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팔백여섯 번째
인생을 축제처럼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저기 가는 저 사람 조심하세요). 우물쭈물하다가는(어물어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불리던 동요 <자전거>로 우리 세대도 이렇게 배웠습니다. 훗날 가사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 )안으로 개사했다고 합니다. 당시 자전거는 신문물, 새 권력을 상징했을 겁니다. 명색이 동방예의지국인데, 감히 어른에게, 그것도 비하해 ‘꼬부랑 노인’이라 부르며 비키라니, 젊은 놈이 비켜야지 노인에게 비키라고 하다니, 혼쭐을 낼 일이지요. 그것은 신문물에 어두운 노인, 권력을 갖지 못한 퇴물의 상징인 노인에게 외치는 말입니다. 농촌사회였던 이 땅에 신문물과 전체주의, 자본주의가 자리하면서 공동체 문화가 심하게 요동친 겁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자, 나와 보는 시각이 다른 자, 힘없는 자, 갖지 못한 자는 모두 비켜라! 그런 외침이었던 거지요. 우리는 무심결에 이런 동요를 배우고 노래했으며, 그런 사고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혼탁한 세태는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옛사람들은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협소한 마음을 불인不仁이라 했고, 나와 너 사이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마음, 나와 네가 다르다는 구별의식이 사라진 마음을 인仁이라 알고, 공동체 사회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민족입니다. 성호 이익은 인의 가치를 망각하면 결국 사람들이 서로 다투며 경쟁하게 된다고 우려했습니다. 정말 그리되었지요.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배려’가 요구됩니다. 상대의 마음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로 배려하며 즐기자고 카페도 열고 카톡방도 만든 겁니다.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인생을 축제처럼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