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춘산
오영미
허리를 뒤로 젖히다가
다리를 쭉 펴고 굽혔다가
배낭 메고
지팡이 짚고
옥녀봉 단군 할아버지 계시는
언덕 너머 봄이 한창이다
개나리는 흐드러져 땅에 엎드리고
진달래 벙긋거리는 걸 질투하는지
웬만한 손길에는 끄덕하지 않던
노인도 발끈하는 성미가 살아나
호통을 치기도 하고
새침하니 심통 부리는 날이 잦아진다
부춘산은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내력을 다 알고 있었다
서산의 이력을 꿰뚫고 있는 부춘산
팔딱거리는 숨소리 몰아
걷고 걸으면
내일 또 오르게 되는 마법의 산
내 고향 부춘산이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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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
오영미
서산 5경 팔봉산 2봉 너럭바위에서
그놈이 한 짓을 고발한다
한낮의 더위에 범벅 땀을 훔치고자 쉬어가자 하길래 그러자고 했지. 온갖 시원한 말로 회유하며 날 껴안으려 하는 거야. 전혀 남자로 느끼지 않았던 그놈에게 쉽게 허락할 리 없지 않겠어? 이번에는 바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라고 하대.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겨 줄 거라면서. 저만치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는데 또 껴안으려 하는 거야. 바위 아래를 보니 낭떠러지지 기분이 별로였어. 면박을 주며 윽박질렀더니 안 그럴 테니 산이나 타자고 하더군.
미친놈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 마누라가 이러고 다니는 걸 알까?
3봉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봤어. 땅을 내려도 봤어. 성냥 각 같은 작은 집들과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이 간혹 보이기도 했지만 탑새기 인 듯 사람들의 움직임이 더 신기했지. 여름의 산은 나에게 유혹이었다가 시련이었다가 변덕스런 날씨 닮은 감정을 선물처럼 놓고 가기도 해. 아, 오늘은 북어라도 사다가 패줘야겠다. 멀쩡한 사람 미워질까 두려워 감정 다 드러내지 못하고 하산하자니 개똥 밟은 기분이랄까. 미안하다. 내가 내게 사과하고 자중해야지.
팔봉산아, 너는 알고 있지?
그놈이 한 짓을 숨겨야 하는 내 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