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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菩薩의 十種智慧助道具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智慧助道具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親近多聞眞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고 尊重禮拜하며 種種隨順하야 不違其敎가是爲一이니 一切正直하야 無虛矯故며 永離憍慢하고 常行謙敬하야 身語意業이無有麤獷하며 柔和善順하야 不僞不曲이是爲二니其身이 堪作佛法器故며 念慧隨覺하야 未曾散亂하며 慚愧柔和하고 心安不動하야 常憶六念하며 常行六敬하며 常隨順住六堅固法이是爲三이니 與十種智로爲方便故며 樂法樂義하야 以法爲樂하며 常樂聽聞하야 無有厭足하며捨離世論과 及世言說하고 專心聽受出世間語하며 遠離小乘하고 入大乘慧가 是爲四니一心憶念하야 無散動故며 六波羅蜜을 心專荷負하며 四種梵住에 行已成熟하며 隨順明法하야 悉善修行하며 聰敏智人에 皆勤請問하며 遠離惡趣하고 歸向善道하며 心常愛樂하야 正念觀察하며 調伏已情하고 守護他意가 是爲五니 堅固修行眞實行故며 常樂出離하야不着三有하며 恒覺自心하야 曾無惡念하며 三覺已絶하고 三業皆善하야 決定了知心之自性이是爲六이니 能令自他로 心淸淨故며 觀察五蘊이 皆如幻事하며 界如毒蛇하며 處如空聚하며 一切諸法이如幻如焰하며 如水中月하며 如夢如影하며 如響如像하며 如空中畵하며如旋火輪하며 如虹蜺色하며 如日月光하야 無相無形하며 非常非斷이며 不來不去며 亦無所住하야 如是觀察하야 知一切法無生無滅이是爲七이니 知一切法이 性空寂故며 菩薩摩訶薩이聞一切法이 無我며 無衆生이며無壽者며 無補伽羅며無心無境이며 無貪瞋癡며無身無物이며 無主無待며無着無行이라 如是一切가皆無所有하야 悉歸寂滅하고 聞已深信하야 不疑不謗이是爲八이니 以能成就圓滿解故며 菩薩摩訶薩이 善調諸根하야 如理修行하야 恒住止觀하며 心意寂靜하야 一切動念이 皆悉不生하야 無我無人하며 無作無行하며 無計我想하며 無計我業하며 無有瘡疣하며 無有瘢痕하며 亦無於此所得之忍과 身語意業하야 無來無去하며 無有精進하며 亦無勇猛하며 觀一切衆生과一切諸法에 心皆平等하야而無所住하며 非此岸非彼岸이라 此彼性離하야 無所從來며 無所至去하야 常以智慧로如是思惟가是爲九니到分別相彼岸處故며 菩薩摩訶薩이見緣起法故로見法淸淨하며見法淸淨故로見國土淸淨하며 見國土淸淨故로 見虛空淸淨하며 見虛空淸淨故로見法界淸淨하며 見法界淸淨故로見智慧淸淨이是爲十이니 修行積集一切智故라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智慧助道具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一切法無障礙淸淨微妙智慧聚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의 도를 돕는 도구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많이 들은 진정한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여 예배하며 갖가지로 수순하여 그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느니라. 이것이 하나이니, 일체가 정직하고 거짓이 없는 연고이니라.
영원히 교만을 여의고 항상 겸손하고 공경하며, 몸과 말과 뜻의 업이 거칠지 아니하고 부드럽고 순하여 허위하지 않고 사곡(邪曲)하지 않느니라. 이것이 둘이니, 그 몸이 능히 불법의 그릇이 될 만한 연고이니라.
