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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쓸때는 세번에 나눠서 쓴건데 합치니까 양이 쭉 늘어나네요. 길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블로그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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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막 제대 했을 때, 읽었던 글이다. 이후 기회의 동상이 배경화면을 장식하게 되는데, 그만큼 나는 이 동상에, 아니 정확히는 이 글에 꽂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 거리에는 우스꽝스러운 동상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앞머리의 숲은 무성하고 길게 늘어져 있으나 뒷머리는 홀랑 까진 대머리이며, 발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린 이상한 동상입니다. 그 우스운 모습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금방 비웃기 시작하지만, 그렇게 웃는 것도 잠시일 뿐, 동상 밑에 새겨진 글귀를 보고 나서는 크게 감명을 받는다고 합니다. 나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내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 이다. 유럽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 한 군데를 꼽으라면 당연히 기회의 동상이 있다는 그리스였다. 그리스. 그리스를 가야했다. 그리스가 정말 가고 싶었다. 그리스에 적어도 2주는 체류를 해야 한다 생각했다. 이유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기회의 동상이 있다는데. 일정 한번 다시 보자. 북동쪽 핀란드 헬싱키에서 시작해서 이어지는 선이 서남쪽 스페인 마드리드 까지 갔다가, 이탈리아를 거쳐 체코로 올라갔다가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이어지는데 거기까지가 딱 74일간의 쉥겐국 체류일이다. 이 일정 만드느라 포르투갈 & 스페인 남부도 뺐다. 이렇게 해야 이후 90-74= 16일간의 그리스 체류가 가능하기 때문. 저게 그리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6일이면 당연히 충분해 보인다. 6개월간의 여행을 계획할 때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었는데, 오클랜드 도서관에 가면 여행 관련 책자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책을 들고 다니는 건 질색이니 각 나라를 갈 때마다 기본적으로 어떤 도시를 방문하고 어디를 보러 다녀야 하는지는 노트북에 넣어가는 게 좋겠더라. 도서관에 앉아 론리플래닛 쌓아놓고 노트북에 기본적인 건 다 받아 적어놓는데, 기회의 동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론리플래닛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더라, 그 외에도 그리스 관련 책자를 이것저것 참 많이도 찾아 봤는데 어디에도 기회의 동상 어쩌고 햐는 건 눈곱만큼도 언급이 없었다. 뭐 가서 찾으면 되겠지 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안일한 생각만 가지고 출발했고, 이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그래도 이게 중요하긴 했나보다. 그리스 도착하기 전에 어느 도시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인터넷을 열심히도 뒤적거렸으니........ “기회의 동상” 으로 검색해도 쓸 만한 게 아무것도 안 나온다. “statue of opportunity” 로 검색해도 마찬가지. “기회의 동상” 이라는 이름과 사진에 한국말로 된 문구가 전부. 도데체 이 동상의 정체는 무엇인가. 모르면 물어보는 게 최고다. 카우치서핑에 있는 그리스 게시판에 이게 도대체 어딧는거냐고 물어봤다. 날짜를 보아하니 프랑스에 있을 때 글을 썼구나. 이탈리아 지나서 물어보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두둥. 그리스가 아니라 토리노 토리노 토리노에 있다네. 들어본 적도 없는 도시에다 갈 계획도 없는 곳인데? “기회의 동상” 이라는 이름이 한국말로 번역한 누군가가 드라마틱한 내용전개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단 걸 알아내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원래 이름이 “Kairos" 란다. 아놔... 이전 글에도 썼다시피 딱 90일 체류할 수 있는 쉥겐국 내에서의 일정은 정말 그냥 꽉꽉 짜여 있었다. 일정 수정은 스트레스 그 자체. 당시 일정 한번 볼까.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비행기 표를 이미 사놓는 바람에 이탈리아 이전의 일정수정은 어차피 불가능 하니까 됐고 이탈리아-슬로베니아까지의 일정에서 수정을 해야 하는데, 고작 한두 도시 방문하는 체코~슬로베니아까지의 일정을 더 줄일 수는 없고, 비교적 장기간? 체류하는 이탈리아 내에서의 일정을 좀 바꿔야 하겠는데 이번에는 정말 일정 수정이 만만치 않다. 폼페이는 봐야 하니 로마에서 일단 나폴리까지 내려가긴 내려갈 건데 나폴리에서 시작해서 토리노를 찍고, 베네치아를 갔다가 프라하까지 올라가는 일정을 아무리 만들어 보려고 해도, 시간도 깝깝하고 교통편은 더 태산이다. 이런 망할 지금 안 가보면 언제 다시 올 지도 모르는데 유럽까지 와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걸 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쳐야하나?
