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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역사소설과 함께 가벼운 史譚을 즐겨 쓴 김동인. |
少小說 글의 길(一名 아내의 길)
金東仁 作
《신소녀》 1947년 6월호에 실린 〈글의 길〉 첫 장. |
連載 婦道記 柳花夫人
金東仁
李承萬 만화
바늘 손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기고 하였다.
—귀여운 아들. 사랑스런 아들.
씩씩하고 용감하고 활달한 아들.
그 애의 위에 무궁한 복이 나립소서.
고주몽(高朱蒙)의 어머니 유화(柳花)였다. 사랑하는 아들 주몽을 위하여 가죽옷을 지으며—짓다가 바늘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기고 하였다.
일찍이 이 나라[扶餘] 임금께 거둔 바 되어 대궐에 들어 있다가 주몽을 낳고는 따로이 집을 장만하고 아들과 단 둘이 오붓한 살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랑하는 아들 주몽은 그 사람됨이 영특하여 임금께 귀염을 받고 늘 대궐에 들어가서 이 나라 태자 및 왕자들과 벗하여 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 왕자들이 차차 자라면서 철이 들자 주몽의 과한 인품에 투기하는 생각을 먹고 꺼리고 삼가는 기색이 나날이 현저하여 갔다.
이것이 어머니 된 마음으로는 근심이 되었다. 자식의 영특함은 기꺼운 일이로되 영특하기 때문에 왕자들에게 꺼림을 받는 것이 근심되는 바였다.
주몽의 인품 어디를 가면 제 한 몸 당하지 못하랴마는 현재 이 나라에 의탁하고 있는 몸으로서는 이 나라의 왕자들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마음에 꺼리었다.
일손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기고 생각에 잠겼다가는 다시 일손을 잡고—. 이렇게 하는 둥 마는 둥 일감을 만지작거릴 때에 토당토당 가벼운 발소리가 나며 아들 주몽이 달려왔다.
“어머니! 상 탔어요. 상 탔어요.”
봄에 가슴 한 아름 무슨 상품을 들고 온다.
“오오, 주몽이냐? 상을 탔어? 착해라. 상은 무슨 상을 누구한테 탔느냐?”
“나랏님께 탔어요.”
“어떻다고?”
“오늘 대궐에서 활쏘기 내기를 했어요. 그래서—.”
“응, 그래서 이겼구나. 참 착하다. 그런데 누구와 내기를 했느냐?”
여기서 소년은 태자며, 뭇 왕자들과 경기를 한 그 경과를 어머니에게 자랑하였다.
“그래서, 네가 가장 이겼느냐?”
“녜—, 아 그럼요.”
“태자보다?”
“네.”
이 자랑스러운 듯한 아들의 대답에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의 머리를 쓸었다.
“주몽아, 너는 왜 지지 않았느냐?”
주몽의 눈은 둥그렇게 되었다.
“져요? 왜 져요? 아무리 태자라도 절 당하나요? 제가—.”
“응, 그건 안다. 어머니도 네가 가장 잘 쏘는 줄은 안다. 그렇지만 왜 태자께 지지 않았느냐? 네가 활 잘 쏘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 그렇기에 이름까지도 주몽이라 하지 않느냐? 태자께 이겼다고 네가 얼마나 더 훌륭해지겠느냐? 네가 부질없이 경태자께 이기면 뒤가 좋지 못하다.”
“왜요? 어머니! 뒤가 어째서—.”
“어머니의 말을 들어라. 태자는 이 나라를 이으실 분, 태자는 무엇으로든 너보다 나아야 할 분이다. 그런데 네가 태자보다 나으면 되겠느냐? 주몽아, 그래도 못 알아듣겠느냐?”
주몽은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쳐다보는 동안 비록 나이는 아직 어리나마 비상히 총명한 주몽은 어머니의 말의 뜻을 알았다. 자기는 태자를 이기면 안 될 사람이다. 아까도 본바, 질 때마다 태자의 눈이 점점 더 좋지 않아 갔다. 지금 자기네 모자는 임금의 아래서 사는 사람, 임금의 뒤를 이을 태자보다 중하다 하는 것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일이다. 자기는 반드시 태자만 못해야 할 사람이다.
잠시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가 주몽은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
“왜 그러느냐?”
“이 상품을 도로 태자께 갖다드리리까?”
어머니는 머리를 저었다.
