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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해금(解禁)된 오대마왕
곽산(곽산).
무천룡은 단정학 타고 날다가 험준한 준령의 가장 으슥한 곳으로 학을 내리게 했다.
바윗돌이 첩첩해 지옥문(地獄門)같이 음산하기만 한 곳으로
사람이라고는 살 수 없을 곳으로 보이는 장소였다.
"여기다."
무천룡은 근처를 둘러보다가 서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제비가 놀랄 비천추운신법이 시전되며
무천룡의 몸이 곽산의 이름 없는 돌 계곡 안으로 사라져 갔다.
무천룡은 전인미답의 험지로 불릴 정도로 길이 없는
난석군(亂石群) 가운데 이르게 되었다.
칼보다 뾰족한 바위 돌이 솟아 있고
, 곧 무너져 내릴 듯한 바위의 탑들은 어디를 봐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바위 사이로 얼핏 보아서는 알 수 없이 입구가 교묘히 위장되어 있는 석굴(石窟) 하나가 있었다.
"저기군."
무천룡은 석굴을 발견하고는 몸을 석굴 안에 들여놓았다.
벌레 하나 살지 않을 메마른 동굴 안은 얼핏 보아서는 이 장 정도 가다가 길이 끊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동굴 입구에 마련되어진 기문진(奇門陣)에 의한 환각일 뿐이었다.
'제발 생존해 계셔야 한다.'
무천룡은 굳은 얼굴을 하고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십 장 정도 갈 때까지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이 좁아졌으나 그 이후부터는 점점 넓어졌다.
다시 삼 십 장쯤 전진하자 동굴이 급격히 휘어졌다.
"크음…!"
갑자기 그의 고막을 때리는 헛기침 소리가 있었다.
"어느 길손인가?"
모퉁이가 휘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가
무천룡의 얼굴에 가벼운 긴장감을 떠올리게 했다.
'과연 대단한 분들이다. 인기척을 알아내다니.'
무천룡은 무슨 꿍꿍이인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흐흐…여기가 마귀굴(魔鬼窟)임을 모르고 들어왔는가?
입구에 기문진이 있어 들어오기 힘든데 용케 들어왔군."
질그릇 깨지는 듯한 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무천룡은 싱긋 미소를 띠고는 낭랑히 말했다.
"칠십 년 전의 빚을 청산하러 온 사람이오."
그의 음성은 변성에 의해 중년인의 목소리로 여겨질 정도로 중후했다.
무천룡의 말이 있은 후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동굴이 휘어진 곳의 사람들이 무천룡의 말에 너무 놀라 할 말을 잊고 만 것이다.
뭔가 얘기를 나누는 듯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강렬한 말투가 전해졌다.
"칠십 년 전의 빚이라고? 그렇다면 무저갱(無底坑)인 줄 알고 왔단 말이냐?"
"그렇소, 나는 정의무성(正義武聖)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오."
"으으…!"
무천룡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정의무성에게 갇혀 칠십 년 세월을 허송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래서 내가 여기 오게 된 것이오."
"너…너는 누구냐? 대무신국에는 너 같은 사람이 없다. 어서 정체를 밝혀라!"
다른 노인의 급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무천룡은 전혀 못 들은 듯 대답을 주지 않았다.
거친 목소리가 급한 노인의 목소리에 뒤이어졌다.
"우리 오마는 갇혀 죽을 수밖에 없다. 다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빚을 갚겠단 말이냐?
설마 우리들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눈의 가시 같아서 죽이려 하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오."
"그… 그럼 왜 왔느냐?"
무천룡은 거진 모퉁이 근처에까지 이르렀다.
"오마 여러분이 더 이상 마도를 밟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경우
무저갱 밖으로 풀어 드리겠단 말이외다."
안에서 놀란 음성들이 빗발쳤다.
"뭐… 뭐라고?"
"우… 우리들이 살아나갈 수 있단 말이냐?"
"우리를 구할 방법을 알고 있단 말이냐?"
무천룡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맨 처음에 들려왔던 거친 음성이 물었다.
"너는 우리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느냐?
우리들이 몸을 빼낼 경우 화산이 터져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모두 알고 있소. 하지만 만년한철삭(萬年寒鐵索)을 끊고도 화산을 터뜨리지 않을 방도가 있소.
그래서 온 것이오."
"방도가 있다고?"
"그렇소, 사실이니 믿어 주시오."
창노한 목소리가 한동안 끊겼다가 차 한 잔이 식을 시간이 지나서 이어졌다.
"조건을 다시 한번 말해 봐라."
전에 비해 훨씬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천룡의 고막을 때렸다.
무천룡은 다소 긴장했던 마음을 풀었다.
"마도를 버리고 정도를 택하겠다는 맹세를 할 경우
정의무성을 대신하는 사람으로 여러분들을 풀어 주겠소."
"나가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마도를 버리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우리들은 오래 전에 마도천하의 야망을 버렸다."
"다행이오. 그러면 풀어드리러 들어가리다."
