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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19.27)
멋지고 잘 생긴 개신교의 아주 열심한 총각이 건너 마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4째 딸을 그렇게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열심한 신자는 신자인데 가톨릭신자랍니다. 더 급하게 된 것은 이 처녀가 총각 속도 모르고 수녀원에 간 다는게 아니겠습니까? 급한 마음에 결혼을 서두르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시 어머니될 사람의 반대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예수쟁이 꼬락서니 뵈기 싫다 하시면서도 조상제사를 중히 여기는 유교주의자 이시니 큰 문제가 없는데 하루 종일을 예배당에 살다 싶이 하시는 어머니는 죽어도 마리아 믿는 천주교 처녀를 며느리로 받아 드릴 수 없다는 거죠.
몇 날 며칠을 설득하여 여필종부를 내세워 개종을 시키겠다는 전제하에 나이 26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면 혼배를 해야 한다고 하길레 결혼하고픈 욕심에다 귀신의 아버지 신부님에게 거짓말 좀 한다고 해서 죄가 될 것 같지 않아 아내와 자녀의 신앙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감면혼배를 받았습니다.
오는 주일날 고부간의 교회쟁탈전을 어찌할꼬. 하는 걱정 때문에 저는 신혼여행이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신혼여행 다녀온 그다음 날 드디어 그날 주일이 왔습니다. 교회 가실 준비를 끝내신 어머니께서 건너방을 향하여
‘애야 준비되었냐.” 라고 하실 때 저는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습니다. 이일을 어찌할꼬.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는지........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 졌습니다.
“예! 어머니” 그리고는 삽살개가 주인 따라 가듯이 시어머니를 따라 순순히 나서는게 아닙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천주교 신자의 신앙이 저 정도 박에 안 되는 것을 괜한 걱정한 게 후회스러웠습니다.
“어머니 아직 마음의 준비가 와되었으니 다음에 가겠습니다” 라고는 해야지…….
제 처 루시아는 참 열심히 아무 문제없이 교회에 잘 다녔습니다. 첫아이도 예배당에서 세례를 받게 했고요. 그래서 문제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직장을 따라 안동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본색을 드러내는데 감면혼배를 받던 날 부터 김천 황금동성당 백은기 신부님을 영적 지도 신부로 모시고 철저하게 심부님 시키는 대로 했던 것입니다.
절대로 시어머니와 시댁시구들과 종교 때문에 맞서지 마라 시어머니를 성모님 모시듯 하고 순명을 익혀 무조건 “예”라고만 하여라. 그리고는 시간을 내서 미사를 보고 성사생활을 요령껏 하라고 하는 것이 이었습니다.
그러던 아내가 분가를 하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성당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의 권위로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하였지요.
제가 근무하는 경안고등학교는 개신교 재단으로 거의 모든 선생님이 세례교인이고 교장 교감 부장님들은 장로님 입니다. 저 역시 인정을 받아 곧 젊은 장로가 될 순간이고 학생전체신앙을 책임을 맡은 종교부장에다가 교장이 직접 저를 불러 후임자라 할 정도 이었으니 마누라가 천주교 교인이면 모든 게 도루아미 타불인 셈입니다.
어느 날 제 아내 루시아가 선전포고를 하는데 예배당은 아무리 노력해도 적응이 안되니 포기하고 성당도 나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아내의 영혼을 죽이고 구원마저 잃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내심 몹시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사정 이야기도 말씀 드릴 겸 해서 당시 목성동 주임 신부님이신 유강하 신부님을 찾게 되었지요. 저는 신부님을 설덕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천추교회는 신부고 신자고 간에 자유기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기도로 본때를 보여 기를 죽인 다음 일을 추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면담 요청을 한 후 꼬박 이틀 동안 기도 연습을 했지요. 드디어 신부님이 계시는 사제 간을 방문 하는 날 식당 아줌마가 과일 내왔을 때 저는 용감히
“심부님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입으로 과일을 가져가시다 말고 기도 하겠다는 말에 뜨두룸한 표정을 지우면서
“기도요 한번 해보쇼”하는 게 아닙니까?
저는 준비한 기도를 억양과 유식한 문자를 구사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그런데 영 반응이 없어요. 나도 맥이 풀러 아멘으로 기도를 종결짓고 눈을 뜨는데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지금 하신 기도 나 유강한데 들으라고 하신 기도입니까? 하느님 들으라고 한기도입니까?” 라고 반문 하신다
헉! 갑자기 숨이 막히고 하늘이 무너지는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내가 지금가지 잘 한다고 한기도가 모두 사람 들으라고 한 기도였단 말인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체 급하게 사제관을 빠져 나왔다.
