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의 책을 중심으로 요약 정리하여 올릴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유익하길 성령안에서 기대합니다...........아멘!!!
규장은 미국 시카고의 무디기념교회 어윈 루처(Erwin Lutzer) 목사의 「다 빈치 코드 깨기」를 11월 18일 출간했다. 「다 빈치 코드」가 흥행했듯이, 이 책도 벌써 7천 권이 팔렸다. 생명의말씀사도 같은 달 25일 기독교 변증 단체인 국제 기독교 연구원 행크 헤네그라프(Hank Hanegraff)와 웨스턴미시간대(Western Michigan University) 신학교수 폴 마이어(Paul L. Maier)가 공동 집필한 「다 빈치 코드 진실인가? 허구인가?」를 번역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0만 부 이상 팔린 「다 빈치 코드」에 대한 대표적인 답변서.
리 스트로벨이라는 무신론자가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한 후에 쓴 책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정확한지 여러 기독교 교수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변증한 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다는 사실과 육체적 부활을 증명하고 있으며
성경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의문시하는
여러 의문들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료도 많고 정말 강추!!!
*****콘스탄틴 대제 코드*****
그리스도인들은 콘스탄틴 이전에도 예수의 신성을 믿었으며,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대가로 재산 몰수나 심지어 죽음까지 감수했다.
그러므로 콘스탄틴이 그리스도를 신격화 했다는 [다빈치 코드]의 주장은 완전히 허구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즉 기독론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니케아에 모인 감독들은 300명이 넘었다.....니케아 회의 내용중에....그리스도가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다(골1:16)라는 성경의 교훈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골로새서1장16절 뿐만 아니라 복음서와 서신서에서(요1:1,롬9:5,히1:8)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증할 수 있는 성경구절을 입증했다.
[다빈치 코드]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교리가 상대적으로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되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역사가들은 그 종교회의에 참석한 대표의 수가 318명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렇게 300명이 넘는 참석자들 중 단지 다섯 명만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교리의 채택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중에서도 결국에는 단 두명만이 서명을 거부했을 뿐이다. 따라서 니케아 종교회의에 표 대결은 분명히 박빙(薄氷)의 승부가 아니었다.
콘수탄틴 대제가 예수의 신성을 날조했는가?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에는 예수가 단지 위대한 사람으로만 인식되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다는 역사적 증거는 털끝만큼도 없다. 니케아 종교회의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받아들인것은 사실이지만 , 그전에도 교회는 300년간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었다. 이것은 아주 쉽게 증명되는 문제이다.
[다빈치 코드]의 등장인물 티빙의 주장과는 달리,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리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선지자 이상의 존재라고 믿었다. 이에 관한 증거는 많다. 먼저 사도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교부들, 즉 "사도적 교부들"의 글을 잠시 살펴보고, 다시 2세대 및 3세대 교회 지도자들의 글을 검토해 보도록 하자.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장했다.
***교부들***
A.D.100년 시리아 안디옥의 감독 이그티니우스는 순교하기 위해 로마로 가던 길에 몇몇 교회에 일련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들에 나타난 그 교리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갑은 A.D.112~A.D.118년 사이에 빌립보 교회에 편지 한통을 보냈다. 이 편지에 따르면,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은 예수의 신성,예수의 승천및 예수의 영화롭게 되심을 믿고 있었다.
A.D100년에 태어난 팔레스틴의 순교자 저스틴은 믿음을 갖기전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순교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았다. 결국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그는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도이며 만유의 주이시다."라고 말했다.
A.D.177년에 리용의 감독이 된 이레니우스는 평생 영지주의라는 이단과 대항하여 싸웠다.요한복음1장1절을 주석하면서 그는 "성부와 성자의 모든 차이점들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한분 하나님이 자신의 말슴을 통해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터툴리안은 (A.D.150~A.D.212) 콘스탄틴 보다 1세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주장했다.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 약 250년간의 씌어진 다른 수십 편의 기독교 문서들도 초기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장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교회가 이미 그 권위를 인정한 신약성경을 기초하고 있다. 요컨대,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 약 250년 동안에 거의 모든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었다.
***니케아 종교회의와 신양의 정경***
콘스탄틴과 니케아 종교회의 참석자들이 영지주의 복음서들의 문제와 정경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말하는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다.
니케아 종교회의와 관련된 어떤 문서를 찾아보아도, 나는 어떤 문서들을 신약성경에 포함 시켜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가 논의 되었다는 언급을 단 한줄도 찾을 수 없었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전해주는 문서는 오직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뿐인데, 그의 글에는 이점이 논의 되었다는 암시조차 나오지 않는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그 결정 사항을 20개의 항목으로 정리하여 발표 했으며 아직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정경 문제에 대해 언급한 항목은 단 하나도 없다.
감사하게도 나는 [성전 기사단의 진실]와 [다빈치 코드]의 오류의 근원을 찾아냈다. 돌바하 남작은 그에 책[이사람을 보라]에서 "진전한 복음서들과 가짜 복음서들의 문제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논의 되지 않았다. 거기에서 정경의 문제를 논의 했다는 주장은 허구이다"라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