무천룡이 모퉁이를 꺾어지려 하자 일갈이 터졌다.
"잠깐!"
"무슨 일이시오?"
"흐흐…우리도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을 수락한 후에야 우리들 앞으로 나서거라."
다소 차디찬 원한이 어린 어조였다.
무천룡은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가급적이 그들과 원만하게 과거사를 매듭지으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조건이 뭡니까?"
"흐흐…정의무성을 대신해 우리 오마와 비무(比武)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단 하나뿐인 조건이다."
거친 음성은 아주 강경했다.
무천룡은 흔쾌한 기분이 되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그 조건이라면 쾌히 승낙하겠소."
"흐흐…정의무성만큼이나 거만하군."
"하지만 비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오. 나는 장담할 수 있소."
거친 음성은 아주 당당했다.
"우리들이 너를 보고 무서워 할 줄 아느냐?
흐흐…우리들은 이미 죽음의 공포를 잊은 지 오래다. 두려울 것은 없다
. 만일 우리들이 너를 보고 손을 쓰지 못한다면 남은 생애를 너의 하인으로 보내겠다."
"하하…굳이 그럴 필요는 없소."
무천룡은 웃다가 모퉁이를 돌아갔다.
그가 나서는 곳을 주시하는 여덟 쌍의 눈초리가 있었다.
이끼로 덮인 음침한 굴 안에는 하반신이 박살난 노인 셋이 누워 있고,
군데군데 다섯 개의 돌기둥이 서 있는데, 돌기둥마다 수인(囚人)의 묶인 모습이 있었다.
만년한철삭으로 비파골이 뚫린 채 잡혀 있는 다섯 노인은 바로 십이사마 중 오대마왕이었다.
"하하…그 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무천룡은 가슴을 쭉 펴며 한 걸음을 내었다.
"아니, 헌지가 아니냐?"
"허허…녀석아! 네가 웬 해괴한 장난이냐?"
여덟 노인은 반색을 하며 희희낙락하여 아우성을 쳤다
. 오마(五魔)와 삼밀사(三密使)는 무천룡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애써 고개를 틀었다.
무천룡이 여덟 명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여러분들을 속여서 죄송합니다."
중년인의 목소리가 아닌 무천룡의 본래 음성이었다.
"속이다니? 네가 뭘 속였다는 거냐?"
무천룡은 차분한 어조로 자신을 밝혔다.
"저는 낙헌지가 아니라 무천룡입니다. 대무신국 태자이며 정의무성의 손자입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었다.
오대마왕은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를 반기던 화색이 싹 가리며 차디찬 노기가 피어올랐다.
그들의 깡마른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으…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네가… 네가 정의무성의 손자란 말이냐?"
무천룡은 잠자코 있었다.
시체처럼 누워 있던 삼밀사의 얼굴은 불덩이같이 달아올랐다.
"천… 천룡태자님이시란 말씀입니까?"
삼밀사의 우두머리 적지만리객은 무천룡이 정체를 밝히는 순간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렇습니다."
무천룡은 팔노를 향해 꿇어앉은 채 자신이 어떻게 해서 대무신국을 나와
남천관의 하인 낙헌지가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그의 신세를 밝히는 동안 여덟 노인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무천룡이 모든 이야기를 마쳤을 때 오마와 삼밀사의 표정은 너무나도 판이했다.
삼밀사는 기뻐 오열했고 오마는 벌레 씹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무천룡은 오마가 괴로워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평생의 숙적이며 원수인 정의무성의 손자에게
자신들의 절학을 전한 셈이 아닌가?'
무천룡은 제일 먼저 혈발마를 향해 갔다.
"으음…!"
혈발마는 무천룡이 다가오자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죄송합니다."
무천룡은 목례를 취하고는 정의무성이 혈발마의 비파골에 박아 넣은 만년한철삭을 움켜쥐었다.
"설… 설마 맨손으로 그것을 끊겠단 말이냐?"
혈발마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것을 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대무신공기강(大武神功氣 )뿐입니다."
무천룡은 힘있게 말한 후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그의 두 손이 팔꿈치 부분까지 금빛으로 물들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철거덩―!
천하의 어떤 보검과 보도로도 끊을 수 없었던 만년한철삭이
그의 대무신공기강 아래 사그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혈발마도 자신의 혈발마공으로 만년한철삭을 끊을 수 있었다.
문제는 만년한철삭을 끊을 때 기둥이 무너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끊지 못하고 칠십 년 세월을 갇혀 지냈어야 했었다.
그러나 무천룡은 아무런 진동도 일으키지 않고 공기가 흐르듯 부드러운 진력을 발휘해
그토록 강하던 만년한철삭을 쇳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됐습니다."
무천룡은 혈발마를 향해 웃음을 지은 후 잔도마(殘刀魔) 앞으로 갔다.
"오…장하구나! 네가 이 정도로 놀랍게 성장하다니."
잔도마는 아주 거친 사람으로 평소 다정한 말을 건네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 그는 무천룡이 맨손으로 만년한철삭을 바스러뜨리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중원의 제일고수인 정의무성도 너만은 못하다."
