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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學十圖
*서지(원본 기준)
서명 : 聖學十圖
저자 : 李滉 撰 ; 吳道一 編
판사항 : 木板本
간사자 : 刊寫者未詳
형태사항 : 47張 ; 圖, 四周雙邊, 半郭 24.1 x 16.5 cm.
8行16字, 內向三葉花紋魚尾 ; 35.1 x 22.7 cm
주기사항 : 跋 : 辛酉(1681)...吳道一
*학선재 발행 <성학십도>[특별판]은 원문을 직해한 <한글성학십도>와
퇴계선생의 일대기를 정리한 行歷를 추가, 합본하여 발행합니다.
*목차
聖學十圖
성학십도차(聖學十圖箚)
第一 : 태극도(太極圖)
第二 : 서명도(西銘圖)
第三 : 소학도(小學圖)
第四 : 대학도(大學圖)
第五 :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第六 :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第七 : 인설도(仁說圖)
第八 : 심학도(心學圖)
第九 : 경재잠도(敬齋箴圖)
第十 :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
한글성학십도
퇴계선생행력
*해제
<한지표지>
<목판본 견본>
<신활자 한글본 견본>
1568년(선조 1) 유학자 이황(李滉:1501∼1570)이 성학(聖學)의 개요를 그림으로 설명한 책. 목판본. 1책. 퇴계선생이 경연(經筵)에 입시하였을 때 어린 임금인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서 성학의 대강을 강의하고 심법(心法)의 요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성리학자들의 도설(圖說)에서 골라 책을 엮고, 각 도식 아래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여 왕에게 강론하였다.
[설명]
십도(十圖)란 태극도(太極圖)·서명도(西銘圖)·소학도(小學圖)·대학도(大學圖)·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인설도(仁說圖)·심학도(心學圖)·경재잠도(敬齋箴圖)·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의 10가지이다. 1681년(숙종 7) 오도일(吳道一)이 간행하였으며, 1741년(영조 17) 중간되었다.
*進聖學十圖箚 (진성학십도차) 독해문
성학십도를 올리는 차(箚)(進聖學十圖箚)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신(臣) 이황(李滉)은 삼가(謹) 두 번 절하고(再拜) 아룁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여(竊伏以) 보니, 도(道)는 형상(形象)이 없고 하늘(天)은 말이 없습니다. 하도(河圖:중국 태고(太古)의 복희씨(伏羲氏) 때에, 황허(黃河) 강에서 용마(龍馬)가 지고 나왔다는 쉰다섯 점으로 된 그림. 동서남북 중앙으로 일정한 수로 나뉘어 배열되어 있으며, 낙서(洛書)와 함께 주역(周易)의 기본 이치가 되었다. 용도(龍圖).) 낙서(洛書:중국 하(夏)나라의 우왕(禹王)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뤄수이(洛水) 강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씌어 있었다는 마흔다섯 개의 점으로 된 아홉 개의 무늬. 팔괘와 홍범구주가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가 나옴에, 성인(聖人)이 이것을 근거로 괘효(卦爻)를 지은 뒤로부터 도가 비로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도는 넓고 넓으니(浩浩) 어디서부터(何䖏) 착수(下手)하여야 하며, 옛 교훈(古訓)은 천만 가지나 되니 어디서부터(何所) 따라 들어가야(從入) 하겠습니까?
성학(聖學)에는 큰 실마리(大端)가 있고, 심법(心法)에는 지극한 요령(至要)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揭) 도(圖)를 만들고, 이것을 지적(指)하여 설(說)을 만들어, 사람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入道之門)'과 '덕을 쌓는 기틀(積德之基)'을 보여 주는 것은 역시 후현(後賢)들이 부득이(不得已)하여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況) 임금(人主)된 분의 한 마음(一心)은 온갖 정무(萬幾)가 나오게(由) 되는 자리이며 온갖 책임(百責)이 모이는(萃) 곳이며 뭇 욕심(衆欲)이 갈마들며(互) 침공(攻)하고, 뭇 간사함(群邪)이 갈마들며(迭) 침해하는(鑽) 곳입니다. 그 마음이 만일 한가지라도(一) 태만(怠)하고 소홀(忽)하여지면서 방종(放縱)하여 간다면, 마치 산(山)이 무너지고(崩) 바다(海)가 들끓는(蕩) 것과 같아서, 그 누구도(誰) 이것을 막아낼(禦) 수 없습니다.
