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도 내는 관련 기업 지원대책 산업부, 산업별 긴급 점검 성윤모, 업종 대표 만나 협력 강조 집중관리 품목, 화학 40개로 최다/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함에 따라 정부는 관련 산업·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 대일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집중관리 대상을 정해 신속히 지원하는 한편 수출규제로 피해가 예상되는 업체에 대한 금융권 지원도 본격화한다.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4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 주요 업종별 단체 대표들과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업종별 영향 점검회의’를 열어 정부 지원 대책을 논의했다. <△ 사진:>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맨 왼쪽)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업종별 영향 점검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성 장관은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개발을 위해서는 수요-공급 기업 간의 원활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차제에 다양한 협력 모델 구축을 위해 자금·세제·규제 완화 등 모든 지원책을 패키지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담은 일본 정부의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이 오는 28일 시행될 때까지,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에 어떤 잣대를 들이댈지 모른다는 수요 기업들의 우려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품목에 대한 집중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일본이 전략물자로 지정한 수출품목(1194개) 중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될 159개 품목 가운데 화학 분야가 40여개로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기존 규제 대상에 오른 반도체 핵심 소재를 비롯해 공작기계, 탄소섬유 등도 업종별로 다양하게 분포돼 있어, 159개 품목을 중심으로 집중관리하면서 품목별·업종별 영향 분석을 바탕으로 총력 대응할 계획이다.금융당국과 은행권도 일본 수출규제로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에 대해 금융지원에 나섰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5일부터 피해 예상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상환 유예, 신규 대출, 금리 우대 등의 지원책을 시행한다. 우리은행은 최대 3조원의 신규 자금을 풀기로 했고, 케이비(KB)국민은행은 피해 기업에 금리를 최고 2%포인트 깎아주기로 했다.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은 불매운동으로 피해를 입는 여행사와 저가 항공사에도 대출 상환을 유예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3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일 수출규제 대응 간담회’를 열고, 정책금융기관이 피해 기업에 6조7천억원 상당 신규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책금융기관은 피해 기업에 대해선 기존 대출과 보증의 만기를 1년간 전부 연장해주기로 했다(...) 홍대선 박수지 정세라 기자
▷ 일본만 ‘다’ 지역으로 묶어 수출 심사 깐깐하게 규제 관광·식품·폐기물 분야엔 비관세 장벽 활용도 검토 검역·안전검사 강화할 듯 한국 기업들 피해 최소화하며 ‘부메랑’ 피할 섬세한 대응 관건
◇ 정부가 지난 3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등 ‘경제적 상응 조처’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구체적인 대응 방안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부는 전략물자 외에 관광·식품·폐기물 분야에서의 대응책도 검토 중인데, 자칫 우리 정부와 기업에 부메랑이 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섬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먼저 ‘화이트리스 배제’는 전략물자에 대해 한국도 일본에 더 깐깐한 수출 심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바세나르체제 등 4대 전략물자 국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29개국을 ‘가’ 지역에 편성하고, 이 지역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 간소화된 수출 심사를 해주고 있다. ‘가’ 지역 외는 모두 ‘나’ 지역으로 분류돼, 이곳으로 수출하는 기업은 정부로부터 3년짜리 포괄허가를 받을 수 없고 건건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가’ 지역 수출은 허가신청서와 전략물자 판정서만 제출하면 되지만, ‘나’ 지역 수출은 계약서·서약서 등 추가 제출 서류도 늘어난다.
◇ ‘나’ 지역 수출은 비전략물자이지만 무기 제작·개발 전용 우려가 있는 경우 적용되는 ‘캐치올’(Catch-all·상황허가) 규제도 더 엄격해서 전용 의도가 ‘의심’만 되어도 상황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정부는 현행 전략물자수출입고시 10조를 개정해 ‘다’ 지역을 신설해 일본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일본에 대해 최소한 ‘나’ 지역과 비슷하거나 더 엄격한 규제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정부는 전략물자 외에 ‘비관세 장벽’을 활용하는 카드도 검토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국민들의 안전과 관련한 사항은 관광·식품·폐기물 등의 분야부터 (일본에 대한) 안전조치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은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일본산 먹거리와 폐기물 수입에 대한 규제 강화 가능성이 우선 거론되고 있다. 앞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제한 조치를 다른 일본산 농수산물로 확대하거나, 검역과 안전검사 등 통관 절차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시멘트 업체들이 수입하는 일본의 화력발전소 폐기물에 대한 규제 강화 이야기도 나온다.문제는 수출입 통제를 통해 일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경쟁력이 앞서는 반도체·5G·디스플레이 등이 이른바 ‘보복 품목’으로 거론되는데, 주력 수출품에 대한 통제는 국내 대일본 수출 기업의 비용과 손실을 더 키울 수도 있다.
