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熊 川)
흔히들 웅천하면 곰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웅천은 곰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웅천 ’[熊川]
명사로는 ‘마음이 들뜨고 허황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고려 시대 열두 사학(私學) 가운데 학문의 수준이 가장 낮았던 웅천도에서 배운 사람을 조롱하던 말이기도 하다고 써 있다.
웅천을 지명으로 사용하는 지방은 경상도와 전라도등 여러 군데 있다. 웅천의 뜻을 바로 알기 위해서 고대 역사에서부터 맥을 찾아보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편에 ‘웅천에 목책을 세웠다.’ 남쪽으로 웅천까지 백제의 영역으로 하였다. 라는 기록을 통하여 웅천이 중요한 지형임을 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웅천의 뜻이 왜 ‘허황된 사람’을 뜻을 가지고 지금까지 전하여지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또한 그를 통해 웅천이란 지명의 참 뜻을 알아보고 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고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주 옛날 충청도를 중심으로 진국이란 고대 국가가 있었다. 진국이 갈라져서 마한, 변한, 진한으로 나눠졌다. 진국은 고조선과 같은 시기에 있었다. 고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준왕이 위만 조선에게 패하여 4천명이 배를 타고 남하하여 도착한 곳이 마한의 중심지 월지국이다. 준왕이 마한 월지국 왕이된다. 고조선은 토템신앙에서 발원한 곰과 관련된 나라 인 것은 단군 신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준왕이 배를 타고 들어온 천(川)을 기억하라고 웅천이라고 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웅천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천혜의 요새와 같은 지형을 하고 있다. 산의 모습은 병풍처럼 이어져 있어 성벽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고. 평지의 중심을 흐르는 웅천천은 가뭄을 이기고 농사를 짓기에 편하고 물고기를 잡기에 좋은 조건을 하고 있다.
태풍과 풍랑 등을 피하기 좋은 곳 배가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웅천포는 고대역사에 있어서 해양의 중심지 역할을 한 마한과 백제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웅천이 역사의 중심지임을 보여주는 구 마량진성, 목장성, 대천리 산성, 성동리 산성, 수부리 산성, 창암리 산성 등이있고 이들산성은 바다와웅천천을 중심으로 있다. 평지성으로는 수부리(소부리)에는 웅천성이 있었다.
웅천은 역사적으로 화려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여 왔다. 마한 백제의 역사관과 단결력 응집력을 없애기 위하여 웅천이 마한 백제의 도읍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자 고려시대에 이런 역사관을 잠재우기 위해 ‘허황된 사람’이라고 명명하며 웅천의 역사를 왜곡해 버리지 않았나 싶다.
백제인들은 통일 신라 시대에도 웅천을 중심으로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지켜 왔고 견훤을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우고 고려의 왕건과 대립하였다. 마한의 피를 이어받은 백제의 정신을 없애기 위하여 고려는 역사를 왜곡 하였고. 웅천이 마한의 도읍지 백제의 도읍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허황된 사람이라고 하였다고 본다.
고려는 차령산맥 이후에 사는 사람을 관직에 등용하지 말라고까지 하였다. 이렇게 철저히 백제인의 뿌리를 말살하려고 했던 고려의 역사를 통해서 충분히 웅천의 왜곡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