생각하는 지혜가 깨달음을 따라 일찍이 산란하지 않고, 부끄러워하고 부드러우며, 마음이 안정하여 동하지 않고, 항상 여섯 가지 생각함을 기억하여 여섯 가지 공경함을 행하고, 여섯 가지 견고한 법을 따라 머무느니라. 이것이 셋이니, 열 가지 지혜로 방편을 삼는 연고이니라.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며, 법으로써 즐거움을 삼아 항상 듣기를 좋아하여 싫어함이 없으며, 세상 언론과 세상 이야기를 버리고 전심으로 출세간의 말을 들으며, 소승을 멀리 떠나고 대승의 지혜에 들어가느니라. 이것이 넷이니, 일심으로 생각하고 산란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육바라밀을 마음에 오로지 짊어지고, 네 가지 범천에 머무는 행을 이미 성숙하였으며, 밝은 법을 따라 모두 잘 수행하고, 총명하고 지혜 있는 이에게 부지런히 물으며, 악한 길을 멀리 떠나고 선한 길에 나아가며, 마음으로는 항상 바른 생각으로 관찰하기를 좋아하며, 자기의 감정을 조복받고 다른 이의 뜻을 수호하느니라. 이것이 다섯이니, 진실한 행을 견고하게 닦는 연고이니라.
항상 벗어남을 좋아하고 삼계[三有]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을 항상 깨달아 일찍이 나쁜 생각이 없으며, 세 가지 감각이 이미 끊어지고 세 가지 업이 모두 착하여 마음의 자성을 분명하게 아느니라. 이것이 여섯이니, 나와 남의 마음을 다 청정케 하는 연고이니라.
오온(五蘊)은 환술과 같고 십팔계(十八界)는 독사와 같고 십이처(十二處)는 빈 마을과 같음을 관찰하며, 일체 모든 법이 요술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물속의 달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영상과 같고, 공중의 그림과 같고, 돌리는 불의 바퀴와 같고, 무지개의 색과 같고, 해와 달의 광명과 같아서,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고, 항상하지도 않고 아주 없지도 않고, 온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무는 데도 없나니, 이와 같이 관찰해서 일체 법이 나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음을 아느니라. 이것이 일곱이니, 모든 법의 성품이 공적함을 아는 연고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이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오래 사는 것도 없고, 보특가라도 없고, 마음도 없고, 대상도 없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도 없고, 몸도 없고 물건도 없고, 주인도 없고 상대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고 행할 것도 없으며,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적멸한 데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는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고 비방하지 않느니라. 이것이 여덟이니, 능히 원만한 지혜를 성취하는 연고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모든 감관[根]을 잘 조복하여 이치대로 수행하며, 항상 그치고[止] 살핌[觀]에 머물러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흔들리는 생각이 나지 아니하느니라.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지을 것도 없고 행할 것도 없으며, 나라 하는 생각도 없고, 나라 할 업도 없으며, 상처도 없고 상처 자국도 없고, 또한 이것을 인식하는 알음알이도 없으며, 몸과 말과 뜻의 업이 오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고, 정진도 없고 또한 용맹도 없느니라.
모든 중생과 모든 법을 관찰하는 데 마음이 평등하여 머무는 데가 없으며, 이 언덕도 아니고 저 언덕도 아니어서 이것저것의 성품을 떠났으며,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으며, 항상 지혜로 이와 같이 생각하느니라. 이것이 아홉이니, 분별하는 모양의 저 언덕에 이르는 연고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연기(緣起)하는 법을 보았으므로 법이 청정함을 보고, 법이 청정함을 보았으므로 국토가 청정함을 보고, 국토가 청정함을 보았으므로 허공이 청정함을 보고, 허공이 청정함을 보았으므로 법계가 청정함을 보고, 법계가 청정함을 보았으므로 지혜가 청정함을 보느니라. 이것이 열이니, 행을 닦아 일체 지혜를 모으는 연고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의 도를 돕는 도구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모든 법에 장애가 없이 청정하고 미묘한 지혜의 무더기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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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지혜조도구(十種智慧助道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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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열 가지의 지혜 조도구라. 다섯 꼭지가 있는데 앞에는 의(義)와 법(法)을 묶어놓고, 여기는 복(福)과 지(智)를 묶어놓았다. 그다음에 명족(明足) 원만하게 된다. 그 다섯 꼭지를 묶어 놓았다.
앞에 나오는 다섯 가지 대목은 자분행(自分行)이라고 한다.