◇ 정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세부안 “대외의존 산업구조 탈피·기술 강국 도약 20대 전략 소재·부품은 1년 안 공급 안정화”
○··· 한국 기업의 수출입 차질에 따른 피해가 일본 기업에 비해 더 큰 ‘비대칭성’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또한 법·제도상 근거와 상황 논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일본과 국제사회로부터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 안전’을 위해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안보상 이유’를 내세운 일본 주장과 달리 명백한 근거와 설득력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특별한 안보상 문제가 없는데도 수출규제를 강화한 것은 자유무역질서 위반이라는 우리 정부의 근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일본엔 작지 않은 영향을 주는 섬세한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최하얀 기자 chy@hani.co.kr
▷ 9월 미국과 무역협상 압박에 10월 소비세 2%p 인상 예정 수출·내수 경제 타격 받을 듯 반도체 수출 허가 시한 10월 거부땐 WTO 위반…신뢰도 저하 “시간 지날수록 일 기업도 타격 일 재계와 여론의 태도 변할 것”
◇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로 ‘경제전쟁’의 포문을 열면서, 한-일 관계는 강 대 강 대치 속에 위기의 장기화로 향하는 듯 보인다. 한국 때리기를 밀어붙이는 아베 신조 총리와 측근 강경파들은 한국 산업에 타격을 주고 한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 ‘아베의 시간’에도 분명한 제약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결정 이후 한국 시민들의 ‘노(NO) 아베’ 항의집회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도쿄 신주쿠 아루타 마에에서 ‘아베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 아베 총리의 핵심 정치 자산은 외교와 경제다. 오랫동안 북한과 중국에 대한 위기와 혐오를 부추겨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북-미 협상과 중-일 화해로 이 카드를 쓰기 어려워지자, 한국 때리기 카드를 선택했다. 경제적으로는 무제한 양적완화와 공격적 재정지출에 기댄 아베노믹스가 초반에 성과를 보이며 지지율을 끌어올렸다.아베 총리에게 문제는 아베노믹스의 허상이 명확해지고 무역적자 증가, 노후 연금 문제 등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발등의 불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이다. 미-일 무역협상은 9월께 큰 틀의 타결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7월 참의원 선거 뒤까지 협상을 미뤄준 만큼 농산물 시장 등에서 일본이 큰 양보를 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이어 10월1일에는 일본 소비세가 8%에서 10%로 인상될 예정인데 이에 따른 내수 감소는 일본 경제에는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한편,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강행 이후, 국제적으로도 일본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정보통신(IT) 산업의 글로벌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7월4일 발표한 반도체 부품·소재 수출 제한 조처에 따라 한국에 이들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수출 허가 신청을 한 기업들에 승인 여부를 결정해줘야 하는 시한(최대 90일)은 10월 초다. 만약 일본이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과 대외적 신뢰 문제가 커지게 된다. 9월 말 10월 초가 아베 총리에게 중요한 경제적 시한인 셈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상당히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듯 보이는 아베 총리에게도 약점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7월 초 수출 규제 발표 이후 아베 총리와 측근들이 북한, 사린가스 등을 근거로 거론하다 물러서는 등 일관성이 부족한 태도를 보인 것도 준비 부족의 방증으로 보인다. 강동국 나고야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한반도 주변 지정학적 틀을 바꾸기에는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채, 국내·국제적으로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며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에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10월 소비세 인상 전 한국에 대해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타격을 줘 ‘65년 체제’(한-일 청구권협정에 기반한 기존 한-일 관계)의 유지를 확인하려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일본 정부 안에서도 균열이 감지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현재 총리 관저, 외무성, 경제산업성이 다 제각각인 상황”이라며 “일본 외무성은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으면 사태를 풀 수 있다며 외교적 해법을 얘기하지만, 총리 관저의 입장은 다른 것 같다. 경제산업성 내에서도 아베 총리 최측근으로 한국에 대한 강경책을 주도한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과 다른 관리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말했다. 강동국 교수는 “초기에는 한국이 더 큰 타격을 입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요 수출 시장인 한국을 상실하는 일본 소재 산업, 한국산 반도체를 사용하는 일본 기업 등도 타격을 받게 돼 일본 재계와 여론의 태도도 비판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며 “만약 한국이 대체재를 마련할 가능성이 명확해지면 일본은 적극적으로 교섭에 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박민희 기자
▷ “일본인 절반, 경제보복 관심 없어. 국민 30%만 일 정부 발표 믿어”/지한파 정치학자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는 5일 최근 일본의 경제도발로 격화된 한일 경제갈등에 대해 “일본에선 (인구) 절반 정도는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
◇ 그러면서 일본의 잇따른 경제보복의 목적을 ‘극우 정권’인 아베 정권이 “한반도의 경제도약을 막아 일본의 영향 아래 두려는 시도”라고도 전했다.호사카 교수는 이날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일본에는 지지정당이 없다는 (비율이) 50% 정도라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 사진:>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2018년 4월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1' 출간 간담회에서 관련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는 이어 “나머지 중 60% 정도는 이번 (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해 찬성한다”며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전체로 보면 30% 정도”라고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이 같은 ‘무당층’이 아베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호사카 교수는 “한국 같은 경우는 정치가 싫으면 시위, 촛불시위 등에 나가는 현상을 보이지만 일본에선 무관심으로 가는 분들이 꽤 많다”며 “이런 분들이 앞으로 어느 쪽에 합류하는지가 관건인데, 제가 보기엔 계속 무관심으로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 “나라 망치는 아베 정권 타도하자!” 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 열린 아베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노(NO) 아베’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 호사카 교수는 또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선거용이었으나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경제적 부상’을 막으려는 시도라고도 했다.그는 “(일본 정부는) 한국의 경제적인 성장이 아주 눈부시다고 본다”며 “(한국이) 몇 년 후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일본을 추월하고, 군사적으로도 남한이 북한을 돕기 시작하면 한반도가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중국하고 하나가 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 사진: 도쿄 한복판서 “아베가 나라 망친다” 외친 일본인들
○··· 호사카 교수는 “아베 정권은 한반도를 일본 영향 하에 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권”이라며 “이 참에 한국의 중심적인 산업 분야를 망가뜨려 경제적인 도약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일본의 동북아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호사카 교수는 이어 “아베 정권 자체가 극우파 정권”이라며 “2000년 초까지 있었던 전통적인 일본의 보수 정권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하고는 굉장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정권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대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