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재 창조설 주장자들은 본 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창1:2 전에 천사를 창조했으나 천사가 타락하여 천지를 다시 창조하였다 주장합니다
재창조설(간극이론,GapTheory)이란
창세기1장1절과2절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고 보고, 그 기간에 타락·심판·파괴가 일어나
1:3절부터 ‘재창조’가 시작되었다고 해석하는 견해로서 16세기 에피스코피우스의 언급이후, 토마스찰머· 윌리엄버크랜드·휴밀러·커스탄스등에 의해 대중화·전개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진화론적 지질학과 창세기1장을 조화시키려는 시도에서 체계화 되었다는 관점도 제시됩니다.(창세기 1장 (3) - 간격이론(gap theory) : 성경-창세기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 참조
창조과학회에서는 이 간극설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는 주장"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회원들께서는 창조과학회 주장을 신봉하면서도 이 학설과 정 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16세기 에피스코피우스의 주장을 또한 신뢰하여 간극이론 즉 천사타락과 이로 인한 천지 재창조설을 믿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창1:2의 말씀은 아래와 같이 증거합니다
①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다
혼돈과 공허를 성경의 기록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MT תהו (tohu): 황폐함, 무질서, 형체 없음 בהו (vohu) H922 “비어있음, 구별 할 수 없음, 폐허:”
LXX ἀόρατος καὶ ἀκατασκεύαστος (“보이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영어 성경: “formless and void”“형체가 없고 공허하다”, “without form and empty”.“형태가 없고 텅 비어 있다”
모든 성경의 기록은 창세 전에는 땅은 "형체도 없었다, 보이지도 않았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을 현대과학으로 설명한다면 모든 동의원소들이 하나도 없었다 입니다
②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표현은 단순한 물리적인 상태라기보다, 질서 없는 혼돈의 세계가 빛과 구분되기 전의 상태, 즉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혼돈과 무질서가 창조 이전의 상태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창1:2에서 묘사되는 모든 만물들은 존재가 1도 없는, 원소자체를 구별 하지 못하는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의 한계 밖의 어둠과 깊음과 같은 혼돈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므로 물과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 함은 어둠이 깊음을 덮고 있는 것처럼, 물 역시 아직 분리되지 않고 혼돈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창조 이전에는 구별되지 않은 만물이 혼돈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하나님이 창조 질서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단순한 원초적 실체이나. 창조 과정(창 1:9–10)에서 물과 땅이 분리되고, 그 때 비로소 우리가 아는 바다·강·샘·식수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MT 창1:2의מַיִם (mayim)이란 “물” 이며 물 항상 복수형으로 쓰이며, 단수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에서 mayim은 단순히 “한 컵의 물” 같은 구체적 단수 개념이 아니라, 집합적·무한적 물질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는 복수형이지만, 의미적으로는 집합명사처럼 쓰여서 “물”이라는 단수 개념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창1:2 “עַל־פְּנֵי הַמַּיִם” 은 “물의 표면 위에”라고 번역되며, 실제로는 “물들”이라는 복수형이지만 의미상 단수로 이해됩니다.
MT에서 물이 복수형으로 쓰이는 이유는 물이란 무한하고 경계 없는 혼돈적 실체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 히브리어 성경에서 1:2의 물은 단수적 개체라기보다, 혼돈의 집합적 원소로서 존재를 의미합니다.
LXX ὕδατος : “물” (ὕδωρ)의 중성 단수 속격(genitive singular).
형태 : ὕδωρ은 중성 단수 명사로, LXX에서는 속격(ὕδατος)으로 쓰여 “물 위에”라는 공간적 관계를 표현합니다.
즉 LXX는 “땅은 보이지 않고 정돈되지 않았다”라는 표현과, 물은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는 장소로 제시합니다.
헬라 철학적 배경 속에서 물은 형체 없는 원소로 이해되며, 질서와 형태를 부여받아야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LXX는 물을 질서 이전의 원소로 강조합니다.
비교와 해석
MT : 물은 복수형으로, 무한하고 혼돈적인 집합적 실체. 하나님이 질서를 부여해야만 의미를 갖습니다.
LXX : 물은 단수형으로, 형체 없는 원소.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서 활동하며 창조 질서를 준비합니다.
공통점 : 두 전통 모두 물을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로 설명합니다.
차이점 : MT는 물을 혼돈의 일부(심연과 함께)로 강조하고, LXX는 물을 질서 이전의 원소로 강조합니다.
MTמַיִם (mayim) 과 LXX의 ὕδωρ (단수형)과 대비되며, 히브리어는 물을 무한적 집합으로, 헬라어는 형체 없는 단일 원소로 이해한 해석의 차이라고 이해합니다.
결론은 창1:2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물의 표면 위에 움직이고 있었다” 함이란 물 역시 혼돈의 심연(תהום, tehom)과 함께 창조 이전의 원초적 상태임을 말하는 것으로 히브리 사상에서 물은 혼돈의 상징이자, 동시에 하나님이 질서를 부여할 대상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창조 전의 물은 스스로 질서를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이 개입해야만 창조 질서 속에 편입되는 상태입니다.
물에 대한 랍비와 교부들의 후대 해석
랍비들의 해석
혼돈의 물 : 랍비들은 창세기 1:2의 mayim을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혼돈의 상징으로 이해했습니다. 물은 무한하고 제어되지 않은 힘을 나타내며, 하나님이 질서를 부여하기 전에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존재였습니다.
질서 부여 : 미드라쉬와 탈무드 전통에서는 하나님이 물을 나누고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창조 질서가 시작된다고 강조합니다. 즉, 물은 스스로 존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제어되어야만 생명과 축복의 근원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신학적 메시지 : 물은 혼돈과 위협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풍요와 생명을 주는 원천으로 변모합니다.
교부들의 해석 (기독교 전통)
오리겐 : 물을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영적 혼돈의 은유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움직인다는 것은 성령이 혼돈 속에서 질서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물을 “형체 없는 원소”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창조 이전의 물을 무질서한 물질(materia informis)로 보았고, 하나님이 그것에 형태와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창조가 완성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신학적 메시지 : 교부들은 물을 단순히 물질적 요소로 보지 않고, 질서 이전의 원소 또는 혼돈의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성령의 활동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창조의 핵심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비교
랍비 전통 : 물은 혼돈과 위협의 상징 →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어되어야 함.
교부 전통 : 물은 형체 없는 원소 → 성령의 활동으로 질서와 의미를 부여받음.
공통점 : 두 전통 모두 물을 스스로는 의미 없는 상태로 보고,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서만 창조 질서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이해했습니다.
정리하면, 후대 해석에서 물은 단순히 “먹는 물”이 아니라 혼돈과 무질서의 상징으로 이해되었고, 하나님이 개입해야만 생명과 질서의 원천으로 변모한다고 보았습니다.
첫댓글 천지창조와 지구 생태계 창조는 시간차이가 있었지만 수억년에 걸친 진화나 재창조는 없었습니다 진실과 거짓이 뒤죽박죽된 세상이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천지창조는 태초에 지구생태계 창조는 6일동안 진화는 아담으로부터 현재까지 이렇게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공허하다는 뜻은
땅에 생명체가 없었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없었다는 거임.
영화 프로메테우스 를 매우 흥미롭게 본적이 있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진화론은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합니다. 그리고 진화론은 ' 무한한 시간 + 우연적 결합과 변화 ' 가 없이는 설명을 못하는 가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