잔도마가 할아버지 같이 자상히 말하자
무천룡은 다시 대무신공기강을 발휘해 만년한철삭을 끊었다.
이어 만독마(萬毒魔), 취마(醉魔)에 이어 백절마(百絶魔) 마저
자유스러운 몸이 되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눈빛은 이슬 같은 눈물에 젖었다.
어찌 감회롭지 않겠는가?
생각하기도 어려운 아득한 칠십 년의 금제가 해소되자 그들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무천룡은 비록 그들을 금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아직도 부담을 떨칠 수 없었다
.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두 손을 한데 모으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었다.
"으하하하!"
혈발마의 웃음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으하하…정의무성에게 잡힌 칠십 년 한이 이제서야 풀리는구나!"
그의 광소성이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혈발마가 미리 말한 대로 무천룡과 비무를 할 것인가?
무천룡을 죽여 정의무성에 대한 복수를 대신할 것인가?
"으하하…정의무성의 화신(化身)이라고 할 수 있는 놈을 제자(弟子)로 거느렸으니
복수는 이미 달성된 셈이 아니겠는가?"
혈발마가 무천룡의 손을 덥석 거머쥐었다.
"과거는 잊었다. 너는 정의무성의 손자인 동시에 우리 오마의 공동제자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사대마왕은 비로소 안색을 펴며 가가대소 했다.
"카하하…!"
"허헛…큰 형님의 마음도 우리들과 마찬가지였소."
무천룡이 감격에 젖어 혈발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오…그래. 제자야!"
혈발마는 격동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가슴에 응어리진 칠십 년간의 원한이 한꺼번에 녹아 버린 것이다.
그는 혈발마는 정의무성의 손자를 제자로 둔 사실에 깊은 감회에 젖었다.
참으로 기묘한 운명의 갈림이었다.
과거 정의무성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칠마전의 칠마는
정의무성의 손자에 의해 하나 하나 죽어가고 있었다
. 반면 정의무성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아 무저갱 안에 잡히게 된 오마는
오히려 무천룡을 제자로 삼으며 존경을 받고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지사(人間之事)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아닐 수 없었다.
무천룡은 과거 오마(五魔)를 천시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그가 오마에게 사부라 칭한 것도 단순히 그들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마(魔)와 정(正)이 한데 합했다고나 할까?
원한을 푸는 길은 살육이 아니었다.
이렇듯 다정한 유대야말로 중원천하의 살육전을 중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얼마 후, 무천룡과 오마,
그리고 삼밀사는 너무나도 지긋지긋했던 무저갱 안을 벗어나게 되었다.
무천룡이 맨 앞에 섰고 그 뒤로 혈발마가 뒤따랐다.
뒤로 취마가 따랐고, 적지만리객을 업은 잔도마, 비천신매를 업은 만독마
, 그리고 광승을 업은 백절마가 뒤를 이었다.
오마에게는 칠십 년 만의 맑은 공기였고 삼밀사에게는 십 년 만의 찬란한 햇살이었다.
"으하하하…!"
"허헛, 세상이 좋기는 좋구나!"
오마와 삼밀사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축축한 흙을 매만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무천룡은 그들이 마음껏 웃고 즐기기를 기다렸다.
오대마왕과 삼밀사 한참 만에야 입을 다물자 그는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칠마전에서 나온 일곱 마두 중 넷이 이미 제 손에 죽었습니다."
오마는 혀를 내둘렀다.
"오…!
"벌써 넷이나 처치했단 말이냐?"
무천룡은 공손히 손을 모았다.
"지금은 지존마궁의 심마, 태양마궁의 태양마, 그리고 검마궁의 검마가 남아 있습니다.
저는 다섯 사부님의 힘을 빌어 그들을 소탕하는 일을 훨씬 단축시키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헤헤…네놈의 뜻은 충분히 안다
. 너는 지금 힘이 모자라 우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오마 중 가장 꾀가 많은 백절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헤헤…너는 우리들에게 개과천선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
"하하, 백절마 사숙은 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천룡이 머리를 긁적이자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소 성질이 급한 백절마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우리가 어떻게 해 주랴?"
"가장 급한 것은 심마가 저에 관한 소문을 듣고 도망치지 못하게 지존마궁을 포위하는 일입니다."
무천룡은 이미 정해둔 바가 있었기에 청산유수같이 자신의 심중을 피력해 나갔다.
모두 그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혈발마 사부께서 백절마 사숙, 잔도마 사숙과 함께 그 일을 맡아 주십시오."
혈발마는 쾌히 응락했다.
"알겠다. 그 정도라면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과거 노부의 손에 한번 유린당했던 소림사가
노부의 손에 의해 심마의 마수(魔手)에서 구해지게 된다면
구십 년 전에 소림에 지은 죄를 갚는다 할 수 있겠군."
"감사합니다, 사부님."
무천룡은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리자 취마에게 청했다.
