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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정말 타당한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읍니다
"소위,대학 교수나 평론가들이란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만들어 어렵게 설명해주는 일로 밥벌이하는 사람이다"
저는 대학 교수도 아니고,가방끈 긴 논평가도 아니지만 지금도 그러한 이야기에 일견 수긍하는 사람입니다
물론,제가 그런 학식 높은 사람이 못되고 남아있는 못난 열등감도 조금은 섞여 있어서 이겠지만도 말입니다.
혹은,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시를 한귀절 읋으시며 예컨대."푸른 바다가 내마음을 푸르게 적신다"라 하시며
이 귀절은 시인의 슬픈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밑줄을 긋게 하시면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읍니다
아니 선생님이 시인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닌데 시인의 마음을 푸르게 적시는 것이 꼭 슬픈 마음일수
밖에 없는가?혹은 희망에 찬 푸른 마음일수도 있고 드넓은 열정의 푸른 마음일수도 있는 것이지 그것을 어떻게
단정적으로 획일적으로 그렇게 정하고 무조건 외우라 하시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 먹어 무슨 숙제나 시험 칠일도 없고 조금은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 너 생각은 그러니 ..그렇구나 하고...그냥 조용히 잘 듣되,결코 저 자신 흔들리지도 않게 되었읍니다
또,그런 교수나 박사나 논평가들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우릴줄도 알고 뒤틀렸던 심보도 퍽이나 부드러워 졌읍니다
2.
어제 오후 홍상수 감독의 열네번째 작품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고 왔읍니다
제가 특별난 재주도 취미도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하기 좋은 영화관 출입은 오래전부터 즐겨왔읍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독보적이고 유일하다 할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의 작품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의 1996년도 처녀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았을때 받은 커다란 충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며 그 이후,
그의 세번째 작품 "오! 수정"에서 그야말로 이 사람이 대단한 역량을 가진 작가주의 감독으로 손색이 없음을 느꼈읍니다
홍상수의 여러 히로인 중의 히로인이라 할 "수정"역의 "이은주"의 빛나는 연기가 제 마음을 송두리채 빼앗았지요
그 뒤로 빠짐없이 이 사람의 영화를 흥미와 기대로 마주해 왔읍니다
그러나 지난 열세번째 작품 "다른 나라에서"의 홍상수가 예의 긴장감과 강렬한 주제 의식이 점점 퇴색되고 약화되어
그가 오랜 작품 활동에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고 다소 실망을 금치 못했었읍니다
초기작의 양념처럼 뿌려진 "풍자"와"위트"를,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대사와 예기치 않은 행동의 캐릭터로 교묘히 배열해온
치밀함과 긴장감이 엷어지며 점점 치기어린 위트와 뒤틀린 대사가 극의 전체를 뒤덮어 주제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이지요
지난 열세번째 작품에선 그런 느낌이어 홍상수에 애정을 가진 저로선 이번 작품을 긴장과 우려 혹은 기대로 보았읍니다
초기의 중량감있는 걸작을 넘어서진 못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훨씬 정돈되고 외적 소재와 기교들이 내적 주제 의식을 넘어
손상시키지 않고 비교적 선명한 메세지가 전달되어 그의 작품이 바닥을 치고 다시 꺽어 올라간 것 같아 다행스러웠읍니다
3.
이 영화는 이전의 "북촌 방향"과는 쌍둥이 같은 영화입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같은 경우에는 극의 배경인 사직 공원,종로 도서관,배화여고,옥인동 거리등의 서촌이 퍽 친숙합니다
홍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마치 저의 어린 시절이나 청춘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펼쳐 옛 기억들을 되새기게 하는 것같습니다.
마치 제가 주인공이 되어 해원과 함께 그 거리를 걷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이지요
서촌과 함께 또 다른 주요한 배경인 남한 산성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일국의 국왕이 머리를 아홉번 조아리고 이마를 땅에 찧은 치욕의 성곽은 역설적으로 사랑을 나누기 좋은 장소이지요
4.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랑...받침 하나 틀린 것도 신기하게 닮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어려운 것도 사랑이 고통스럽기 때문이고 사랑함으로 삶이 환희롭기도 비참하기도 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현명하게 삶과 사람과 사랑을 사려깊이 주의력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면 고통은 덜고 기쁨은
배가 시킬수 있지 않나 싶은 생각,혹은,미련을 갖고 있읍니다.
실로 부질없는 저만의 허황되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치기어린 생각인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사랑은 감정과 느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읍니다
느낌과 감정은 끊임없이 변하여 고정 불변하지 않고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온전히 그것에만 의지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은 매번 또 다른 사랑을 찾을수 밖에 없고 사랑을 지키는 것에는 소홀합니다
사랑은 "느낌과 감정"이기도 하지만 또한,"의지와 약속"의 소산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느낌과 감정에 기반하여 서로 약속하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의지를 잃지 않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원과 성준의 사랑이 유부남과 처녀의 부도덕한 관계인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서로 진실되며 그 사랑이 변함없는 의지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돌 던져 비난할수 없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통스러워하고 힘겨워하는 것은 세상의 돌팔매질 보다는 스스로의 혹은 서로의 사랑에 대한 의지와 약속,
신뢰와 믿음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함이 훨씬 클 것입니다
사랑은 새로이 하는 것 못지 않게 변치 않고 꿋꿋이 지켜내어 이겨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역시 이즈음 세상에 사랑이 자판기의 인스턴트처럼 즉석에서 넘쳐나지만 믿음과 의지로 쌓인 진실된 사랑은 드물지요.
분명코 역시,사랑은 쉽게 함부로 할 것이 아닌 것입니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제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 같습니다
p.s.
늘 말씀드리듯 저는 아마츄어에 불과한 관객의 한사람일뿐 이지만 이번 영화의 해원은 캐스팅이 좀 아쉽습니다
예의 홍상수 감독의 히로인과 같은 자연스러움이 부족한 조금 이질적 느낌이 적쟎습니다...
무언가 언발란스한 느낌이어 김치 찌개에 소주를 마시는 선술집에 스테이크나 와인을 한잔 할 사람이 나앉은 느낌입니다.
또한 성준도 해원과 조금 더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 (예로,문성근)이었다면 훨씬 극중 긴장감이 고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장황한 긴글 읽으시느라 애쓰셨습니다.감사합니다
첫댓글 서울의 북촌만큼은 크고 로맨틱하지 않지만 서촌 역시 오랜 서울의 체취가 아직은 정겨이 남아 있읍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서촌을 오랜만에 거니니 옛 추억이 새록 새록 솟아났읍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는 시골 고향의 향수라는 것은 잘 모르지만 저도 고향이 있다면 북촌이나 서촌이
고향이라 할만합니다.
남한 산성은 정말 사랑하기 좋은 곳입니다
비참한 비극이 서린 성곽이지만 역설적으로 사랑에 굴복되거나 쟁취하기에 걸맞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오래전 성문안에는 한옥으로 이루어진 주점과 한식당들이 모여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읍니다
그런곳에 가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어버린 것 같아 쓸쓸한 마음입니다
해원이 도서관에서 읽다 잠든 책은 독일 작가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Nobert Elias,
<The Loneliness of the Dying>)입니다.
극의 전개와는 아무 관련이 없읍니다
어떤 논평가는 혹,국어 선생처럼 이렇꿍 저렇꿍 연결을 지을텐데 제 생각에는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물론 그것이야 홍상수만이 알고 규정지을수 있는 영역이지만 말입니다
참 정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홍상수감독과 그의 작품을 바라보시는 것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