옛날의 성스러운 황제(聖帝)나 명철한 군왕(明王)은 이러한 점을 걱정(憂)하여숩니다. 이런 까닭에(是以) 항상 조심하고(兢兢業業) 두려워하고 삼가는(小心畏愼) 태도로 하루하루(日復一日)를 지내면서도 오히려(猶) 미흡(未)하다고 여긴(以爲) 나머지, 사부(師傅)가 되는 관원(官)을 세우는 한편 바른 말을 간(諫諍)하는 직책(職)을 두었고(列), 앞에는 의(疑)가 있고 뒤에는 승(丞)이 있으며, 왼쪽에는 보(輔)가 있고 오른쪽에는 필(弼)이 있게 하였습니다. 수레(輿)를 탈 때는 여분(旅賁:무술ㆍ용맹으로써 신변를 막던 벼슬)의 규(䂓)가 있었고, 위저(位宁:朝會) 때에는 관사(官師:百官)의 법(典)이 있었으며, 궤(几: 안석(案席):벽에 세워 놓고 앉을 때 몸을 기대는 방석 또든 책상)에 기대고(倚) 있을 때에는 훈송(訓誦)의 간(諫)이 있었습니다. 침실(寢)에 들어서는(居) 설어(暬御:近侍)의 잠언(箴)이 있었고, 정사(事)에 임(臨)할 때는 고사(瞽史:중국 주(周)나라 때의 관직인 瞽와 史를 칭한 말. 瞽는 임금 곁에서 송시(誦詩)와 풍간(諷諫)을 통해 임금께 조언하는 일을 맡았으며, 史는 음양(陰陽)•천문(天文)•사실(史實)•예법(禮法)을 통해 조언하는 일을 맡았음)의 인도(導)함이 있었으며, 한가로이 연거(宴居)할 때는 공사(工師:樂工의 수장)의 송(誦)이 있었습니다. 소반(盤)이라든가 밥그룻(盂), 책상(几), 지팡이(杖), 칼(刀), 검(劒), 출입문(戶), 들창문(牖)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길이 닿는(寓) 곳과 몸이 처(處)하는 곳에는 명(銘)과 계(戒)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 마음을 유지(維持)하고 몸을 방범(防範)하게끔 하는 것이 이토록(若是) 지극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故) 덕(德)이 날로 새롭고(日新), 업적(業)이 날로 번창하여(日廣), 티끌만한 허물(纖過)도 없게 되고, 나아가 큰 이름(鴻號)이 남게 되었습니다.
후세의 군주(人主)들이란 하늘의 명(天命)을 받고 왕위(天位)에 오른(履) 만큼 그 책임(責任)이 지극히 무겁고(至重) 지극히 크건만(至大) 어떻게 되어서인지(爲如何) 스스로(自) 몸과 마음을 닦게끔(治) 하는 것(具)은 하나라도 이 같이 엄정(嚴)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즉(則其) 불손한 태도로(憪然) 스스로 성인(聖)인 체 하는가 하면, 오만한 태도로(傲然) 왕공(王公)이 높이고(上) 수많은(億兆) 백성들이 떠받드는(戴) 자리에서 스스로 방자(肆)합니다. 결국(終) 무너져서(壞亂) 흔적없이 멸망하게(殄滅) 되는 것이야 어찌 괴이한(怪)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故) 이러한 때에(于斯之時) 남의 신하가 되어(爲人臣) 임금(君)을 도(道)에 합당(當)하도록 인도(引)하려는 사람이라면 진실로(固) 그 마음을 여러 모로 쓰지 않는(不用) 이가 없습니다. 장구령(長九齡:673~740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재상)이 《금감록(金鑑錄)》을 올린(進) 것과 송경(宋璟:663~737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의 명상)이 《무일도(無逸圖):《서경(書經》 무일편(無逸篇)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를 드린(陳) 것과 이덕유(李德裕:787~849 당나라의 재상)가 《단의육잠(丹扆六箴): 丹扆에 쓴 소의(宵衣)•정복(正服)•파헌(罷獻)•납회(納誨)•변사(辨邪)•방미(防微)의 여섯 잠언》을 바친(獻) 것, 진덕수(眞德秀:1178~1235 송(宋) 나라의 학자. 號는 西山)가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 《시경(詩經)》의 빈풍칠월편(豳風七月篇)의 내용을 묘사한 그림》를 올린(上) 것 등은 모두 임금을 사랑하고(愛君) 나라를 근심하여(憂國) 참마음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간직한(拳拳) 깊고 참된 속 마음(深衷)과 선(善)을 베풀고(陳) 가르침(誨)을 드리는(納) 간절한(懇懇) 뜻(至意)이므로, 임금(人君)이 깊이 생각(深念)하여 공경하게 복종(敬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臣)은 지극히 어리석고(至愚) 지극히 비루(極陋)한 몸으로 여러 대의 임금(屢朝)님께 받은 은혜(恩)를 저버린(辜) 채, 농촌(田里)에 병든 몸으로 틀어박혀(病廢) 초목(草木)과 함께 썩어 가길(同腐) 기약(期)하였는데, 뜻하지 않게(不意) 헛된 이름(虛名)이 잘못 전하여져(誤達) 부르셔(召) 강연(講筵)의 중임(重)을 맡기시니(置) 떨리고(震越) 황공(惶恐)하옵니다. 사양(辭)하고 피할(避) 길이 없는데다(無路) 이미 면(免)하지 못하고 이 자리를 함부로 욕되게(叨冒) 한 이상, 성학(聖學)을 권도(權導)하고 신덕(宸德:임금의 덕성)을 보양(輔養)하여 요순(堯舜) 시대의 융성(隆)을 이룩하려는(致) 일만은 비록(雖) 사양하려 하여도(欲辭) 감히 할 수 없으니(不敢) 어찌 되겠습니까? 돌이켜 보건대(顧) 다만 신(臣)은 학술(學術)이 거칠고(荒) 성기며(疎) 말주변(辭辯)이 서투른데다(拙訥) 몹쓸 병(賤疾)까지 연이어(連仍) 시강에 드는 것(入侍)조차 드물게(稀罕) 하였는데, 겨울철(冬寒) 이후(以來)로는 그것마저(乃至) 완전히 그만두었으니(全廢), 신의 죄는 만 번 죽어(萬死) 마땅합니다(當). 걱정스럽고(憂) 떨리는(慄) 마음 둘(措) 곳이 없습니다(罔).
