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치는 바로 시라기쿠강당에 들어가지 않고 현지 대표 멤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지금까지의 고생을 위로하고 잠시 간담했다.
또 연을 날려준 학생을 불러, 진심 어린 격려의 말을 건넸다.
혼마 유토라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라고 한다. "연을 보았습니다! 멀리서도
잘 보였습니다. 추운 날씨에 감사합니다! 학생도 미래의 드넓은 하늘을 유유히
춤추며 나아가주세요." 이렇게 격려하고 강당으로 들어갔다. 회장인 아키즈키
에이스케가 참석해 자유근행회를 열고 있었다. 근행회 도중 입장한 신이치는,
강당에서 휠체어를 탄 젊은이를 보자마자 곧바로 다가갔다. 진행성 근위축증
으로 요양소에 들어간 고등학교 1학년 노나카 히로노리였다. 병 때문에 미래
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다, 화농성 수막염을 극복한
남자부원의 체험담을 듣고 발심해 본격적으로 신심에 힘쓴 지 얼마 안되었다.
어머니 후미노는, 진지하게 창제하는 아들을 보고 '나도 홍교를 달성해 야마
모토 선생님을 구마모토에 모시자'고 결의했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근위축증
을 앓는 아들이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불법을 이야기하기 꺼렸다.
어본존의 공덕을 말해도 상대가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의 모습에 힘입어, 같은 병으로 요양소에 들어와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딸과 함께 용기를 내서 불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기죽지 않고 투병생활을 하는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밝고
힘차게 확신을 갖고 신앙의 훌륭함을 말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입회하겠다고 결의했다. 괴로움이 없는 인생은 없다. 삶이란 '고뇌'
'숙명'과 벌이는 투쟁이라고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본존에게서 멀어지지 않는 일이다. 용기와 희망을 갖고 감연히 기원하며
계속 싸워야 한다. 거기에 사람은, 인간으로서 강함과 빛남 그리고 존엄을
발견해 공감하고 찬동한다.
신이치는 노나카 히로노리 곁으로 가서 그의 몸을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지지 않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노나카는, 위로의 말이 아닌 생명을 고무하는 격려의
말을 처음 들었다. 또 이튿날 신이치는 노나카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
꽃을 손에 들고, 살아서 오늘을 맞이한 데 진심으로 감사했다. 노나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진행성 근위축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6학년까지 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요양소에 들어가 학교를 다닌 뒤 이윽고
통신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요양소에서는 친구 열아홉명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신이치의 격려를 듣고 노나카는 이렇게 결의했다. '내 인생은
짧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 내 사명을 완수하고 싶다.'
병이라는 장애가 있으면서도 강하게 생기발랄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노나카의 진지한 삶은, 동세대 친구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현내
고등학교에서 문화제 때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살아가는 용기'라는 제목
으로 자신의 투병체험과 포부를 말했다. 이 강연은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신이치는 시라기쿠강당의 지유근행회에서 참석자와 함께 근행한 뒤, 간담하듯
지도했다. "니치렌대성인 불법은, 어떠한 세대에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행기가 넓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청년시대입니다. 안정비행에
들어가 유유히 하늘을 나는 모습은, 장년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난기류에 휩쓸려 크게 흔들리거나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안전하게 비행해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그것을
견디는 충분한 연료와 강한 엔진, 즉 커다란 생명력이 필요합니다. 그 원천이
바로 신심입니다. 또한 궤도를 벗어나거나 헤매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장치,
즉 확실한 철리(哲理)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불법이라는 법리입니다."
신이치는 말을 이었다.
"인생이라는 항로를 날아가는 비행기는 이윽고 착륙할 때를 맞습니다.
비행기는 착륙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즉 인생에서 말하자면, 총마무리의
나이입니다. 바로 일생성불로 가는 활주로에 들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이 총마무리의 때를 어떻게 살아, 자기 인생을 장엄하게 장식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청년과 같은 기개로
광선유포를 위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완전 연소하는 나날을 보내기 바랍
니다. 생애구도, 생애도전, 생애청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맺었다.
"장식되어 있는 흰 국화도, 강당 입구에 있는 꽃도, 창가에 장식한 꽃도 모두
여러분의 진심이 묻어 있습니다. 이 노고에 감사와 찬탄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신정까지 이대로 두고, 찾아오시는 분
들을 즐겁게 해드렸으면 합니다." 신이치는 이날 시를 써서 선사했다.
구마모토현 여자부에게는
"흰 국화 / 그 이름처럼 / 젊은 여성들이 /
붉은 석양에 비친 / 눈동자 빛나도다"
오이타현 다케타 동지에게는
"월광의 / 곡 들리는 / 성터에 /
다케타 벗의 / 웃는 얼굴 기쁘도다"
신이치 일행은 아소의 시라기쿠강당을 출발해 오후 6시 전, 구마모토시에 있는
구마모토문화회관에 도착했다. 쉴 틈도 없이 현 간부들과 하는 간담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종료 후 신이치는 현장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격려해야 할 집이나 가게가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해주십시오.
한집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동지와 만나고 싶습니다. 크게 비약하려
면 동지를 한사람 한사람 직접 만나 고민이나 의문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이해할 때까지 대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심을 확신하고, 동지의 생명을
촉발해야 합니다. 개인지도는, 인간을 근저로부터 소생시키는 진검승부의
대화입니다."
