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중 교수께서 남기고 간 이야기
😇사람은 세상을 떠나면서 이야기를 남긴다.
윤대통령 부친, 윤기중 교수께서는 92세를 일기로 소천하셨다.
윤대통령은 나이들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윤대통령은 재학생 시절 아버지 연구실에 들려 수학 공부, 방학 숙제 등을 하고는 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꾸지람도 받고, 위로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서울대 법대,열심히 공부한 윤석렬 학생은 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기뻐하는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고 친구들에게 술자리 한턱 쏘겠다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집에와 결정을 말씀드리니, 그 돈 네가 받아도 되는지 생각해 봐라. 그돈은 가난한 친구가 받아야지.
아버지 말씀에 아들 윤석렬은 친구들의 양해를 구하고 장학금 명단 삭제를 요청하였다.
🎈윤기중 교수는
9수 만에 자식을 사법 시험에 합격시켰다.
자식의 사법시험 낙방을 8번이나 지켜보신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전하러온 아들을 맞이한 윤기중교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이 지은 "선택의 자유" 라는 책을주고 술자리를 열어 주셨다.
윤기중 교수는 아들에게 주도를 가르치며 자유와 공정의 가치를 가르쳐 주셨다.
윤대통령 요리 솜씨는 아버지와 대화하는 술자리 안주 솜씨에서 비롯되었다.
🎈이후도 윤대통령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 조언을 들었 다고 한다.
그때문에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유난히 많다.
🎈윤대통령 검사 임명장을 받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윤기중 교수는 단벌 신사 였다.
그러나 이해 관계가 있는 남의 밥 절대 얻어 먹지 마라고 3000만원이 입금된 카드를 아들에게 주셨다.
이 일로 윤석렬 검사는 부하들의 술값은 언제나 윤검사 차지가 되었다.
🎈윤기중 교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식 소식을 들었다.
윤기중 교수는 단상에 자리를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문에 취임식 날 윤기중 교수의 모습은 단상에서 비추지 않았다.
그런데 윤기중 교수의 얼굴을 아는 지인이 단상 아래 일반석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주변 지인이 사진에 담아 모 신문사에 보내주었다. 이일로 대통령 취임식장 으로 간 아버지 모습이 알려지게 되었다.
🎈윤대통령이 아버지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찾아가 인사 드리니, 윤기중 교수께서 윤대통렁 손을 잡고하시는 말씀
❣️잘자라 주어
고맙다.
이 말씀을 남기고 헤어졌다.
윤기중 교수의 임종 전 자식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었다.
-옮긴 글-
이글을 읽으며
한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계모의 학대속에 미움과 증오로 자란 히틀러 무수한
생명을 학살 했고
북한의김일성의 사상으로
2500만명이 지금도 굼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듯 좋은 환경에 자란
윤석열 대통령의 영향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이
열린 것이다
이땅에 좌편향성을 가진 자들은 이제 끝장낼것이다
우리 나라는 세계가 부러워
하는 나라로 우뚝 설것이다
이것이 한사람의 영향력이다
고 윤기중님의 고귀한 정신
이 이나라를 밝힐것이다
삼가 명복을 빌며 영면하소서~~!!
첫댓글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런 좋은 글을 유치원에서 부터 대학 강의실, 심지어 경로당에 앉아 허송세월 보내는 노인들에게 까지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