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영화/ 스타인사이드] 2014-03-03>
어른이 아닌 남자, 제임즈 딘
안성민 컬럼리스트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남자들과는 뭔가 달랐다. 그는 클라크 게이블같이 넓은 어깨와 따뜻한 웃음을 가진 신사가 아니었다. 반사회적이라는 점에서 말론 브란도와 비교되기도 했지만, 말론 브란도가 부도덕한 세상을 부도덕한 방법으로 척척 걸어나가는 터프가이라면, 제임스 딘은 제발 좀 내버려둬 달라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나 살짝 찡그린 표정과 우수에 찬 눈빛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여자들은 최초로 어른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TV 드라마에 미래의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출연한 제임스 딘
1940년대 후반은 미국 TV 드라마의 황금기였다. 연극용 대본을 그대로 TV로 옮긴 형태의 단막극이나 연속극이 유행했었는데, 그는 주로 불량 청소년 역할을 맡았다. 체구가 작은데다가 검은 옷을 즐겨 입던 그는, 덩치 큰 미국 어른들 사이에서 철없이 날뛰는 망아지처럼 보였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출연한 단막극이 유명하다. 냉전 시대 미국 보수세력의 아이콘과 이제 막 태동하던 서브컬쳐의 영웅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 레이건의 집에 총을 들고 난입해 민폐를 끼치다가 ‘어른’ 레이건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 The Philco-Goodyear Television Playhouse >, < The Bigelow Theatre >, < Tales of Tomorrow > 등의 유명 TV 쇼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입지를 넓혔다. 펩시콜라의 TV CF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단독으로 출연한 것은 아니고, 춤추고 노는 10여 명의 젊은이 중에 한 명으로 잠깐 등장하는 정도다.
당시의 TV 단막극은 시작 전후에 배우가 직접 극의 교훈을 설명할 때가 많았다. 보통은 레이건 같은 기성 배우가 아나운서 같은 말투로 ‘바른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임스 딘도 인기가 많아지면서 비슷한 영상을 찍은 적이 있다. 별로 착하게 살고 싶지 않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읽는 고등학생 같았다.
대사가 없던 시절의 제임스 딘. 잘 찾아보자.
조연과 단역을 오가면서 주로 불량 청소년 역할을 맡았다.
드디어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1951년에 한국전쟁을 무대로 한 <총검장착>에 미국 병사로 출연했다. 같은 해 딘 마틴과 제리 루이스 주연의 <세일러 비워>에서는 권투시합 장면에서 세컨드 트레이너로 등장한다. 대사는 없었다. 락 허드슨 주연의 <누가 내 애인을 보았는가?>에서는 불량 청소년으로 나와서 제법 긴 대사를 한다. 1952년에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 데드라인 U.S.A. >에는 신문사 직원으로 출연했다. 1954년에 참여한 연극 <배덕자>로 최우수 신인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검증받았다. 이후 엘리아 카잔의 액터즈 스튜디오에 들어가 ‘메소드 연기’를 완성한다.
연기에 대한 열정을 인정받아 1955년 <에덴의 동쪽>에 출연한다. 영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제임스 딘은 일약 스타가 된다. 농장주 아담 트라스크(레이몬드 메세이)의 둘째 아들 칼 역할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은 모범생인 큰아들 아론(리차드 타바로스)에게만 향했다. 칼을 낳고 집을 나가버린 아내에 대한 미움을 아버지는 칼에게 돌렸다. 이렇게 부모를 상실한 제임스 딘의 역할은 시대적인 흐름과 맞물려 다양한 문화사적 해석을 내놓았다.
50년 중반은 나날이 부강해지는 미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중요한 소비자가 된 시점이었다. 영국의 서브 컬쳐가 젊은 노동자 계급에서 시작되었다면, 미국의 서브 컬쳐는 잘 배우고 잘살게 된 학생들의 패거리 문화였다. 급속도로 늘어난 고등학생들은 밤마다 파티를 열었다. 소형화된 턴테이블로 더 이상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청소년들은 전쟁을 겪은 아버지의 밥상머리 잔소리가 싫었다. 그들은 <호밀밭의 파수꾼> 읽고, ‘Rock Around The Clock’을 들으면서 아버지들과는 좀 다른 유형의 삶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제임스 딘이 있었다.
두 번째 영화 <이유없는 반항>(1955)은 전학생 짐 스타크(제임스 딘)가 학교 일진 버즈 일당과 대립하는 내용이다. 서로의 배짱을 자랑하기 위해, 벼랑 끝까지 차를 몰고 가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세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벌어진다. 결국 버즈(코레이 엘렌)가 죽고, 관련된 아이들은 모두 방황한다. 화면 가득 순수하고 어리석은 청춘의 에너지가 방향 없이 날뛰는 수작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단 3편의 주연작을 남긴 그의 마지막 영화는 <자이언트>다. 억만장자 빅 밑에서 일하는 일꾼 제트(제임스 딘)는 빅의 부인 레슬리에 대한 연정을 품는다. 우연히 얻게 된 땅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와 제트는 엄청난 부자가 되지만 레슬리에 대한 연정은 더해만 간다. 이렇게 이루기 힘든 사랑에 대한 영화를 다 마치고, 제임스 딘은 힘든 사랑의 영향으로 죽고 만다.
제임스 딘은 <에덴의 동쪽> 촬영 당시 친구 폴 뉴먼의 소개로 만난 피어 안젤리에게서 9살에 난소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엄격한 가톨릭 집안이었던 피어 안젤리의 가풍은 시대의 반항아를 사위로 들이지 않았다. 집안의 강요로 피어 안젤리는 가수인 빅 데이먼과 결혼하지만, 제임스 딘을 잊지 못했다. 이 일로 빅 데이먼과 제임스 딘이 크게 싸운다. 며칠 후 제임스 딘은 홧김에 자신의 애마 포르쉐 550을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나이 2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