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9장 몸을 바친 검선자(劍仙子)
석진영을 따라 모산을 떠났던 낙헌지는
석진영을 뒤쫓아 다시 모산 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내공은 장강(長江)의 물같이 막힘이 없어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았다.
대략 밥 한끼 먹을 시간이 지났을까?
낙헌지는 모산 안으로 들어서며 손바닥에 땀을 쥐게 되었다.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 위에서 불이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꽝― 꽝―!
폭음이 들리며 산이 뒤흔들렸다.
끼르르륵―!
숲으로 뒤덮여 장원의 하늘을 오락가락 하며
검은 날개를 휘젓고 있는 검은 매 수십 마리가 보였다.
"흑응이군. 석진영이 검보를 정면으로 치려 하는구나."
낙헌지는 석진영이 최후의 발악을 한다 여기며 불타고 있는 검보를 향해
빗살같이 빠르게 날아갔다.
'일단 복면을 벗자.'
낙헌지는 지옥제일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경우
검보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 쉽다 여기며 복면을 벗었다.
그는 백의검제의 시체를 안아 들고 더욱 빨리 날아올랐다.
그가 백의검제의 시신을 아직 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를 검보 근처에 묻어 주기 위함이었다.
검제에 대한 자비이며 죄책감 때문이었다.
낙헌지는 검보 근처에 백의검제의 시신을 나무 잎으로 잘 덮은 후 다시 검보를 향해 갔다.
그는 칠마령이 검보 뒤 검왕전(劍王殿) 안에 숨겨져 있음을 삼밀사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검왕전은 흑의검왕과 대무신국의 일백정검수 중 아직 살아남아 있는 삼십삼 정검수들의 거처였다.
낙헌지는 검보의 웅장한 건물을 볼 수 있는 곳에 이르러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음, 이상하군."
흑응 수십 마리가 오르락내리락 하며 폭약을 던지고 암기를 던지는데
대부분은 검보의 정문 근처에 한정되어 있었다.
"아― 악―!"
"크으윽!"
수백여 명이 검보 정문 앞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근처는 화염(火焰)에 휩싸여 지옥궁 안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안쪽은 고요했고 싸움이 이는 흔적이 없었다.
"칠마령이 목적이 아니고 검보를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란 말인가?"
낙헌지는 잠시 고민하다 엄청난 격전을 벌이고 있는 세 사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퍼퍼펑―!
수백 명의 어지러운 혼전 중 이 대 일(二對一)의 대결이 그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지옥제일검, 쓰러져라!"
무맹의 옷을 걸친 일남일녀가 쌍검합벽(雙劍合劈)해
흑의복면인 하나를 포위 공격하는 중이었다.
수백 명의 싸움판 중 가장 치열했다.
세 사람이 싸우고 있는 근처가 텅 비어 있는 이유는
세 사람의 검기가 십 장을 전권(戰圈)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지옥제일검의 복면을 한 자가 쌍검(雙劍)을 흔들어 대며
일남일녀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천영마검(千影魔劍)이라는 칠마전 비전 검식을 구사하는 흑의복면인의 무공은
일남일녀를 능가했다.
"으흐…누구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와 검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 중 하나는 낙헌지에게 구사일생한 바 있는 금의검선자였다.
금의검선자는 심한 병을 앓다 일어난 사람같이 낯빛이 별로 좋지 않았고
내공도 전에 비해 오히려 뒤졌다.
그러나 눈에서 일어나는 독기는 오히려 전보다 더했다.
"네 놈이 석진영이라는 것을 안다. 어서 복면을 벗어라!"
그녀는 흑의검왕을 통해 이미 지옥제일검의 정체를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악에 바쳐 검을 휘둘러 댔으나 지옥제일검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그녀와 함께 지옥제일검을 노리고 있는 사람은 검룡(劍龍)이 된 아주 출중한 젊은이였다.
그는 단홍칠절검식(斷紅七絶劍式)을 전수 받아
후기지수(後起之秀)의 으뜸으로 불리는데, 금의검선자와는 사형사매지간이었다.
"석가야, 마각을 드러내라!"
검룡은 금의검선자와 합공을 펼쳤지만 마공을 당하기 힘든지 공격보다 수비에 급급했다.
그러나 위세만은 검보 수비대장으로 조금의 부끄러움이 없었다.
차창― 창―!
세 자루 장검이 불똥을 퉁길 때 낙헌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놈이 진짜 석진영인지 모르겠군.'
낙헌지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다소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석진영이라면 이렇게 무모하게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뒤로 흑의검왕과 정검수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공격을 펼친단 말인가?'