"취사숙께서는 모산(茅山)에 가 주십시오
. 태양마궁(太陽魔宮) 근처로 가 계시면 제가 한 가지 일을 마친 후 사숙을 뵈러 가겠습니다."
"너는 어디로 가려고?"
"저는 만독사숙을 모시고 한 군데 급히 갈 곳이 있습니다.
그 일을 마친 후 곧 사숙을 찾아가겠습니다.
사숙은 제가 갈 때까지 태양마가 도망치지 못하게 잘 막아 주십시오.
사숙의 취마음이라면 태양마가 감히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
취마는 맡겨진 임무보다 다른 곳에 마음이 있었다.
"알겠다. 하지만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무엇보다 술을 먹는 것이 가장 급하니까."
"하하…무맹루(武盟樓)라는 주루에 선금을 두둑하게 치러 둔 바 있으니
낙헌지 이름을 대시고 마음껏 마시십시오."
"하하하…그거 좋은 소리다."
취마는 술이 거론되자 벌써 취기를 느끼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칠십 년 세월은 그들을 늙게 하지 못했다.
오마는 오히려 칠십 년이나 젊어 보였다.
그들을 보고 백수십 세에 달하는 강호의 노마두라는 것을 알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잠깐 동안의 이별이 필요했다.
무천룡과 만독마는 금시단정학에 올라 곽산에서 가장 빨리 멀어져 갔다
금시단정학을 타고 날아가는 무천룡의 뒷모습은,
칠십 년 전 중원을 떠나 입마령에 은거한 정의무성의 젊은 날 모습 그대로였다.
정의무성이 대무신붕을 타고 천하를 주름잡았던 시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오마는
무천룡이 정의무성보다 더 늠름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무천룡이 적이 아닌 자신들의 후예라는데 아주 큰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
"허허허…정도로 돌아서니 기분이 아주 좋군."
"하하…과거 이런 깨끗한 마음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정말 후회스럽소."
"천하제일인을 제자로 두었으니 이런 광영이 어디 있겠소?"
삼밀사와 사마는 오랜 친구인 듯 웃고 떠들다가 두 갈래로 갈라져 흩어져 갔다.
모두 절정의 경신법이고 칠마가 깜짝 놀랄 무시무시한 빠르기였다.
***
파산(巴山).
일컬어 대파산(大巴山)이라 불리고 있는 거령(巨嶺)이 야음에 잠겨 있었다.
파산의 남쪽에서부터 바람같이 날아오르는 일소일노의 모습이 보였다.
흑삼청년 하나와 아주 더러운 옷을 걸친 백발노인은 거의 비슷한 속도로 파산 깊숙이 날아들었다.
"천룡아, 네가 굳이 사숙과 함께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겠느냐?"
백발노인의 말이었다.
"하하… 사숙께 선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웃는 청년은 아주 뛰어난 용모를 갖고 있었다.
밤의 신이 여인이라면 아마 그의 뛰어난 모습에 반해 아침이 오는 것을 영원히 없애려 할 것이다.
청년의 웃음소리는 아주 맑기만 했다.
그들은 일 각 전 금시단정학을 타고 파산 기슭에 내린 무천룡과 만독마였다.
무천룡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만독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빛을 번득였다.
그렇게 오십 리를 달렸을까?
"저깁니다."
무천룡이 황량한 봉우리 아래에 서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봉우리 쪽을 가리켰다.
만독마는 어둠을 꿰뚫는 안력을 지녔기에 먼 곳에 세워진 아주 웅장한 장원을 볼 수 있었다.
"저기가 목적지냐?"
"첫 번째 목적지입니다.
두 번째 목적지는 아마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한꺼번에 두 군데를 친단 말이냐?"
무천룡은 혜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 오자 했느냐?"
"하하, 사숙과 저는 따로따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행동합지요.
제가 사숙을 모시고 다니는 겁니다."
만독마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일인지 정말 궁금하구나."
그들은 말을 주고 받으며 장원을 향해 접근해 갔다.
펑― 펑―!
두 번의 폭음이 일며 밤하늘이 휘영청 밝아졌다.
두 사람이 잠입했음을 알리는 불꽃 신호였다.
"어엇…?"
만독마는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보며 뭔가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백리화(百里火)를 아는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군."
"하하… 곧 있으면 사숙의 제자 하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무천룡이 웃으며 입술을 오므렸다.
"휘― 익"
십 리를 들썩이는 휘파람 소리가 일어나며 나무가 뿌리째 뒤흔들렸다.
'호오, 취마음보다 훨씬 강하군.'
만독마는 너무도 강력한 음파에 혀를 내둘렀다.
멀리 있는 장원이 화섭자로 밝아지는 가운데 백여 명의 고수가 장원에서 쏟아져 나왔다.
"와아―!"
"감히 어떤 자가 백독마부(百毒魔府) 가까이 왔느냐?"
"독으로 녹여 버리리라!"
갈가마귀 떼같이 날아드는 무리들 중 가장 뛰어나 보이는 사람은
네 사람이 메는 가마 위에 올라있는 한 명의 노부인이었다.
