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수난의 성 금요일입니다.
어제인 세족 목요일에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성 토마스 소년 합창단의 연주로 <요한수난곡>을 듣고 왔습니다.
초연된 장소에서 듣는 연주는 늘 각별한 의미를 줍니다.
문득 작년 성 금요일과 부활절 무렵
제가 웹진 기고용으로 집필했던 글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가사 번역도 직접했답니다.
부족한 점 많지만 성 금요일의 의미를 다함께 되새기는 기회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
*
봄입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부드러운 바람, 찬연한 햇살, 눈부신 신록, 상큼한 공기의 냄새에
마음이 들뜨는 봄입니다.
해마다 부활절 일요일을 지나면서 봄은 무르익습니다.
부활절을 뜻하는 영어의 easter와 독일어의 Ostern은
봄의 여신을 가리키는 고대 게르만어 아우스트라에 그 어원을 둔다고 합니다.
고대인들에게 봄이 오는 것은 예수의 부활만큼이나 경이로운 기적이었겠지요.
예수가 탄생하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봄이 오는 이 길목에서 봄의 여신을 찬양하는 축제를 즐겼습니다.
겨우내 헐벗었던 자연이 죽음의 그림자를 벗고
빛나는 새 생명을 꿈틀꿈틀 잉태하는 계절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내린 초월적인 힘에 경외감을 느끼는 계절입니다.
충만한 기쁨에 젖어 이 계절을 누릴 때면
인간에게 본연적으로 내재한 소박한 종교적 본성이 싹터오릅니다.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린 한 송이 작은 꽃을 바라보면서
이 봄을 맞기까지 그 조그만 생명이 감내했을
길고 지루하며 혹독했던 겨울의 시련을 되새겨 봅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겨울은
견디기 힘들고 가혹한 고난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의 기쁨이 찾아오기 전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은 부활축일이었고
그 이틀 전 금요일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성 금요일이었지요.
성 금요일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며 참회하는
약 6주에 걸친 기간은 사순절이라 합니다.
*
올해 사순절 기간 국내에서는
예수 수난을 다룬 작품들을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프 크라이스트>가 성 금요일을 앞두고 개봉했으며,
서점의 진열대에는 관련 서적들이 가득 자리 잡았읍니다.
3월에는 <와호장룡>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던 탄둔이 내한하여
<신 마태수난곡-워터 패션> 공연을 선 보인 한편,
바흐가 칸토르로 재직했던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합창단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감동적인 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바흐가 이 곡의 총보에 자필으로 적어둔 제목이 말해주듯
'마태의 복음서에 따른 우리 주 예수의 수난'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신약의 가장 앞에 위치한 마태 복음 중 26장과 27장 전체,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부분부터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한 후 무덤에 안장되기에 이르는 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두 세기 앞서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의 풍부한 의미를 담아 번역했던
신약 성서 중 마태복음의 26~27장을 낭송합니다.
성경의 구절을 낭송하는 중간에는
그 내용에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아름다운 아리아와 합창, 찬송가가 흐르며,
이 아리아들은 대부분 피칸더라 불리웠던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헨리치의 시를 노래합니다.
*
음반을 통해 감상을 시작하는 순간은 음악이 흘러나올 때부터일까요?
나는 음반을 꺼내 들면서 감상을 시작합니다.
음반의 케이스를 바라보며 그 속에 담긴 음악의 의미를 음미하기도 합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마태수난곡> 음반을 감상하기에 앞서
그보다 60여년 전에 하인리히 쉿츠가 작곡한 <마태수난곡>의 음반을 보면
작품의 의미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쉿츠는 라이프치히에서 멀지 않은 드레스덴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접하면 바흐 이전 중부 독일 수난곡 양식의 발전사를 일부 짐작하게 됩니다.
아리아와 합창과 찬송가를 포함하는 바흐의 수난곡과 달리
쉿츠의 수난곡은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의 낭송만으로 간결하게 이루어집니다.
도입부와 종지부 합창을 제외하면 말이지요.
이렇게 복음사가의 기록을 비교적 가감없이 전달하는 작품의 성격 때문인지
쉿츠의 <마태수난곡> 음반에는 예수님이 아닌 마태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렘브란트 <천사와 함께 있는 복음사가 마태>
엄숙하게 긴장한 모습으로
천사가 들려주는 하늘의 복음을 기록하는 복음사가 마태의 모습입니다.
