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 멸망에 관해서 미스테리로 남아있는데..
음 히타이트 멸망 원인에 관해서는 여러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는데,,
우선 신빙성 있는 있음직한 일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라면
히타이트가 멸망 당한 원인은 내부에 왕자들의 심한 내분과, 여기저기서 해양세력과 동방의 이민족들이 쳐들어 와서 안과 밖의 압박으로 무너졌다고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침략자들이 도시를 방화시켰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동방의 이민족이라는 견해는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흉노족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히타이트 서쪽의 해양민족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요?
이집트의 기록에서 보면 히타이트는 서쪽의 해양민족의 칩입으로 멸망했다고 합니다. 그럼 당시 히타이트 서쪽을 칠 해양 세력이라면 그리스 인들이라고 추측 해야할텐데,, 당시 그리스 인들이라면 트로이(정확한 전투는 아니지만 가정해서)를 친 뒤라 가능 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도시국가 연합체가 한 제국을 상대로 이런 무모한 짓을 했을까요? 이 해양민족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신빙성이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추측입니다..
히타이트 인들은 왜 지하도시로 이동해 생활했을까요? 당시 이집트와 견줘도 강력한 제국이 어느 강한 상대를 만나서 지하로 이주하여 도시를 건설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라면 내부의 고열로 인해 멸망했다고 보는 설인데요, 다카하이라는 일본의 한 학자는 이 내부 고열을 핵무기로 인한 고열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핵무기가 존재 한것이 의문점이고, 수 천년전에 이런 도시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여기서 발전해 신빙성 있는 답은 운석이 떨어져서 내부의 심한 고열이 일어났고 히타이트 멸망을 초래하게 되는 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아나톨리아 고원은 한동안 살기 힘든 지역이 되어 황폐해져 갔다고 합니다만,, 그 당시 운석이 떨어진 후 지층의 변화가 아직까지 발견이 되지않았고 아마 한 지역을 황폐화 시킬 운석이라면 어느정도 흔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인들은 이런 운석 충돌을 재해석 해서 신이 내려주신 벌이거나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는 기록이 남을 수도 있지만 이것 또한 설일뿐 핵폭탄 보단 신빙성 있다는 예에 불과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외계인 침공설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신빙성이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해양민족이 외계인을 지칭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히타이트는 고온으로 멸망했다기 보단 지금으로 봐선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침입으로 멸망 했다라고 저는 단정합니다.
물론 화재로도 일어나기 힘든 그 고온의 정체가 문제이지만 역사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전자가 신빙성이 있습니다.
히타이트 멸망은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이건 단지 제 주관일뿐 혹시 다른 의견이나 부족한 점이나 지적할 점이 있다면 댓글을 올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웬 흉노?;
음 글쎄 아마 흉노족의 조상인것 같은데요 이건 제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께요..
왠 핵무기가?;;
내분 일으키다 이민족 침략으로 멸망 테크 타는게 상식적으로 당연해 보이는데요.
학자라면 외계인 침공설 같은것에 관심을 갖지는 않겠죠. 세계여러곳의 부흥했던 왕국이 어느순간 증발해버린 경우가 역사상 많습니다. 남미 아마존 유역에도 광대한 제국의 흔적이 밀림속에서 발견된바 있죠. 앙코르와트도 그렇구요. 왜 멸망했느냐는 유적발굴이나 사료의 발견을 토대로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져야 겠지만, 일반인들이 막연히 그 멸망을 추측해 보는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제국의 멸망을 보면 흔히 그렇듯이 그 제국을 강성하게 만든 요소가 어느순간부터 멸망을 재촉하는 역할로 뒤바뀌게 되죠. 그것을 다시 부흥으로 돌리는게 개혁이고 그 개혁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는순간 멸망이 가속화 됩니다. 즉 어느 제국이나 외부보다 내부의 병으로 멸망하게 되는거지요. 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의 침입이라기 보다 스스로 멸망했듯이, 해양민족의 침입은 에이즈걸린 사람을 죽게 만든 감기같은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성자필쇠가 아닐까 싶은데요.