금빛 궁장을 한 노부인인데 두 다리가 없는 불구자였다.
여인은 가마 위에 백 개의 나뭇갑을 올려놓고 있는데 입가의 미소가 아주 혹독했다.
파공성이 요란한 가운데 무천룡과 만독마가 강호고수들로 완전히 포위당하게 되었다.
"하하하… 대단한 진용이군."
무천룡이 주위를 둘러보며 웃자 만독마는 무엇이 불만스러운지 연신 화를 냈다.
"쳇, 백독대진(百毒大陣)을 아는 자가 나 이외에 또 있단 말인가?"
포위된 두 사람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자 고수들은 그들의 배포에 저으기 놀랐다.
"크흣…간이 태산만 하군."
"흥, 죽어봐야 미련함을 깨닫는 자들이다."
이때 경호성과 함께 누군가 외쳤다.
"으헉! 저… 저 자가 바로 중원불사신 낙헌지다!"
무천룡의 얼굴을 알아보는 자의 외침이었다.
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포위망을 구축한 고수들은 사색이 된 채 석상처럼 굳어졌다.
중원불사신(中原不死神)!
그 별호는 천하에서 가장 위대하다.
칠마전의 사마를 죽인 그의 빛나는 명성은
당금 천하를 지배하고 있는 칠마전주 심마보다도 뛰어났다.
칠마전의 분타로 있는 백독마부의 고수들이 일시에 절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금색궁장을 걸친 불구의 노부인은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올 것이 왔군. 그러리라 짐작했다."
노부인은 현재 칠마전의 장로(長老)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백독마부주(百毒魔府主)로 알려진 신비의 인물이고
당세에 손꼽을 수 있는 냉혈마(冷血魔)였다.
백독마부주는 무천룡이 왔다는데 공포를 느꼈으나
어차피 각오했던 일이었는지라 곧 냉정을 되찾았다.
"겁먹을 것 없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모두 침묵을 지켰다.
백독마부주는 가마에 앉은 채 무천룡을 쏘아보았다.
"노신은 너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다.
그러나 노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신은 칠마전의 어르신네 덕에 소원이었던 한 가지 마공을 익혔기 때문이다."
"하하…칠마전의 마두가 뭘 가르쳐 주었소?"
무천룡은 뒷짐을 지며 낭랑히 물었다.
"보면 알 것이다!"
백독마부주가 냉소를 치고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가운데 백 개의 나뭇갑 안에 있던 가루와 독액이
그녀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뭇갑의 독은 하나같이 쇠를 녹이는 맹독으로 조금만 맡아도 핏물이 되어 죽고 만다.
그러한 백 가지 독이 그녀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만독마가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허억, 백독마공(百毒魔功)? 그것을 칠마전에서 배웠단 말이냐?"
"칠마전에서 가르쳐 준 것이다,
더러운 늙은이! 칠마전은 단지 영단을 주어 나의 내상을 치유하게 했을 뿐이다."
백독마부주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 그녀는 만독마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호호… 나는 내상이 나은 덕에 과거에 얻은 상고비급을 완벽히 익히게 되었다."
"상고의 비급이라고?"
"호호…독경(毒經)을 아느냐?"
만독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는 쓴 입맛을 쩝쩝 다셨다.
무천룡이 만독마 곁으로 다가가 조그맣게 말했다.
"이제야 제 뜻을 아시겠습니까?"
"흠, 그랬었구나. 허허… 이제야 네 뜻을 알겠다."
백독마부주는 그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자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열 손가락이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이 실로 괴이했다.
"두 놈을 단번에 죽여 버리리라!"
"잠깐!"
만독마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왜 두려우냐?"
"허허…두려워 만류하는 것이 아니다.
노부는 네가 지금 수법을 조금 틀리게 시전하고 있기에 교정해 주려는 것이다."
"뭐… 뭐라고?"
만독마는 제자를 가르치는 사부처럼 자상하게 얘기해 주었다.
"손가락 사이가 너무 벌어졌다.
그렇게 백독마공을 시전할 경우 힘이 일성 가량 약해진다. 알겠느냐?"
"미… 미친 소리! 네가 어찌 내게 충고할 수 있단 말이냐?"
"허허…고집이 계집이군. 노부가 몸소 시범을 보여주겠다."
만독마는 웃음을 터뜨리다가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콰류류류―!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그의 손바닥이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손가락 열 개에 떠오르는 빛도 각기 달랐다.
"아앗? 백독마공을 안단 말인가?"
백독마부주는 만독마가 자신이 시전하려는 백독마공을 아주 정확히 시전하자
눈을 까뒤집지 않을 수 없었다.
무천룡이 미끄러지듯 걸어나왔다.
"천약선자(千藥仙子), 이 분이 만독마(萬毒魔)이시며
독경(毒經)을 강호에 남긴 장본인이심을 아직 모르겠소?"
무천룡의 말이 백독마부주의 얼굴을 하얗게 만들었다.
"만… 만독마라고?"