신이 가만히(竊) 엎드려(伏) 생각하고(惟) 생각하여(念) 보니, 당초(當初)에 글을 올려(上章) 학문을 논한 것(論學之言)들이 이미 전하의 뜻(天意)을 감동 분발(感發)시킬수 없었으며, 나중에 이르러(及後) 직접 대(對)하여 여러 차례(屢) 아뢴 말씀(說) 또한 전하의 슬기(睿)와 계책(猷)에 비옥(沃)하게 도움(贊)을 능히 드릴수 없었으므로(不能), 미천(微)한 신의 정성으(悃愊)로는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所出) 모르겠습니다. 다만(惟) 옛(昔) 현인(賢人)과 군자(君子)들이 '성학(聖學)'을 밝히고 '심법(心法)'을 파악(得)하여 '도(圖)'와 '설(說)'을 만들어(有),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문(入道之門)'과 '덕을 쌓는 기초(積德之基)'를 보여주는(示) 것이 세상에 돌아다니고(見行) 있는데 마치 해와 별(日星)같이 밝습니다(昭). 이에(玆) 감히 이것들을 가지고(乞) 나아가(進) 전하(左右)께 아룀(陳)으로써 옛 제왕(帝王)들의 공송(工誦: 악공(樂工) 중 《시편(詩篇)》을 외워서 임금께 들려주는 것)과 기명(器銘:임금이 늘 반성하고 조심하도록 일상적으로 쓰는 그릇에 새겨 놓은 글)이 남긴 뜻(遺意)에 대신(代)하고자 하옵니다. 거의(庶幾)가 기왕(旣往)에 중(重)한 것을 빌어(借) 장래(將來)에 이로움(益)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에(於是) 삼가 나아가(就) 그중에서(其中) 더욱더(尤) 두드러진(著) 것을 가려(揀) 뽑아보니(取) 일곱 가지를 얻었습니다.
그 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즉(則) '정임은(程林隱:원(元)나라의 성리학자. 이름(名)은 복심(復心), 자(字)는 자현(子見), 호(號)는 임은(林隱))이 만든 도(程圖)'를 토대로(因) 신(臣)이 만든(作) 두 가지 작은 도(小圖)를 덧붙인(附) 것입니다. 그밖에 세 가지는 비록(雖) 신이 만들었지만, 그 글(文)과 뜻(旨)의 조목(條目)과 규획(䂓畫:동그라미와 선으로 그은 것)은 한결같이(一) 옛 성현(前賢)들께서 지은(述) 것이지 신(臣)이 창조(創造)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을 합(合)하여 《성학십도(聖學十圖)》라 하고, 각(每) 그림 아래(圖下)에 번번이(輒) 또 외람되나마(僭) 저의 그릇된 설(謬說)을 붙여(附) 보았습니다. 삼가(謹以) 고쳐 써서(繕寫) 사람 편에 올리옵니다(投進).
