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김정순
뻐꾹새가 쿠쿠 외
감자꽃 피는 산밭에서
한낮이 기울도록 울어대던 뻐꾸기
오늘은 쌀밥 가득한 밥솥에서 기름지게 운다
구수한 쌀밥 맛있게 지어 놓았다고
따뜻한 입김 폴폴 뿜어내며
뻐꾹뻐꾹 운다
뻐꾸기가 쿠쿠 밥솥에다 둥지를 틀었나?
저 숲속에도
누가
쿠쿠 밥솥 숨겨 두었는지
밥때가 되었다고
따끈한 밥 지어 놓았다고
봄볕 속에서
뻐꾸기가
쿠쿠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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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 내일은 없습니다 파랗고 빨갛게 물든 거리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아스팔트가 달아오릅니다 건물들은 귀를 막습니다 대화가 끊어집니다 빌딩은 창문 틈에도 방음막을 칩니다 방어막 속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치킨을 뜯습니다 금붕어 입만 벙긋벙긋 합니다 종말이라도 맞은 듯이...아우성치는 것은 유리 밖의 일입니다 파랗게 달아오르는 거리는 사람도 파랗습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거리는 사람도 빨갛습니다 이쪽과 저쪽의 두 세상만이 존재하는 오늘입니다 그 사이 유리 속 사람들은 치킨 접시를 다 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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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
1990년 《시와 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겨울 강변에서』, 『불면은 적막보다 깊다』가 있다. 사이펀 기획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