그녀는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만독마가 누구인가? 공포의 십이대거마 중 독공의 일인자인 전대의 대마왕이 아닌가?
이미 칠십 년 전에 무저갱에 갇혀 죽은 것으로 알려진 그의 출현은
실로 천하를 경악케 할 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하…선자가 얻은 독경은 만독마 사숙의 작품이오. 결코 상고비급이 아니오
. 선자는 그 사실을 모르시오? 이 분을 여기 모시고 온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오."
무천룡은 그렇게 말한 후 훌쩍 날아올랐다.
그는 백독마부 앞에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찰나지간 오십 장을 가로질렀다.
"서라!"
그의 입에서 대갈일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날아가는 앞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도주하는 은의인영 하나가 있었다.
그는 무천룡과 만독마가 천약선자의 대면을 지켜보다가 경악에 젖어 도망치는 중이었다
. 그의 신법은 무척 뛰어났지만 무천룡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은포노인은 피를 토하듯 악을 써댔다.
"쫓아오지 마라!"
그의 허리에는 아주 가늘고 긴 보검이 차여져 있었다.
도주하는 그의 신법도 만만치 않아 두 사람 사이는 쉽사리 십 장 이내로 좁혀지지 않았다.
"하하하…노괴가 바로 검마궁(劍魔宮)을 세운 검마(劍魔)임을 안다. 어서 발을 세워라!"
무천룡이 뒤따르며 소리쳤다.
"나는 네놈과 겨룰 마음이 없다."
검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달음 쳐갔다.
근처의 지형에 익숙해 요리조리 숨어가며 도망쳐 가는 그의 모습은 참담하기만 했다.
강호인들이 상상하는 검마의 위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으으…만독마까지 출현했다면 무저갱이 깨진 것이 틀림없다.
어서 이 사실을 심마 형님께 알려야 한다!'
검마는 야음을 이용해 몸을 감춰 가며 최대한 줄행랑을 쳤다.
차앙―!
검마가 달려가는 앞쪽에서 검광이 일어나며 한 사람이 내려섰다.
무천룡이 언제 검마를 앞질렀는지 미친 듯 달려드는 것을 바라보며 검을 반듯이 쳐들지 있었다.
"허억―?"
검마가 귀신을 보고 놀란 듯 경악하자,
"하하…어찌하여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왔는가?
어차피 만났으니 일초비검(一招比劍)을 해 보는 것이 어떤가?"
무천룡이 능청을 떨자 검마의 얼굴이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까지 추악히 일그러졌다.
"으으…네놈이 소문보다 더 고강하구나!"
"검마, 칠십 년 전 나의 할아버지가 너를 대무검법(大武劍法)으로 쓰러뜨린 것을 기억하느냐?"
"무… 무어라고? 그렇다면 네… 네 할아버지가 정의무성이라도 된단 말이냐?"
"바로 맞췄다. 나는 정의무성의 손자 무천룡이다
. 사 년 전 나를 보았으니 아직 기억하고 있을 법한데?"
검마는 그 순간 몸이 얼음굴 안으로 빠지는 듯한 냉기를 느꼈다.
'크으…이 놈이 무천룡이었단 말인가
? 정의무성이 후계자로 길렀던 무천룡이 사 년 전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단 말인가?'
검마가 망연자실해 할 때 무천룡이 검을 가볍게 흔들었다
. 찬란한 검화가 무수히 뿌려졌다.
"할아버지는 너를 대무검법으로 쓰러뜨렸다.
나는 할아버지가 칠마를 상대하기 위해 새로이 창안한
천영식(千影式)으로 쓰러뜨릴 작정이다. 단 일초로!"
"천영식이라고?"
무천룡의 전신은 어느새 검광으로 뒤덮였다.
"하하… 네가 절기로 삼고 있는 백영마검(百影魔劍)보다 열 배 절묘한 검법이다."
"나에 대해 잘 아는군.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
. 검을 쥐고 있는 한 아무에게도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과거와는 다르다!"
검마는 피할 수 없는 대결에 이르자 대마두로서의 위엄을 갖추며 검을 풀어냈다.
한 줄기 검기가 일어나 무천룡이 서 있는 곳까지의 허공을 갈랐다.
번― 쩍―!
현란히 일어나던 검화가 한 덩어리의 은광(銀光)으로 뭉치는 듯 하더니
검마의 몸이 검기 속으로 사라졌다.
가히 신기에 달한 검초였다.
"차앗―!"
검마의 기합소리가 수 장 안의 바윗돌을 산산이 박살내는 동시에
그의 몸이 검기에 쌓인 채 빗살같이 빠르게 움직였다.
파츠츠츳―!
몸이 하나이고 검이 하나이건만 백 개의 검 그림자가 뿌려져 무천룡의 사위를 휘감았다.
백영마검식(百影魔劍式)!
그것은 마도검식 중에서 최절정으로 손꼽힌다.
검이면 검마(劍魔).
도면 잔도마(殘刀魔).
만일 그들이 정의무성에게 패하지만 않았다면
천하제일검과 천하제일도임이 영세에 전해졌을 것이다.