어쨌거나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세 사람이 싸우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강력한 호신강기가 뿜어져 주변의 경기는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는 혼전장을 간단히 지나칠 수 있었다.
"됐소, 놈이 드디어 왔소."
어딘가에 숨어서 낙헌지를 지켜보던 사람의 눈에서 광채가 일어났다.
"호호… 놈이 우리의 일을 도울 것이니 칠마전의 대업이 이제야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눈빛을 반짝이는 피투성이 백의청년과 홍의여인이 있었다.
두 남녀는 다름아닌 석진영과 독낭자였다.
"흑의검왕이 이리로 유인되어 나온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일이오.
이제 낭자가 미혼산(迷魂散)으로 정검수 중 열 놈만 제거해 준다면
칠마령은 분명히 나의 손에 들어올 것이오."
"죽음으로 소전주를 돕겠습니다.
대신 소녀가 살고 일이 성공할 경우… 소녀를 아내로 삼아 주십시오."
"하하…일이 성공한다면 낭자는 장차 칠마전 이대전주(二代殿主)의 아내가 될 것이오."
석진영은 득의해 말하면서 독낭자와 함께 검보 안으로 잠입해 갔다.
그들이 모습을 감추는 것을 알아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낙헌지는 석진영이 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줄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일단 세 사람이 싸우는 근처에서 몸을 세웠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부터 알아봐야겠군."
낙헌지의 손이 천천히 쳐들려졌다.
그의 손은 홍옥수로 빛났다.
머리카락은 핏빛으로 물들어 날렸고, 눈빛은 혈광보다도 붉은 끔찍스런 모습이었다.
낙헌지는 혈발마공을 십 성까지 끌어올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놈이 가짜이건 진짜이건 살 수 없다.'
그는 차갑고 공포스러운 눈빛을 흘려 흑의복면인의 얼굴을 살피다가 낭랑히 외쳤다.
"나를 봐라!"
낙헌지와 흑의복면인 사이의 거리는 오 장 정도였다.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거리였으나 흑의복면인은 낙헌지의 외침에 고막이 찢어지는 고통에 젖었다.
"흐윽…!"
지옥제일검의 모습을 한 자가 갑자기 몸을 뒤틀자
금의검선자와 검룡이 모두 얼떨떨해 했다.
낙헌지의 외침은 이어전성에 의한 것이기에
지옥제일검의 모습을 한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갑… 갑자기 웬 일이지?"
"어엇…?"
검보의 일남일녀가 흠칫 하는 순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르르르― 릉―!
한 마리 혈룡 같은 모습으로 흑의복면인을 향해 날아드는 적류(赤流) 때문이었다.
혈발마공의 신기한 힘이 발휘되자
흑의복면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복면이 갈갈이 찢어져 나가는 동시에,
코와 입으로 피를 흘리는 십칠 세 소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크으…분하다!"
흑의소년은 피를 흘리며 휘청였다.
낙헌지는 오 장 거리를 단숨에 날아 흑의소년의 완맥을 거머쥐었다.
"가짜였군. 내 그럴 줄 알았다."
낙헌지가 나타나자 검룡과 금의검선자가 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손을 거뒀다.
검룡은 아주 긴장된 표정이었고 금의검선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얼떨떨하다는 표정이었다.
"왜 지옥제일검으로 행세했느냐?"
낙헌지가 흑의소년의 완맥에 힘을 가하자 흑의소년은 낙헌지를 노려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네… 네 놈이 낙헌지란 자냐?"
"하하…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너는 나를 알아보는구나?"
"나는 지옥제오검(地獄第五劍)이다. 지금 대사형(大師兄)의 명을 받고 왔다."
낙헌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제오검? 그렇다면 석진영의 사제냐?"
"그렇다. 나는 칠마전의 제자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네가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나를 굴복시킬 수는 없다."
지옥제오검의 표정은 기이하게 차분했다
. 마치 일이 이렇게 되어 가리라는 것을 미리 각오한 모습이었다.
"대사형이 조금 전 나를 여기로 보내며 밀지(密紙) 한 장을 주셨다.
그리고 남천관에서 하인 노릇을 하고 있는 놈이 나타날 때 전하라 하셨다."
"석진영이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그렇다. 지금 나의 왼쪽 소매 속에 있다."
지옥제오검은 그렇게 말한 후 입을 악물었다.
그의 입안에서 호도 껍질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그의 오공(五孔)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윽…!"
지옥제오검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죽음을 불사하게 만드는 칠마전의 위력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독단(毒丹)을 깨물었군."
