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교회, 그러나 주님은 밖에 계셨다
계3:14–22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가장 충격적인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약 72Km,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BC 3세기 중엽, 안티오쿠스 2세가 세운 성으로 그의 아내 라오디케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도시입니다. 히에라폴리스(지금의 파묵칼레) 와 골로새(Colossae) 사이에 위치한 리가스계곡 중심도시였습니다. 아주 가깝게 북쪽으로 10Km 지점에 히에라볼리가, 동쪽으로 약 14Km 지점에 골로새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시는 교통의 요충지, 모직물 공업, 안약으로 알려진 의과 대학이 있었습니다. 활발한 금융거래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히에라볼리(온천으로 유명한 도시)와 골로새 차갑고 맑은 물로 유명한 도시) 로부터 수로를 이용해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 교회의 에바브라가 세운 것으로 추정합니다.
■ 오늘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 신앙의 온도를 돌아보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초대의 음성을 들으려 합니다.
1)“너희는 미지근하다” – 온도를 잃은 신앙(15–16절)
15-16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 지역은 유명한 히에라볼리(파묵깔레) 라는 지역의 온천수가 있는 곳입니다. 이 온천수를 수로를 이용해 사용합니다. 또 골로새 지역에서 차가운 물을 공급받습니다. 뜨거운 물이든 차가운 물이든 라오디게아까지 오는 과정에서 중화되어 둘 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로 변질되었습니다. 미지근한 물이 된 것처럼 너희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대부분 신앙인이 주님께서 지적한 대로 미지근한 신앙인들입니다. 신앙은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이 미지근하다는 건, 겉보기엔 멀쩡한데 열정도 없고, 결단도 없고, 변화도 없는 상태입니다. 열아홉 살에 예일 대학의 교수가 된 조나단 에드워드의 열정, 드와이트 무디와 같은 전도자의 열정이 미국 사회에 복음의 꽃을 피우게 하였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며, 바쁠 때는 더 많이 기도하던 마틴 루터의 열정은 독일과 유럽의 교회를 영적인 어두움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한 편의 설교를 하고는, 한 사발의 피를 토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를 변화시킨 사람들, 인류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바울 역시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가문을 가졌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그는 수많은 역경을 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젊은 지도자들을 양성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서 3: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는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갔습니다. 바울을 끊임없이 달려가게 한 것은, 복음에 대한 열정입니다. 우리에게도 열정이 필요합니다.
2) “나는 부족함이 없다” – 자기 착각 속의 교회 (17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인식의 오류였습니다.“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하니…”
그들의 상태는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은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네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사실 , 주님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혹시 우리도 이와 같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배에 감격이 없어도 괜찮아 보이고, 기도 안 해도 내 힘으로 사는 것 같고 변화가 없어도 그냥 지나가는 신앙, 이게 라오디게아의 모습이었습니다.
3) “내게 와서 사라” – 주님의 사랑의 권면 (18절)
주님은 책망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18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자신들의 실상을 모르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한 주님의 권면과 처방입니다.
“내게 와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라”“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특히 이 지역은 안약이 유명했어요. 양털을 다루다보면 눈에 질환이 생기는데 그렇게 발달된 것이 안약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 언급되는 “안약(콜뤼리온, kollyrion)”은 바로 이 지역의 특산 의약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에 안약이 발달한 이유는 의학 학교(의학 센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는 고대에 유명한 의학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프리기아 지역의 의학 전통이 강했고, 라오디게아에는 메디컬 스쿨(의학 교육 시설)이 존재했습니다. 또 이 지역은 고대부터 ‘프리기안 파우더(Phrygian powder)’라는 광물성 약재가 유명했습니다. 이 광물을 가루로 만들어 기름 또는 물과 섞어 안연고 형태로 사용했습니다. 이 약은 당시: 눈 염증, 시력 약화, 알레르기성 눈 질환 등에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의학·약학 기술이 상업적으로 발달했고 라오디게아는 로마 시대에 부유한 금융·상업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의 안약은 브랜드처럼 유명했고 지중해 여러 지역으로 판매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18“내가 너에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 말은 너희가 유명한 안약을 팔고 있으면서도, 정작 영적인 눈은 보지 못한다라는 강력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안약을 ‘사서 바르는’ 행동처럼 우리의 약함, 죄, 영적 무지를 인정하고 주님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지요. 쁜 일상과 물질주의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로 눈을 열어야 합니다. 즉, 회개와 겸손을 통해 눈을 뜨고 진리를 볼 수 있어요. 영적 눈을 뜨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부유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영적 부요 경험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세상의 부요함이 아닌, 하늘의 부요함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세상 부와 지식으로 눈이 멀지 말고, 말씀과 성령으로 영적 눈을 뜨라 말씀하십니다.
다르게 말하면 “너희가 잃어버린 것을 나에게서 다시 받아라.”즉 식어진 마음을 내게 와서 다시 데워라. 흐려진 시야를 내게 와서 다시 밝혀라. 무가치한 금 대신 영원한 금을 붙잡으라는 메시지 입니다
세상 문화와 세상 육신의 것들은 다 소멸될 것들입니다. 영원할 수 없습니다. 유한한 것을 영원한 것과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의 부자가 아닌 영적 부자, 천국의 부자가 되라는 것이지요.
4) “회개하라” - 예수님의 의도를 깨달아 회개하고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
19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행하시는 일은 책망하여 징계하는 것입니다. 여기 책망, 징계의 더 깊은 뜻은 ‘내가 드러낸다’와 ‘내가 훈련시킨다’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책망, 징계를 받을 때 주님의 그 애타는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의도를 깨달아 회개하고 계속해서 열심을 내야 합니다.
여기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린다” – 가장 슬픈 장면 (20절)이지요. 주님은 관계 회복을 원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바로 이 장면입니다.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현재 예수님이 문밖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교회 밖에 계신 데 자기들끼리 좋다고 한들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 딱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은 교회 안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문 밖에 계십니다. 놀랍게도 주님은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으십니다. 조용히 두드리십니다.“열어라. 나는 아직 너희와 함께 하고 싶다.”
여러분, 이 말씀이 오늘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 아닐까요? 마음이 식었을 때. 예배가 형식이 되었을 때, 주님이 멀게 느껴질 때 주님은 문을 두드리십니다.
5)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리라” - 영광의 약속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장 심하게 책망을 받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약속을 받습니다. 계3: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자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너희의 신앙이 다시 뜨거워지든지 다시 차지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면, 마지막 날 너를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이것은 회복된 신앙에게 주시는 최고 영광입니다. 미지근했다가 다시 뜨거워지는 사람, 다시 주님께 마음을 열고 주님과 함께 밥 먹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에게 주님은 왕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는 엄청난 약속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