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들에게 ‘특급 투수’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됐다. 정민태(30·현대),진필중(28·두산),임창용(24·삼성). 이번 시드니올림픽에서 크게 혼쭐이 난 대표적인 투수들이다. 이들은 국내무대에서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상대타자를 윽박지르는 위력을 뽐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 당연히 ‘국내용’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니게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특급 선발 투수인 정민태. 지난 시즌 당당하게 20승 고지를 밟으며 다승왕을 차지했고,올해도 16승을 기록하며 다승 공동 2위(16승)에 올라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팀 간판투수로 호주·일본전 선발투수로 일찌감치 낙점됐다. 하지만 정민태가 2경기에 올린 성적은 2이닝 동안 7피안타 4실점. 방어율이 18.00으로 대표팀 투수 중에서 가장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한국이 예선전부터 예기치 않은 암초에 부딪치고,결승진출이 좌절된 첫번째 책임도 에이스 정민태에게 있다. 정민태는 내년 시즌 일본 진출을 노린다.
진필중 역시 국내용 특급 소방수임이 확인됐다. 마무리 투수의 방어율이 10.13. 3경기에 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피안타 3실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52세이브포인트를 기록하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고 올해 역시 구원선두(44세이브포인트)를 달리고 있지만 올림픽에서는 ‘소방용 호스’가 작동되지 않았다. 지난 20일 미국과의 예선리그에서 8회 뼈아픈 만루홈런을 허용했고,23일 일본과의 예선리그 때는 1⅓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하며 2점 차를 지키는 데 허덕이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아시아 구원왕’이란 명칭이 낯간지럽다.
임창용 또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누가 임창용을 한국을 대표하는 ‘옆구리 투수’라고 했던가. 정대현,박석진 등 옆에서 뿌리는 투수들이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고군분투할 때 임창용은 위기의 순간 어김없이 한 방씩 얻어맞았다. 3경기에서 2⅔이닝 동안 5안타를 내주며 마운드에 불을 질렀다.
이들은 귀국하면 다시 프로무대에서 위용을 과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다시 ‘특급 투수’란 수식어는 따라다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