하온대 신이 추위에 떨리고(怯寒) 질병에 묶인(纏疾) 채 몸소(自力) 이것을 하려(爲此) 하니 눈이 어둡고(眼昏) 손이 떨려(手顫) 글씨(書)가 단정(端楷)하지 못하며 세로로 줄긋는 배항(排行)과 글자를 고르게 하는 균자(均字)가 모두(並) 법도에 준한(准式) 것이 없습니다. 어리숙해도(如蒙) 물리치지(却) 않으신다면(勿), 경연관(經筵官)에게 내리시어(下) 상세하게(詳) 바로잡을 논의(訂論)를 더 하게(加) 하시고, 다르고(差) 어긋난(舛) 곳을 고치고(改) 보충(補)하게 하신 다음, 다시(更) 명(命)하여 글씨 잘 쓰는 사람(善寫者)에게 정본(正本)을 정사(精寫)토록 하시기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그 정본을 해당관서(該司)에 보내어(付) 전하의 병풍(御屛) 한 벌(一坐)을 만드셔서 평소 한가롭게 지내시는 곳(淸燕之所)에 펼쳐(展) 두시도록 하거나, 혹 따로(別) 조그마한 모양(小樣)을 하나(一件) 제작하여 단장(粧)하고 붙혀서(貼) 첩(帖)으로 만들어 항상 궤안(几案:책상. 또는 의자(椅子)ㆍ사방침(四方枕)ㆍ안석(案席)을 통틀어 이르는 말) 위에 놓아두고(置), 바라옵건대(冀得) 구부리거나(俯) 고개들거나(仰) 돌아보거나(顧) 곁눈질(眄) 하실 쯤(頃)에 모두(皆) 보고(觀) 살펴(省) 깨우치고(警) 경계(戒)하는 바가 있다면, 구구(區區)하게 충성을 다하려는(願忠) 신의 뜻(志)은 다행(幸)스럽기 이를 데 없겠습니다(莫大焉). 그리고 이 책(本)을 빌어(乞) 그 참한 뜻(義意)이 다 드러나지 못한(未盡) 것을 신이 청을 얻어(請得) 거듭(申) 말씀드리겠습니다.
몰래(竊) 일찍이(嘗) 듣건데, 맹자(孟子:BC 372~289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유학자(儒學者). 이름은 가(軻), 字는 자거(子車), 자여(子輿), 자거(子居))가 말하기를 "마음의 기능(心官)은 생각(思)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이해되고(得)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不得)"고 하였고, 기자(箕子:중국 상(商)나라의 28대 태정제(太丁帝)의 아들로서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叔父). 나라가 망하여 조선(朝鮮)에 들어와, 예의(禮儀)ㆍ전잠(田蠶)ㆍ방직(紡織)과 팔조(八條)의 교(敎)를 가르쳤다 하나 정확하지 않음. 성(姓)은 子, 이름은 胥余(서여). 기(箕, 지금의 山西 太谷)에 봉(封)해져 기자(箕子)라고 함.)가 무왕(武王:중국 주(周)나라의 성군(聖君). 이름은 희발(姬發). 문왕(文王)의 둘째 아들로 형인 백읍고(伯邑考)가 상(商) 주왕(紂王)에게 피살됨으로써 문왕이 죽은 후에 왕위를 계승. 재위기간은 3년.)을 위하여(爲) 《홍범(洪範): 유가(儒家)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1편으로서 홍범구주(洪範九疇)라고도 함. 정치는 천(天)의 상도(常道)인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오복(五福) 등 구주(九疇)에 의해 인식되고 실현된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을 진술(陳)할 때에도, "생각하는 것을 예(睿)라 하는데, 예는 성인을 만든다(作聖)"고 하였습니다. 무릇(夫) 마음(心)이란 방촌(方寸:가슴속의 한 치 사방의 넓이)에 있는데(具)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영(靈)한 것입니다. 이(理)야말로, 그림(圖)과 글(書)에 드러나(著) 있어서 지극히 뚜렷하고(顯) 지극히 진실(實)하니,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영(靈)한 마음으로 지극히 뚯렷하고(顯) 지극히 진실(實)한 이(理)를 구(求)하면 마땅히(宜) 이해하지 못하는(不得)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면 이해되고", "예(睿)가 성인을 이룩한다"는 것이 어찌(豈) 오늘날(今日)이라 하여 증명(徵)될 수 없겠습니까(不足)?
