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홍)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병자성사를 다니면서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습니다. 한분은 아들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수술도 하고, 여러 고비를 넘겼지만 6개월 정도 재활 운동하면 어느 정도 좋아질 거라고 합니다. 형제님은 자신의 불행을 원망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몸도 아프지만, 마음까지 아파했습니다. 재활 운동하면 걸을 수 있고, 좋아질 거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행은 원망의 문으로 들어온다고 하는데 형제님은 몸도 아픈데, 마음까지 아프니 안타까웠습니다. 형제님을 간호하는 가족들도 안타까워했습니다. 다른 한분은 7년 전에 근 무력증이 찾아왔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걸렸던 병(루게릭병)입니다. 천천히 근육이 마비가 되면서 지금은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정도였습니다. 병원에서도 호전될 가능성은 없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고통을 형제님은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아직은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딸들이 잘 자라주는 것도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눈으로 움직이는 마우스가 있어서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딸들이 자라는 걸 보는 것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비록 몸은 마비가 찾아왔지만 형제님의 마음은 순수했고, 열정이 넘쳤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 마치 욥과 같았습니다. 욥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했다면, 나쁜 것을 주셨을지라도 감사드립니다.” 동료 사제들 중에도 불평과 원망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재능을 아깝게 소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 본당 신부 때문에 힘들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교우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새로 성전을 신축하는 곳에 가서는 성전신축 기금 마련이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기존의 성당으로 가서는 조직과 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보좌 신부님의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뜻하지 않았는데 병이 찾아왔고, 오랜 시간 휴양 중에 있는데, 그것도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 때문이라고 원망했습니다. 몸이 불편하니 운동도 하지 못하고, 운동을 하지 못하니 몸은 더욱 불편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우리도 이제 모두 익어가는 때입니다.
아름다웠던 젊은 날을 회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료 사제도 있습니다. 성전 신축하는 성당으로 3번이나 갔는데도 항상 싱글벙글 이었습니다. 일이 적으면 책 읽을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 합니다. 일이 많으면 결과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간수치가 높아서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매일 꾸준히 운동했고,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행복 바이러스가 있는 것처럼 그 신부님이 있는 곳에는 늘 웃음과 평화가 넘쳐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항상 기도하십시오, 늘 기뻐하십시오,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휠체어에 앉아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던 형제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것,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수난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습니다. 제자들도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처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소리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겁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인공이 되는 것을 기꺼이 포기했고, 조연의 자리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교회는 세례자 요한의 축일을 세상을 떠난 날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날로 정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역시 성령의 이끄심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렇습니다. 세상일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에서 복된 요한을 뽑으시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특별한 영예를 주셨으니 그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선구자 요한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인류 구원이 다가왔음을 기뻐하였고 태어날 때에 구원의 큰 기쁨을 알렸으며 모든 예언자 가운데에서 그 홀로 속죄의 어린양을 보여 주었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출처 : 우리들의 묵상/체험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