낙헌지는 지옥제오검이 삽시간에 시체로 화하자 그의 왼쪽 소매를 살펴봤다.
지옥첩(地獄帖)이라 알려져 있는 지옥제일검 석진영의 배첩 한 장이 보였다.
〈 낙헌지라는 종놈에게 보낸다. 〉
아직 먹물이 다 마르지 않은 글씨가 눈에 띄었다.
'석진영이 무슨 수작으로 내게 이런 밀지를 보내는 것인가?'
낙헌지는 정의군자인 체하면서 천하에서 가장 악독한 석진영의 모습을 그리며 살광을 뿜어냈다.
"펴보면 어떤 수작인지 알겠지."
낙헌지는 중얼거리며 지옥첩을 열어봤다.
〈 낙헌지―
너는 이 글을 보는 순간 아주 무서운 독에 중독되었다.
무형(無形) 무색(無色)의 극독이 너의 살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
지옥첩 초두에 쓰인 말이 낙헌지를 긴장시켰다.
'비열한 놈! 종이에 극독을 발라 두었군.'
낙헌지는 급히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장심이 금세 자주색으로 물들었고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리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 너는 이 순간 무공을 사용하지 못한다.
네가 겪게 된 독은 독낭자(毒娘子)가 네게 보내는 선물이다.
마독(痲毒)이라는 독중지독이다. 나는 네놈이 독에 쓰러진 후 모습을 나타낼 작정이다.〉
석진영의 편지가 낙헌지에게 비웃음을 샀다.
"훗훗…석진영! 네놈이 별 해괴한 짓을 다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네놈의 어떤 수작에도 당하지 않는다."
낙헌지는 당당히 외치며 손을 위로 쳐들었다.
"파독신강(破毒神 )!"
그가 독공을 운기하자 두 팔이 팔뚝 부분까지 백색으로 물들었다가
순간적으로 홍색으로 화했다.
파독신강은 만독마의 절기 중 하나였다.
마도의 독공을 파괴하는 수법으로 파독신강이 운기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파팟―!
낙헌지의 손 주위에 뜨거운 기운이 형성되더니
지옥첩에 발려진 마독이 검은 안개로 화해 사라져 갔다.
낙헌지는 손끝을 통해 독무를 뿜어 내고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흔적이 없군. 하하… 과연 독사숙의 절기는 대단하다."
낙헌지는 마독을 말끔히 해소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짓다가 두 사람이 다가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금의검선자와 검룡이었다.
금의검선자는 낙헌지가 과거 자신의 손 아래 구출된 바 있던
남천관의 하인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아…이 사람이 정말 남천관의 바보 하인 낙헌지란 말인가?
사별삼일(士別三日) 괄목상대(括目相對)이라더니…사람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가 없구나!'
금의검선자는 낙헌지의 헌칠한 모습에 황홀감 마저 느끼기까지 했다.
낙헌지는 두 사람이 다가서자 얼른 포권을 취했다.
"조금 전 지옥궁(地獄宮)이 제명당한 것을 보고 왔소."
두 사람이 함께 감격해 외쳤다.
"아…언니의 예상이 적중했군요."
"과연 병선자이십니다."
낙헌지가 다소 서먹서먹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지옥제일검으로 행세하며 천후존자와 남천신군을 죽인 석진영은 이 근처에 숨어 있소.
그러나 곧 잡힐 것이오."
금의검선자는 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악적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겠어요."
그러다 그녀는 자신이 알몸의 상태에서 낙헌지에게 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양 볼을 진하게 물들였다.
검룡이 허리를 넙죽 굽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석진영이 지옥제일검이었다는 것은 무림맹의 수치외다.
그자가 무림맹의 총순찰이라는 지위까지 올랐다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오
. 대협의 신공으로 그 간악한 놈을 잡아 징계하시길 바라겠소."
아주 비분강개한 어조였다.
낙헌지는 그런 검룡의 의기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하하…석진영은 검보 안에 있는 한 가지 물건을 얻기 전에는
검보를 떠나지 않을 지독한 놈이오. 놈을 잡기는 시간문제이니 안심하시오."
"그렇겠지요. 놈은 십오 년 전 대무신국의 고수들이 본보에 맡긴
칠마령의 한쪽을 찾으려 하고 있습지요.
하지만 그곳에는 흑의검왕이란 절세고수가 도사리고 있어
놈이 발악을 한다 해도 뜻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럴 것이오."
낙헌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을 들어 검보 안을 살폈다.
무림맹의 총단이기도 한 검보는 아주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 안 어딘가에 석가 놈이 숨어 있겠군.'