검마의 검식은 수십년 간의 고행 끝에 이제 검신(劍神)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정의무성이라 해도 간과하지 못할 정도로 단련된 백영마검이 십 장 안을 검영으로 뒤덮었다.
"천(千)― 영(影)― 검(劍)!"
무천룡의 몸이 일 장 떠올랐다가 팽이같이 회전되었다.
그의 몸이 사라지며 무수한 검형이 형성되었다.
가공할 기세로 하늘을 뒤덮는 검형은 무려 천 개나 되었다.
파츠츠츠― 츳―!
십 장 안을 뒤덮고 날아들던 백영마검식의 검영이 일거에 사라졌다.
대신 금빛 광휘를 발하는 일천 개의 검형의 태양처럼 사위를 밝혔다.
검마의 얼굴은 공포에 일그러졌다.
"아… 안 돼!"
검마는 너무도 강렬한 빛의 광휘에 그대로 전신이 관통을 기분을 느꼈다.
번― 쩍―!
무천룡의 보검에서 일어난 검기가 그의 허리께를 스치고 지나가며
그의 내장을 세상으로 끄집어냈다.
검마의 몸은 동강나며 두 번의 소리를 내는 것으로 최후를 마감하게 되었다.
"으음…정말이지 무서운 검식이었다.
무형신공을 익혀 천영식을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했다면 패한 사람은 나였을 것이다."
무천룡은 십 장 안의 사물이 검마가 쳐낸 검기에 의해
산산이 박살나 버렸다는 것을 알고 혀를 내둘렀다.
그의 옷자락 몇 군데도 검기에 베어진 상태였다.
무천룡은 검을 접고는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새롭게 떠올렸다.
대무칠살식을 만들기 위해 수년간 침식을 잊었던 정의무성이 아니었다면
무천룡은 쉽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음마의 내공이 강하기는 했지만 검마의 검식만큼 정순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제 둘만 남았군."
무천룡은 검마의 몸이 차게 식어 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만독마가 있는 곳을 향해 신형을 폭사시켰다.
무천룡은 선풍십이전(旋風十二轉)이라는 신묘한 신법을 시전해
잠깐 후 만독마 곁으로 이르게 되었다.
근처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서 있는 사람은 만독마 한 사람 뿐이었다.
모두 만독마를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천약선자의 모습도 보였다.
"사부님, 저를 거두워 주신다면 이후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따라 행하겠습니다."
천약선자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천룡은 자신이 검마를 죽이는 사이 만독마가 파독강기(破毒 氣)를 발휘해
천약선자의 몸에서 독공을 없애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제발…!"
천약선자는 목숨을 구걸하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너는 독문의 전인이 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무공을 등한시하고 독공 하나에만 주력을 했기 때문이다
. 독 한 가지로 천하를 얻으려 했으니 이것은 독문(毒門)이 가장 경계해야 할 금기를 범한 것이다."
만독마의 호령은 추상보다 더했다.
천약선자는 만독마가 만든 독경을 우연히 얻어 백독마부주가 된 여인이었다.
독경을 얻기 전에는 정사오기(正邪五奇)의 하나로 불리웠다.
그녀는 원래 정파의 기인이었다.
하지만 십검(十劍)의 배반이 그녀를 정에서 마도로 바뀌게 했다.
게다가 만독마가 만든 독경이 그녀 손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독경은 지금 만독마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너는 나의 절기를 이용해 많은 사람을 해쳤다.
가장 화나는 일은 네가 망신단(忘神丹)을 제조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그냥 독단의 하나로 기록했을 뿐 만들라고 남긴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약효가 아주 사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 노부는 그런 심중을 여기 남겼지만 너는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 너는 결코 나의 전인이 될 수 없다."
만독마는 위풍 당당히 말한 후 독경을 거둬들였다.
천약선자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애원했다.
"흑흑…용서하십시오. 제가 복수에 눈이 멀어 미처 헤아리지 못했나이다."
만독마는 담담한 표정으로 무천룡을 돌아봤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죽여야 하느냐 살려 주어야 하냐?"
"내공과 독공을 잃은 이상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요."
"허허, 그게 좋겠느냐?"
무천룡은 백독마부의 장원을 응시했다.
"지난 죄를 씻을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알겠다."
만독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약선자에게 명했다.
"너를 용서해 주겠다.
그러니 백독마부를 불태우고 초야에 묻혀 지난 시절의 죄를 뉘우치며 살도록 해라."
"저는 독공의 전수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죽여 주십시오."
"으음, 고약하군!"
"독경을 읽고 만독마주부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었는데 어찌 전인 되기를 간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약선자가 눈물로 하소연하자 만독마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흐음, 좋아. 그럼 이후 일 년 동안 너를 내 곁에 두고 행동거지를 관찰해 보겠다.
죄를 뉘우치는 것이 진심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
"감… 감사합니다, 사부님!"
"허어, 아직 사부라 부르지 마라!"
만독마는 차갑게 외치고는 백독마부의 제자들을 둘러보며 엄숙하게 말했다.