일정 짜는 건 항상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좀 심했다. 무슨 듣도 보도 못한 토리노라니. 일정을 다시 한 번 만들어볼까. 정말 꼭 가야 되는 곳만 세면, 로마, 나폴리, 피사, 토리노, 베네치아. 이렇게 다섯 군데니까 정말 이렇게 다섯 군데만 딱 찍고 다닐까? 대충 찾아보니 이동거리, 이동비용 전부 죽음의 일정이다. 별로 그렇게 다니고 싶진 않아.
답 안 나오는 상황에서 머리만 쥐어짜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스페인에서
이탈리아로 비행기타고 날아가는 일정이 남아 있었다. 비행기시간 체크하고 항공권 준비하고, 비행기 도착시간 로마에서 카우치서핑 할 곳에 보내주고
그러다보니 문득 드는 생각. 비행기 가격만 너무 비싸지 않으면 그냥 원래일정에 토리노 집어넣고 비행기타고 체코로 날아가도 괜찮지 않나?
생각해보니 이게 돈만 부담 안 되면 이게 최선일 듯하다. 당장 비행기 시간부터 확인해야지.
베네치아 이후 6일간 오스트리아, 독일을 거쳐 프라하로 올라가려던 일정을 바꿔, 6일간 토리노를 포함한 이탈리아 다른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고 비행기타고 프라하로 날아가기로 했다. 비행기값은 아주 저렴하진 않았지만, 아주 비싸지도 않은 가격. 다행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일정을 바꾸고 바꾸어 토리노에 가기로 했고, 위키피디아 뒤질 때 분명 토리노 박물관(Museum of Torino) 에 있다고 나왔으니 토리노만 가면 당연히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도착한 토리노. 아무한테나 물어보면 되겠지.
아뿔싸.
아무도 아무도 모르네. 보통
관광정보센터 가서 물어보면 어지간한 건 다 가르쳐 주는데 이번엔 얘네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단다. 뭐 그렇게 많이 물어보고 다닌건 아니었지만, Kairos
라는 상을 모르는 건 당연한 거고 그 박물관조차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보다. 토리노에 이집트 유물 박물관이 유명하니 그 곳부터
가보라는 얘기만 들었다.
진짜 이름(Museum of Antiquities of Turin) 으로 검색해도 이집트 박물관이 나오는 이런
실태.
대책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토리노 온 게 전부 그노무 동상 때문이니 둘째 날 하루 종일 찾아서 돌아 다니면 설마 그거 못찾겠어 하는 생각으로
일단 집을 나섰다. 첫 번째 행선지는 일단 이집트 박물관. 그리스 유적이 이집트 박물관에 혹시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과
함께..
이집트
박물관 앞. 약탈해 온 유적으로 박물관 한번 크게 지었다.
들어가자마자
카운터 가서 노트북 펼쳐들고 여기 이 동상 있냐고 물어 보는데. 뭐 역시나 없단다. 대신에 이집트 박물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데 하는 말도 참
가관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가더라도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 진짜 내용물들은 여기 박물관에 다 있단다. 그래서 이 박물관이 더 중요한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훔쳐온 물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프랑스까지 가 있다는 외규장각 유물도 생각나고 짜증이 나서 바로 말 잘라먹고
나왔다.
짜 토리노에 있는 모든 박물관을 다 가봐야 하나 고민하면서 나가려는데 옆에 좀 더 잘 알 것 같은 직원이 보인다. 다시 물어보니 이건 토리노 고대유물 박물관(Museum of Antiquities of Turin)에 가야 있단다. 아싸 보아하니 그렇게 멀지도 않다. 후후
이집트이
박물관 내부. 사진 왼쪽에 있는 언니가 가르쳐줬다. 확실히 전공자가 괜히 전공자는 아닌가보다.