검룡 등석은 소매 속에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내는 시늉을 했다.
"대협, 저는 대협께 이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뭐요?"
낙헌지의 눈길이 그의 손바닥에 고정되었다가 잠깐 흐트러졌다.
빈 손바닥이기 때문이었다.
"어엇…?"
낙헌지는 불길한 육감에 흠칫 상체를 틀었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검룡의 왼손이 번개같이 쳐들려지며 푸른빛 십여 개를 쏘아냈다.
피피피핑―!
소털보다도 가는 독침 스물여덟 개가 낙헌지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으윽―!"
낙헌지는 너무도 창졸간의 암습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뒤로 미끄러졌다.
"죽엇!"
검룡은 오른손이 검을 끌어내며 낙헌지의 심장을 노렸다.
"허억, 칠마의 독검?"
낙헌지가 이를 갈며 그를 향해 우장을 힘껏 휘둘렀다.
퍼엉―!
혈강이 뿜어지며 검룡의 앞가슴을 후려쳤지만 낙헌지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야 했다.
"으으…!"
낙헌지의 가슴에는 독검 한 자루가 꽂혀 등까지 삐죽 튀어나왔다.
그는 검을 꽂힌 검을 부여안은 채 푹 꼬꾸라졌다.
"으흐흐…네놈은 내가 지옥제이검(地獄第二劍)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오검인 막내사제의 희생이 있었기에 네놈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검룡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웃음소리는
그가 상승 마공의 소유자임을 알려 주기에 충분했다.
"사… 사형이?"
금의검선자는 너무도 엄청난 변괴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까뒤집었다.
검룡은 상승마공을 익혀 마강지체를 연성했기에 낙헌지의 혈강을 맞고도 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금의검선자 곁으로 다가서며 마도 금나수를 시전해 냈다.
수법이 빠르기는 금의검선자가 알고 있던 검룡의 일신무공에 비해 세 배나 뛰어난 것이었다.
"앗…?"
금의검선자는 순식간에 검룡에게 제압되었다.
"ㅋㅋ…나는 검룡이기 이전에 지옥제이검이다.
어리석은 계집! 그간 나를 사형으로 알고 잘 대접해 주어 고맙다.
ㅋㅋ… 세상 사람들이 검보이선자(劍堡二仙子)가 어여쁘고 현명하다지만 모두 헛소문이다."
"이 간악한 놈!"
금의검선자가 검룡의 진면목에 치를 떨었지만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검룡은 금의검선자를 움켜쥔 채 혼전장을 향해 외쳤다.
"지옥제이검이 금의검선자를 제압했다.
검보의 수뇌와 협상을 벌이고 싶으니 수뇌는 어서 나타나라!"
싸움판은 삽시간에 정리되었다.
"와아―!"
"제이검께서 검선자를 제압했다!"
무림맹 고수들과 혼전을 벌이던 지옥검대고수들이 검룡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검룡을 중심으로 견고한 진세를 구축해 엄호했다.
지옥검대 고수들의 수는 칠십에 달했고 모두 살기등등해 보였다.
무리맹 고수들은 크게 좌절했다.
그토록 믿고 따랐던 검룡마저 지옥궁의 무리라는 사실에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맙소다! 검룡마저 지옥궁 소속이었단 말인가?"
"으으… 소맹주가 이백 결사대와 함께 지옥궁 토벌에 나서
절정고수들이 없는데 이런 변이 생기다니…"
무림맹의 무사들의 수는 지옥검대 고수들의 수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싸움이 시작된 후에도 멀리서부터 모여든 사람이 많았기에 그 수효는 근 천에 달했다.
하지만 그들은 절정고수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무림맹의 절정고수는 병선자를 따라 간 이백결사대 안에 모두 소속된 것이다.
물론 고강한 무공의 검보 수비대 고수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지옥궁 소속이었다.
그들은 검룡이 지옥제이검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는 검은 복면을 꺼내
얼굴을 가려 지옥검대에 합류한 것이다.
실로 철저한 암계가 아닐 수 없었다.
"카하하하…!"
검룡은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다는 듯 앙천대소를 연발했다.
"금의검선자가 내 손에 있는 이상 어느 누구도 나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 나는 이제 검보를 접수할 것이다."
이때, 검보 깊숙한 곳에서부터 흑선풍(黑旋風)과 같이 날아오르는 이십 명의 정예고수들이 있었다.
맨 앞에 선 사람은 흑의를 걸친 중년인으로 손에 사 척 장검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검보 검왕전(劍王殿)의 전주(殿主)인 흑의검왕이었다.
