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이라는 새로운 유희의 장르가 탄생한 이래 어느덧 게임은 단순한 놀이의 영역을 넘어 문화산업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게임의 역사와 명멸을 함께 했던 수많은 플랫폼에 걸쳐서 다종 다양한 게임들이 발매됐고 이는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어떤 게임을 선택해야 할지 갈등하게 만드는 요소, 말하자면 새로이 떠밀려온 정보의 홍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정보의 홍수에서 플레이어는 어떤 게임이 자신에게 적합할 수 있는 작품일지를 사전에 걸러내기 위한 거름망을 필요로 하게 됐고 이러한 수요와 맞물려 탄생한 새로운 정보 매체가 바로 게임잡지이다. 세계 최초의 비디오게임 잡지는 1981년 11월 영국에서 창간된 Computer and Video Games이며 2주차이로 미국 최초의 게임잡지 Electronic Gaming Monthly가 창간됐다. 비디오게임산업의 중심지인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초창기의 PC전문지를 통해 게임이 소개되는 정도였지만 1984년 12월에 소프트뱅크에서 Beep라는 잡지를 창간하면서 게임 전문 잡지의 역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하게 초창기에는 PC잡지의 게임코너를 통해 게임이 소개되는 정도였으나 1990년 8월 최초의 게임전문지 ‘게임월드’와 경쟁지 ‘게임뉴스’가 창간된 이래 수많은 게임잡지들이 창간과 폐간을 거듭해왔다. 이제는 인터넷의 보급과 각종 게임웹진의 탄생으로 인해 게이머들이 정보를 얻기가 예전보다 수월해짐에 따라 지면으로서의 게임잡지의 의의는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한 상태다. 그러나 한국이 온라인게임강국으로 떠오르기까지의 이면에는 지금의 게임업계를 일궈낸 인물들이 게이머였던 시절 그들에게 당시 얻기 힘들었던 각종 게임에 대한 정보를 공급했던 게임잡지들의 존재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한국 게임잡지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의의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2. 게임잡지 탄생 이전
1980년대 초반 국내에서의 게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당시 생겨나기 시작했던 전자오락실이란 곳은 불건전한 장소로 여겨졌으며 오락을 즐기는 아이들은 불량아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당연 게임에 대한 인식도 안 좋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문제들로 인해 당시 언론들의 게임에 대한 태도에서 잘 나타났다.
그러나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컴퓨터란 편리한 사무도구임과 동시에 대체로 꽤 뛰어난 성능의 게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는 국내에 8비트 PC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이에 맞춰 1983년 11월 PC잡지 ‘컴퓨터학습’과 ‘마이크로소프트웨어’가 창간됐다. 전문가 지향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는 달리 학생을 주 대상층으로 했던 컴퓨터학습이라든지 뒤이어 창간된 학생과 컴퓨터 같은 잡지에서는 주 독자층의 흥미를 끌기 위해 필연적으로 게임에 대한 기사를 수록했고 이는 국내 매체에서 게임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루게 된 효시였다.
물론 초기에는 위에 언급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게임에 대한 기사를 다루는데 조심스러웠으며 컴퓨터학습에서는 게임이 공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특집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처음 게임이라는 장르를 접해보는 청소년층의 흥미가 그 정도로 사그라질 수는 없는 법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게임 소개와 공략 코너가 잡지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갔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PC게임에 한정돼있었고 따라서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국내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아직 콘솔게임은 요원한 존재였다.
초창기의 컴퓨터 잡지 ‘컴퓨터학습’
컴퓨터학습 창간호에 실린 기획기사, ‘전자오락 공부에 어떤 영향을 주나’. 80년대 초의 게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최초의 단일 기종 전문지를 표방했던 MSX와의 만남. MSX 게임 소개의 중추 역할을 했다.
