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가요 무대를 독일 Bochum 에서 방송하였다.
(2013. 8. 19, 월)
KBS 가요 무대 실황 방송이 지난 8.12(월)에 이어 오늘 8.19(월)에 끝났다. 독일국민들 속에서 본인들이 느꼈던 괄세와 외로움등으로 억놀려 왔던 감정이 폭발, 많은 정다운 얼굴들의 눈시울이 붉어 있었다. 엉엉대고 우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 국민은 상당히 감정적이다. 이렇게 즐거운 때에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국민이 이 지구상에서 몇이나 될까? 라고 생각해 봤다. 전직 주 독일 대사를 지냈던 사람으로서 나는 KBS 측에 대하여 상당히 고마웠다, 그래서 녹화 방송이 끝나지 말자, 이를 애초부터 추진하여온 고대영 본부장에게 감사하였다, 그리고는 예술국장이었다. 후자인 예술국장은 많은 PD들을 데리고 현지 Bochum 를 몇번씩 왕래한 것으로 알려 젔다. 특히 이날 녹화 방송룽 위하여 KBS 의 길사장도 화면에 비추었고, 김재신 현직 주독대사의 얼굴도 보였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워했다. 정말이지 이들의 합동노력이 없었다면 가능했겠는가?
권성희의 "라성에 가면 안부를 전해 주세요"가 마침 화면에 흐르고 있었고, 통역을 하던 조립씨도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벌써 머리가 하얀 70대 초반의 모습이었고 Glueckauf 고창원회장과 간호협회 윤행자 회장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는 경기도 민요가수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김영임여사와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장사익씨의 "찔레꽃"이 많은 독일 교민들의 감정을 지극하고 있었다. 그렇다. 독일 교민들은 한참 울어도 되었다. 얼마나 그리움에 지쳐 있겠는가? 동생의 학비를 벌러가서 지금까지 몇년이 지나갔나? 나는 이들의 우는 모슴에 오히려 인간적인 번민을 느꼈다. 이들의 기여가 없었던들 오늘날과 같이 발전한 한국이 있었겠으며 이들의 불사르던 정열과 애국심이 없었던들 우리나라가 이렇게 컸겠는가? 우리는 이를 기억하여야 한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왠만큼 커저서 세계에서 10위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 나라가 되었다. 단연코 이야기하지만, 2차 대전에서 신생국 147국 중 1인당 국민소둑이 3만불 가까이 되는 국가는 한국 밖에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이것이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내가 귀국하여 우리나라를 보았지마는 전국 방방곳곳이 기지개룰 켜고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도 시간이 있으면 우리나라 안 가본 곳을 가보고 싶다, 우리나라 강산이 모두 granite 돌산으로 대부분이 산으로 되어 있지마는 평야나 평평한 분지에 새워진 나라하고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점이 과거 우리의 주재국들과는 달랐다. 우선 우리하고 가까운 중국도 황하의 영항으로 "상해" 근교가 넓은 평야이지만, 그 수면은 해저가 5-6m 밖에 안되어 큰 배의 접안이 어렵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나라가 잘 만 한다면, 이 물동량의 대부분을 우리 항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 되지 않는가?
그러나 그 동안의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것이 남한테 당한 피해가 많아, 피해의식이 강하고, 강한 국민에게는 한 없이 약한데 반해, 약한 국민에게는 한없이 강해, 발로 짓 이겨야 되는 습성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의 특성중 눈에 두드러지게 띄는 것으로 영.호남 간이라던지 남북한 간의 분파가 심하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최근에 제가 보기에는 Hardware 는 선진국 수준인데 Software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와관련, 도로를 우선 보라. 전국 방방곳곳에 포장이 안된 도로가 없다. 하루 빨리 그 속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 올여 놓아야 한다.
"우리 주변이라던지 소위 선진국이라는 다른 국가들은 이와같은 우리 국민의 특성을 빤히 드려다 보고 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을 경우, 이를 적극 조장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외교관 생활을 과거 38년간이나 하여 왔다 . 정말 국가간의 관계란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라는 말이 맞는것 같다. 정말이지 우리의 Software 가 빨리 커서, 남도 우리를 얏 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그렇타고 또 독일 광부 출신들이 새로운 요구를 하게끔, 우리 사회는 generous 하지 않다, 박 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다녀오신지가 지난 64년이다. 이제서야 독일 광부 출신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전 국민이 알게 됐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근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도 우리 국민들이 잘 살게 되었으니 가능하였다.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들, 대사관, 상사지사에서 근무한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광부들과 손을 잡고 한 마음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가능하였다, 이에는 고창원 글뢱아우프 회장의 노고가 컸다. 여기서 개인의 농공행상을 위한 개입이 없어야 한다. "막말로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라는 이야기가 우리 국민의 입에서 안나오도록 우리 국민의 여론의 향배를 봐 가며 이를 조심스럽게 추진하여야 한다. "이들도 월급을 받았을 것 아냐?" 하는 이야기가 우리 국민의 입에서 안 나와야 한다. 외국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국내실정을 무시하고 또 꿍얼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50여년이나 기다려온 우리 광부들이다.
이들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아니 회복만이 아니고 우리가 지금처럼 잘 살게 된 이유가 이들에게 있다 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너무 우리 국민에게 과한 것을 요청하고 또한 서두르다가 일을 망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두렵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여러분께서 오늘과 똑같은 모습으로 광부 파독 100주년 행사때 오신다는 것을 약속하실수 있다면... 지금이 50주년 행사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우리 광부들이 고마운 아저씨로 남아 주기를 기대한다, 광부들은 광부들대로 이제는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을 실현시킬려면, 우리 국민에게는 시간과 때가 있다," 끝.
첫댓글 대사님 글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한글세대가 학교에서 서양문물의 교육을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녀들 교육은 아직도 한심합니다. 7살에 귀국한 우리 쌍둥이 딸 독일의 유치원 교육으로 한국에 살면서 거리에 껌 휴지 절대로 안 버리고 외손주도 안 버립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올려보았는데 자꾸만 지워서 올릴수가 없네요.
그래요. 아마도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너무 그동안 민족적인 서로움 속에 자신은 참여도 않고, 눈을 떠보니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던지 또한 깨끗함이 정신적으로는 물론 물질적으로도 즣다는 점을 실감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대사님 그동안에도 안녕하신지요? 말씀하신대로 군인은 국가의 부름을 받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는 (파독) 경쟁에서 선택을 받아 자신에 목적을 위해 왔습니다. 우리의 요청이 무리한 욕심으로 비춰질때 우리는 스스로 설자리를 잃을수 있음에 어디까지가 마지노선인지 설정이 쉽지 않습니다. 항상 대사님의 충언과 조언에 귀를 기울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로 대부분이 생각들 하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