“그럴 것까지는 없지만 이 뒤에라도 태자와 내기를 할 일이 생기거든 삼가라. 네가 진다고, 네 힘이 줄어들 것도 아니요, 이긴다고 더 커질 것도 아닌 게 아니냐. 지건 이기건 네 힘은 네 힘대로 있을 것이로구나. 윗사람에게 이기면 뒤가 좋지 못하다.”
“알았습니다.”
대답은 하였다. 어머니의 말뜻도 알았다. 그러나 이 순간 어린 주몽의 미음에는 ‘윗사람’이라 하는 한마디의 말이 들어 배겼다. 윗사람이면 힘이 부족하고도 이겨야 하며, 아랫사람이면 힘이 승하고도 져야 하나. 만약 세상 이치로서 그렇다 할진대 나도 이 뒤에 자라서는 꼭 윗사람이 되리라. 결코 아랫사람은 되지 않으리라. 어떤 간난(艱難)을 무릅쓰고라도 꼭 윗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였다.
★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 사람됨이 커 가는 아들의 양에 어머니는 한없는 기쁨과 동시에 늘 근심을 풀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서 주몽의 나이 스무 살. 인제는 어디에 내려놓아도 당당한 대장부였다.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경계심은 더욱 컸다.
그 어떤 날 이날따라 마음이 유난히 뒤숭숭하고 무슨 일이나 생기지 않을까 하고 속으로 근심할 때에 많은 궁시(弓矢)가 태자궁으로 날라 들어가는 양이 눈에 띄었다.
유화부인은 가슴이 철썩하였다. 자식을 근심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기색 다른 일을 보면 곧 자식의 위에 생각이 미친다. 가슴이 철썩하여 주몽의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 할 때에 말 발굽소리가 우렁차게 나며 주몽이 돌아왔다.
“아이, 왔구나.”
“어머니.”
“한데 너 안색이 심상치 못하구나. 무슨 일이 생겼느냐?”
“무얼, 별….”
“아니로다. 없을 까닭이 없다. 여편네의 눈이 무얼 알랴마는 자식을 생각하는 어버이의 마음이라 필시 무슨 곡절이 있다. 감추지 말고 말해라.”
주몽은 머리를 푹 숙였다. 한참 뒤,
“어머니, 하직하러 왔습니다.”
알아들었다. 이대로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된 모양이었다.
“오오, 아, 주몽아. 그런데 네게 묻는다마는, 네 인격, 네 힘, 네 도량, 네 지혜가 얼마나 한지 스스로 짐작이 가느냐?”
“네, 저는 믿습니다. 아무 점으로든 누구한테 지지 않을 사람이라 굳게 믿습니다. 어머니의 품 아래서 생겨난 제가 아닙니까?”
자랑스러운 듯이 말하는 이 대답에 어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주몽아, 내 말을 잘 들어라. 전에도 네게 누누이 말했거니와, 이 나라에서 너를 용납지 못하거든 너는 피해라. 맞서서 다투고 다투어서 이기느니보다는 피해서 자기의 품격을 더럽히지 않는 편이 더 큰 영광이니라.”
“그래도—.”
말하려는 것을 어머니는 막았다.
“내 말을 다 듣고 할 말이 있거든 해라. 너는 피해라. 너도 믿고 나도 믿는 바와 같이 너만한 인물이면 어디 가서든 큰일을 못 이루겠느냐? 여기서 피해서 네 품격을 더럽히지 말고 다른 땅에 가서 주인 없는 그 땅에 큰 희망을 성취해라.”
어머니의 이 사려 깊은 말에 주몽은 탄복하였다. 이 땅에서 하도 자기를 괄시하므로 왈칵 일러든 반항심은 이 어머니의 말에 가라앉았다.
“알겠습니다.”
그날 밤 깊어서 주몽은 어머니께 하직하였다.
“어머니, 기약 없는 길이올시다. 이 땅에 어머니 남기고 차마 어렵습니다마는 하도—.”
“걱정 말아라. 너를 낳고 너를 기른 어머니니 어미 걱정 말고 어서 무사히 이 땅을 피해서 장차 연(輦)으로 나를 데리러 올 날을 만들거라.”
“네, 그럼 떠나겠습니다.”
어두움 가운데로 차차 멀리 사라져 가는 우렁찬 말소리를 유화부인은 문지방에 기대어 듣고 서 있었다.