"지옥궁의 무리들!"
흑의검왕의 눈에서 노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대무신국(大武神國) 사람들이 아직 건재하고 있건만 어이해 이렇듯 오만방자할 수 있단 말이냐?"
흑의검왕은 검룡이 사자후로 외친 소리를 듣고 검왕전을 급히 떠나 여기 온 것이었다.
그의 출현에 검룡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성공이다. 이제 칠마령은 칠마전에 돌아왔다!'
검룡은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듯 아주 편안한 모습이 되었다.
흑의검왕이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검룡을 향해 날아들었다.
새파란 검기가 다섯 자 길게 뻗어 나왔다.
검룡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으하하… 검왕은 지금 당장 검왕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나을게요?"
"뭐… 뭐라고?"
흑의검왕이 허공에서 몸을 주춤했다.
"하하… 지옥제일검은 그대가 검왕전을 나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소.
그대가 나섰으니 지옥제일검이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오.
칠마령을 찾기 위해서 말이오."
"흥,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 하나로는 검왕전을 수호하는 나의 수하들을 제거하지 못한다.
지옥제일검은 이미 크게 부상당한 상태가 아니야?"
검왕이 자신 있게 외치자 검룡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ㅋㅋ… 지옥제일검 곁에 백 명의 고수가 있다는 것도 아시오?"
"뭐… 뭐라고? 너희 지옥궁의 무리가 그렇게 많더냐?"
흑의검왕이 허공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하…!"
검룡이 그의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며 오만하게 웃어댔다.
"백독마부(百毒魔府)에서 온 독공의 고수 일 백이 지옥제일검과 함께 검왕전 안으로 들어갔소.
그대가 나의 유인책에 끌려 검왕전을 비우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말이오."
"백독마부까지?"
흑의검왕은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지옥제일검 석진영 하나만을 예상한 것이 너무도 큰 실책이었다.
"하하… 칠마령은 이제 칠마전의 것이다!"
검룡이 득의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앞으로 칠 일! 중원인들은 칠마(七魔)의 위대한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검룡의 외침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지면에서부터 신음소리가 일며 피로 전신을 물들이고 있는 사람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검룡을 향해 몸을 집어 내던졌다.
"네 놈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
꽈르르르― 릉―!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일며 검룡의 머리통이 뇌수를 뿌리며 산산이 박살나 흩어졌다.
그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황천으로 직행한 것이다.
"아아…!"
완맥이 풀린 금의검선자가 털썩 주저앉았다.
검룡을 일 초에 박살내 피투성이 청년은 흑의검왕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지키고 있으랬더니… 왜 나섰소?"
가슴에서 등으로 검을 꽂고 있는 낙헌지의 분노에 찬 음성이 흑의검왕을 경악케 했다.
"정… 정검령주(正劍令主)?"
흑의검왕은 대번에 그를 알아본 것이다.
"으음…!"
낙헌지는 기력을 잃고는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대협!"
금의검선자가 급히 그를 안아들었다.
순간, 지옥검대 고수들은 검룡이 급살하자 이성을 잃고 악마와 같이 외치며
금의검선자와 낙헌지를 향해 검을 마구 쳐냈다.
"죽여라―!"
"제이검님의 복수다!"
십수 자루 장검이 낙헌지와 금의선자의 몸뚱이를 요절내기 직전이었다.
흑의검왕은 수중의 장검에 극한의 진기를 운집하고는 지옥검대를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어천파천(馭劍破天)―!"
번― 쩍―!
장검은 일 장 길이의 백룡으로 화해 번개같이 날아가다가 허공에서 돌연 방향을 틀었다
. 장검이 살아 있는 생물같이 방향을 틀자지옥궁 무리들이 기절초풍 놀라 뒤로 물러나려 했다.
"아앗, 어검술이다―!"
"모두 피해라!"
그러나 이미 늦은 후였다.
장검이 지나가는 곳마다 수급의 비가 떨어져 내렸다.
지옥궁 고수 스무 명이 거의 동시에 목 없는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와아!"
"악도들을 처단하라"
대무신국에서 십파의 절학을 전수 받고 멀리 중원으로 나온 정검수들이 검을 빼들며
지옥궁 고수들을 향해 학시진(鶴翅陣)을 이루며 공세를 펼쳤다.
"대무신검(大武神劍)!"
"정검무적(正劍無敵)!"
정검수들이 몸을 날릴 때마다 검화(劍花)가 빗발치듯 일어났고 그 순간마다 피보라가 일어났다.
