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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전국선원수좌회 소속 스님들이 조계사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처럼 총무원이 중앙 통제를 강화하자 이에 반발, 송담 스님과 그의 제자들이 용주사에 탈종계를 제출했는데 결국 이판승의 세계에 사판승이 밀고 들어온 것을 경계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영국 연경정책연구소장은 “총무원의 중앙집권 강화정책이 이판승들이 지켜온 가풍과 충돌하게 됐다”며 “용주사 주지 선거에서도 금품이 오고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자질이 부족한 스님이 말사에 임명되면서 신도들이 반발했다”고 말했다.
실제 총무원이 제정한 법인법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은 수행집단인 이판승 계열이다. 송담 스님이 이끌고 있는 법보선원과 수행 승려들의 본산 격인 선학원은 그동안 사판승이 통제하기 어려웠던 이판승들의 영역이었다. 전국에 500여개 사찰을 보유한 선학원의 경우 총무원이 독립 종단의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향후 운영에 적극 관여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렇게 되자 선학원 측은 총무원에 재단 등록을 거부하고 임원진이 “조계종 종헌, 종법에 동의할 수 없음”을 이유로 제적원을 제출한 상태다. 이에 맞서 총무원은 지난 10월 초 선학원 이사장인 법진 스님에 대해 ‘종단 법통을 문란하게 한 죄’를 물어 멸빈(승적 발탈)을 결정했다.
현재 총무원은 법인관리법 시행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총무원 측은 “종단은 법인 운영에 관여할 법적 근거가 없고 관여할 이유도 없다. 법인의 이사 선임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해명서를 발표했다. 총무원은 조계종 인터넷 홈페이지에 ‘법인관리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메인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송담 스님의 탈종 문제로 진퇴양난에 놓였다는 게 종단 안팎의 시각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송담 스님과 마찬가지로 25개 교구본찰 중 하나인 용주사 문중 출신이다. 특히 송담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의 은사와 같은 반열에 있다. 송담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의 은사인 정대스님의 사형이며 이에 따라 자승 총무원장은 송담의 조카 상좌인 셈이다.
자승 총무원장이 송담 스님의 탈종계를 수리하지 못하는 것도 선승의 법통을 잇는 문중의 어른이 종단을 떠나는 것을 방관할 경우 자신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승과도 같은 문중의 어른을 처벌할 경우 전국 수좌승들의 반발에 직면할 게 자명하다. 이에 따라 자승 원장은 송담 스님의 탈종계를 반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송담 스님의 큰 뜻을 받들어 잘 모시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총무원 기획국장인 남전 스님은 주간조선에 “송담 스님의 탈종계를 반납하고 우리가 어른을 조금 더 잘 모시겠다는 참회의 메시지를 전했다. 탈종의 문제를 재고해 주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남전 스님은 재가불자들이 총무원의 자정을 촉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늘 있어 왔던 얘기들 아니냐”고만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이 조용하게 송담 스님 탈종 사건을 매듭지으려고 하나 재가불자 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옴으로써 사태는 커질 전망이다. 행정승들이 명분에서 수행승에 밀리기 때문에 재가불자들을 통제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재가불자들은 “수행 위주의 승려들이 지켜온 가풍은, 종단을 혼탁하게 한 행정승들의 행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재가불자연대는 송담 스님 탈종을 계기로 이판승과 사판승의 경계를 구분 짓는 방식으로 종단의 운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재가불자연대 측은 “이판과 사판은 성격이 다르다. 지금 집권당이나 야당세력은 모두 사판인데, 누가 권력을 잡아도 비슷한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일탈이 수행을 하는 이판승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총무원의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욕심이 커진 듯한데 이번 기회에 이판과 사판의 영역이 공존하는 형태로 종단의 운영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가불자연대가 자승 원장을 압박하는 수단은 조계종 총무원 안팎에서 벌어진 부정과 비리 사건이다. 도박·횡령·뇌물 사건이 종단 내부에서 끊이질 않는 걸 대표적인 종단의 세속화로 꼽고 있다. 1999년 서울 강남의 해림도박사건이 대표적이다. 이후 일부 승려의 해외원정도박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고 2012년 백양사 인근에서 도박을 하던 조계종 주요 승려들의 동영상이 공개돼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장주 스님이 현 종단의 최고위층 인사와 도박을 했다면서 검찰에 자수하는 사건도 있었다. 종단 최고위 인사의 이름까지 거명된 장주 스님의 폭로 건에 대해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이를 공개했던 장주 스님이 오히려 멸빈당했다.
배임·횡령 사건도 잊을 만하면 발생한다. 2009년 충남 공주 마곡사 범용 전 주지스님이 배임수재 혐의로 법정구속된 바 있고 법화사 시몽 스님은 2010년 국고보조금 유용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2012년에는 표충사 주지스님이 사찰 소유 토지를 불법 매각해 45억원을 챙겨 달아나는 사건이 있었다. 일부 승려는 교구본사 주지 재임 시에 말사 주지 자리를 돈을 받고 파는 사례도 있다.
승려의 정체성을 흔드는 사건도 벌어졌다. 2011년 은해사 돈명 스님은 결혼증명서 사본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재가불자연대는 특히 돈명스님에 대한 총무원의 처벌과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가불자연대 측은 “비구의 정체성을 흔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승 총무원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됐다. 종단 내 도박사건을 폭로한 스님들이 멸빈을 당한 것과 비교된다”고 했다.
총무원장과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원 선거 때마다 금품살포설이 끊이질 않는 것도 문제다. 지난 10월 임기 4년의 중앙종회 의원 선거에서 자승 총무원장의 계파가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했는데 일각에서는 1표당 상당액의 금품이 오고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재가불자연대를 이끌고 있는 서울대 우희종 교수는 “권력을 쥔 승려들의 일탈 차원을 넘어 조계종 자체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있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이 자정과 혁신을 하겠다고 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송담 스님은 탈종 선언을 통해 이와 같은 불교의 위기를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