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1-12)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순식간에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어제 알았던 지식이 오늘은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배워가야 합니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다 다를 것입니다. 1박 2일을 볼 때에는 저 장소가 어디인가 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사극을 볼 때에는 저 등장인물이 실존 인물인가 아니면 가상의 인물인가, 실존 인물이라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찾아봅니다. 맛있는 음식과 식당을 소개하는 그런 프로그램이라면, 나중에 한 번 찾아가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를 볼 때에는 저기 등장하는 장소가 어디인가, 한번 가봐야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라고 한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일 것입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덕동 팽나무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일 것입니다. 팽나무가 있는 곳이, 드라마상에는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다고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청주에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경남 창원시에, 주민 5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인 동부마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팽나무가 있는 동네 뒤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위치라든가, 어떤 길로 가야 하는 지, 몇 시간 정도가 걸리는지,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는가를 금방 알 수가 있는 세상입니다.
드라마가 방영되고 난 후, 팽나무를 보기 위하여,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인증사진을 찍느라, 자칫 팽나무가 훼손될까봐, 동네 주민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래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나무이고, 땅 속으로 뻗은 뿌리로 이 무더운 날, 힘들게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에 가면, 뿌리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팽나무를 바라보면 좋겠다고 합니다. 한 번 갔다 오기에는 너무 먼 거리인지라, 쉽게 가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담양에 가면, 메타콰이어가 쭉 뻗어 있는 가로수길도 유명하지만,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죽녹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울창한 대나무들이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살던 동네는 죽도봉이라는 곳에서, 봉화산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죽도봉은 대나무가 많고, 섬처럼 봉우리가 뚝 떨어져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고, 봉화산은 옛날, 왜구가 남해 바다로 쳐들어오면, 한양에 알리기 위하여, 봉화를 피우던 곳이라, 봉화산이라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봉화산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멀리 남해 바다가 보이고, 지금의 순천만 국가정원도 내려다 보입니다.
혹시 순천만 국가정원에 가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정원 가운데, 냇가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가게 되어 있는데, 어린 시절, 정원 가운데에 흐르는 그 냇가는, 초등학교 근처인지라, 이렇게 더운 여름 날, 물놀이 하면서 많이 놀았던 곳입니다.
죽도봉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곳에 있는 대나무는 큰 대나무가 아니고, 주로 작은 대나무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대나무는 120년 만에 꽃이 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나무 꽃은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나무꽃이 피고 난 후, 말라 죽는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죽어가는지,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합니다.
아름드린 대나무는 아닐지라도, 작은 대나무라도 할지라도, 살아 있을 때,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지, 잎이 말라버리고, 줄기도 썩어서, 부러져 버리면, 볼만한 것이 없게 됩니다. 크든 작든 간에, 살아 있을 때, 멋지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도마가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사람들은 길을 몰라 헤매이고 있습니다. 길을 모르면 고생입니다. 길을 알면, 어디든지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길도 그렇고, 세상의 이치도 그렇지만, 영생의 길도 그렇습니다.
고행을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선행을 많이 하면, 영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생을 얻는 길이 아닙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금방이라고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확한 길을 놔두고, 엉뚱한 길에서 헤매이고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한 인간이 영원불멸한 하늘의 상을 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독자들 앞에 그려놓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디를 떠나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행하지 않는지, 보여 주고 있으며, 하늘나라 영광의 문 앞에 이를 때까지, 얼마나 뛰고 또 뛰는지, 그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라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존 번연은 “당신은 무언가 희귀하고도 유익한 것을 원하십니까? 우화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싶으십니까? 당신은 건망증이 심한 사람으로서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그믐날까지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소설을 읽어 보십시오. 이 책의 내용은 엉겅퀴 가시 열매처럼 당신의 기억에 달라붙어 무력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떠나는 크리스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가볍고, 행복하게, 편안하고 좋은 길을 걸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날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길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싶으면 또다른 무거운 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서 가신 그 길을,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딴 데로 시선을 돌리면 안됩니다. 얼핏 보기에, 딴 길이 보기에 좋다고 그 길로 가면 안됩니다. 그 길에는 진리가 없고,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지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갑시다. 그 길만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고, 생명을 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날마다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부르실 뿐만 아니라, 직접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우리는 영적인 눈이 보이고,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합니다.
보이지 않으면 답답합니다. 저는 안경을 벗으면, 앞에 있는 것을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안경을 쓰면, 분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길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 앞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걸어갈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진리가 되십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참인지 거짓인지, 분간이 안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 진리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세상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엉뚱한 데에서 진리를 찾고자 합니다.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자칭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다고 하지만, 오히려, 어둠 속에서 헤매이게 합니다.
가짜이면서 진리인 척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진짜만 계속 보고, 계속 만지다 보면, 금방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진짜를 알아야 가짜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가짜 속에 있으면 진짜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제가 처음 신학을 공부할 때,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으려고, 이단과 사이비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이단과 사이비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저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얼마동안, 한 한기 동안, 이단에 대하여 강의를 수강하고, 우리 교회가 속한 노회 안에 설치된 이단 사이비 대책 위원회 위원장까지 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이단과 사이비에 대하여, 깊이 알려고 하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지만, 이단과 사이비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깊이 더 알아가야 합니다. 힘써 예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가짜에 속지 않게 됩니다. 진리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짜에 속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짜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진짜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가물가물하면, 가짜에 속기 쉽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분명히 만나고,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듣고, 진리이신 예수님과 늘 동행하면, 가짜에 속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진리이신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에덴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두 나무를 두셨습니다.
한 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고, 또다른 나무는 영생을 알게 하는 생명나무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영생을 알게 하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에덴 동산에 다시 돌아가기를 염원합니다.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님께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함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모두 다 먹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주님,
우리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딴 길로 나아가지 않고, 오직 길이신 주님만을 따르게 하옵소서.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리이신 주님만을 따를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사오니,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