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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등불을 켜라!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다. 한때 가장 일찍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자발적으로 ‘기다림 초’ 보급 운동에 나선 것이다. 2010년 색동교회를 출발하면서 의욕적으로 일을 벌였는데, 아쉽게도 실패하였다. 10월 말이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미리 성탄절을 근심하였다. 대림절을 한 달 앞두고 부지런히 기다림 초를 제작하고, 홍보하며, 나중에는 판매까지 했으니 누구보다 가장 일찍 대림절을 맞은 셈이다.
교회에서 함께 기다림 초를 두 세트씩 만들어 하나는 자기 가정에 장식하고, 다른 하나는 전도 대상자에게 선물하였다. 이듬해부터 2년에 걸쳐 본부 출판국에서 기다림 초 제작 강습회를 열었다. 누구나 취지에 동의했지만, 대림절 4주간 내내 집에서 기다림 초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따듯한 저녁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대선 선거공약(손학규)이 등장해 크게 공감을 얻기도 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 절기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상징이든, 문화든, 삶에서 드러나는 생활신앙이 없다는 주장에 필요를 느꼈겠지만, 진지하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더라.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대림절 4개의 초 묶음이 가정의 거실은 물론 사무실과 식당 혹은 공공장소에 널리 보급되기를 소망하였다. 스스로 자임(自任)한 무거운 짐이었다.
당시 기다림 초를 다양하게 디자인하던 색동청년 김은진 님(윌로우리버 연합감리교회)을 대림절 기간에 독일로 파견하였다. 또 교회사에서 기다림 초의 연원을 찾아 밝히기도 했다. 1842년, 독일인 목사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이 라우에 하우스(어린이 보호시설) 기도홀에 첫 촛불을 밝힌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로 대림절 초는 신·구교회 모두에게 성탄을 앞두고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경건한 신앙 문화로 뿌리 내렸다.
이런저런 노력 끝에 국민일보와 CBS에서 반응이 왔다. CBS 라디오 방송(표준 FM 광장, 싱싱싱)에 출연하여 ‘기다림 초 보급운동’을 알렸다. 당시 진행자 나이영 앵커가 힘을 보태 주었다. 대림절 기간에 매일 청취자 한 사람씩 선정하여 기다림 초 한 세트를 선물하는 등 협찬 광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동안 대림절이면 색동교회가 주요 취재 대상이 되었다. 사순절에 십자가 취재를 받듯, 어느덧 교회력을 알리는 전도사 대접을 받은 것은 고무적이었다.
몇 해 동안 기다림 초 보급 운동은 잠시 반짝거렸다. 공예전문가 이해은 교수는 한해 무려 800세트를 제작하여, 납품하였다. 나중에는 유명한 장애인 단체가 적극 나서서 협업했지만, 그쪽 역시 수완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중동무이’한 까닭은 이어갈 추진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끝을 맺지 못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한 일이 아쉬웠지만, 그 실패가 후련하기도 했다.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대림절 미련이다.
한동안 11월 성탄을 잊고 살았는데, 가을이 깊던 얼마 전 우리 동네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연극 구경을 갔다가 10년 전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8학년 전부가 참여해 에리히 캐스트너의 장편소설 <하늘을 날으는 교실>(Das fliegende Klassenzimmer)을 극으로 꾸몄다. 한동안 잊고 지낸 성탄극의 추억이 새로웠다. 극이 마무리로 나아가던 무렵 관객석에 앉아 있던 내가 지목을 받아 주인공 마틴의 편지를 낭독하였다. 즉흥적이었는데, 아마 색동소년 이시후 군이 우체부를 맡은 덕분일 것이다.
마틴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성탄절에 집을 방문하지 못한다. 기차비를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편지에는 그런 저간의 사정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기숙학교 선생님의 호의로 마틴은 극적으로 성탄절에 집으로 갈 수 있었고, 우울했던 부모님의 감동적인 환대를 받는다. 그런 해피엔드 분위기를 학생들은 ‘펠리스 나비다’(Feliz Navidad) 연주로 장식하였다. 유명한 스페인어 캐롤로 ‘행복한 성탄’이란 뜻이다.
오호, 어느새 성탄이구나. 지난 월요일에 NCCK 총회에서 만난 공미화 목사(재한독일어권교회)에게 대림절 바자회 소식을 물었더니 반가워하면서 “목사님, 니콜라우스 축제에 오시죠”라고 초대하였다. 그는 독일에서 함께 산 2세 청년인데, 세월이 흘러 독일교회(EKD) 목사로 6년째 한국에서 사역 중이다. 성탄은 사람들 틈으로 드라마처럼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성탄 분위기를 내려고 애쓴다. 11월은 점점 어두워가고, 사람들은 더 어두워진 마음의 불경기, 시대의 짙은 그늘을 탓한다. 그런 까닭에 다가오는 대림절에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켤 일이다. 어느덧 등불의 절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