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12.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창 14:14~20
*제목; 창세기 읽기(15) 지금이야 말로 믿음으로 바로 설 때이다!
프롤로그. 우리의 신앙을 솔직히 돌아보아야 한다!
헬스장 화장실에 벽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고 한다.
“만일 물만 먹어도 살이 찌고 있다면, 당신이 물처럼 먹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 믿음의 인생이 고통 속에 있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초등1,3학년 형제가 교회 예배를 출석하다가 입구에 서 있는 팻말을 보게 되었다.
“이단 출입금지!”
1학년 동생이 물었다. “형아, 이단이 뭐야?”
3학년 형이 대답한다. “예수님 잘 안 믿는 사람들을 말해.”
그러자 1학년 동생이 겁먹은 눈으로 말한다. “그럼 우리 들어가도 되나?”
3학년 형이 이렇게 대답한다. “마, 그냥 모른 척 하고 들어가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렇게 모른 척할 일 아니다. 영원한 생명과 인생의 은혜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따지고 ‘바로 믿고 있는 지’를 살펴야 한다.
당신은 예수님이 당신 안에 있는 것을 믿는가?
당신은 그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는가?
당신은 그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가?
이것이 믿음과 구원과 천국의 증거이다!
우리 진짜 바로 믿어야 한다.
1. 세상은 지금 전쟁 중.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말세에 일어나는 징조에 대해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마 24:3~13’에 나와 있다. 다함께 찾아보자.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3~13)
먼저는 이단과 사이비가 성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둘째는 난리와 전쟁의 소문이 넘칠 것이라고 하신다.
셋째는 기근과 지진(자연재해)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넷째는 박해와 불법 그리고 ‘사랑 없음’이 넘쳐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이 바로 그렇다!
특별히 네 번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 더 구체적으로 기록해놓았다. ‘딤후 3:1~5’을 보자.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무정하며, 선을 좋아하지 않으며, 배신하며, 쾌락을 추구하며, 믿음의 백성들조차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있는 상태가 된다. 즉, 외형만 신앙인이지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 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는가? ‘아... 세상은 말세구나!’ 그러나 우리가 믿음 없는 것이 문제이지, 믿음을 가진 참된 백성이라면 ‘이제 곧 주님을 만나게 되겠구나. 놀라운 천국이 완성되겠구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전자라면 이제라도 다시 돌이키자.
인간이 이렇다. 늘 영원한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도 모르고, 이렇게 하나님의 세상을 망치고 있다. 아브람 시절에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이다.
“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창 14:1~3)
당시 아브람이 거주했던 땅은 소돔과 고모라 지방이었다. 이 지역은 소돔, 고모라, 아드마, 시납, 스보임의 5명의 왕이 연합하고 있었고, 이들을 시날과 엘라살과 엘람과 고임의 4개국 연합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돔 지역의 연합국이 시날 지역의 연합국에게 더 이상 조공을 바치기가 싫어졌는가 보다. 그래서 반기를 드는데, 오히려 시날 지역 연합국에게 대패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고, 모든 재산을 빼앗기게 된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누가 거주하고 있었나? 아브람의 조카 롯이 기름진 땅을 혼자서 차지하겠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쟁에 휩쓸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가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을 보니 두 가지 생각이 난다. 첫째는 반드시 죄는 죄대로 간다는 것이다. 욕심을 부린 롯이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둘째는 그래서 세상사 모두 “새옹지마”이다. 좋다고 좋은 것만 아니며, 어렵다고 어려운 것만 아니다.
2. 아브람이 롯을 구하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람이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왕”이었기 때문이다.(순종왕+예배왕+사랑왕)
그래서 그 동안 집안에서 훈련시킨 318명의 군대를 이끌고 롯을 좇아간다. ‘창 14:14~16’을 보자.
“1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창 14:14~16)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훈련된 군대이지만 고작 318명으로 4개국 연합군을 물리친 것이다. 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창 14:18~20’을 보자.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14:18~20)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타난 이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도와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그랬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으면, 우리 삶을 하나님이 도우신다.
그래서 그 고백으로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다. “십일조”의 유래이다. 우리 삶을 하나님이 지키셨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는 우리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
3. 정리
세상의 난리와 전쟁의 소문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대하라.
그리고 내 안에 믿음 없음과 사랑 없음을 회개하라.
죄는 죄대로 반드시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지키신다.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십일조”이다. 철저한 십일조의 생활, 신앙고백의 생활을 하라.
첫댓글 이 설교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핵심 원동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헬스클럽의 문구를 인용하며, 신앙 성장이 정체되는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갉아먹는 잘못된 습관과 말을 물처럼 마시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단 318명으로 대군을 물리친 성경 사례를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도 주님과 함께라면 승리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말세의 징조 속에서 두려워하기보다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여 내면의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을 살 것을 독려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신앙의 본질이 단순히 겉모습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주님을 매 순간 기억하는 데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