〈출처=《日本婦人》(朝鮮版), 1권 8호, 1944년 12월호〉
史譚 月下明笛
金東仁
1
《사해공론》 1935년 8월호에 실린 〈월화명적〉 첫 장. |
대야성(大耶城) 공격에 관한 모책을 끝낸 뒤에 막하 장수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도원수 윤충(允忠)이 자리에 든 것은 밤이 꽤 깊어서였다. 백제 의자왕(義慈王) 11년 8월. 거의 만월에 가까운 달은 도원수 윤충의 진에 고요히 나려 비추고 있다.
자리에 들기는 들었지만 머리가 쇄락하여 얼른 졸음이 오지 않았다. 대야성은 소문 높은 웅성(雄城)—물론 군사의 힘을 다하여 공격하면 함락할 것이요, 그만한 자신이 없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껏, 자기의 군사는 꺾지 않고 성을 뽑을 재간이 없을까.
전쟁이 있어서 한 개 성을 뽑기 위해서는 군졸들을 마치 흙이나 물과 같이 아낌없이 함부로 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 군졸들도 한 개 사람으로서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부모·처자가 가지런히 있는—자기네 장수들과 다를 데가 없는—‘사람’이다. 마치 흙이나 물처럼 함부로 쓰던 그 군사들도 모두 그들의 집에서는 그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처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군사들을 할 수 있는 껏 꺾지 않고 목적을 이룰 재간이 없는가.
아까도 본 바다. 윤충 장군이 막하 장수들을 데리고 진중을 순시할 때의 일이다. 그때 어떤 졸병 하나가 외따로 나무 아래 혼자 앉아서 싱글벙글 웃고 있으므로 그 병졸을 붙들어다가 연유를 알아보니 병졸의 품에서는 한 장의 편지가 나왔다. 그 편지는 그의 젊은 아내에게서 온 것으로서 내용은 말할 것도 없는 끓는 듯한 정열의 문자였다.
명일이라도 전쟁이 시작되면 마치 구렁텅이를 메우는 데 흙을 갖다 붓듯 병졸의 몇 백명쯤은 어느 구석에서 어떤 주검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게 없어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 병졸 몇 사람에게는 모두 몇 명씩의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여기서는 흙 한 줌 같이 낭비하는 그 생명을) 그대로 행여나 하고 살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라의 일이라 하는 것은 적잖은 것이라 한 군사 개개의 생명까지를 고려하자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흙과 같이 낭비하지 않고도 어떻게 하여 이 대야성을 뽑을 재간이 없을까.
부스럭,
어디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생각에 잠겼던 윤충은 처음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부스럭 소리가 날 때는 알았다.
‘?’
머리를 베개에서 들고 잠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나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바야흐로 머리를 다시 베개에 놓으려 할 때에 또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뿐더러 그 뒤를 연하여 덜컥 하는 소리도 들렸다. (다음에 이어지는 42개 글자는 인쇄상태가 나빠 판독이 어렵다.-편집자주)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겨우 옷을 정제한 때에 진 밖에 사람의 아뢰는 소리가 들렸다.
“장군께 아뢰옵니다.”
무선 부장의 음성이었다.
“무에냐?”
“신라인인 듯한 자 하나가 장군 진 밖에 배회하는 것을 붙들었습니다.”
“불러들여라.”
이윽고 병졸 두 명이 횃불을 잡고 들어오고 그 뒤로 결박진 신라 백성 하나가 부장에게 끌리어 들어온다. “앉아!”
발길에 채여서 쓰러지는 신라 백성을 보니 서른 살쯤 되었을까 한 젊은이였다.
“불을 밝혀라.” “네에.”
장군은 굽어보았다. 백제군 통솔자인 자기 진옥 밖에 배회하더라는 괴상한 인물이라 호걸풍이 있으리라 하였던 얘기에 반하여 평범하고 소심하고 간특한 얼굴의 주인이었다.
“신라인이지.” “네에.” “무얼 하러 여기서 배회했느냐?”
이 질문에 대하여 그는
“장군님께 내통할 말씀이 있사와 왔습니다”고 한다.
“내게? 이 윤충 장군에게?” “네이.”
“무엇이냐. 어디 말해 봐라.” “소인은 검일(黔日)이라는 백성으로서 이 대야주 도독(都督) 김품석(金品釋)이 당하에 있는 사람이온데—.”
“무얼?” 그냥 계속하려는 말을 윤충은 중도에서 끊었다.
“네가 검일이냐?” “네에, 소인이—.”
“내 말에 대답만 간단히 해라. 네가 분명히 검일이냐?” “그러하옵니다.”
“내게 할 말이 있다지?” “네이.” “내통이지?” “네이.” “그럼, 백제 장군 윤충은 공로를 몰라보는 사람은 아니다. 네 공로를 상 주는 뜻으로 너를 백제 재상의 예에 의거해서 후히 장례를 치러 주마.”