네 개의 복음서 중 마태복음이 지니는 특유의 성격과
마태의 복음서가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예수님의 상을
마태의 모습을 통해 한번 되새겨 보게 됩니다.
반면 바흐 <마태수난곡> 음반의 케이스에는
예수님의 수난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에 충실한 작품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란치스코 드 수르바랑 <아뉴스 데이 -하나님의 어린 양>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음반으로
가독성이 뛰어나고 디자인 시스템이 빼어나며 세련된 북릿을 가진 케이스입니다.
이 케이스에서는 스페인 바로크 화가 프란치스코 드 수르바랑의 작품을 선택하여
죄 없이 희생된 예수님의 순결하고 애처로운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로지에 반 데어 바이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필립 헤레베헤가 지휘한 이 음반에서는
로지에 반 데어 바이덴의 작품 세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주변을 암흑같은 검정색으로 처리하고
예수님의 얼굴을 클로즈 업하여 부각시킴으로써
그 표정에서 우러나는 비애의 감정을 숙연하게 느끼도록 합니다.
힘겹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고개를 떨군 예수님의 목 위에서
음반 타이틀의 글자열이 십자 형태를 형성하며 짓누릅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단화-십자가의 그리스도> 중간 패널을 닫은 모습
구스타프 레온하르트가 지휘한 이 음반은
아르농쿠르나 헤레베헤 음반의 케이스처럼
세련되고 산뜻한 디자인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 음반을 꺼내는 매 순간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그뤼네발트의 작품을 채택한 아트 디렉션 때문입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육체'의 고통을 극대화한 점에 있어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컨셉에 매우 근접해 있습니다.
이 작품 속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답게 신적으로 초연한 표정을 짓지도 못했고,
상처없는 매끈함과 아름다움으로 성스럽게 보이는 육체를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입을 벌리고 고통에 뒤틀린 채 신음하는 예수님의 모습에는
비참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육신의 굴레가 씌워져있습니다.
앙상하게 드러나서 보기 흉한 갈비뼈,
이미 시체처럼 검게 부패해가는 피부,
통증에 못이겨 긴장한 근육,
십자가가 휘어질만큼 견디기 어려운 육체의 무게,
예수님 역시 육신을 입은 인간이었다고 이 작품은 말합니다.
이 제단화는 본래 피부병 환자들을 수용한 병원에 있었다고 합니다.
피부가 썩어들어가면 환자들은 팔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그 극심한 고통을 삭이며 그들은 이 제단화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림 속에는 마치 그들 자신처럼 고통받는 예수님이 계셨고,
시체처럼 변색한 예수님의 피부에는 가시가 박혀있었습니다.
이 케이스를 잘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오른팔이 어깨에서 끝나는 부분에 그어진 흰 수직선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하얀 선은 인쇄상의 착오도, 제작 공정상의 실수로 긁힌 자국도 아닙니다.
이것은 제단화가 펼쳐지는 갈림새입니다.
제단화를 펼치면
마치 피부병 환자들의 팔다리를 잘라내듯이,
예수님의 팔 한쪽도 절단되어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몸이 갈라지면서 제단화가 열리는 순간
그 오른쪽 날개의 안쪽에서는
환희에 차서 부활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적처럼 찬란하게 드러납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단화-그리스도의 부활> 오른쪽 날개를 펼친 안쪽 세부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들은 이 장면을 보고 영적으로 고취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현세에서 맞는 고통을 쓰다듬어주었을 이 작품을 대할 때면
나는 인간적인 연민에 마음이 아른거립니다.
*
바흐는 <마태수난곡>에서 육체의 고통을 이처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고뇌는 육체적이기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그러나 그 고뇌를 인간적인 관점으로 충실하게 담아낸다는 점에 있어서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와 질감이 비슷한 감동을 줍니다.
작품 속에서는 인간 예수님와 인간 베드로와 인간 유다와 인간 빌라도가 번민합니다.
그 중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의 치부는 인간적이고도 또 인간적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버린다 해도 자신만은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감람산에서 장담하던 제자가 베드로였고,
예수님이 체포되어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을 당할 때
그래도 홀로 그 곳 안뜰까지 따라들어가 예수님을 지켜보았던 유일한 제자가 베드로였습니다.
조금 과격하고 성급한 성품을 지니기는 했지만
비겁하게 스승을 배신할 것 같지는 않았던 그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며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장면을 어느 복음서보다도 극적으로 제시합니다.
점층적으로 증폭되는 긴장의 끈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