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자꾸 삭제되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좌우구도 굳힌 반탁운동에 반공·반소로 일관한 김구
[한겨레 2004-05-10 18:43]
[한겨레] 1948년 2월 단독선거·단독정부가 가시화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백범 김구는 유명한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김구는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단정 추진세력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곧이어 북행을 강행하여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함으로써 김구는 통일의 화신처럼 됐다. 그러나 1년 전인 47년 발표한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김구는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다. …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서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며 공산주의를 극단적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해방공간 최대의 정치세력이자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었던 좌파가 빠진다면 사실상 통일정부의 수립이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구와 임시정부는 귀국 직후 좌파 인민공화국의 협상제의를 保� ‘서식상의 문제’라는 황당한 근거로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곧이어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신탁통치’로 이해하고 격렬한 반탁투쟁을 선도해 이른바 ‘반탁 쿠데타’까지 나아갔다. 반탁투쟁은 해방공간 좌우대립구도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결국 남북 분단으로까지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김구는 ‘백의사’ 등을 통해 대북 타격정책을 일관되게 수행했다. 해방공간 내내 반공, 반소로 일관한 김구의 남북연석회의 참가는 이승만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모든 정치적 전망이 사라진 조건에서 취해진 정치전술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는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위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을 주장”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에 좌파와의 연대는 극히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렇게 좌파를 부정하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라는 위계서열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물의 질서는 위에서 아래로 정연하게 배열돼야 했고 이것을 거스른다는 것은 자연에 반하는 것이었다. 김구는 순종과 직분을 통해 조화로운 세상의 구현을 추구했으며 그에게 좌파의 평등주의는 이 조화를 해치고자 하는 일시적 풍파일 뿐이었다.
해방공간 김구의 자기모순적 논쟁과 실천은 비극적 죽음으로 숭고화됐다. 그의 죽음이 조화로운 민족공동체라는 상상의 낙원을 위한 장엄한 희생이 됨으로써 한국 민족주의는 비극적 숭고함의 아우라를 걸치게 된 것이었다. 그 아우라는 실상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몸”이라는 맹목을 가리는 장막일지 모른다.
한겨레(http://www.hani.co.kr),
한국의 근대역사에서 가장 고생하고 조롱을 당한 세대가 바로 연세로 보면 80대 90대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한국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망국의 설움도 당했고,
원치 않는 징용으로 끌려가 개보다 못한 죽음을 당하고도 하소연도 못하고,
운이 좋아 생존하여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니 친일이라고 돌팔매질 당하고,
그러는 사이 김일성이 저지른 불장난 막으려 총알받이가 되고,
공산화를 막은 후에는 친일딱지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안고,
후손을 먹여살리기위해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국가산업에 헌신합니다.
바로 이들이 오늘날 80 대, 90 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입니다.
더 이상 돌 던지지 마세요
친일파들이 징용 징병 625 다 겪은 분들한테 묻어가는게 문제야. 친일파들 그 후손들 정말 잘 사는거 모르지? 호사를 고생이라 왜곡하는 자여!!
공산주의를 선호한 비율이 해방초기 혼란시기에는 75% 정도 ...
그런데 이런 통계가 과연 제대로 된 통계인가?
이승만은 복한보다 먼저 토지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합니다.
그리고 김일성이 박헌영의 장담과 함께 남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남침을 하자 전국 곳곳에서 암약하던 좌익분자들이 이제는 봉기하라! 고 외쳐댔지만 남한 백성은 아무도 봉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피해 피난했습니다.
휴전후 김일성은 자신의 정적 제거 목적으로 박헌영을 미국의 간첩으로 뒤집어씌어 처형합니다.
친일논란과 관계없이 남한은 신생국으로서 대단히 안정된 페이스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면단위, 읍단위, 군단위 등에서 근무했던 일반 행정 직원들은 친일 아닌가요?
국가행정은 많은 노하우를 필요로 합니다.
예산, 기획, 건설, 조정 등 한 사람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직원으로 길러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행정은 감정으로 처리해도 무조건 원칙에 따라 처리해서도 곤란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일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함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신입사원을 제대로 써먹으려면 최소한 3년 정도 있어야 겨우 써먹을 정도입니다.
국가공무원은 더욱 더 합니다.
분명히 식민시절 공무원들도 총독부의 충실한 충견노릇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도 모조리 친일로 처단해야지요!!!
너는 빵훔친 사람이랑 사람죽인 사람이랑 형벌이 같냐???
그래 하자. 그 사람들도 쌀 공출 앞잡이 아니 무르미식으로 하면 일제의 수족이었지
참고로 사람죽인자도 빵훔친자의 급수로부터 시작한자들도 있죠.
1930년대 중후반부터 일본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합니다.