악연하여 눈을 든 검일은 윤충 장군의 추상같은 표정에 몸서리치면서 벌떡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일어나지 못하였다. 윤충 장군의 오른손 가까이 놓여 있던 손창(手槍)은 바야흐로 일어나려는 검일의 가슴에 가서 박혔다.
2
밝은 날 아침, 언약에 의지하여 군졸들의 경례 아래서 검일의 주검을 땅에 묻은 뒤에 백제 군사는 대야성 포위의 새 전술을 폈다. 식량과 음료수를 성내에 들일 길을 막기 위하여 물샐틈없이 대야성을 포위하였다. 그런 뒤에는 싸움을 돋우지도 않고 그 전세대로 그냥 지구전의 차비를 대여버렸다. 양식 떨어지고 물 없는 대야성이라 불일 항복할 것은 정한 이치다. 수일만 이대로 지내노라면 한 군사도 꺾지 않고 대야성을 넉넉히 얻을 것이다. 그 사이에 김품석의 난정 때문에 군비가 아주 없는 대야성 내에서는 이 백제 원정군에게 대할 만한 장수도 병졸도 없었다. 겁먹은 성민들이 몰래 엿보고는 도로 도망하고 하는 뿐이었다.
이리하여 사흘을 백제군은 대야성을 포위만 한 채 낮잠으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드디어 대야성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으로서는 대야주 도독의 사자 한 명이 백제 진중으로 말을 달려왔다. 도독 김품석이 사자를 시켜서 백제진에 통한 뜻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 사자 서천(西川)이 윤충 장군에게 드린 말이란 것은—.
“도독 이하 만민의 생명만 해하지 않으면 성을 들어서 항복하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윤충은 “우리의 목적은 성을 얻는 데 있지 사람을 죽이는 데 있잖으니까 성만 손에 들어오면 필요없는 살육은 안 하겠다”고 대답하여 도로 돌려보냈다.
그 이튿날 어제 열렸던 성문은 다시 열렸다. 그리고 그 성문으로는 많은 수레가 나와서 백제 진중으로 왔다. 그러나 그것으로 성이 함락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수레가 성문 밖으로 나오기가 바쁘게 성문은 다시 닫히고 성 위에는 높다랗게 신라 깃발이 올려 걸리어 바람에 펄럭인다.
장군진 고좌에 앉아서 이것을 바라보다가 윤충 장군은 의아히 눈살을 찌푸렸다. 성문으로 나온 수레는 응당 김품석 일행일 것일 테다. 도독이 우리 진으로 오는 이상은 대야성은 당연히 항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문이 도로 닫히고 새로이 신라 깃발이 나부끼는 그 연유를 알 수가 없다.
3
1930년 9월 2일부터 1931년 11월 10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동인의 처녀 장편소설 《젊은 그들》. |
“신라국 대야주 도독 김품석은 대백제국 윤충 장군께 아뢰옵니다.”
김품석이 장군진에 이르러서 조아려 국궁하고 서서 이렇게 할 때에 장군은 힐난하는 눈치로 굽어보았다.
“인부는?” “인부는 빼앗겼습니다.”
“빼앗기단?” “사지(舍地·벼슬이름)로 있는 죽죽(竹竹)이라는 어리석은 자가 반란을 일으켜서 지금 대야성은 역적의 손아래 들어갔습니다.”
“그럼 항복이 아니요?”
“소관들은 항복하옵니다 마는 성은 죽죽의 위협에 못 이기어 어리석게도 천군께 대항을 하려는 모양이옵니다.”
“아까 그대는 자칭 대야성 도독이라 하는 모양인데 인부 없는 도독이 어디 있겠소? 풍문에 듣건대 도대체 그대는 도독으로 있어서 임무에 충실치 않고 술과 놀이를 즐기며 유부녀 겁탈이 일수이며 오늘날과 같은 국난의 때에 있어서도 그대가 만약 도독의 임무에 충실하려면 성을 베개 삼아 우리 화살 아래 목숨을 바치든가 그렇지 않으면 성을 들어 항복해서 성내 백성의 곤란이라도 면케 하든지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제 목숨만 살려 보려고 혼자 피해 나온 심사가 가증해 백제장군 윤충의 칼은 가증한 사람을 보면 저절로 날뛰니 아마 그대로 보전치 못할까 보오.”
