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경(A9:34)
Nibb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했다.
“도반들이여, 열반은 행복입니다. 도반들이여, 열반은 행복입니다.”
“sukhamidaṃ, āvuso, nibbānaṃ. sukhamidaṃ, āvuso, nibbānan”ti. |
2. 이렇게 말하자 우다이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서 느껴지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이라 합니까?”
evaṃ vutte āyasmā udāyī āyasmantaṃ sāriputtaṃ etadavoca — “kiṃ panettha, āvuso sāriputta, sukhaṃ yadettha natthi vedayitan”ti? |
3. “도반 우다이여, 여기서 느껴지는 것이 없는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etadeva khvettha, āvuso, sukhaṃ yadettha natthi vedayitaṃ. |
도반이여,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이 있습니다. 무엇이 다섯입니까?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입니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觸]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입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반연하여 일어난 행복과 기쁨을
감각적 욕망의 행복이라 합니다.”
4.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머물 때 감각적 욕망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1)이 일어나면(*2)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행복한 자에게 병날 만큼의 괴로움이 일어날 수도 있듯이, 그에게 감각적 욕망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병이 바로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1) ‘감각적 욕망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은 kāmasahagatā saññāmanasikārā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것을 “감각적 욕망을 의지한(nissita) 인식과 마음 기울임”(AA.ⅳ.194)으로 설명하고 있다.
(*2) “‘일어난다(samudācaranti)'는 것은 마음의 문(mano-dvāra)에 일어난다는 말이다.”(AA.ⅳ.194)
5. “다시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머물 때 일으킨 생각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행복한 자에게 병날 만큼의 괴로움이 일어날 수도 있듯이, 그에게 일으킨 생각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병이 바로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6. “다시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희열을 빛바랬기 때문에 …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머물 때 희열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병이 바로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7. “다시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 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머물 때 평정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행복한 자에게 병날 만큼의 괴로움이 일어날 수도 있듯이,
그에게 평온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병이 바로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8.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물질[色]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머물 때 물질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행복한 자에게 병날 만큼의 괴로움이 일어날 수도 있듯이,
그에게 물질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병이 바로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9.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의식[識]라고 하면서 식무변처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머물 때 공무변처와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행복한 자에게 병날 만큼의 괴로움이 일어날 수도 있듯이,
그에게 공무변처와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 병이 바로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10. “다시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머물 때 식무변처와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행복한 자에게 병날 만큼의 괴로움이 일어날 수도 있듯이,
그에게 식무변처와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병이 바로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11.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머물 때 무소유처와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행복한 자에게 병날 만큼의 괴로움이 일어날 수도 있듯이,
그에게 무소유처와 함께한 인식과 마음 기울임이 일어나면 이것은 그에게 병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병이 바로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12.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想受滅, 滅盡定. 인식과 느낌의 그침)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이유로도 열반은 행복과 같다고 알아야 합니다.”
출처 :
https://m.cafe.daum.net/vipassanacenter/MhEF/101?listURI=%2Fvipassanacenter%2FMhEF
대림스님 옮김 『앙굿따라니까야』 제5권 456-460쪽
일부용어 수정.
첫댓글 고맙습니다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