그러나 마음이 허령(虛靈: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신령(神靈)함. 포착(捕捉)할 수는 없으나 그 영험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함)하다 해도 만일 마음의 주재(主宰)하는 능력이 없으면 일(事)이 앞에(前) 당(當)하여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이(理)가 뚜렷하고 진실하더라도 만약(若) 조관(照管: 맡아서 보관함)하는 능력이 없으면, 눈(目)이 항상 가(接)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不見). 이것은 또한 그림(圖)으로 인(因)하여 면밀히 생각(致思)하는 것을 소홀(忽)히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득(抑) 또한 듣건대, 공자(孔子:BC 551~479. 중국 노(魯)의 사상가, 유학(儒學)의 시조(始祖). 본명은 구(丘), 字는 중니(仲尼). 중국 산둥성(山東省) 곡부(曲阜)에서 태어남)가 말하기를, "배우기(學)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남는게 없고(罔:어두워지고), 생각만 하면서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殆)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배운다(學)는 것은 그 일(事)을 익혀(習) 참되게 실천하고 이행(踐履)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蓋) 성문(聖門:성인(聖人)의 도(道)에 들어가는 문)의 학문(學)이란 무릇(諸) 마음(心)에서 구(求)하지 않으면 혼미(昏)해져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微)한 점에까지 통달(通)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고서도 그 일을 익히지(習) 않으면 위태로워(危) 불안(不安)하므로 반드시 배워가지고 그 실질(實)을 실천(踐)해야 합니다. 생각하는(思) 것과(與) 배운다(學)는 것은 서로 서로(交相) 나타나서(發) 서로 서로(互相) 도움(益)을 주는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伏願), 전하의 명철함(聖明)으로 이 이치(理)를 깊이(深) 간파(燭)하시고, 먼저 모름지기(須) 뜻(志)을 세워 "순(舜:중국 태고(太古)의 성군으로 다섯 제왕(오제)중의 하나. 성은 우(虞)•유우(有虞). 이름은 중화(重華). 요(堯)의 뒤를 이어 천하를 잘 다스려 태평 시대를 이룸. 《맹자 등문공(滕文公)하》에 우리 민족계통의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함)은 어떤 사람이고 나(予)는 어떤 사람인가, 이와 같이 하면(若是) 되는게 있다(有爲)" 생각하고, 분연(奮然)히 생각하고 배우는 두 가지 공부에 힘을 쓰셔야겠습니다. 그런데 '지경(持敬)', 즉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란 곧 생각하는 것과 배우는 것(思學)을 겸(兼)하고 동(動)과 정(靜)을 일관(貫)하고 안(內:마음)과 밖(外:행동)을 합치(合)시키고, 드러난 것(顯)과 숨겨진 것(微)을 하나로(一) 되게 하는 도리(道)입니다.
그것을 하는 방법(爲之之法)은 반드시 이 마음을 가지런하고 장중하며 고요하고 전일한(齋莊靜一) 곳(中)에 반드시 두어야(存) 하고,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할(學問思辨) 때(際)에 이런 이치(理)를 궁리(窮)하며,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不睹不聞) 곳(前)에서는 '계구(戒懼)', 즉 자신을 경계(戒)하며 두려워(懼)하는 것을 더욱(愈) 엄숙하고(嚴) 더욱(愈) 공경(敬)스럽게 하며, 은미(隱微)하고 쓸쓸히 혼자 있는(幽獨) 곳에서는 '성찰(省察)', 즉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더욱 정세(精)하고 치밀(密)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그림(圖)에 나아가(就) 생각할 때에는 마땅히 이 그림에만 전일(專一:오로지 한 곳에만 마음을 씀)하여 마치 다른 그림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이 하여야 하며, 하나의 일(事)을 익힐(習) 때는 마땅히 이 일에만 전일(專一)하여 마치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이 해야 합니다. 아침으로(朝焉) 저녁으로(夕焉) 변함없이 하여야(有常) 하고 오늘(今日)과 내일(明日) 서로 이어가야(相續) 합니다. 