이리하여 애걸하며 울며 부르짖는 김품석 이하 고관들은 모두 백제군사의 피제물이 되었다.
4
성내에는 우물을 새로 파서 음료수의 곤액에서도 인전면하였다고 한다. 성민들은 모두 일심단결하여 자기네가 굶으면서도 죽죽과 밑 그 기하로 들어간 군졸들의 군량을 공궤할 결심이라 한다.
말하자면 결사의 군졸과 결사의 성민들이었다. 인제는 쉽사리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뿐더러 그날 권항사(權降使)로서 부장(副將) 모선을 성내로 죽죽에게 보내어 보았는데 죽죽은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서 모선의 목을 잘라 그것을 높이 성루(城樓)에 걸어서 백제 장졸들에게 보였다.
여기서 윤충 장군도 마지막 수단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병졸이라도 꺾이기가 싫어서 평화롭게 항복을 받아 보려 했지만 죽죽의 기개를 보면 최후의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을 동안은 항복을 하지 않을 모양이다.
5
1933년 4월부터 1934년 2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동인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 |
팔월 열엿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둥그런 밝은 달이 솟아올랐다. 그새 오래를 두고 공격령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클클해 하던 백제 군졸들은 명일이 총공격이라는 바람에 떠들썩하였다. 명일의 공격을 위로하고 겸하여 명일의 승리를 미리 축하하는 뜻으로 주륙을 진중에 내려서 이 밝은 달 아래서 백제 군졸들 사이에는 커다란 잔치가 열렸다.
이 잔치가 한참 무르익을 때에 윤충 장군은 홀로 진을 빠져나왔다.
그새 오래 감춰 두었던 투심을 명일은 풀 날이라고 요정(了定)하여 기뻐하는 자기네 진을 벗어나서 홀로 달 밝은 벌판을 대야성을 향하여 한 걸음 두 걸음 더듬었다.
저편 맞은편에 푸르른 달 아래 고요히 누워 있는 대야성—지금 달 아래 평화로운 듯이 누워 있는 저 성안에 대체 백성들이 얼마나 될까. 내일은 총공격을 한다고 통고를 하였는지라 그들도 각오하고 있을 것이다. 성을 도망하고 싶은 자는 도망하라고 동문의 포위는 풀어 두었으니 얼마나 도망들을 하려는가.
우러러 보매 가을 기러기가 하늘을 난다. 그 울음소리가 성내에도 들릴 테지. 큰 고난의 아래 서 있는 성내 백성들에게는 그 소리가 얼마나 처량히 들린다.
차차 차차 더듬는 동안 어느덧 첩성 아래까지 이르렀다. 벌써 자기네 진에서는 꽤 거리가 먼지라 군졸들의 환호성도 간간 바람결에 들려올 뿐이다. 돌아보면 멀리 자기네 진에서는 횃불들만 어지러이 펄럭일 뿐이다.
즉 어디선가 이상한 음률이 들렸다.
‘?’
장군은 귀를 기울였다. 저(笛)를 부는 소리였다.
어느 얼빠진 자가 저를 불고 있나. 이 폭풍우를 감춘 불길한 밤에 불길함도 모르고 저를 불고 있는 얼빠진 자가 어디 있나.
눈을 들어 보니 어느덧 그는 서문 가까이까지 이른 것이었다. 저의 소리는 서문 누각에서 오는 듯하였다.
달 아래 부는 저—명일 이를 소란을 모르는 듯이 부는 저—더구나 백제진을 정면으로 향한 서문누각에서…. 장군의 발은 호기심에 차차 서문 아래로 갔다.
아래 가서 우러러보니 달빛 아래라 분명히는 안 보이나 신라기(新羅旗)와 함께 나부끼는 것은 분명히 죽죽의 깃발인 모양이고 그 아래는 청년 장수 하나가 앉아서 저를 불고 있다.
그 저에서 울리는 명랑(明朗)한 음조에 윤충 장군의 가슴은 떨렸다.
밝은 날 이 성에 내릴 폭풍을 그인들 모를 까닭이 없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달 밝은 한밤을 저를 불어 새우는 그 심경. 저에서 울려나는 그 명랑한 음조는 마음에 근심 있는 사람의 내일 바가 아니다. 저의 음조는 부는 사람의 호흡의 반영이라 가슴에 근심 있는 사람이 부는 소리는 탁음이 다분히 섞인다. 그런데 이 저에서 나는 소리는 물과 같이 맑고 물과 같이 거침이 없다.
누구일까 보아하니 젊은 장수. 그가 과연 죽죽일까?
