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포라는 곳의 도르카스라는 신자.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을까요?
그가 생전에 사람들에게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하였기에 그렇다고
복음에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기록된 이 복음은 영성적인 관점에서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시 살아날까 두려워서 아예 깊이 묻어버리고
관도 아주 무거운 관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였는가에 따라서 죽은 후에 그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유럽의 성인들 중 십자가의 성요한의 관은
성당 안 높은 곳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그러나 독재자에다가 자기 혼자 부를 차지한 정치인들은
사후에 그 시체가 다시 처벌당하거나 혹은 아주 깊은 곳에 묻혀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처리당합니다.
그러면 자선을 하면 누구나 그런 대접을 받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자선 그러면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가 떠오릅니다.
자신은 독점적인 부를 차지하고 가난한 국민들에게는 마치 강아지에게 뼈를 던져주듯이
동전을 던져주면서 자기만족을 하였던 그런 부류의 자선가.
이들은 그 마음 안의 탐욕으로 인하여 자선을 하면서도 욕을 먹고,
자선 자체가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를 합니다.
그렇다면 도르카스의 자선은 어떤 것이었는가?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동질감을 가지고 도운 것입니다.
예전 경제학자들 중에는 인간이 사는 공동체의 경제구조가 인체와도 같아서
서로가 순환이 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모든 이가 하느님 안에서 한 지체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자선이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자선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살아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진정으로 고마움의 대상이기에
그의 존재성에 대하여 진정으로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도르카스가 다시 살아난 것은 바로 그가 가진 인간애가 원인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기 수명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들.
그러나 세상을 떠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시기에 사람들이 한사코 반대하기도 하고,
한사코 부활하기를 바라기도 하니
인생의 마무리를 잘해야 할 일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