자분하고 승진(勝進)은 제가 여러 번 설명해 드려서 아실 것이다.
자분은 자기 학년에서 공부하는 것, 승진은 졸업 예정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여덟 단계 중에 또 세 단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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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에게는
유십종지혜조도구(有十種智慧助道具)하니 : 열 가지의 지혜 수행을 돕는 조도구가 있다.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소초를 하면 좋겠지만 넘어가겠다. 다음 달에는 어쨌든지 이세간품 58권을 끝내고 그다음 달에 59권으로 넘어가야 된다.
소위친근다문진선지식(所謂親近多聞眞善知識)하야 :곧 소위 친근다문이나 곧 많이 듣고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
선지식(善知識)이 사람 가운데, 인중(人中)의 최대인연(最大因緣)이라고 배웠다.
능화중생(能化衆生) 득견불성(得見佛性)케 한다.
우리에게 불성을 볼 수 있게 하는 사람은 우리 부모가 아니라 선지식이다.
경덕전등록에 보면 불타난제(佛陀難提)존자편에 나온다. 복타밀다를 보러갈 때 ‘부모(父母)도 비아친(非我親이라 부모도 나하고 친한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나오잖는가.
그만큼 우리가 뭘 공부해야 되는지, 경덕전등록 같은 데서 지시해 준다.
부모도 친한 분이 아니다,라고 하잖는가. 선지식이 가장 친한 사람이다. 참되고 훌륭한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공경공양(恭敬供養)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존중예배(尊重禮拜)하며:존중하여 예배하고
종종수순(種種隨順)하야 :여러 가지로 따르면서
불위기교(不違其敎)가 : 그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시위일(是爲一)이니: 이것이 첫째니
일체정직(一切正直)하야:모든 면에서 바르고 정직하다. 일체에 정직해야 된다. 어떤 상황이든지 당장 정직해야 된다.
무허교고(無虛矯故)며 :거짓되거나 교만하게 꾸미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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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교만(永離憍慢)하고: 두 번째는 영리교만하고 이건 아주 중요한 것이다. 교만을 영원히 떠난다.
근본번뇌 여섯 가지를 탐진치만의견(貪瞋痴慢疑見)라고 하잖는가. 탐진치가 많은 사람한테 반드시 따라오는 게 교만이다.
교만이 많은 사람은 못 깨닫고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주로 막 뜯어고친다. 옷도 찬란하고, 허황된 것이다.
교만을 영원히 떠나서
상행겸경(常行謙敬)하야: 늘 겸손과 공경을 실천하고
신어의업(身語意業)이: 말과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무유추광(無有麤獷)하며: 거칠거나 난폭함이 없다. 좀 난폭하던 사람들도 화엄경을 오래 하다 보면 조약돌처럼 매끄러워져 버린다.
유화선순(柔和善順)하야: 유화선순이라.
그러니까 초발심자경문에 뭐라고 나오는가.
두 사람이 싸우거든 부득악어상인(不得惡語傷人)하라. 악한 말로 남 말하지 말라고 나온다. 유화선순(柔和善順)하여 부드럽고 온화하며 잘 따르고,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안 지켜진다.
불위불곡(不僞不曲)이: 거짓이 없고 삐뚤어짐이 없다. 왜곡된 사람들은 교활하다. 교언영색한 사람 치고 교활하지 아니한 자가 없다.
시위이(是爲二)니 :이것이 둘째이니
기신(其身)이: 몸이
감작불법기고(堪作佛法器故)며:불법을 담는 그릇이 되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기신이 감작불법기라 불법의 그릇.
입법계품 근본법회에는 이 불법을 담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비기기고(非其器故)라고 나온다. 그 사람은 그릇이 안 된다. 그 기(其)자 그릇 기(器)자. 그릇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처님의 찬란한 장엄을 다 보는데, 보살들도 다 보는데, 성문이나 이렇게 뛰어난 아라한들이 왜 못 봅니까?” 하니까 “그것은 비기기고니라. 그 그릇이 안 돼서 못 본다.”이렇게 나온다.