혹은 야기(夜氣:일체(一切)의 바깥 사물(事物)이 잠든 깊은 밤중이나 새벽의 전혀 잡념이 없는 순수(純粹)한 맘가짐을 맹자(孟子)가 한 말)가 청명(淸明)할 때, 즉 새벽녘 정신이 맑을 때에 실마리를 풀어내어(紬繹) 그 뜻을 잘 씹어서 맛보기도(玩味) 하고, 혹은 날마다 하는(日用) 권하고 돌릴(酬酢) 때(際), 즉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응대할 경우에도 그것들을 몸소 경험하면서(體驗) 키워(栽培) 가셔야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혹 부자유스럽고(掣肘) 모순(矛盾)되는 근심(患)을 면(免)하지 못하게 된다거나, 때로는 극(極)히 맵고 써서(辛苦) 쾌활(快活)하지 못한 병통(病)도 있기는 하나, 이것이 곧(此乃) 옛 사람(古人)들의 이른바 '장차(將) 크게 나아갈 기미(大進之幾)'이며 또한 '좋은 소식의 징조(好消息之端)'이니, 절대로(切) 이로 인하여(因此) 스스로 그만두지(沮) 마십시오. 더욱더(尤當) 스스로 믿고(自信) 더(益) 힘쓰셔서(勵), 참된 것을 쌓는게 많아지고(積眞之多) 힘쓰는게 오래되어(用力之久) 자연히(自然) 마음(心)과 이치(理)가 서로 젖어들어(涵) 모르는 사이에(不覺) 환히 이해되고(融會) 꿰뚫게 되고(貫通), 익히는 것(習)과 그 익혀진 일(事)이 서로 익숙(熟)하여져서 점차로(漸) 평탄(坦)하고 편안하고(泰) 즐겁게(安) 행하게(履) 됨을 볼 것입니다. 처음에는 각각 그 한가지에만 전념(專)하던 것이 이제는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정돈(克)되어 합치(協)할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此實) 맹자가 논(論)한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자기에게) 깨닫는 경지(深造自得之境)'이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만두지 못할 경험(驗)입니다. 또 이에 따라서 부지런히(孶孶) 힘써(俛) 나의 재능(吾才)을 다하면(竭) 안자(顔子:BC 521~490.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현인(賢人). 이름는 회(回), 字는 연(淵). 공자가 가장 신임했던 제자)의 인(仁)을 어기지(違) 않는 마음과 나라(邦)를 위하는 사업(業)이 다 그 속에 있게 될 것이며, 증자(曾子:BC 506~436.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유학자. 이름은 삼(參), 字는 자여(子輿). 공자의 도(道)를 계승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은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를 거쳐 맹자(孟子)에게 전해져 유교사상사상(儒敎思想史上)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 동양 5성의 하나. 《효경》과 《중용》이 그의 문하에서 나옴)의 일관(一貫)된 충서(忠恕)와 도(道)를 전(傳)하는 책임(責)이 그 몸 자신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고(畏)과 공경하는(敬) 태도가 일상생활(日用) 중에서 떠나지(離) 않으면 '중화(中和:덕성(德性)이 중용(中庸)을 잃지 아니한 상태(狀態))'에 의한 만물의 '위육(位育:萬民이 그 위치에 만족하고 萬物이 충분히 육성됨)'의 공(功)을 이룩할(致) 수 있으며, '덕행(德行)'이 떳떳한(彛) 인륜(倫)에서 벗어나지 않으며(不外)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묘(妙)한 경지도 이룰수 있습니다. 이에 그 도(圖)라 하여 만들고 설(說)이라 하여 지은 것이 겨우(僅) 취(取)하여 열폭(十幅)의 종이 위에 써서(敍) 펼쳐놓았으며(陳), 이것을 생각하시고 익히시는(思之習之) 것이 단지(只) 평소(平日) 한가로운 곳(燕處)에서 하는 공부라 하더라도(做) 도(道)를 깨달아(凝) 성인을 이루는(作) 요체(要)와 근본을 바로잡아(端本) 정치를 베푸는(出治) 근원(源)이 모두(悉) 여기에 갖추어져(具) 있습니다. 오직 전하께서(天) 거울삼아(鑑) 보시고(留) 정신을(神) 모으고(加) 유의(意)하시어, 시종(始終) 반복(反復)하시고, 경미(輕微)한 것이라고 소홀(忽)히 하신다거나 귀찮고(厭) 번거롭다고(煩) 치워(置) 버리지 않으신다면, 종묘사직(宗社:나라)에도 매우 다행이며(幸甚) 신하와 백성들(臣民)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신(臣)은 야인(野人)들이 미나리와 햇볕(芹曝)을 바치고자 한 정성(誠)보다 낫지 못하여(不勝), 전하(宸)의 위엄(嚴)을 모독(冒瀆)하는 것임을 무릅쓰고 이에(輒以) 바치치고저 하나이다(爲獻). 황공하고 송구스러워(惶懼) 숨을 멈추고(屛息)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取進止).
退溪의 ≪聖學十圖≫** ―주자 이론의 핵심에 관한 한국적 관점― 1) 미카엘 칼톤 (Michael C. Kalton)
판중추부사(判中抽府事) 신(臣) 이황(李滉)은 삼가 재배(再排)하고 아룁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도는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하도낙서(河圖洛書)가 나옴에, 성인이 이것을 근거로 괘효(卦爻)를 지은 뒤로부터 도가 비로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도는 넓고 넓으니 어디서부터 착수하여야 하며, 옛 교훈(古訓)은 천만 가지나 되니 어디서부터 따라 들어가야 하겠습니까?