보통은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망했다가 정설이죠..-_-;; 그 과정에서 내분이 심했기 때문에 효율적인 대항이 힘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앗시리아 자체가 워낙 격이 다른 전쟁능력이 있던 고로.. 람세스의 이집트와 투닥거리는 수준의 군사력으로는 대항하기 불가능했다고 봐야..-_-;;
해양민족 어쩌고 하는거 히스토리채널에서 본기억이... 다른나라가 멸망할테 이집트는 해전에서 이겨서 겨우 유지됐다던데
로마 VS 페르시아와 같은 이유입니다. 막강한 강적과 싸우다가 서로 힘이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는 그나마 체제 우월성에 생산력도 높아서 일명 "해양 민족의 대공습"에도 버텨낼 내부적 힘이 있었고, 때마침 이집트에도 디오클레티아누스격인 지배자들이 나타나 체제 개혁을 했습니다만, 히타이트는 체제 개혁자도 없었고 내부적 역량도 션찮았던 모양입니다.
두개의 문명이 소모전을 지속하다 둘다 쇠락의 길을 걸은 비유로 로마vs페르시아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전문가도 그런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그 비유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아테네vs 스파르타가 올바르겠죠.
에.. 대략 마활님 말씀은 경쟁관계에 있는 두 문명의 공동쇠락 이라기 보다는, 경쟁 과정에서 서로의 힘을 소진한 것에서 생겨나는 문제들과 관련해 각자의 상황과 대처방법의 차이가 두 문명이 이후 걷게될 운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라는 점에서 비유를 한 것이니 문제될 건 없어 보입니다. 확실히 똑같이 바닷굄훌들에게 공격을 받았음에도 한쪽은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살아남은데 반해, 다른 한쪽은 내부적 역량의 한계나 오랫동안 싸워온 결과 축적된 힘의 소진 즉, 복구하기 힘든 손실 따위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걸었으니, 로마와 페르시아의 전쟁과 그 결과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식의 비유라면 페르시아보다 게르만족이 더 어울리겠죠.파르티아는 물론 사산조 페르시아도 로마의 공격에 항상 수성의 입장이었습니다. 샤푸르에 의해 포로가 된 발레리아누스도 공격해 들어갔다 잡혔던거죠.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패전이 로마문명을 소진시켰다고 보기는 어렵죠.
1/ ...어떤 전문가도 그런 주장은 하지 않는다뇨? 오스트로고르스키, 할던, 트레드골드 등 전문 사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노리치등 해당 역사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물론, 세계사 교과서도 짚고 넘어가는 부분입니다만. 2/경쟁 관계에 의해 소모된 두 문명이 외부의 제 3자의 공격으로 몰락하는 경우의 내부 역량에 의한 이후의 차이인데, 애초에 게르만족은 더더군다나 어울리지 않는 비교주체입니다. 게르만은 로마와의 소모적인 경쟁관계가 아닌 새로운 물결, 즉 해양세력과 같은 주체가 될 뿐입니다. 3/...뭐, 발레리아누스 이야기가 나오는걸 보면 결국 마활님이 '어떤 시대'를 말씀하셨는지 '전혀 이해 못하셨다'-로 되겠습니다.
게르만이 새로운 물결이라뇨? 게르만족의 침입은 로마공화정시대부터 늘상 있어왔던 일입니다. 모르십니까
단순한 레이드 수준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의 거대한 이동>이라면 고대 공화정 시대라면 기껏해야 킴브리-테우토니 전쟁을 제외하면 손에 꼽을 만한 것도 없지요. 3c의 위기를 야기하고 결국 서로마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지속적이고 거대한 침입과 비교할 수준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3c 이후 게르만 대이동의 주력부족이던 고트족이나 반달, 프랑크등의 훨씬 북족에 있던 부족의 본격적인 남하는 공화정 시대에 없던 일입니다.