여기서 얘기하는 이세간품이 화엄수행자의 절정이다. 절정. 읽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조방 앞에 가면 꽃시장이 많은데 중앙시장 자유시장 해서 꽃꽂이 꽃이 있잖은가?
스님들 가보셨을 것이다. 거기 들어가면 꽃향기가 가득차 있는데 향기는 공짜다.
요즘은 제가 안 가봤는데 어릴 때 가서 보니까 ‘야, 이렇구나.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은 모여 있는 자체로도. 향기를 판 는 게 아니라, 그냥 돈 안 받고 향기가 가득하다’ 그렇잖은가?
경전이 이세간품 같은 경우 그런 느낌이 있다.
이천 가지로 답을 하는데 그냥 읽기만 해도 꽃시장의 향기같다. 그걸 못 느끼는가?
아이고 참, 뭘 그렇게 삭막하게 사는지 모른다.
저는 밤을 먹을 때 특징이 밤을 안 까먹는다.
밤송이 통째로 목구멍이 찢어져라 꿀꺽하고 넘겨버린다.
저는 망고 먹을 때도 망고 껍질만이 아니라 씨까지도 다 씹어 먹는다. 거짓말이다.
그 말의 낙처는 어디에 있는가?
엔간하면 껍데기하고 알맹이하고 분리해서 따지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면 향기가 막 느껴진다.
여기는 모조리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정반대의 이야기다. 기본상식과 교양을 완전히 뛰어넘어서 급이 다르다.
여기는 금메끼 도금해 놓은 금메달이 아니다.
완전 순금 덩어리로 그냥 던져 놓았다.
화엄경의 어디 안 그런 데가 없지만 이세간품이 특히 그렇다.
자유시장에 가면 꽃집들이 끝없이 있다.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향기롭다.
화엄경 읽을 때 특히 이세간품이 그렇다.
십지품도 너무 훌륭한데 너무 머리 아프고, 이세간품은 내가 해야 될 일만 딱 조목조목 써 놨다. 실천은 못 하는데 ‘이런 것이 인간이 가는 길이구나’ 싶다.
염혜수각(念慧隨覺)하야 :생각과 지혜가 깨어 있음에 따라 항상 알아차려서
미증교란(未曾散亂)하며: 한 번도 흩어진 적 없고
참괴유화(慚愧柔和)하고: 부끄러움과 참회가 있으며 양심이 참회 못한 일들, 지금 우리도 너무 많잖은가. 부끄러워서 사실은 숨기고 가린다. 듣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심안부동(心安不動)하야 : 마음이 평안하여 홍시가 되면 얼마나 보드리해서 부드러운가. 콩 그 딱딱하던 것이 두부를 해 놓으면 연두부 있잖은가. 보드리해서, 푹 삶겨야 된다.
생처(生處)는 방교숙(放敎熟)하고 숙처(熟處)는 방교생(放敎生)이니라. 서장(書狀)에 그렇게 얘기해놨는데도 우리는 잘못하면 막 더 거칠어진다.
마음이 편안하여 흔들림이 없다.
상억육념(常憶六念)하며: 늘 여섯 가지 염을 기억하고 육념, 또 육경 이것도 소초에 다 나와 있다. 여섯 가지는 이렇다.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요런 식으로 쭉 간다.
상행육경(常行六敬)하며: 여섯 가지 공경을 하며
상수순주육견고법(常隨順住六堅固法)이: 늘 여섯 가지 견고한 법에 순응하며 머문다.
시위삼(是爲三)이니: 이것이 셋째이니
여십종지(與十種智)로: 열 가지 지혜를
위방편고(爲方便故)며:성취하게 하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
주(住)는 믿음이 굳건하다 잘 버틴다.
행(行)은 법이 견고하다. 법에 대해서 잘 실천한다. 회향(廻向)은 수행이 견고하다. 아주 회향을 잘하고. 지(地)는 덕이 견고하다. 거룩한 덕이 나한테 있다.