성학에는 큰 실마리가 있고, 심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 도(圖)를 만들고, 이것을 지적하여 설(說)을 만들어, 사람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入道之文)과 "덕을 쌓는 기틀(積德之基)"을 보여 주는 것은 역시 후현(後賢)들이 부득이하여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임금된 분의 한 마음(一心)은 온갖 정무(萬幾)가 나오게 되는 자리이며 온갖 책임(百責)이 모이는 곳이며 뭇 욕심이 갈마들며 침공하고, 뭇 간사함이 갈마들며 침해하는 곳입니다. 그 마음이 만일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지면서 방종하여 간다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아서, 그 누구도 이것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옛날의 성스럽고 현명한 황제(聖帝)나 군왕(明王)은 이러한 점을 걱정하여, 항상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로 하루하루를 삼가 지내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긴 나머지, 스승이 되는 관원(師傳之官)을 세우는 한편 바른 말을 간하는 직책을 두었고, 전후좌우에 의승(疑丞) 보필(補弼)이 있게 하였습니다. 수레를 탈 때는 여분(旅賁)의 규(規)가 있었고, 조회 때에는 관사(官師)의 법이 있었으며, 안석에는 훈송(訓誦)의 간(諫)이 있었습니다. 침실에는 근시(近侍)의 잠언(箴言)이 있었고, 일을 처리할 때는 고사의 인도함이 있었으며, 한가로이 있을 때는 공사(工師)의 송(誦)이 있었습니다. 소반이라든가 밥그룻, 책상, 지팡이, 칼, 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길이 닿는 곳과 몸이 처하는 곳에는 어디나 명(銘)과 계'(戒)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유지하고 몸을 방범(防範)하게끔 하는 것이 이토록 지극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덕이 날로 새롭고 업(業)이 날로 번창하여, 티끌만한 허물도 없게 되고, 나아가 큰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후세의 군주들이란 하늘의 명을 받고 왕위에 오른 만큼 그 책임이 지극히 크고 무겁건만 어떻게 되어서인지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게끔 하는 것은 하나도 이 같이 엄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하면서도 불손한 태도로 스스로 성자인 체 하는가 하면 오만한 태도로 왕공과 수많은 백성들의 위에서 방자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결국 괴멸하게 되는 것이야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남의 신하가 되어 임금을 도에 합당하도록 인도하려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그 마음을 여러 모로 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장구령(長九齡)이 [금감록](金鑑錄)을 올린 것과 송경(宋璟)이 [무일도](無逸圖)를 드린 것과 이덕유(李德裕)가 [단의육잠]을 바친 것, 진덕수(眞德秀)가 [빈풍칠월도]를 올린 것 등은 모두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금심하여 마지않는 갖은 충정과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드리는 간곡한 뜻이므로, 임금이 마음에 깊이 새겨 경복(敬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추한 몸으로 여러 대의 임금님께 받은 은혜를 저버린 채, 병든 몸으로 농촌에 틀어박혀 초목과 함께 썩어 가길 기약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헛된 이름이 잘못 전하여져 강연(講筵)의 중임(重任)을 주어 부르시니 떨리고 황송하옵니다. 사양하고 피할 길이 없는데다 이미 이 자리를 면하지 못하고 욕되게 한 이상, 성학을 권도(權導)하고 신덕(宸德)을 보양하여 요순 시대의 융성을 이룩하려는 일만은 비록 사양하려 하여도 할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신은 학술이 거칠고 성기며 언변이 서투른데다 질병까지 잇달아 시강(入侍)조차 드물게 하였는데, 겨울철 이후로는 그것마저 완전히 그만두었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신이 엎드려 생각하여 보니, 처음에 글을 올려 학문을 논한 것들이 이미 전하의 뜻을 감동 분발시킬수 없었으며, 나중에 직접 대하여 여러차례 아뢴 말씀 또한 전하의 슬기에 도움을 드릴 수 없었으므로, 보잘 것 없는 신의 정성으로는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현인과 군자들이 "성학'을 밝히고 "심법"을 파악하여 "도"와 "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문(入道之門)"과 "덕을 쌓는 기초(積德之基)"를 보여주는 것이 마치 해와 별같이 밝게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으므로, 이에 감히 이것들을 가지고 나아가 아룀으로써 옛 대왕들의 공송(工誦)과 기명(器銘)이 남긴 뜻에 대신하고자 하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마도 과거를 본받아 장래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옵니다.
이에 옛것 중에서 삼가 더욱더 두드러진 것을 가려 뽑은 것이 일곱 가지 도(圖)입니다. 그 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정씨도"를 토대로 신이 만든 두 가지 작은 도(小圖)를 덧붙인 것입니다. 그밖에 세 개의 도는 비록 신이 만들었지만, 그 글(文)과 뜻(志)의 조목과 규획은 한결 같이 옛 성현들께서 한 것이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을 합하여 [성학십도](聖學十圖)로 만들었는데, 각 그림 밑에는 외람되나마 저의 설을 붙여 보았습니다. 삼가 정서하여 사람 편에 올리옵니다.