지옥궁 무사들은 강호 어디에 내어 놓아도 절정고수 소리를 들을 만한 고수들이었으나
대무신국에서 온 정검수들에게는 비할 수 없었다.
"케에엑!"
"으악!"
칠십여 명의 지옥궁 고수들이 백 초가 지나기 전 거의 다 시체로 화했다.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海)였다.
이 순간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득의에 찬 웃음소리가 있었다.
"카하하…!"
한 마리 흑응이 구름을 향해 날아오르는 가운데 석진영의 음성이 검보 고수들의 고막을 때렸다.
"카하하… 나는 지금 칠마전으로 간다.
돌아올 때는 일곱 사부님을 따라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때 지금의 빛을 갚아 주겠다.
지금 나의 수하들을 베는 자리에 끼었던 자들은 그때 모두 참수될 줄 알아라!"
석진영은 손에 금패(金牌) 한 조각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독낭자가 그의 옆구리를 꽉 잡고 아주 행복해 하고 있었다.
아… 칠마령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 탈취당한 것이다.
이로써 대무신왕 정의무성이 천하를 위해 칠마를 금제시킨 안배가 깨지고 만 것이다.
끼르르― 룩―!
흑응군(黑鷹軍) 중 가장 힘센 신응(神鷹) 한 마리는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는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갔다.
석진영이 사라지자 흑의검왕을 위시한 정검수들의 얼굴이 검게 물들다 못해
자색(紫色)으로 타들어 갔다.
흑의검왕은 너무도 낙심하여 털썩 주저앉았다.
"이럴 수가! 상왕(上王)께서 우리들을 중원으로 보내 막으려 하시던 일이
모…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구나!."
흑의검왕의 치렁치렁하던 머리카락이 극도의 상심으로 백발로 화해 버렸다.
"크으, 전주! 이제 어찌되는 겁니까?"
"철마전이 중원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대무신국으로 인해 이룩되었던 칠십 년 중원 평화가 드디어 종막을 내린단 말씀입니까?"
정검수들은 땅을 치고 울었다.
"모두 내 잘못이다…
내가 정검령주의 말을 듣지 않고 검왕전에서 여기로 나왔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흑의검왕이 손을 들어 자신의 천령개로 가져 갔다.
스스로 머리통을 박살내 죽음을 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비분강개하는 흑의검왕의 눈에서는 진한 혈루(血淚)가 뚝뚝 떨어졌다.
"칠마령을 지키고 살면서 언제나 큰 힘을 모아 대무신국의 원수 서장 칠마전을 치려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흑의검왕은 자신의 천령개를 힘껏 후려쳐 갔다.
"잠깐!"
다급히 외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의 거한이 달려 왔다.
외침을 발한 사람은 거한의 등에 업혀 있는 한 명의 청의몽면 여인이었다.
청의병선자 이옥란은 팔나한 중 가장 날랜 비천나한의 등에 업혀 검보로 돌아온 것이다.
"검왕, 아직 한 가지 희망은 있습니다."
청의병선자는 흑의검왕 근처에 이르러 거한의 등에서 내려섰다.
"으음…!"
취마음에 내상을 입은 그녀는 서 있기조차 힘든지 갸날픈 교구를 심하게 휘청거렸다.
"아직 한 가지 저지할 길이 있습니다.
그…그 방법을 쓰지 않은 채 자결하신다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이… 이제 무슨 희망이 있겠소, 소맹주?"
흑의검왕이 한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선자 이옥란은 가슴을 누르며 가쁜 숨을 자제했다.
"칠마령의 마지막 한 조각이 칠마전 소전주의 손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나
아직 중원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놈은 새를 타고 날아갔소.
이곳이 강남의 후미진 곳이기는 하나 나흘 정도면 서장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오."
흑의검왕이 여전히 상심에 젖어 있었다.
병선자의 눈빛은 지혜로 반짝였다.
"그렇습니다. 사흘이라는 말미가 있습니다."
"사흘…?"
"사흘 안에 그들을 잡게 된다면 정의무성께서 칠마에 건 금제(禁制)를 풀리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흑의검왕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가능한 일이오. 그들을 어떻게 막겠소?"
"한 가지 방도가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어인 방도요?"
이옥란은 서쪽 하늘 쪽으로 향해 섰다.
"칠마전의 흑응보다 훨씬 빨리 나는 금시단정학(金翅丹頂鶴) 한 마리를
한 시진 안에 부를 수 있습니다."
"금시단정학? 그것은 전설로만 알려져 있는 영물이 아니오?
그것은 대무금붕(大武金鵬)과 함께 천하이신조(天下二神鳥)라 불리고 있는
거대한 학으로 알고 있소만?"