일본이 욕심만 부리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제국으로 유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건국 된 후 직접 단독으로 미국과 정규전 대결을 벌인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중국의 장개석도 일본의 능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30년대 부터는 후퇴와 지연작전으로만 일관하게 됩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면 팔로군이 대일본항일전을 펼쳤다는 것은 코미디에 불과합니다.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가 연상됩니다
무슨 세계 최강대국? 당시 영국이었잖아!!! 미국과 단독으로 전쟁한 나라가 없긴. 루이지애나. 캘리포니아가 하늘에서 떨어진건지 찾아봐라 좀. 일본의 욕심? 당시 만주국 만들엇다가 연합군이랑 적이 되어 석유 등 무역봉쇄되서 한거잖아. 유식한 척하더니 참나. 무르미 무식은 죄가 아니야. 공부 좀 해. 조갑제 닷컴 한국논단 인터넷 독립신문 그만 봐. 꼭 000 같애
선발 산업국으로서 강대국: 영국, 독일 등
후발 산업국으로서 강대국 : 일본, 이탈리아 등
강대국과 최강대국의 차이를 꼭 숙제로 내야 알겠어? 독일이 선발산업국? 가지가지하네. 좀 가만 있으면 안 되나?
나는 조갑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 한국논단이 무슨 신문인지도 몰라, 독립신문이 무슨신문인지도 몰라 ...난 그런데 관심없는 사람이야...
일본이 당한 것은 자원고갈로 진거야 ...후발산업국으로 뒤늦게 세계열강에 뛰어들어 동아시아에서 최대강국이 된 나라니까 입다물어라. 말꼬리 잡고 깝치지 말고...니가 말하는 봉쇄작전 다 알고 있어, 그런 것 모르고 글 올리겠어? 댓글이라 다 쓸 수가 없다. 흐름만 이해해라 촐랑대지 말고!!!!
관심없긴 ㅋㅋ 거기서 퍼온 것 같이 글의 세부내용과 논지가 일치하는구먼 ㅋㅋ..자원고갈도 한 원인이지. 근데 그 자원고갈의 원인이 싱가폴과의 해상로 단절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는가봐? 해상로 단절의 원인이 만주국 건국으로 인한 외교적 고립인 것도 깜깜한가? 그리고 일본의 만주국 건국 이후 세계정세와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정치군인들의 득세 이런 것도 좀 알아보고.일본 정치군인과 관동군 출신 장교들이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무르미가 하는 궤변을 창조해온 과정도 알아봐. 참 동아시아 최강국 같은 소리하지마,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한지 얼마 안되었잖아. 이래저래 그만 깝치긔~ 알았지?
무르미의 역사왜곡....참 지멋대로 미쳐가네...토지개혁이 이승만때 성공을 먼저한다고...참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네...ㅋㅋㅋ
김구의 두번 째 살인은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공산주의자 이동휘의 비서 김립을 자객을 시켜 살해한 일입니다.
이것은 이동휘의 심부름으로 레닌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김립이 중간에 횡령했다는 이유인데
레닌은 같은 공산주의자인 이동휘에게 공산주의 운동을 위해 자금을 준 것이지 임시정부에게 준 자금이 아닌데도
김구는 돈 주지 않는다고 죽여버렸습니다. 항일과 아무 상관없는 살인이었습니다.
이것이 김구의 한계입니다.
김구에 대한 평가가 과대포장되었고 지도자로서는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중론입니다.
김구가 왜 중요? 친일파 행적 가리기 위한 물타기? 무르미야말로 친일한 사람들 천벌 받을거라면서 일제 시대에 숨 죽여 산 분들 억울하게 하지마. 친일파 대부분이 엄청 부자인데 뭔 고생 같은 소리하는지? 부유한 고생이라는 신조어 창조 중? 도대체가 중국 공산당 얘기는 왜 하는지. 미군 ss 부대인가? 일제말 거기 입대하신 분도 빨갛다고 하지? 그 분들 인터뷰 자료도 없이 결론 내는거 하고는. 논리학 기초 수업 들을 때 귀납법 가추법도 들어야지. 근데 혹시 조갑제 닷컴 같은데서 긁어온듯? 왠지 글이 한국논단이나그쪽글 같아 웃김.
학계의 중론은 참 좋은 말인데. 이완용 조카인지 조카손주인지 하는 분이 서울대 사학과인지 어느 과인지 얼마 전까지도 교수였던데. 그 분이 서울대에서 학계 중론 형성?
이완용 조카인지는 학계 중론 형성. 무르미 창민 중론 추종. 좋겠다 이완용은 친일한 돈으로 일가에 역사학 교수도 배출해서 욕도 덜 먹고 살고.
핸드폰이라 글 올리기 힘듬. 무르미 널 무식한 잘난체라고 명명한다. 오늘 바로 바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