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변종호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약간의 긴장과 새롭게 펼쳐질 여행지의 경관이며,
그들만의 언어와 풍습, 먹 거리, 삶에 생생한 모습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도
하며, 점점 말라 가는 메마른 감성에 한줄기 단비가 되기도 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맞벌이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긴 하지만 스트레스 역시도 배로 받기
때문에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매년 2~3회에 걸쳐 여행을 떠난다. 흔히들
여행이라고 하면 돈 많고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꼼꼼하게 챙기고 준비해 가면 적은 비용으로 알찬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르지 않고 쭉 이어져 온 여행이지만 여행지 선정에는
한동안 고심을 하게 된다. 다녀온 여행지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구룡포
해수욕장을 지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신년 초 해돋이 관광으로 유명한 호미곶 근거리이기 때문에 여행 시기로는 삼,
사월이 적기 인 것 같다 바닷가 작은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을 자는
조건으로 하루에 이삼 만원을 주면 쉴 수가 있다. 호텔이나 모텔보다는 이런
곳이 약간에 불편함은 있어도 훨씬 마음이 편하다.
동해안이면 다 그렇지만 너무나 푸르고 맑은 바다와 잘 깔려진 하얗고 까만
조약돌들은 방금 스치고 지난 파도에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크기도 모양도
동글동글 하니 같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파도가 칠라치면 조약돌이 구르는 소리가 파도소리에 묻어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집 앞에 있는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만 건너면 바다라서 잠을 청하려고 누우면
철 석이는 파도 소리가 너무도 정겹게 귓전을 맴돌다가 이내 여독에 무거운
눈꺼풀을 닫아 놓고는 훌쩍 떠난다. 바닷가에 아침은 부지런한 갈매기가 물고
온다 싸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본다. 꽉 눌려있던 가슴이 뻥
뚫린다.
어둠을 끌어안은 바다를 붉게 물들인 채 타오르는 해를 보노라면 탄성이
터진다.
대자연에 섭리에 절로 숙연해진다. 산 정상에 올라서나 이렇듯 바닷가에서- 13
장엄한 일출을 볼 때면 나의 작은 존재가 절실히 느껴진다. 치열한 삶 속에 묻혀
잃어버렸던 나를 조금이라도 다시 찾는 듯하다.
일출에 장관을 가슴깊이 담아두고 나면, 조그마한 항에 두 세척의 고깃배가
들어오고 이어 그물에 걸려있는 고기를 떼 내는 작업을 하는데, 계절 별로
잡히는 고기가 다르다고 한다. 때로는 큰 대게가 걸리기도 하고 주둥이가 송곳
같은 학 꽁치가 잡히기도 하며, 이번에는 등에 푸른빛이 선명하고 은빛 비늘이
아름다운 고등어만 잔뜩 걸려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고기를 골라 담으며 나누는 아낙들의 억센 사투리조차도
정겹다.
상품으로 선별된 생선을 제외하고는 동네 분들이 나누어 그릇에 담아 가지고
돌아간다. 이런 게 나누고, 베푸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진정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한다. 모여든 몇 마리의 동네 개들도 잡어 한두 마리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그야말로 정이 있고, 풍성함이 있는 곳이라고 기억하고
싶다.
구룡포로 나오는 길에 마을 어귀서 백발인 노인 부부가 손을 든다.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져 있고, 그 안에는 알록달록한 털을 가진 예쁘고 복스런 강아지
세 마리 가 고개를 내밀고는 장난을 치느라 분주한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장날이라 저 놈들을 팔러 가시는가 보다. 흔쾌히 차를 세우고 태워 드렸다.
"아이구 고맙소!! 이렇게 태워주니. .”
아마도 바로 앞서 나간 승용차 두 세대는 그냥 지나친 것 같았다 두 분을
태워드릴 자리가 없어서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구룡포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차를 태워 드린 것이 연신 고맙다고 하셨고,
여름휴가 때 이곳에 오면 집에 꼭 들리라고 당부하신다.
손을 들어 차를 세우던 곳에 있는, 파란 양철 지붕이 바로 그 분들이 살고
계시는 집이였다. 그 날이 장날이라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저 놈들을 팔아
쓰시려고 하는 것 같았다 딸애 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에 명주실
같은 머리카락과 깊게 패인 주름만 봐도 팔십이 가까워 보였다.
“이 눔 한 마리 줄 테니 가져다 기를래?” 이렇게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못내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신 것 같다.
구룡포에 두 분을 내려드리고 출발을 했다 “고맙수 젊은이”를 연발하시며,
차가 멀리 가도록 허리를 구부린 채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드시던 두 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분들의 자식들은 도회지에서 산다고 하시던데,
잘 찾아뵙기나 하는 건지? 유독 가슴이 따듯한 두 분, 오래오래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게 살다 가시면 좋겠다는 기원을 해본다.
2004.18집
첫댓글 구룡포에 두 분을 내려드리고 출발을 했다 “고맙수 젊은이”를 연발하시며,
차가 멀리 가도록 허리를 구부린 채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드시던 두 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분들의 자식들은 도회지에서 산다고 하시던데,
잘 찾아뵙기나 하는 건지? 유독 가슴이 따듯한 두 분, 오래오래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게 살다 가시면 좋겠다는 기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