아까 김품석에게 죽죽의 일을 들을 때는 죽죽은 만용밖에는 없는 어리석은 무부로 알았다. 그러나 지금 저를 부는 장수가 죽죽이라 할진대 그는 의기와 담력의 주인이라 안 할 수가 없다.
달 아래 들려오는 명랑한 저 소리에 장군은 망연히 귀를 기울이고 서 있었다.
썩고 썩은 대야성 안에도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통절히 마음에 서리었다.
진으로 돌아와서 대야성 망명민에게 물은 결과로서 그 사람이 죽죽이라는 것을 알았다.
6
이튿날 공격군에게 내린 명령에는 기이한 주문이 몇 가지 섞여 있었다. 저항 안 하는 백성은 건들이지 말 것. 적병(賊兵)이라도 할 수 있는 껏 생금(生擒)을 목표로 할 것. 우리 군사를 몇십 명 희생을 할지라도 적장 죽죽만은 반드시 생금할 것—이런 주문이었다.
이런 주문 아래서 투지만만한 백제 병졸들은 동서남북 문으로 물밀 듯 대야성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석양녘에는 각 문 누각 위에는 백제 깃발이 하나 바람에 위세 좋게 휘날렸다.
7
대야성 함락의 첩보를 듣고 윤충 장군은 막료들을 데리고 말을 달려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참에 서문을 맡았던 장수가 달려오면서 보고를 하였다—.
“신라 병졸 한 명도 생금을 못하였습니다.” “응? 왜?”
여기 대답하는 뜻으로 그는 그 근처에 넘어져 있는 신라군의 시체를 손가락질하였다.
그 근처에도 넘어져 있는 몇 개의 신라군 시체. 보매 그 모두가 사람의 고깃덩어리들이었다. 팔쭉지에서 떨어져 내린 팔들도 그냥 단단히 칼을 잡고 있으며 한몸에 살과 창과 칼을 맞고도 못 살린 시체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들의 목숨이 그냥 붙어 있는 동안은 적극적 반항을 계속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잠시 둘러본 뒤에 장군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죽죽도 죽었겠구나.”
“네이. 장수가 누군지 군졸이 누군지 그것을 구별하려다가는 우리 군사가 도로 전멸당할 뻔하였습니다. 상(傷)한 맹호와 같이 달려드는데 그것을 가를 수도 없고 신라 장졸은 한 사람 남기지 않고 모두 전멸했으니까 아마 죽죽도 죽었을 줄 아옵니다.”
“그런가.”
가엾게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기다란 숨이 나왔다.
윤충 장군은 적장 죽죽의 시체를 찾으라는 명을 백제군에게 내렸다.
죽죽의 시체는 어떤 행길에서 발견됐다. 그 참담한 시체에 백제 장졸은 머리를 돌리지 아니치 못하였다.
오른팔은 어디서 언제 잘렸는지 그의 팔쭉지에도 안 달리고 그 근처에도 보이지 않는다. 칼은 아직 남은 왼손으로 잡고 그냥 단단히 잡은 채 주검을 하였는데 그 칼도 부러지고 그 위에 톱과 같이 이가 생겼다. 자빠져 누워 죽었는데 그의 갈라진 배에 비쭉이 나온 밸에는 흙이 묻은 것으로 보아서 밸을 밖으로 흘리고서도 그냥 넘어지며 엎어지며 싸움을 계속한 것이 분명하였다.
그의 치명상은 두개골 파쇄였다. 그것도 여러 사람의 칼을 일시에 맞은 양으로 여러 갈래로 칼자리가 나서 부서졌다.
이 용감한 청년 장수의 주검을 굽어볼 동안 윤충 장군 이하 백제 장졸의 눈에서는 안 내려야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금 악물고 있는 저 창백한 입술이 어젯밤 달 아래서 그렇듯 명랑히 저를 불었던가. 어제의 그 명랑하던 음률이 공중에 흩어져서 자취도 없어짐 같이 그때 그렇게 명랑히 달을 노래하던 그의 생명도 하늘에 지체없이 사라져 버렸는가. 하염없이 하염없이 늙은 눈 좌우로 흐르는 눈물을 씻을 줄도 모르고 윤충 장군은 묵묵히 서 있었다.
8
백제 장졸 전체의 조상 아래 신라 대야성을 죽음으로 지킨 용감한 군인들의 주검은 그로부터 사흘 뒤에 가장 엄숙히 가장 구슬프게 한 구덩이 속에 들어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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