덕망 있고 완전 군자, 덕망이 푹 쌓이면 성인군자라 하잖는가. 십지보살이 그렇다.
나아감이 굳건하다. 이건 등각이다.
깨달음이 굳건하다. 완전히 깨달음이 확실하면 더이상 할 게 없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되면 묘각이다.
십신을 바탕으로 해서 이 여섯 가지를 단단하게 한다는 것이다.
낙법낙의(樂法樂義)하야: 법을 즐기고 뜻을 즐긴다. 낙법낙의라.
이법위락(以法爲樂)하며: 법을 즐거움으로 삼으니
상락청문(常樂聽聞)하야 : 항상 듣기를 즐겨
무유염족(無有厭足)하며 :싫증이 없다, 쪼매하다가 튀겨버린다든지 안 온다든지 이런 게 아니다. 1교시 빵, 2교시 빵, 0교시 빵. 아이고.
사리세론(捨離世論)과: 세간의 논의와 말들을 버린다. 그 세상의 시간이 아깝다.
게임이라든지 영화를 보는 일, 한두 번은 괜찮지만 그런 것을 하면 하루 시간이 다 가 버린다. 차를 마시든지 이러면 하루하루가 금방 가 버린다.
급세언설(及世言說)하고:오로지 출세간의 말씀을
전심청수출세간어(專心聽受出世間語)하며: 집중하여 듣고 받아들인다.
오로지 출세간의 말씀을 전심청수출세간어, 화엄경에 이렇게 해 놨잖은가.
그럼 방에 가면 뭐가 있어야 되는가? 삼다수 물병만 하나 있으면 된다. 물병만. 도자기 다기 많이 갖다 놨다? 그만큼 생각이 복잡한 것이다. 차가 많다. 그만큼 인생이 지저분한 것이다. 방에는 뭐가 있어야 되는가? 삼의일발(三衣一鉢) 서장에 이렇게 해놨다.
삼조연하(三條椽下) 칠척포단(七尺蒲團)이라. 서까래 세 개 7척포단이라 자부동(ざぶとん 방석) 하나, 그 방석 하나 중노릇이 그래야 되는데.
우리부터 방이 몇 개나 되고 얼마나 많은지 보각사도 얼마나 넓은가. 오늘 대중공양을 하셨으니 내가 놔두고 넘어가야지, 안 떠들어야지, 우리 문수선원도 얼마나 넓은가.
삼조연하 칠척포단이 중살림살이라.
우리가 폼잡고, 스님들이 중 같다고 인정할 때는 어떤가? 그 스님들 우리 도반 스님들 방에 갔을 때 걸망 하나 딱 걸려 있고 끝이잖은가? 걸망 하나, 누비 하나.
걸망 하나.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요새는 떠나려도 저부터도 수용하는 것이 너무 많다.
옛날에는 불 끄는 게 일이었는데 요새는 밤새 불 켜놔야 된다.
원리소승(遠離小乘)하고 : 소승을 떠나
입대승혜(入大乘慧)가:대승의 지혜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위사(是爲四)니 :사는 것이 전혀 정반대가 되니까 이 글이 와 닿지가 않는다.
일심억념(一心憶念)하야 : 마음을 하나로 모아
무산동고(無散動故)며: 흩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우리 강당에 있는 스님들하고 앉아서 얘기했는데 치문 제일 번에 나오는 게 위산 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 상 나오고 하 나온다.
1은 뭔가? 부(夫) 업계수신(業繫受身)은 미면형루(未免形累)나오고 2에 가면 부(夫) 출가자(出家者) 발족초방(發足超方)하야 심형이속(心形異俗)하고 출가자는 모양이나 마음을 세속사람들하고 달리해서 승속이속 이렇게 나오잖는가.
그래서 위산스님이 두 편의 장문을 끝내고 나서 마지막에는 뭐라고 하는가?
내위명왈(乃爲銘曰) 그리고 명심해서 네 가슴에 새겨야 될 구절을 지금부터 출가인이니까 던져 주겠다.
그걸 평생 네 자산으로 구구단처럼 외우고 살아라.