그때 그 일로 나는 기도하는 나쁜 버릇을 고치게 되었지요. 그저 꾸밈없이 아주 소박하게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게 아뢰는 것이다.
한번은 성령기도 모임에서 자유기도를 하는데 할머니 한분이 자기 차례가 닫아올수록 숨만 크게 내쉬시다가 급기야 자기 차례가 되니 숨을 몰아쉬면서 하시는 말씀이
" 천주님 만수무강 하시소" 라고 하신다.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하느님건강까지 챙기시는 얼마나 멋진 기도인가?
한번은 루시아(집사람)의 간청으로 유 신부님이 방문을 하셨는데 개신교에 대한 제 이이기를 듣기만 하던 신부님이 <교부들의 신앙>이란 책을 주시고 가셨는데 참으로 나를 갈등하게 한 책이었고 교리 반으로 나를 이끌게한 책이되었다.
나는 천주교회 교리반 청강생으로 등록을 하고 비교 종교학을 배우는 입장으로 빠지지 않고 교리 반에 출석하였다.5월에 시작한 교리 반은 그해 12월에 끝을 맺으면서 영세준비로 찰고(영세를 앞두고 준비문답)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청강생이란 명목 때문에 탈락되었다.
무시당한 배신감 때문에 나는 정식으로 다음해 다시 등록을 하여 2년 재수 교리 반을 시작하였다.
두 번 정도 부득이 결석을 했을까 열심히 빠지지 않고 배웠다. 또 대부를 정하면서 찰고를 하는데 이번에는 묻기를
“ 선생님 천주교회에서 성모님을 공경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부님 천주교회의 7성사에 대하여 너무 좋게 받아 지지만 성모상 세워놓고 절하며 섬기는 모습은 우상숭배 그자체가 아닙니까?”
“ 그래요? 선생님은 천주교 신지가 될 려고 하지 마시고 지금같이 예배당 신자로 신앙생활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분노가 치민다. 이렇게 끝낼 수 는 없다고 생각이 들자 교리 반 다시 한 번 더 제수하기로 하고 다시 등록을 하였다. 순전히 이번에는 마리아 성모님과의 싸움이다.
3년 교리 반에 수강하던 그해 10월에 서부교회에서 새 장로 선출을 앞두고 유혹이 왔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기독교재단 사립학교로 이 학교에서는 장로가 되어야만 출세가 보장되기 때문에 나는 장로가 되기 위하여 20리를 왕래하는 시골교회 파견 전도사 노릇을 해왔고 공설운동장 옆 정하동에 개척교회를 세워 6명으로 시작한 신자를 30여명으로 확보하기도 하였다. 여러모로 보아 장로 후보로써 유력한데 걸림돌은 아내가 세례교인 이여야 하니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리 반 3년 재수 하다 보니 천주교회가 내가 생각 하던 대로 한주먹 꺼리가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고 성사교리를 배울 때는 천주교회의 매력에 폭 빠졌고 기념하는 상징으로만 여겼던 성찬식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직접 받아 모신다는 성체성사와 죄 사함의 확실한 보증의 고해성사의 가르침은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석이었다.
마리아 숭배만 없다면 명예도 지위도 명성도 다 버리고 개종 해 볼만도 하겠는데…….장로 되는 게 우선 급하니 그만 천주교인의 꿈을 접어야 하는가보다 생각하고 오늘 교리 반에 인사하고 끝을 내야겠다고 결정한 후 착찹한 마음으로 목성동 성당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이상하게도 사제관 바로 옆에 서있는 성모님 상에 이르렀을 때 나도 성호 한번 긋자는 생각이 불현 듯이 일어났다.
그러나 부끄럽고 열 적고 손이 천근만근 무거움을 느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나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성호를 그었다. 얼굴이 화근 거려 사제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감실(성체를 모셔 두는 상자)이 눈에 들어오는데 가슴이 답답하게 메여오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왜 이러지 지금 까지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이유 없이 울어 본적이 없는데...,
눈물이 아롱지면서 감실의 분홍불빛이 따사로이 가슴에 안겨오면서 머리를 스쳐가는 성경 구절 요한 19:29“ 어머니 이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제자에게“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는 성서말씀이 떠오른다.
아!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로 양자 관계를 맺어 주셨구나.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어머니를 배신한 탕자의 회개의 눈물인가 하염없이 흐른다. 그때 인기척이나 서 눈물을 감추고 돌아보니 신부님이다.