초창기 PC잡지 중의 하나 ‘학생과 컴퓨터’
‘학생과 컴퓨터’ 창간호에 실린 기획기사, ‘어드벤처게임 어떤 것이 좋은가’
3. 게임월드와 게임뉴스 - 최초의 게임전문지 탄생
1980년대 일본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닌텐도의 독무대였다. 수퍼마리오브라더스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패미컴은 일본에서만 1900만대 가량의 판매대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잘 알려진 가정용게임기라고는 대우전자에서 MSX의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만든 ‘제믹스’가 전부였다. 그런 패미컴이 1988년 무렵 국내에 소개됐고 그와 시기를 같이 해서 강력한 하드웨어 성능으로 무장한 세가의 16비트게임기 메가드라이브가 발매되면서 국내에서도 가정용 게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존의 PC게임잡지에 실리는 게임기사만으로는 유저의 욕구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게 된 1990년 8월, 한국 최초의 게임 전문지 ‘게임월드’가 창간됐고 뒤이어 경쟁지라 할 수 있는 ‘게임뉴스’가 창간됐다. 이러한 게임 전문지의 창간은 당시 정보에 목말라하던 국내 게이머들에게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초창기 게임잡지의 내용은 신작 게임의 소개와 공략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당시 국내 잡지사는 지금처럼 일본의 제작사로부터 직접 정보를 얻어올 수도 없는 환경이었기에 주로 일본의 잡지로부터 내용을 취득해오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다 보니 독자적인 컨텐츠도 부족했고 게임 공략 또한 제대로 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용이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많았으나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는 그나마도 귀중한 정보원이었다. 물론 일본어를 할 줄 알던 코어 게이머들은 용산 등지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던 일본의 게임잡지를 구입해 보기도 했다.
게임뉴스는 뒤에 창간된 게임챔프와 게임월드 사이에서 견디지 못하다 1992년에 격주간 잡지로 변신하는 등의 시도를 했으나 결국 1993년에 폐간됐고 게임월드는 역시 뒤이어 창간된 게임챔프와 게임매거진에 독자층을 빼앗겨 PC게임 기사를 동시에 수록하는 등의 시도를 하다가 1996년에 폐간됐다. 비록 많은 한계를 지녔지만 이 두 잡지는 한국에 생겨난 최초의 게임잡지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한국 최초의 게임 전문지 ‘게임월드’
4. PC게임잡지의 탄생과 성장
8bit시절 PC게임을 국내에 소개하는 메카였던 월간 컴퓨터학습은 1990년 제호를 월간 마이컴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16bit 잡지로의 길을 걷게 된다. 그와 함께 기존의 Apple과 MSX 위주였던 게임 기사에서 IBM PC용 게임 기사의 비중을 대폭 늘리게 됐다.
그러나 콘솔게임과 마찬가지로 PC게임도 점차 국내에 소개되는 타이틀의 수와 개별 타이틀의 볼륨이 늘어가면서 게임 정보에 관한 수요는 점차 일개 PC잡지에서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3년 무렵 국내 최초의 PC게임전문지 게임채널이 창간됐고 마이컴에서는 기존의 게임 기사를 게임컴이라는 별책부록에서 따로 묶어 내기 시작했다.
이후 1995년 8월 게임챔프의 자매지 PC챔프가 창간됐고 11월에는 KBS 영상사업단에서 게임피아를 창간했다. 기존의 콘솔잡지에서도 게임매거진의 Sofcom, 게임월드의 PC게임월드, 게임라인의 MYPC 등 별책부록으로 PC게임 기사를 수록하면서 국내에서 점차 커져가는 PC게임 시장에 대한 관심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이 시기에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잡지가 일본 Compile사가 창간했던 Disc Station의 한글판이다. MSX시절에 최초로 디스크 매거진이라는 장르를 히트시켰던 동 타이틀의 명맥을 잇는 잡지인데 컴파일의 간판 타이틀인 뿌요뿌요와 마도물어 시리즈에 관련된 여러 미니게임들과 각종 게임 데모버전을 CD에 수록해서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 좋은 반향을 얻었으나 결국 오래 가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 외에도 1990년대 중후반 이후 PC게임잡지 창간 러쉬가 이어졌다. 아하PC의 별책부록으로 나온 아하게임, 시공사에서 간행한 PC플레이어, 커뮤니케이션그룹의 PC게임매거진, 대원의 V챔프 등 여러 출판사에서 다종다양한 잡지가 창간됐다.
그러나 잡지시장이란 새로운 사업자가 참여한다고 파이의 크기가 커지는 게 아니고 한정된 쉐어를 참여한 사업자 수만큼 1/n으로 나눠먹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무리한 잡지 창간은 수많은 잡지의 단발적인 창간과 폐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나날이 커가는 것처럼 보였던 PC게임잡지 시장은 곧 결정적인 한파를 맞게 된다.
