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서대문형무소에 특옥된 백범 김구 선생이 일제 순사로부터 고문을 받으며
'땅 주인이 논밭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다짐했던 말이다.
둥굴둥굴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뭉우리돌'은 지금은 사라지고 쓰이지 않지만,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만은 뚜렷한 상징으로 박혀 있다.
2019년 올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더이상 .뭉우리돌이라는 우리말 단어가 일상에서 쓰이지 않듯이
겨우 100여년밖에 지나지 않은 '나라 잃은' 역사를 우리 의 일상은 감각하지 못한다.
여행사진가로 세계일주를 하던 청년 사진가 김동우가 문득 그와 같은 사실을 자각했던 건 인도 뉴델리 '레드포드'에서 였다.
무굴제국의 요새로 알려진 이 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 운동사 중 빛나는 성과를 거둔
'인면전구 공작대'가 활동하던 장소였다.
그는 우리의 독립운동이 어떻게 이토록 먼 나라 인도와 연관이 돼 있는지 의아했다.
의문을 쫓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100년 전 역사의 여러 면면과 함께
유럽에서 중미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범위로 독립운동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돌연 오랫동안 계획해 장도에 오른 세계 일주를 멈췄고,
그때부터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현장들을 홀로 찾아 헤매는 여정을 시작했다.
여행 사진은 자신이 아니어도 누군가 할 수 있지만, 이 기록은 누군가 대신해 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이 활약하던 연해주에서부터 말년을 보낸 카자흐스탄까지 장군이 넘어야 했던 7000km를 사진가 김동우도 넘었다.
독립운동을 하다 세른 셋 나이에 처형된 김알렉산드리아가 죽기 직전 마지막 소원으로 우리나라 13도를 그리며
13발자욱을 걸었던 러시아 하비롭스크의 '죽음의 계곡'위를 김동우도 따라 걸었다.
'대한인 황긔환지묘'라 적힌 비석을 찾아 뉴욕 퀸스의 후미진 공동묘지를 헤맸고,
'1전'씩을 모아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로 보냈던 멕시코 애니깽 농장의 노동자 임천택의 후손을 만나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그는 그렇게 2017년 4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인도, 중국, 멕시코, 러시아, 쿠바, 네델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미국 등
9개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들을 발로 좇고 사진과 글로 기록했다.
해외 독립운동 유적과 후손들을 집대성한 이 최초의 성과물은 3.1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사진전으로,
또 뭉우리돌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희미해지는 우리 역사의 기억을 '기록'으로 분명히 했다.
이제 사진가 김동우의 꿈은 '만주'로 향한다.
독립운동의 최전선으로, 이제껏 기록한 9개국보자 더 많은 사적이 모여 있는 만주,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그 땅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할 것처럼 조바심이 인다고 했다.
'뭉우리돌 정신'이 없었더라면 하기 어려웠을 지난한 작업을 갓 마치고 돌아온 그가 다시 만주행을 꿈꾸는 것이다.
100여년 전 뱍범이 말한 정신과 책무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돌처럼 야물고 거침없는 이 사진가에게서 본다.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