하나의 문명을 좌우할 정도 거대한 이동이 어느정도를 말하는 겁니까. 그건 이동의 규모가 아니라 침입당하는 문명의 국력에 달려있습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를 보면 벌써 초반부터 로마 멸망기 수준의 여러 민족의 이동이 있었습니다. 게르만족의 약탈로 지금의 스위스지역의 헬바티카인 전부가 이동하여 연쇄적으로 갈리아 게르만 전쟁이 촉발되었습니다. 그 정도 규모라면 로마후반기에는 바로 멸망할 정도였습니다. 중세때는 오히려 전쟁인원등의 규모가 고대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갈리아전기 초반에 민족이동이라면 헬베티족의 이동인데, 이것이나 혹은 직접적으로 이것을 유발시킨 아리오비스투스는 이동이 단발적일 뿐만 아니라 숫적으로도 30만(전사는 더 적었고)-/8만 수준으로 기억합니다. 후에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규모부터가 다릅니다. 헬베티족의 이동인원은 카이사르 추산으로도 30만 정도 아니던가요. 더군다나 '로마에 대한 게르만의 침입이 공화정부터 늘상 있어왔다'고 하신데 대한 대답인데 갈리아에 대한 게르만족의 침입을 들면 난감합니다. 로마 공화정시대부터 로마를 멸망시킬 정도의 게르만족의 침입을 들어주시면 납득하겠습니다만.
게르만이 왜 튀어나오는 지 알 수 가 없는 1人, 그리고 어디 갈리아도 듣보잡 종족이던가 -_-
그리고 [침입당하는 문명의 국력]에 달린거, 맞습니다. 그래서 양 문명이 싸우다가 국력이 소진했을 때 마활님께서 예로드신 제3세력들이 성공한겁니다. 그런데 로마 공화정 시대에 로마를 멸망시킬만한 <<<게르만족의 로마에 대한 공격>>> 중 킴브리-테우토니 전쟁 이외의 사례가 있습니까?
게이볼그//근데 제가 EB모드 포럼에서 '켈트 넘 쎄게 나왔씸!'이라는 글에서 논쟁하는 거 보다 들은 건데...게르만은 당시 그 동네에서 빛나는 작은 뒷동네 였다는 게 사실인가요?
글쎄요, 저도 EB의 그 본좌님만큼 전문적인 자료를 접할 레벨이 아니라 제가 뭐라 논평할 수 없는 파트 입니다만, 갈리아-게르만이 항상 갈리아의 열세로 진행된 것은 아니고 아리오비스투스-카이사르가 연타로 깽판 칠 때는 갈리아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세력다툼으로 역량을 상당히 소진한 상태였다는 사실은 맞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특히 노블들). 갈리아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힘이 소진되는 바람에 외부인이 덥썩 들어와 자리잡은건 사실입니다.
바다굇수들의 영향은 다들 인정하시는것 같은데요... 도대체 해양민족은 누구를 지칭하는겁니까?? 전혀 감이 안와서요^^;;
이스라엘하고 박터지게 싸운 그 플리셋(일명 블레셋)의 직계 선조입니다.
근데 난감한 건 바닷굄훌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지중해 미스테리...
그럼 해양민족이 정착한게 페니키아인이 되는 겁니까?? 도리아인이 그저 북에서 내려온것처럼 이들도 그저 바다에서 온건가...
마활// 히스토리채널에서 블레셋족이 히타이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다큐를 봤지만 저 굇수 해양민족의 후예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건가요??
해양민족들이 아무리 킹왕짱이라고 날뛰어봤자 육상전에서는 아 님하 매너 아닌가요??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인 말고......그거 생기기 전에 이미 있었거나 크레타섬에 있던 문명이라던가 아닐까요 -_-...사실 그 잘나신 그리스인들 도리아인 내려오고 이집트에서 많이 배워오고 심지어 이 카페서 전에 페니키아인이 그리스로 가서 정착했으리란 얘기도 나오고 하는 판에 -_-...일단 "흔히 소크라테스니 어쩌니 하던 시대 그리스인은은 일단 아니다"에 한 표
전에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봤던 책에 블레셋에 관한 내용이 나왔는데, 크레타섬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나왔었습니다(책 제목은 기억이 안나네요)
문장이 이상해.....
음.... 사실 비밀을 말해드리죠 환국의 후예가 공격해서 멸망했습니다...( What the...?)
fuck! (ㄲㄲ)
페니키아인들의 일부가 아닐지?
히타이트 멸망의 미스테리는 21c 현재에도 여전히 역사학계에 풀리지 않는 의문점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멸망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역사학 & 고고학 역사에 길이남을 사람이 되는겁니다.. 트로이 발굴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슐레이만 처럼요
흉노는 아닙니다. 흉노족이 활약하던 시대는 히타이트가 멸망하고 나서 훨씬 이후에야 시작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