"그렇습니다. 개방 태상방주(太上 主)이신 천결신개(千結神 )께서 그 학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의 거처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럼 흑응을 따라 잡을 수 있겠구려?"
흑의검왕이 크게 기뻐했다. 얼굴 가득 화기가 감돌았다. 그러다가는 곧 낙담했다.
"아…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오.
흑응을 따라잡는다 지옥제일검을 막을 사람이 누가 있겠소?
놈은 그때쯤 내상을 회복하였을 것이 아니오?"
흑의검왕이 회의에 찬 반론에 이옥란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대체 누구요?"
"가부 백의검제(白衣劍帝)의 뒤를 이어 제이대(第二代) 무림맹주(武林盟主)가 되신 분입니다."
이옥란은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고 있는 낙헌지 곁으로 다가갔다.
낙헌지는 미약한 숨결을 뿜고 있는데 그의 머리는 금의검선자의 무릎 위에 받쳐진 채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오공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바로 이 분이십니다."
청의병선자가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낙헌지라는 사실에 군웅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 아니? 그가 무림맹주란 말이오?"
"이 사람은 석진영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석진영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오. 그는 정검령주이기도 하오.
하지만 이렇게 치명상을 입었는데 어떻게 살아날 수 있단 말이오?"
흑의검왕은 낙헌지의 초절한 무공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독검을 받은 낙헌지가 희생할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십이 시진이면 이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완전히 살리지는 못하겠으나 사흘간 막강한 내공을 발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옥란은 몸을 굽혀 앉으며 낙헌지를 진맥했다.
"다만 두 사람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희생이라면?"
흑의검왕은 바짝 긴장하며 물었다.
이옥란은 낙헌지의 맥을 놓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의 절세고수가 진원지기를 불어넣고 주어야 하고…
처녀성을 잃지 않은 여인이 몸을 바쳐야 합니다. 그럴 경우 이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아…!"
모두 얼떨떨해 할 때 낙헌지의 머리를 무릎 위에 받쳐 안고 있던
금의검선자 이약란은 눈빛을 반짝였다.
"언니는 지금 음양회혼대법(陰陽回魂大法)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렇다."
"아…칠마전이 중원으로 온다면 검보고 무림맹이고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걸 일이고 저와 안면이 있는 분에게 숨을 불어넣는 일이니…
그 중 한 자리를 제가 맡겠어요, 언니!"
금의검선자는 딸기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도 뛰어나 아직 배필을 찾지 못한 금의검선자의 얼굴에 떠오른
비장한 표정을 낙헌지가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나선 미녀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른 한 자리는 당연히 나의 차지요
. 정검령주를 구하는 일이라면 목이 열 개 없어지는 일이라도 마다 하지 않겠소."
흑의검왕이 크게 외치며 이약란 옆에 다가섰다.
청의병선자는 두 사람이 선뜻 나서자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했다.
"낙 맹주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가 칠마전을 향해 가는 석진영을 막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나…
일말의 희망마저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청의병선자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아… 모두 나의 잘못이다. 지옥궁 안에서 저 사람의 말을 믿었어야 했어.
석진영이 지옥제일검이라는 것을 알았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청의병선자는 장탄식을 흘리다가 먼저 검보 안으로 들어갔다.
금의검선자는 낙헌지를 안아들며 그 뒤를 따랐고,
삼십삼정검수 중 열여덟 명이 검을 쳐든 채 그 뒤를 쫓아갔다.
***
검보(劍堡)에서 가장 깊은 곳이다.
죽림으로 둘러싸여 있는 석루 주위를 새벽 안개가 신비하게 감싸고 있었다.
"으음…!"
석루 안에서 들려오는 사나이의 신음성이 있었다.
"아아…!"
여인의 한숨 소리가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장식이 거의 없는 석실 한 가운에 네모난 돌침상 하나가 있고
그 위에서는 실로 희귀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 하나가 역시 탄탄한 나신을 드러내
청년의 몸 위에 엎드려 있었다.
침상 발치에서는 흑의중년인 하나가 청년의 두 발바닥을 손에 쥐고 운기행공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교(邪敎)의 예식인가? 아니면 색정광(色情狂)들의 파렴치한 행위인가?
그것이 아니었다.
중원 사활을 목전에 둔 비장한 활인대법(活人大法)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생(生)과 사(死)의 싸움!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어울리는 가운데 사선(死線)을 벗어나기 위한
한 영혼의 몸부림이 있다는 것이 바로 진실이었다.