"지니고 있는 독물을 다 버리고 떠난다면 해치지 않겠다.
그러니 지금 곧 지니고 있던 독물을 다 태워버리도록 해라."
백독마부의 제자들은 공포의 대마왕이 예상치 않은 자비를 베풀자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오…살려 주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독대왕(毒大王)!"
모두 넙죽넙죽 절하며 지니고 있던 독낭을 끌어 한데 모았다.
화르르륵―!
작은 동산같이 쌓여진 독낭이 타오르며
이십 장 높이에 달하는 불기둥을 만들어 십 리 안을 환히 밝혔다.
백독마부라는 이름이 강호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천약선자는 만독마의 전인이 됐다는 것으로 모든 시름을 잊은 듯했다.
그녀는 만독마 곁에 앉아 자신이 어쩌다가 마도에 들게 되었고
어쩌다 독경을 얻게 되었는지 아주 소상히 이야기했다.
그녀의 나이 이미 팔십을 지났으나 만독마에 비한다면 손녀 뻘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런지 소녀의 말투였다.
"저는 금갑신구 한 마리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이 살신(殺身)의 화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저를 따르고 있던 십검(十劍)이 금갑신구를 노리고 저를 배반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독주머니가 다 타는 동안 계속되었다.
이 각이 지나지 않아 독주머니는 잿더미로 화했다.
천약선자는 만독마에게 모든 이야기를 한 후 무천룡을 바라봤다.
"노신을 용서해 주겠나?"
"하하…용서하지 않았다면 여기 서 있지 않았을 것이오."
"고… 고맙네."
천약선자가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다가 부끄러운지 금빛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자상히 말했다.
"중원불사신에게 구명지은을 입었으니 노신도 한 가지 보답을 해야겠네."
"보답은 필요 없소."
무천룡이 고개를 가로젓자 천약선자는 강경하게 권했다.
"꼭 받아야 하네."
그녀는 만독마에게 허가를 받고 백독마부 쪽으로 되돌아갔다.
그녀가 다시 백독마부의 장원을 나섰을 때는 혼자 몸이 아니었다
. 옆구리에 흰 옷을 걸친 여인 하나를 끼어들고 있었다.
"이 여인이 보답이네."
천약선자는 무천룡 앞에 백의여인을 내려놓았다.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눈썹이 긴 소녀로 아주 수려하고 빼어난 모습이었다.
"어엇…?"
무천룡은 환한 표정이 되었다.
"강남미연(江南美燕)이 아니오?"
그녀는 백의소녀를 번쩍 안아들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네의 복수를 하러 왔었네.
운리신룡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잡아죽이려 하다가…
어여쁜 얼굴을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어 망신단을 먹여 잡아두고 있었네.
해약을 먹였으니 오래지 않아 깨어날 것이네."
"오…!"
무천룡은 지금 천약선자의 말을 듣지 못하는 상태였다.
너무도 흥분했기 때문이었다.
'이 여인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며 평생을 보내겠다고 한 이 여인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다니…!'
무천룡은 강남미연의 아름다운 얼굴을 대하며 감개무량한 기분이 되었다.
강남미연은 그에게 있어 첫 번째 여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무천룡과 헤어진 후 숨어 살았었다.
그러다 중원불사신이 죽었다는 소문에 그녀는 미친 듯이 백독마부로 왔다.
물론 무공이 약한 그녀는 단 일초도 싸워보지 못하고 잡혀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무천룡은 그녀가 그토록 끔찍하게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렸다.
'아무리 천하를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주었다.'
그는 강남미연을 꼭 끌어안으며 다시는 아픔을 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천약선자는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백독마부에는 많은 포로가 있었네.
그 중에는 검선자(劍仙子)라고 자네의 아내가 되는…"
무천룡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검선자도 있었단 말이오?"
"안타깝게도 지금은 여기 없네.
철없는 제자 아이가 비합전서를 보내 검선자를 과거 검보 쪽으로 옮겨가게 했다네
. 자세한 일은 모르네.
사실 나는 십검을 죽인 후 강호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네.
모든 일이 제자 독낭자가 맡아서 했었지."
천약선자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무천룡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약란… 약란, 당신이 위험에 빠진 줄도 몰랐소!'
검선자 이약란은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헌신적인 희생이 없었다면 그가 어찌 살아날 수 있었겠는가?
혼몽 속에서 그녀를 유린하고도 화급을 다투는 일 때문에 사과 한 번 제대도 못한 것이다.
그녀를 만난다면 그는 그녀의 발등에 입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무천룡은 아름다운 나신을 드러낸 채 흐느끼는 이약란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약란, 내 반드시 당신을 구하겠소!'
첫댓글 이약란! 어찌 이 여인을 잊을수 있을까?
즐감하고갑니다.
즐감ㅁ~!
감사합니다
즐감요!!!!!
감사합니다
ㅈㄷ
독문
김사해요~~~^~
ㅎㅎㅎ
ㅈㄷㄳ
즐감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독요
즐독~~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