월간 ‘마이컴’의 별책부록 ‘게임컴’
새 이름을 달고 나온 마이컴(구 컴퓨터학습)
아하피씨의 부록으로 나왔던 아하게이머
PC Player 창간호
5. 콘솔 게임잡지의 춘추전국시대 – 게임매거진, 게임챔프, 게임라인
한편 게임월드와 게임뉴스로 대표되던 콘솔게임잡지 시장에 새로운 도전자가 출현했는데 그게 바로 1992년 12월에 창간된 제우미디어의 게임챔프였다. 당시로서는 신선하게도 게임음악 어레인지 CD를 부록으로 줬고 당시 국내의 잡지들과는 달리 일본의 게임잡지처럼 가운데에 철심을 박아 접는 방식의 중철제본을 하는 등 여타 잡지들과는 차별화된 노선을 선택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한편 1994년 11월 ㈜커뮤니케이션 그룹에서 월간 게임매거진이 창간됐다. 게임매거진의 특징적인 부분이었다면 당시 대표적인 콘솔기종을 클럽화해서 각 기종별 사용자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기종에 관련된 기사를 편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게임매거진이 국내 게이머들에게 끼친 결정적인 영향이 바로 국내에 TRPG를 최초로 보급했다는 점이다. 당시 게임매거진은 권말 지면에 매달 TRPG의 룰 소개와 리플레이 기사를 수록했고 별도로 Dungeons & Dragons, Sword World RPG 등 해외의 유명 TRPG를 국내에 번역 소개하면서 1990년대 중후반 국내에 TRPG 붐을 일으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게임매거진이 정통적인 게임 정보지를 표방했다면 1996년 10월에 창간된 게임라인은 얼핏 게임과는 무관해 보이는 다양한 기획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큰 인기를 모았다. 기자의 캐릭터화를 통해 특정 기자의 언행 등이 독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고 또한 기존의 잡지들에 비해 독자들이 참여하는 공간을 대폭 확대하면서 특정 단골 투고 독자의 팬층이 따로 형성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라인의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핵심 제작인력이 모두 빠져나오는 사태가 있었고 이들 인력이 다시 모여 1998년 10월 게임라이프를 창간한다. 그러나 이 게임라이프 또한 역시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단 2호만이 나온 채 폐간되고 만다. 그리고 그 일부 인원이 ㈜게임문화를 통해 ‘월간 플레이스테이션’을 새로 창간했고 이후 ‘게이머즈’로 제호를 변경한 이래 지금도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게임문화사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도를 하기도 했는데 일본에서 나오는 게임에 대한 평론만을 전문으로 하는 ‘게임비평’의 한국판을 내놓은 것이다. 일본판 게임비평의 기사 번역에 더불어 국내 필자진들로 구성된 독자적인 게임 비평을 수록했는데 비록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게임 문화의 다변화를 꾀한 시도만큼은 높이 평가할만한 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서 많은 콘솔잡지들이 창간과 폐간을 거듭하기도 했다. 게임정보, 3DO Alive, 겜통(후일 ‘수퍼게임’으로 제호 변경), 게임2001, 왓츠 등 많은 잡지들이 반짝 했다 스러져갔다. 이는 야심차게 시도를 했으나 앞서 PC게임잡지의 예에서 설명했듯 잡지 시장이란 쉐어가 한정돼있기 마련이고 신규 잡지가 기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잡지의 쉐어를 뺏어와야 하는 시장에서 기존 잡지들의 구독자들을 끌어올 만한 독자적인 컨텐츠 구성이 미흡했던 점이 주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 시기의 게임잡지들이 가진 중요한 기능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가 게임공략, 둘째가 애니메이션 소개였다. 게임의 한글화란 요원하던 시절이었던 당시 일어를 할 줄 모르던 국내의 게이머들에게 있어 잡지에 공략이 실리는지의 여부는 그 게임의 플레이 가능 여부에 직결되는 문제였다. 또한 정보에 목말라하던 당시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있어 게임잡지에 실린 짤막한 애니메이션 소개기사들은 일본잡지가 아니면 애니메이션 정보를 구할 수 없던 당시 귀중한 정보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