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내장터기미독립운동기념비(己未獨立運動紀念碑)
1919년 4월 1일 소이면 한내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를 건립하였다.
-비문- 『뜬구름 부는 바람 흐르는 물도 이곳에 멈추어 묵상할 진저, 눈 감으면 들려오는 그날의 함성, 펄럭이는 태극기 절규하는 만세소리 국치의 울을 드디어 폭발하였으니 기미년(1919년) 양4월1일 한내장날에 구름처럼 모여든 군중들 손에 태극기 높이 들고 독립만세 외치며 왜적에 항거하니 아아 그 의기도 잘 할시고 이 의거를 주도한분 김을경, 이중곤, 권재학, 추성열, 이교필, 이용호 등 사전에 밀의하여 만반에 준비 갖춘 연후 거사날 당도함에 태극기 나눠주고 독립선언문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 외치며 수천 군중 시위하니 장하도다 배달의 얼 봄 하늘에 사무치다. 선두에 나선 김을경, 이중곤은 노도같은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에 몰려가서 면장을 끌어내어 "당신은 조선 사람이 아니냐 불응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앞세워 독립만세 부르다가 왜경에 체포되니 이에 격분한 권재학이 군중을 이끌고 달려가서 주재소를 포위하고 "왜 죄없는 그들을 체포하느냐", 즉시 석방하라 달려들어 주재소 문을 차 부수며 호통치고 추성렬, 이교필은 "아무도 돌아가지 말고 김을경, 이중곤을 석방토록 하자" 소리쳐 귀가자를 제지하며 군중에 솔선하여 가세하고 이용호지사 또한 끝까지 군중을 이끌고 시위하던 중 충주수비대 수십명이 출동하여 무차별 총격하는 만행으로 12명이 순국하고 수 십명이 부상하였다. 마침내 여섯분 지사 모두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원에 송치되어 김을경 징역 1년6개월 이중곤, 권재학 징역 각1년 추성렬, 이교필 징역 각6개월 이용호 태형 90도의 형을 받고 모진 옥고와 수회를 겪었다. 이제 기미년을 다시 맞이함에 지방유지 한데 모여 기미 독립운동 추념비 건립 위원회를 결성하고 왜적의 총칼 앞에 맨주먹으로 항쟁했던 이 고장 애국지사의 거룩한 독립정신을 높이 선양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뜻을 모아 이곳에 추념비를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