시내
광장 한 복판에 있는 다른 큰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에 없으면 두 번째는 여기 가보려고 했는데, 어차피 여기도
아니었다.
시내를
살짝 벗어나, 다른 박물관들을 지나 나가다보니 작은 유적 옆에 조그만 박물관이 하나 나온다. 나한테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데 여기서는 듣보잡
of 듣보잡이구나. 심지어 박물관조차도 변두리에 있네.. 들어가니 한적하고 아무도 없다. 내가 그날 첫 손님. 가자마자 역시 노트북 꺼내들고
사진 보여 주면서 이거 여기 있냐고 물어보니 여기 있단다. 아싸 !! 드디어 찾았구나 !!
이건
나올 때 찍은 거, 관광객은 없고 체험학습 나온 꼬맹이들만 있다.
박물관에
전혀 관심이 없다. 덕분에 이전까지는 박물관 입장료에 돈 쓴 적 한 번도 없는데, 덕분에 처음으로 4유로 내면서 입장. 그렇게 들어가긴
들어갔는데 이게 어디 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더라. 혹시라도 지나칠까봐서 꼼꼼하게 하나하나 살피면서 지나가는데 대략 절반 지나도록 동상 비슷한
것도 안 나온다. 어... 분명히 있다고 했는데..
예전에 기회의 동상 사진을 찾아봤을 때 내 머릿속에 이미지는 붐비는 고대 광장 한쪽 벽에 서있는 사람 키만 한 동상 그리고 그 밑에는 그 명언이 새겨져 있는! 그런 그림이었는데 계속 지나가다 보니 전시품 끝날 때 쯤 해서 한 쪽 구석에 왠지 낮 익은 코딱지만한? 동상이 보인다. 뭐야. 그게 이거잖아.. 내 생각하고는 너무 달랐다. 작기도 작았지만 크기는 됬고 문구가 없어서 실망했다. 그리스어로 되어 있든 라틴어로 되어 있든 뭐라도 써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어 번역도 극적 전개를 위해 번역을 완전 지 맘대로 했던데 그러면 위키피디아에 영어로 써 있는 문장도 왠지 지 맘대로 번역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사진 찍는 건 금지여서 그냥 안 찍고 나왔다.
는 개뿔
고민 1초정도 하다가 그리스에 있어야 될 거 약탈해 온 것도 모자라 박물관 짓고 입장료까지 받아 쳐 먹는 것들이 사진도 못 찍게 하는 게 더
웃긴 것 같아. 타이머 맞춰놓고 한 장 찍어왔다. 뭐 이것도 잘한 짓은 아니지만, 그래도 6개월 여행 중 가장 중요한 곳이었는데 한번만
봐주라.
마지막으로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설명.
Kairos (καιρός) is an ancient Greek
word meaning the right or opportune moment (the supreme moment). The ancient
Greeks had two words for time, chronos and kairos. While the former refers to
chronological or sequential time, the latter signifies a time in between, a
moment of undetermined period of time in which something special happens. What
the special something is depends on who is using the word. While chronos is
quantitative, kairos has a qualitative nature.[1]
Kairos also means weather in both ancient and modern Greek. In plural it is καιροι -kairoi (keri) and it means "the times".
Kairos=기회의
순간 정도로 이해하면 될듯. 위키피디아에도 동상 자체에 대한 설명은 많지만 문구에 대한 설명은 별로 없는데, 내가 보고 감동받았던 한글 문구의
원문인 듯 한 영문을 찾았다. 뭐 그것도 번역문이겠지만..
"Who and whence was the sculptor? From Sikyon.
And his name?
Lysippos.
And who are you? Time who subdues all things.
Why do you stand
on tip-toe? I am ever running.
And why you have a pair of wings on your feet?
I fly with the wind.
And why do you hold a razor in your right hand? As a
sign to men that I am sharper than any sharp edge.
And why does your hair
hang over your face? For him who meets me to take me by the forelock.
And
why, in Heaven's name, is the back of your head bald? Because none whom I have
once raced by on my winged feet will now, though he wishes it sore, take hold of
me from behind.
Why did the artist fashion you? For your sake, stranger, and
he set me up in the porch as a lesson."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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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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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드뎌 용안을 뵙네요.. ㅎㅎㅎ
ㅎㅎ도촬 멋있네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