軒舊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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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종종 국왕에게 대간(바른말)을 서슴지 않았으며, 특히 군덕(君德)을 닦을 것을 자주 경계하여 말하였다. 또
한 제자인 헌종의 치정에 안이함을 보고 성학에 힘쓰라고 상소를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강직함을 미워한 사람들
이 그가 국왕에게 공손치 않은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국문(鞠問)할 것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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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왕은 “비록 그가 지나친 표현을 하였지만 그렇다고 국문은 지나치지 않은가?” 하면서 그를 두둔하였
지만, 결국 유배형에 처해졌다.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했지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이를 본 사림들
이 우러러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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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헌의 올곧은 심지는 40여 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도 권귀(權貴:권세있는 집) 집안을 출입하지 않았고, 입으
로는 아첨을 떨어 벼슬과 명예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상소로 인해 함경도 경성에 유배당한 이후로는 다시
세상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생을 마쳤다.
결국 유배를 가게 만들었던 그의 상소문이 솟을 대문 앞에 돌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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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國興替 萬姓休瘁 皆係於殿下一身.(일국흥체 만성휴췌 개계어전하일신)
頓祛宴安之私, 痛加儆戒之志, 趲程督課磨礱尋繹, 則自可以薰陶德性.
(돈거연안지사 통가경계지지 찬정독과마롱심역 칙자가이훈도덕성) ~생략~
而今殿下倦於講讀視若烏喙之不可食, 恬於遊燕不趐饑渴之易爲飮 如是而聖學何以進就乎 ~생략~
(이금전하권어강독시약오훼지불가식 념어유연불혈기갈지역위음 여시이성학하이진취호)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만백성의 고락이 모두 전하께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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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을 풀이해 보면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을 없애고 공경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갈고 닦으면 저절로 덕성
을 닦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강독하는 것을 게을리 하여 마치 먹을 수 없는 독초를 보시는 듯 하시고,
노시는 것을 목마를 때 물 마시는 것처럼 하시니, 이래서야 어떻게 성학의 진취가 있겠습니까?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따뜻한 날에 깊은 구중궁궐에서 무슨 책과 노시며, 누구를 본받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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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고 한가하게 세월을 허비하면, 전하께서 저번 상소의 답으로 말씀하신 깊이 새기겠다는 말씀을 어떻게 증
명하시겠습니까? 하며 오호라! 어긋남(犯)은 있어도 숨기지 않는 것이 임금을 섬기는 예(禮)이고, 아뢰면(諫) 행
하시고 말하면 들어주는 것이 신하를 대하는 도리인데, 신은 두 가지 중 하나도 되는 것이 없으니 어떻게 대간
(臺諫)의 자리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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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민박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꽃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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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고택은 첫인상부터 강렬하다. 5칸짜리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널찍한 마당이 나온다. 마당을 바라보고
정면 6칸, 측면 7칸의 ‘ㅁ’ 자형 안채와 ‘ㄱ’ 자형 별채가 늠름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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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평면은 모두 사랑방이고, 날개집의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안뜰에는 작은 화단
을 중심으로 빙 둘러 건넌방, 대청,안방, 부엌이 자리한다. 객실로 제공되는 공간은 안채에 연결된 사랑채와 별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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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는 방 2개와 넓은 대청마루를 갖췄고, 화장실은 외부에 있다. 별채는 방 3칸, 주방 겸 거실, 내부 화장실
이 있는 구조로 독채를 원하는 사람에게 알맞다. 여름에만 방 2칸과 대청마루가 있는 정자를 투숙객에게 내준
다. 식대는 인원에 따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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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체험 프로그램을 알차게 준비했다. 180여 벌의 한복이 마련된 한복체험을 비롯해 혼례복과 가마
등 130여 가지 혼례용품을 갖추어 제대로 된 전통 혼례 체험을 진행한다. 비용은 별도. 또한 고택을 찾는 손님
에게 대접하는 손수 우린 차 한 잔을 음미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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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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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경체정길 18
(지번)법전면 법전리 135
연락처 010-7152-6330 강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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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택도 많고
참 봉화가 양반의 고장이네요
공부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그래요 양반의 고장이지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도망가 숨었던
선비이 많다는 이야기도 되지요.
민초들은 나라를 구하겠다고 못숨을 받치는 상황에서도
그 양반들은 첩첩산중으로 도망가 노비들을 데리고
호의호식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것 참 해석 나름인데요. 암튼 양반들의 양면들을 보고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