“전 선생님! 뭐 하시는 게요. 아까 보니 성호도 긋고 진짜 천주교 신지 될 란가 봐요. 안 될 긴데 순교 할 자신이 있습니까?”
“심부님! 웬 순교까지 들먹이십니까? 목숨을 내놓는 피 흘리는 순교는 제가 못한다 하드라도 천주교 신자가되어 성모님의 품에 안 길수 있다면 저의 욕심과 욕망은 내놓을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그렇게 멋없이 퉁명스럽기만 하던 신부님이 와락 제 손을 잡으면서 하시는 말씀
“됐습니다. 미안 합니다. 수고 하셨고요. 개신교 신자라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영세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라고 하신다.
잠이 오지 않는다. 엄청난 오늘의 사건을 내가 감당 할 수 있을까? 순교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신부님 말씀은 어렴풋이 알아듣겠는데 그동안 미안 했다는 말은 왜 하셨을까? 3년 교리 반 재수 때문에??? 아주 나중에 아내로부터 고백을 듣고 안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골수분자 개신교 신자 남편을 개종 시켜보자는 유광하 신부님과 아내 루시아의 연극 합작품 이었던 것이다.
제 아내는 예배당이고 성당에도 가지 않겟다는 둥 남편이 “교부들의 신앙”책을 잃은 후의 반응과 변화, 3년 교리 반 사건 등등 일일이 보고하고 신부님은 체크하면서 둘이 계획하며 연구 분석 하면서 속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더 놀랍고 나를 감동케 한 것은 제아내가 남편과 시댁식구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8년을 묵주기도와 함께 살아 왔다는 것은 믿기 힘던 사실 이였다..
성탄전야 때 클레멘스로 이름을 바꾸고 천주교 신지가 되긴 하였지만 영광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개종 했다는 뉴스는 안동에 사는 개신교 신자에게는 엄청난 화제 거리가 되였으며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야단났습니다.
3월에 학교에 등교하니 제 자리가 없어졌어요.
나가 달라는 것이죠, 단장 갈 때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진짜 순교하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그해 그렇게도 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 하였습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알고 학생들이 목성동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15명 정도 되던 중고등부 학생이 80명을 넘나들고 그것도 반 이상이 저희학교 학생 이였습니다.
쫓겨 날만도 하지요. 결국 쫓겨나긴 했지만 ..........
개신교 집안에 시집와서 알게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고난과 역경을 참고 견디며 8년 넘게 시댁 식구 개종을 위해 기도한 결과는 제가 이 말을 하면서도 거짓말 같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도 있었는지 거짓 없이 말씀 드려 볼게요.
제일 염려했던 시어머니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 하신 그 어머니 제가 개종 했다는 소식 듣고 “내가 그럴 줄 알았다”하신 몇 달 후 소식이 오는데 대구 산격동 박도식 신부님 계시는 성당에 교리 반 나간다 하시며 “비아”로 영세를 받으셨고요.
예수쟁이 꼴 보기 싫다 하시며 조상숭배 제일로 삼던 아버지는 며느리에게 폭 빠져 “야야 천주교는 조상제사 지내도 댄다하니 나도 예수 한번 믿어 볼란다.” 하시드니만 “바오로”로 영세 받으시고 기쁘게 사시다가 운명하실 때 다른 가족들 다 제쳐 두고 며느리 불러 앉혀놓고 하시는 말씀이
” 애야 천주교 신자 되게 해주어서 고맙다. 3일 동안 날이 안 추워야 네가 고생을 덜 할긴데“ 유언 같지 않은 유언을 하신 후 눈을 감으셨고
그 후 고집스레 버티어 오던 시누이 미국에 이민간 시동생 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지는데 감당이 불감당이요. 처갓집 장모 장인 처제 시누이가 시집을 가니 시누이 남편까지.......저는 모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유광하신부님 하신말씀이 생각납니다.
“ 며느리 하나 때문에 그 집안 꼴 잘 되가는구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까지 개신교를 헌담 해 본적도 개종을 후회해 본적도 없습니다. 지조 없이 마누라 따라 갔다고 흉을 보아도 부끄러워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니깐 요. 저는 결코 개종을 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를 바꾼 게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가정의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교회를 바꾼 것 뿐이니깐요.
저의 신앙의 모태요 예수님을 받아들려 신앙을 키워준 개신교를 욕할 수는 없지요. 그들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느님 이지 않습니까?
편 나누어 갈라서는 것은 분열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 하시며 간곡히 당부하신 하나가 되라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화해와 용서로 일치를 이루는데 서로 노력하여 개신교와 천주교회가 하나가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글을 끝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