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고양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사는 집의 계약서에는 '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항목이 들어 있습니다. 그저 온갖 고양이들을 '팔로우'하는 '랜선 덕질'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동생네가 고양이를 키웁니다. 그래서 동생네 가면 만사제쳐두고 고양이를 영접하러 갑니다. 그런데 개만 키워봤던 저는 맘만 앞서서 개 대하듯 고양이를 대하다 손에 스크래치를 내거나 솜방망이로 몇 대 맞기 십상이지요. 그래서일까요. 다비드 칼리의 <난 고양이가 싫어요>가 흥미롭습니다.
고양이가 싫다는데
제목에서는 분명 고양이가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괄호 열고 '러브스토리'랍니다. 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일까요? 작가는 초록눈의 줄무늬 진저와 호박색 눈을 가진 검은 고양이 프레드를 키웁니다. 말이 고양이지 두 '묘생'의 스타일이 다릅니다.
이웃집 닭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진저와 달리, 프레드는 주로 하얀 옷이나 시트 위에서 잠자기를 즐기는 얌전한 고양이입니다. 하지만 가끔 선물이라고 검은 물체를 흘리고 가거나, 숨바꼭질을 한답시고 작가의 책상에서부터 온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 데 있어 두 고양이는 일심동체입니다. 결국 참지 못한 작가는 소리지릅니다. '이건 정말 아니잖아!'
작가가 화난 걸 알고 내뺀 고양이들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흔적도 없습니다. 이들의 '별거'는 얼마나 갈까요? 까만 밤 작가의 침대 위에 눈동자 세 쌍이 또록또록, 불을 켜니 진저와 프레드가 작가에게 엉켜있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난 정말이지 고양이가 싫어'라고.
말썽을 부리고 거기에 악다구니를 하고. 그래도 결국은 함께 하는. 가족이 별 건가요. 이게 가족이죠. 그래서일까. 이 책의 부제가 '러브스토리'인 것처럼, 작가의 싫다는 그 말이 달콤한 사랑 고백처럼 들리네요. 그보다 더 귀여울 수 없게 안나 카롤리가 그린 털뭉치 두 마리와 함께 온기를 나누며 잠드는 밤, 부럽습니다.
<난 고양이가 싫어요>는 우리랑 다른 존재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이란 결국 '다름'을 기꺼이 품어 안는 것이겠지요. 기쿠치 치키가 쓰고 그린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화지 위에 먹을 이용하여 수묵화처럼 검은 고양이 흰고양이의 대비된 색감과 표정을 고스란히 살려냅니다.
사랑이 익어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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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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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의 까만 털과 하얀 털을 좋아했고, 그래서 언제나 함께 다녔어요. 검은 고양이와 달리 흰 고양이는 눈에 잘 띕니다. 심지어 수풀에 가면 초록색으로, 흙장난을 하면 갈색으로, 나뭇잎 사이에서는 노란 색으로 물들어 그곳의 동물들이 흰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마을로 내려오자 사람들은 '하얘서 이쁘다'며 흰 고양이만 예뻐했습니다. 검은 고양이도 말합니다. "너는 노을빛으로 물들어서 예쁘구나, 나는 그냥 까만데."
어떤가요? 살아오며 이런 경험을 다 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 칭찬받는 형제들 사이에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수그려졌던 기억, 학창 시절 공부 잘 하던 친구 옆에서 한없이 작아졌던 기억, 나란히 출발한 것 같건만 어느덧 검은 고양이처럼 사람들의 시선에서 빗겨간 자신을 발견했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몸둘 바 몰라했던 기억 말입니다.
밤길에 몸을 숨긴 검은 고양이는 흰 고양이의 부름에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검은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싶었던 적이 있었죠. 가족이기에, 친구이기에, 그리고 연인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복잡했었습니다.
우리도 흰 고양이처럼 세상 사람들의 눈에 이쁘게 보이고 싶지요. 흰 색이나 검은 색은 그저 타고 난 색일 뿐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모습으로 인해 세상의 평가가 정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실재'는 다를 수 있답니다. 같은 고양이라도 종류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답니다. 야행성 동물인 고양이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 고양이가 상대적으로 온순한 반면, 눈에 잘 띄는 흰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까칠'하다네요. 또 다른 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쉬이 물드는 흰 고양이와 달리, 자신의 색이 분명한 검은 고양이를 '개성이 강하다'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는 또 한편의 러브 스토리입니다.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검은 고양이의 꺾인 고개는 좀처럼 들려지지 않습니다. 알록달록한 꽃들이 활짝 핀 곳에서도요. 그때 흰 고양이가 말합니다. "예쁜 꽃이 이렇게 많은데, 검은 고양이가 제일 눈에 띄네." 자신이 아름답다 말하는 메뚜기, 지렁이, 새, 그리고 사람들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은 채 흰 고양이는 내내 검은 고양이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흰 고양이였기에 알록달록한 꽃들 사이에서 검은 고양이가 돋보이는 것을 알아봐 주었습니다.
이뻐보이는 흰 털이라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보며 검은 고양이의 가치를 알아봐준 흰 고양이, 리고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랑'으로 당당하게 '나는 검은 고양이'로 거듭난 검은 고양이, 검은 털을 좋아하던 흰 고양이와 흰 털을 좋아하던 두 묘생이 진정한 사랑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수풀과 마을, 그리고 깊은 나무숲을 거쳐 알록달록한 꽃 세상에 이르기까지 '성숙'의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묘생과 인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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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猫生(묘생)이란 무엇인가 |
ⓒ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 관련사진보기 |
이영경 작가의 <猫生(묘생)이란 무엇인가>는 마음 아픈 하지만 어떤 작품보다 절절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아씨방 일곱 동무>, <넉점반>, <봉지공주와 봉투왕자> 등의 작품을 통해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선보였던 이영경 작가는 콜라주 기법에 얹힌 고경이를 통해 고양이란 동물이 가진 생생한 역동성을 살려내고자 했습니다.
猫生(묘생) 고경이의 이야기인가 싶던 이야기는 어느샌가 일상의 물레를 돌돌돌돌 풀어내며 이영경씨와 돌아가신 남편의 삶이 됩니다. 두 마리의 고양이처럼 아웅다웅 살아가던 어느 날, 아빠는 더는 고경이에게 '너, 묘생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묘생과 인생 사이에 있다던 '마음', 고경이의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에 대한 다하지 못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세 권의 묘생 이야기, 그를 통해 우리는 사람살이를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