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소 체험해 보지 않았다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좋은 글귀를 잘 외워도 이익될 것 없고 훌륭할 것이 없다. 목동이 주인의 소를 아무리 많이 세어도 자기의 소는 한 마리도 없는 것과 같다.
<증일아함경>
나무아미타불 생활속불교 ()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상속이다. 전생은 금생의 과거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이다.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전생을 생각하고 내생을 바라보며 금생을 살아가는 이는 흔치 않다.
왜 어제를 돌아볼 줄 알면서도 전생은 묵살하고 내일을 기약하면서도 내생을 잊고 사는 걸까. 그것은 전생과 내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지금 이 순간에 너무 집착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 이상 전생. 금생. 내생의 삼세윤회는 반드시 있다.
왜냐하면 삼세윤회는 인. 연. 업. 구성 된 필연적 연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인은 씨앗이요. 연은 연지. 곧 씨앗이 뿌려지는 밭이며. 업은 밭에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볼 때까지 가꾸는 행위이다. 이렇게 인과 연과 업이 모이면 결과는 자연 성 일 수 밖에.....
씨가 좋고 밭이 좋고 농업을 잘 지었으면 복을 많이 받을 것이고 나쁜 씨를 나쁜 밭에 뿌리고 가꾸는 일을 게을리 했다면 수확이 나쁜 것은 정한 이치이다. 심은 대로 거두고 지은대로 받는 것이니 선인선과. 악인악과 이것이 사바세계의 생리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 있다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인과응보와 윤회를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물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라나고 있고 모든 것이 모르는 사이에 무르익어가고 있다.
삼세의 인연 또한 시간의 공간의 파장으로서 전생에 하던 일과 생각했던 일을 금생에도 하게 되고 금생에 하던 일과 생각하던 일은 내생으로 연장 확대되어 간다.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종연생 종연멸의 법칙 이는 만고불변의 철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