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용서의 기다림 / 누가복음 3:1-6
세례 요한은 광야생활 중에 요단강 유역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proclaim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forgiveness of sins)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하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로 요한에게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말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입니다. 무슨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이것이 대림절 셋째 주일에 우리가 묵상해야할 주제입니다.
“회개의 세례”는 <행위>이고 그 <목적>은 “죄의 용서”입니다.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회개하는 것인데, 회개의 외적 상징이 물로 씻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생각 없이 물로 몸을 씻으면, 회개와 거리가 먼 행동이 뿐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회개(μετανοια, 메타노이아)는 “잘못을 뉘우침”이라는 이해보다 더 깊은 뜻을 지녔습니다. 심한 후회이기도하고, 마음을 바꾼다는 뜻도 있습니다. 어원을 살펴보면, 아주 깊은 숙고를 한 후에 마음을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면 이제 더 이상 그 방향으로 갈 수 없습니다. 돌아서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원칙이고, 사람은 회개한 뒤에도 같은 잘못이나 실수 또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왜 그럴까요? 네 가지 경우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는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숙고하지 않고 일단 회개부터 하고보는 습관에 빠진 경우입니다. 둘째는, 잘못을 인지하고 회개하지만,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잘못을 반복하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자기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겉말로만 회개하고, 하던 대로 다시 계속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최악이지요. 네 번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깊은 숙고 끝에 마음을 돌이키기로 작정하고,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경우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죄의 용서”를 받으면,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가 말끔하게 사라진다고 착각합니다. 죄의 용서란 원래 “죄로 인해 받을 벌의 면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행위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임을 가슴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용서(ἄφεσις, 아페시스)란 죄로 인한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죄를 심판자의 시야 밖으로 치워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용서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저지른 죄의 행위조차 없던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받는 용서가 “쉬운 용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잘못을 아예 없었던 것으로 싹 지워주어야 용서가 되는 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ἁμαρτία,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도 반드시 묵상해야합니다. 죄는 “악행”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그 범주가 넓습니다. 어원으로 보면, “표지를 놓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초행 등산길에 보이는 나뭇가지에 매어 놓은 리본들은 반드시 이 길로 가야 한다는 표시입니다. 그것을 놓치면 길을 잃어 난감한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란 “자신이 가야할 길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남에게 책임을 져야할 잘못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기가 자신에게 책임져야할 엇나감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뒤틀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정도에서 벗어나있는지 깨닫고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마음을 돌이켜야한다. 그 상징으로 씻음을 받으러 나오라.” 그래서 그런 마음의 깊은 준비도 없이 물로 씻기를 바라고 온 사람들에게 요한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퍼부었던 것입니다.
대림절 3째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맺어야할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자기의 마음에 대한 깊은 묵상과 더불어 뒤틀린 마음이 있다면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받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하고, 용서하는 일을 너무 어렵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인용한 구약성서 이사야서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자신의 선포가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대림절에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는 우리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가 된 것이 우리에게 기쁘고 행복한 일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024년 12월 15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