여인의 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사나이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손가락 하나 들어 갈 틈도 없이 밀착되었고, 입술마저 꼭 포개져 있었다.
"으음…!"
여인은 비음을 내며 괴로운 표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나이의 두 손이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등쪽으로 올라와
거친 애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여인의 탄력 있는 둔부에 사나이의 손톱 자국이 무수했고
, 어떤 곳은 너무 세게 할퀴어 피를 내비치기도 했다.
사나이는 원양진기(元陽眞氣)의 발동을 느끼는 듯 몸을 힘차게 움직이려 했으나
아직은 그럴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내공지기를 일 성 가량 모은 상태였다.
내공지기가 오 성 가량만 모아진다면
그때부터 제 스스로 운공해 상세를 치유할 수 있으리라.
그 이전까지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그의 내상을 다스려 줄 절세 내가고수의 진원지기(眞元之氣)였다.
그의 두 발 용천혈에 진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는 사람이 그 장본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의 흐트러진 원양진기를 불러일으켜 줄
순음지기(純陰之氣)를 지닌 여인의 육신이었다.
그의 몸 위에 반듯이 엎드려 있는 여인이 바로 순음지기의 장본인이고,
천하를 위해 일신을 희생하는 갸륵한 여인이었다.
"아악…!"
여인의 신음성은 이제 고통에 가까웠다
. 사나이의 손길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나이의 거센 애무 아래서도 몸을 빼낼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고
오히려 몸을 사나이에게 점점 더 밀착시켰다.
"으음…!
사나이는 여인의 얼굴에 마구 입맞춤을 하며
몸을 일으킬 듯 일으킬 듯했으나 다시 드러눕고 말았다.
그의 용모는 아주 준수했다
. 그와 몸을 합하고 있는 여인의 얼굴도 매우 아름다웠다.
바로 낙헌지와 이약란이었다.
낙헌지의 용천혈에 진원진기를 흘려넣고 있는 흑의노인은
대무신국 출신 고수 흑의검왕이었다.
그는 지금 세 사람 중 가장 큰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
흑의검왕은 낙헌지의 몸 안에 진원진기를 흘려 넣는 일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자 크게 당황했다.
낙헌지의 몸 안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반탄지기(反彈之氣)가 흘러나와
그의 심맥이 으스러지는 듯 괴로웠다.
'으음, 이 젊은이의 내공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가히 천하제일의 공력이다.'
흑의검왕은 진퇴유곡의 상태였다.
고통을 피해 진기 주입을 중단한다면 낙헌지는 영영 깨어날 수 없는 몸이 된다.
그렇다 진기를 계속해서 밀어넣자니
반탄력이 너무 강해 몸이 박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세 종류의 다른 신음소리는 수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낙헌지는 처음에 비해 훨씬 나아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직 나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자체적으로 내공을 운기하기 전까지는 사경에 접해 있는 것이다.
흑의검왕은 진기의 소진과 강한 반탄력에 힘겨워 본래보다 사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낙헌지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반탄력은 아주 무서웠다.
일전에 오마의 우두머리인 혈발마도 막지 못했던 반탄지기를
흑의검왕이 어찌 대항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심맥이 터져 죽었을 것이다.
흑의검왕이 혈발마보다 내공이 약하면서도 아직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대무신국의 내공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운기행공이 이미 하루를 넘겼는데…'
흑의검왕은 낙헌지를 낫게 하지도 못한 채 탈진돼 가자 초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이 죽는 것은 그리 억울한 일이 아니었다.
석진영이 칠마령을 갖고 서장 칠마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억울하고 공포스럽기만 한 것이었다.
'임독양맥(任督兩脈) 사이에 지극히 강한 잠재력이 있다.
그것이 나의 진원지기를 방해하고 있다.'
흑의검왕은 진원지기를 계속 불어넣었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이 효과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으윽…!"
흑의검왕은 급기야 극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운기행공을 한 시진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그가 운기행공을 중단하면 낙헌지는 죽을 것이고,
그도 상당한 타격을 받아 이후로 내공을 운기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여전히 낙헌지를 부둥켜안은 채
순음지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 이약란을 보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녀도 거의 탈진 상태였고 온몸은 낙헌지의 손길에 엉망이 된 상태였다.
흑의검왕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최후의 방법을 써야 한다.'
첫댓글 최후의 방법! 그게 뭘까?
즐감하고갑니다.
감사해요~~~~^~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요!!!!!
ㅈㄷㄳ
최후
감사합니다
ㅈㄷ
ㅎㅎㅎ
즐감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몸안에 내재된 뭉쳐있는 진기를 녹여주면 해결될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