12월 13일 낮, 신이치는 학회원이 운영하는 찻집에서 50명 남짓한 각부 대표
들과 간담한 뒤 미나미규슈부인회관을 시찰했다. 이후 구마모토문화회관으로
돌아와 회관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잇달아 기념촬영을 했다. 저녁에는 구마
모토회관 준공 5주년을 기념하는 현간부회에 참석했다. 간부회에서는 현장인
히라기 고이치로가 내년 5월에 문화제를 개최한다고 소개한 뒤, 새로운 세기를
향해 출발하는 서원을 담은 '구마모토선언'을 발표했다. 신이치는 회합에서
구마모토현 중에서도 미나마타, 야쓰시로, 히토요시, 아라오, 아마쿠사, 아소
방면 등에서 분투한 동지들을 상찬한 뒤, 광선유포를 위해 호흡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점은, 모두 호흡을 맞추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회가 미증유의
큰 발전을 이룬 데는 어본존의 불력(佛力), 법력(法力)은 당연하지만, 모두
신심을 근본으로 호흡을 맞추고, 각자 지역의 광선유포를 위해 매진했기 때문
입니다. 활동을 추진하려면 협의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사고방식이
있어, 의견이 좀처럼 모아지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늘
'무엇을 위해'라는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객기의 조종사
를 비롯한 승무원은, 많은 승객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운송하기 위해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임무를 수행합니다. 무리를 하거나 모험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개하는 활동의 목적도, 많은 불자인
동지를 안전하게 무사고로 '무너지지 않는 행복의 도읍'으로 운송하는 것입
니다.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생활과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고려하고,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기 필요합니다. 모두 이러한 목적관 아래 마음을 하나로 하여
호흡을 맞춰야 유익한 협의도 할 수 있고, 목적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도다(戶田)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심 도상에 호흡이
맞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낙오한다' 가슴에 새겨야 할 지도입니다."
여기서 신이치는 이번 종문사건에서 학회 조직을 교란하려던 간부가 있어서,
그 공통성을 언급했다. "지금까지 제 측근이라든가, 특별한 제자라는 식의
말을 떠벌려, 모든 동지에게 폐를 끼친 간부가 일부 있었습니다. 결국
저를 이용해 자신의 허영을 채우고, 동지를 속이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날마다 여러 회원들을 만나지만, 모두 평등하게 지도하고 격려합니다.
신심을 하는 데 어떤 특별한 관계 따위는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제 곁에서 모든 것을 맡아온 사람은 주조 전 회장과 현재의 아키즈키 회장
입니다. 따라서 '나는 측근이다. 특별한 관계다'라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그런 발언 자체를 '이상한 수작'이라고 간파했으면 합니다. 어디까지나 회장을
중심으로 힘을 합치는 일이,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단결의 기본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일부러 말해두겠습니다." 또 신이치는 "무기력한 자(者)라도
도와주는 자가 강하면 넘어지지 않으나, 조금 다기진 자도 혼자라면 나쁜 길
에는 넘어지느니라." (어서 1468쪽) 하는 성훈을 들어 지도했다.
"성실한 신심을 관철하려면 선지식(善知識), 즉 좋은 동지의 존재가 중요
합니다. 무기력한 사람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강하면 쓰러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조금 강하더라도 혼자라면 험한 길에서는 쓰러지고 맙니다. 부디
동지라는 강한 격려의 유대 속에서 '한 사람도 빠짐 없이' 21세기 광선유포의
산을 등반하자고 말씀드리며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현간부회를 마친
신이치는, 구마모토문화회관 안에 있는 세이쿄신문 구마모토지국 편집실을
방문했다. 이튿날 신문에 실릴 오카성터 기념사진의 가판 신문기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이치는 다케타에서 아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담당기자
에게 사진을 최대한 크게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신이치가 구마모토지국에서 기다리자, 얼마 안 되어 이튿날 14일자 세이쿄
신문 가판이 도착했다. 신이치는 곧바로 신문을 넘겼다. 2, 3면에 게재된
다케타 동지의 기념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렇게 큰 사진을 싣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사람 한사람의 표정까지 잘 보였다.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개가를 울리는 듯한 사진이었다. 그리고 "승리한 오이타 다케타 동지가
장수하기를, 다복하기를" "오카 성터에서 '황성의 달'을 대합창"
"'눈물'과 '분함'을 참아낸 동지 300명과 함께"라는 타이틀이 크게 실렸다.
신이치는 그 자리에 있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훌륭하군요.
박력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모두 크게 기뻐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튿날 오이타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동지들의 기쁨이 폭발했다.
그 기념사진은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창가의 사제'가 21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광선유포의 장정을 다짐하는 한 폭의 '명화'였다. 사진 속 동지들은
대부분 이 신문을 액자에 넣어 장식하거나, 가보로 소중히 보관했다.
이후 인생에서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을 겪으면, 신문에 난 사진을 보며
자신을 고무하고 용기를 불러일으켜 끝까지 힘을 냈다는 동지도 적지 않다.
이날 14일, 신이치는 후쿠오카현에도 발걸음을 옮겨 구루메회관을 방문했다.
회관에 모인 동지들과 함께 엄숙히 근행하고 격려한 뒤, 처음으로 야메회관을
찾았다. 야메는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도,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도 홍교를 위해 뛰어다닌 광포 개척의 역사를 새긴 땅이다.
또 야메지부 초대 지부장을 지낸 공로자댁을 방문해 가족들과 잠시 대화도
했다. 이어서 지쿠고 시내에서 중심 거점으로 사용하는 개인회관에서 지쿠고
대표를 비롯해 후쿠오카현 간부들과 함께 근행하고 간담했다. 신이치는
광선유포의 도상에는 예기치 못한 고난을 겪기도 하는데 그런 때일수록
리더의 존재, 리더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해두고 싶었다.
성훈에는 "싸움에는 대장군(大將軍)을 혼으로 하며, 대장군이 겁먹으면
병졸은 겁쟁기가 되느니라." (어서 1219쪽) 하고 씌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