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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5일 한국과 미국의 선(先) 핵개발 포기 요구를 공식거부하면서,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우리(北)에 대한 핵 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확약한다면, (북한 핵·미사일·재래식무기 등)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으로 발표된 북한 핵개발 파문과 관련한 담화를 통해 미국측의 ‘핵개발 중단 후 미·북대화’ 제의를 “우리보고 굴복하라는 것”이라면서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이 핵문제 해결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라고 주장했다.
북한 외무성 담화는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3~5일 방북한 제임스 켈리(Kelly) 미 대통령 특사에게 밝혔던 강경한 입장과 똑같다는 점에서,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북한의 추가 핵개발 문제를 둘러싼 미·북 간 대결 분위기와 이로 인한 위기국면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담화는 또 “미국 특사가 아무런 근거자료도 없이 우리가 핵무기 제조를 목적으로 농축우라늄 계획을 추진해(94년) 조·미 기본합의문을 위반하고 있다고 걸고 들었다”면서도, “우리는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자위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었다”고 밝혀, 농축우라늄계획이라고 명시하지 않았지만 핵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담화는 이어 “조·미 기본합의문 4개 조항 중 미국이 준수한 것은 단 하나도 없으며, 부시 행정부가 우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 공격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우리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라면서 “미국이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불가침을 확약하며 우리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이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오늘의 인물]
1973년 10월 25일
마라토너 아베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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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베는 해발 3,000m의 고지대에서 태어나 초원에서 소를 몰며 심장과 다리 근육을 키웠다. 황제를 호위하던 친위대 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골절상으로 출전이 어렵게 된 동료를 대신해 로마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다.
발에 맞는 운동화가 없어 맨발인 채로 출발선에 섰을 때 69명의 선수 중 이 무명의 아프리카 선수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주최측까지 이름을 두 번이나 정정할 정도로 출전 선수 중 가장 낯선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었으니 모두가 놀라워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베베는 1966년까지 각종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고 대부분 우승했다. 하지만 잇단 다리 부상으로 1967년 유일하게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서 중도 기권하게 되자 사실상 은퇴한 상태로 지냈다. 아베베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도 출전해 생애 3번째 금메달을 노렸으나 17km 지점에서 또다시 중도 포기해 실패로 돌아갔다.
아베베가 평생 마라톤에 출전한 횟수는 모두 15차례였다. 그중 1위로 골인한 레이스는 무려12번이나 되었다. 1967년과 1968년의 기권을 빼면 그가 우승하지 못한 유일한 레이스는 5위로 골인한 1963년의 보스톤마라톤 뿐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레이스는 1966년 10월 30일 서울과 인천을 왕복하며 2시간 17분 4초의 기록을 세운 동아마라톤이었다.
1969년 3월 23일 아베베는 5년 전 셀라시에 황제가 하사한 자동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때문에 목이 부러지고 척추가 손상되어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 뛸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해 7월 영국에서 열린 장애인올림픽에 양궁선수로 출전해 손가락 대신 손목으로 활을 당겨 9위로 입상하는 초인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1970년 7월 영국에서 열린 장애인올림픽에는 양궁과 탁구선수로 출전했다. 양궁은 1회전에서 탈락하고 탁구는 두세 차례만 이겼을 뿐 전반적으로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최선을 다하는 ‘영원한 스포츠맨’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세계에 각인시켜 주었다. 1973년 10월 25일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4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는 수만 명의 조문객이 몰려와 그의 도전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기렸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38건
ㆍ2009년 · 이라크 정부청사 테러
ㆍ2001년 · 헌법재판소, 국회의원 선거구 헌법 불합치 결정
ㆍ1999년 · ‘그린 신사’ 스튜어트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
ㆍ1995년 · 한국-라오스, 국교수립
ㆍ1986년 · 한강유람선 운항 개시
ㆍ1983년 · 미국, 그레나다 침공
ㆍ1979년 · 소련, 대(對)중공 정상화 제의
ㆍ1979년 · 미국 언론, 남아공 첫 핵실험 성공 보도
ㆍ1973년 · 마라토너 아베베 사망
ㆍ1971년 · 중국 유엔 가입과 대만의 축출
ㆍ1961년 · 한국경제인협회 발족
ㆍ1961년 · 유엔사회복지위, 인권조례 채택
ㆍ1960년 · 제5차 한일회담 개최
ㆍ1958년 · 고등법원서 조봉암에 사형 언도
ㆍ1957년 · 유엔총회, 한국의 유엔가입자격 재확인
ㆍ1954년 · 민국당 선전부장 함상훈, 신익희, 조소앙의 뉴델리 밀회설 발설
ㆍ1951년 · 판문점서 휴전회담 재개. 휴전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변경
ㆍ1950년 · 중국군, 한국전 개입
ㆍ1950년 · 춘원 이광수 사망
ㆍ1946년 · 함흥 학생 반공의거
ㆍ1945년 · 이승만 중심의 독립촉성회중앙협의회 구성
ㆍ1945년 · 대만, 일본으로부터 독립
ㆍ1944년 · 가미카제 특공대 첫 전투
ㆍ1943년 · 제1회 학병징병 검사 실시
ㆍ1943년 · 항일투사 홍범도 사망
ㆍ1941년 ·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 사망 - 오르피즘 창시
ㆍ1921년 · 좌측통행제 실시(1906년 이후 우측통행제 실시)
ㆍ1907년 · `이태리 건국 삼걸전` 국내 첫 출판
ㆍ1881년 · 프랑스 화가 피카소 출생
ㆍ1877년 · 볼셰비키 지도자 레온 트레치키 출생
ㆍ1838년 · 가극 작곡가 조르주 비제 출생
ㆍ1826년 ·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치료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프랑스의 의사 피넬 사망
ㆍ1825년 ·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출생
ㆍ1811년 · 프랑스의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 출생
ㆍ1767년 · 프랑스 소설가 앙리 뱅자맹 콩스탕 출생
ㆍ1759년 · 영국의 해외 노예무역을 폐지한 영국의 정치가 그렌빌 출생
ㆍ1415년 · 영국왕 헨리5세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에 대승
ㆍ1394년 · 이성계, 한양 천도 시작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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