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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열흘 앞둔 주말 아침. 2025 아름다운 나눔보따리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가게에서 스무해 넘게 이어오고 있는 사회환원 나눔활동사업이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배달 천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250여명의 자원봉사 배달천사들은 가가호호 방문하여 독거노인, 조손가정 등 취약계층 이웃들에게 생필품 나눔 보따리를 직접 전달했다.
해마다 배달천사로 활동해 온 우리 가족은 열 가구를 할당받았다. 남편은 혼자서 강동과 정자동의 다섯 가구를 담당했고 큰 아이와 나는 2인 1조가 되어 창평동과 호계동 다섯 집을 배정받았다. 우리의 배달 첫 집은 북구 창평동 소재 주택이었다. 운전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나는 처음 가보는 생소한 지역이라 많이 긴장을 했다. 목적지는 좁은 농로를 지나 구불구불한 작은 골목길에서 좌회전을 해야 했다. 차가 주택의 벽면과 전봇대 사이를 통과하기에는 도로 폭이 너무 좁아 보였다. 전봇대나 맞은 편 벽면에 차 옆면이 긁힐 것만 같아 과감하게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차가 조금 더 진입을 하자 전봇대와 겨우 2cm 간격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부딪칠 상황이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더 이상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격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큰 아이가 조수석에서 내렸다. 아이의 차분한 어조와 손짓 덕분에 조심스럽게 후진을 하고 핸들을 조금씩 돌려가며 겨우 커브길을 통과하였다. 아마 아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나가는 사람없는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혼자서 낑낑대며 애써보다 차량 접촉사고로 보험회사를 불렀을 것이 자명했다.
큰 아이의 도움으로 위기의 순간은 모면했지만 나의 마음은 힘들어하고 있었다. 봉사하겠다는 좋은 생각으로 집을 나섰던 처음으로 내 마음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한파가 들이닥치는 추운 겨울날 주말 오전을 반납하고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집을 나서 배달천사를 자처한 나 자신이 과욕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행길 운전도 서툰 내가 무슨 배달을 하겠다고 용기 있게 나섰는지 자신을 과신한 내가 아이 앞에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언제든 돌발상황은 발생할 수 있는 거라 가볍게 여길 수 있었지만 그날은 많이 당황했던 터라 쉽게 마음이 돌아오지 않았다. 힘들고 당황했던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배달 주소지를 향해 운전만 했다. 많이 놀란 엄마를 배려하는 세심한 성격을 가진 아이는 혼자서 나눔 박스를 주택에 배달하고 올 테니 엄마는 차에서 쉬고 있으라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1호 나눔보따리가 배송완료되었다.
그 다음 집들은 모두 원룸이라서 길찾기도 쉬웠고 주차도 편리했다. 아이는 무거운 나눔 박스를 들었고 나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초인종 벨을 눌었다. 하나같이 모두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고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으셨다. 아이는 독거 어르신과 눈을 맞추고 큰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전했다. 아이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시는 얼굴로 대해 주셔서 꼭 산타클로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더 힘이 난다고도 했다. 아이는 나눔보따리 배달을 통해 받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선사하게 되어 내 마음이 더 흐뭇하다고 했다.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아이는 그분들로 인해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짧았던 나를 반성했다. 난관에 부딪친 순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힘든 내 마음에만 사로잡혀서 독거 어르신들의 환한 얼굴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를, 오가는 사람 없이 쓸쓸히 홀로 지내시는 독거 어른신에게는 설 명절을 앞두고 배달물품을 가져오는 우리들이 손꼽아 기다리셨을 반가운 손님이었을 거라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나를. 그리고 아름다운 나눔 보따리 배달 봉사는 단순한 물품을 나누는 것을 넘어 이웃의 온정을 느끼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연결고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을 위해 실천한 봉사활동이 나를 되돌아보게 하였고 나의 짧은 생각을 한 뼘 더 성장시켜 주었다. 혼자서 배달을 모두 끝낸 남편에게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힘들다기보다는 자신을 맞아주시는 그분들의 행복한 미소가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미소 하나만으로 힘든 것은 모두 잊는다고.
큰 아이와 남편이 느낀 나눔의 행복을 내년에는 나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