하온대 신이 추위와 질병에 묶인 채 몸소 이것을 하려 하니 눈이 어둡고 손이 떨려 글씨가 단정하지 못하며 글의 줄과 글 크기가 모두 규격에 맞지 않습니다. 다행히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이것을 경연관(經筵官)에게 내리시어 바로잡을 논의를 더 많이 하게 하는 동시에 틀린 곳을 고치고 보충하게 하신 다음,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정본(正本)을 정사(精寫)토록 하시기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그 정본을 해당관서에 의뢰하여 병풍 한 벌을 만드셔서 평소 한가롭게 지내시는 곳에 펼쳐 두시도록 하거나 또는 따로 조그마한 수첩을 하나 만들어 항상 궤안에 놓아 두고 기거 동작하실 때 언제나 보고 살피셔서 경계하신다면 충성을 바치려 하는 신의 뜻은 다행스럽기 이를 데 없겠습니다. 그리고 그 뜻 중에 다 드러내지 못한 것을 신이 지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찍이 듣건데 맹자는 "마음의 기능(心官)은 생각(思)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이해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을 위하여 [홍범](洪範)을 진술할 때에도, "생각하는 것을 예(睿)라 하는데, 예는 성인을 이룩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마음이란 방촌(方寸)에 있는데 지극히 허(虛)하고 영(靈)한 것입니다. 이(理)야말로, 도서(圖書)에 드러나 있지만, 지극히 허령한 마음으로 지극히 확실하고 알찬 이(理)를 구하면 틀림없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면 이해되고", "예(睿)가 성인을 이룩한다"는 것이 어찌 오늘날이라 하여 증명될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영묘한 마음이라 해도 만일 마음의 주재하는 능력이 없으면 일을 앞에 당하여 놓고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이(理)의 드러남이 확실하더라도 만일 찾아서 처리하려는 생각이 없으면, 항상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도해를 토대로 생각하는 것도 소홀히 하여서는 아니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듣건대,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면서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배움(學)이란 그 일들을 익혀(習事) 참되게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큰 학문(聖門之學)이란 마음을 떠나서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점에까지 통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고서도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위태로워 불안하므로 반드시 배워가지고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생각(思)과 배움(學)은 서로 계발(相發)하고 서로 도움(相益)을 주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이 이치를 깊이 살피시고, 모름지기 먼저 뜻(志)을 세워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我)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이 순과 같이 되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분발하여 생각과 배움의 두 가지 공부에 힘을 쓰셔야겠습니다. 그런데 "지경"(持敬), 즉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란 곧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동과 정을 일관하고 안(마음)과 밖(행동)을 합치시키고, 드러난 것(顯)과 숨겨진 것(微)을 한 가지 되게 하는 도리입니다.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반드시 이 마음을 제장정일(齊莊靜一)한 속에서 보존하고, 이에 대한 이치를 학문사변(學問思辨)하는 사이에 궁리하며, 남이 보지도 듣지도 않는 곳에서 "계구", 즉 자신을 경계하며 두려워하는 것을 더욱 엄숙하고 공경스럽게 하며, 혼자만 있는 은밀한 곳(隱微幽獨之處)에서는 "성찰", 즉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더욱더 정밀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도해(圖)에 입각하여 생각할 때에는 그 도해에만 집중적으로 전념하여 마치 다른 도해가 있다는 것은 모르는 듯이 하여야 하며, 어느 한 일을 익힐 때는 그 일에만 전념하여 마치 다른 일이 있는 것은 모르는 듯이 해야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변함없이 그렇게 하여야 하고 오늘과 내일 매일매일 계속하여야 합니다. 혹은 새벽녘 정신이 맑을 때(夜氣淸明時)에 되풀이하여 그 뜻을 음미하여 보기도 하고, 혹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응대할 경우에도 그것들을 경험하면서 키워가셔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처음에는 혹 부자유스럽고 모순되는 난점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거나, 때로는 극히 고통스럽고 불쾌한 일들도 없지 않겠으나, 이러한 것은 바로 옛 사람들의 이른바 "장차 크게 나아갈 기미(大進之幾)"이며 또한 "좋은 소식의 징조(好消息之端)"이니, 절대로 이로 인하여 그만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더욱더 자신을 가지고 힘을 기울이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이(理)가 서로 영향을 미쳐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환히 꿰뚫 듯 이해하게 되고, 익히는 것(習)과 그 익혀진 일이 서로 익숙하여져서 점차로 순탄하고 순조롭게 행하여지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각각 그 한가지에만 전념하던 것이 끝내는 모두 일치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맹자가 말한 "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자기에게) 깨닫는 경지(深造自得之境)"이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만두지 못할 경험입니다. 또 이에 따라서 부지런히 힘써 나의 재능(吾才)을 다하면 안자(顔子)의 인을 어기지 않는 마음과 나라를 위하는 사업(爲邦之業)이 다 그 속에 있게 될 것이며, 증자(曾子)의 일관된 충서(忠恕)와 전도의 책임이 그 몸 자신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외경(畏敬)"의 태도가 일상생활 중에서 떠나지 않으면 "중화(中和)"에 의한 만물의 "위육(位育)"의 공(功)을 이룩할 수 있으며, "덕행"이 이륜(人倫)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천인 합일"의 묘한 경지도 마침내 이룰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도라 하여 만들고 설이라 하여 지은 것이 겨우 열폭의 종이에 늘어놓은 데 불과하며, 생각하시고 익히시는 것이 단지 평소 한가로운 곳(燕處)에서 하는 공부에 지나지 않지만 도(道)를 깨달아 성인을 이루는 요체와 근본을 바로잡아 정치를 베푸는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전하께서 이에 시종 유의하시어 하찮다고 소홀히 하신다거나 귀찮고 번거롭다고 치워 버리지 않으신다면, 나라(宗社)의 다행이며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신이 초야에 묻힌 야인으로서 근폭(芹曝)을 올리는 정성으로 전하의 위엄을 모독하는 것임을 무릅쓰고 바치나이다. 황송하옵고 송구하올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