환신몽택(幻身夢宅)이여, 이 허깨비 같은 몸뚱이여
공중(空中)에 물색(物色)이로다. 다 오온이 개공한 것이다.
전제(前際)가 무궁(無窮)컨데 후제(後際)인달 영극(寧剋)이냐?
이제까지 전생에서 그만큼 윤회를 돌고 돌아 또 후생에 가며 가며 끝도 없이 네가 윤회를 할 텐데
출차몰피(出此沒彼)하야 승침피극(昇沈疲極)이라.
여기 왔다 저기 왔다 돌고 돌고 그만큼 돌았으면 안 되었나? 이제 그만 돌아라 이 말이다.
제일 마지막에는 뭐가 나오는가?
육근(六根)이 이연(怡然)하면 오늘 배우는 그대로다.
안이비설신의가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리고 내 마음에 부대끼는 게 없으면 육근이 이연하면 편안하면 행주적묵(行住寂黙)하고 내가 가든지 머무르든지 내가 어느 처소에 살든지간에 시비가 없고 고요하고 행주적묵하고 일심(一心)이 불생(不生)하면 망상이 한 번도 돋아나지 않으면 만법(萬法)이 구식(俱息)이라, 마음법이 유식이라 하잖는가.
일체제법이 무아가 돼 버리니까 어떤 것도 시비가 없고 젖어들어서 적정처에 들어가서 아란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사람도 고요하고 인생살이가 고요하다. 아니면 시시비비 바람결에 밀가루 날리듯이 그냥 분탕질하고 살다 가는 것이다.
하나도 안 부러워야 된다. 중벼슬은 닭벼슬보다도 못하는데, 와각이라고 하잖는가. 달팽이 뿔이라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육바라밀을
심전하부(心專荷負)하며: 심전하부라. 육바라밀을 마음으로 온전히 짊어지고,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될 짐은 육바라밀이다.
사종범주(四種梵住)에: 네 가지 범위에
행이성숙(行已成熟)하며: 이미 성숙하게 머물며
수순명법(隨順明法)하야:밝은 법을 따라서 수순명법하야, 이러면 명법품 같은 것을 봐야 될 것이다. 18권 명법품.
실선수행(悉善修行)하며: 모두 잘 닦고
총민지인(聰敏智人)에: 총명한 지혜자들에게
개근청문(皆勤請問)하며: 부지런히 묻고 배우고
원리악취(遠離惡趣)하고: 악취를 멀리하고 못된 놈들 사는 데는 영원히 멀리하라.
그래 초발심자경문에는 뭐라고 나오는가.
출가자는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야 수오계십계등(受五戒十戒等)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니라. 단의금구성언(但依金口聖言)이언정 막순용류(莫順庸流)의 졸렬한 무리들의, 용렬한 무리들의 망설(妄說)이어다
허망한, 잡짓거리 같은 이상한 소리 듣지 마라.
악취를 멀리하고
귀향선도(歸向善道)하며: 선한 길로 돌아간다. 요런 걸 도가에서는 반박귀진(返璞归真)이라고 한다. 순박한 데로 돌아가고 진실로 돌아간다. 귀진, 귀순한다고 하잖는가. 귀향선도하고
심상애락(心常愛樂)하야:마음을 늘 즐겨서 심상의 애락이라. 가락이라고 하기도 하고 애락이다 하기도 하고
정념관찰(正念觀察)하며: 정념으로 관찰하고, 자신의 마음을 조복하여
조복이정(調伏已情)하고: 남의 뜻도 보호하는 것이다.
수호타의(守護他意)가: 수호타의가 내 마음도 내 욕심을 조금
주저앉혀서 남을 잘 돌보면서
시위오(是爲五)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고수행진실행고(堅固修行眞實行故)며:참된 행을 굳게 닦기 때문이다. 진실행 행을 닦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이세간품만 잘 보면 점쟁이 저리 가라다.
남 사주팔자를 금방 볼 수가 있다.
딱 와서 말 한마디 하는 것을 보면 ‘아이고 사업 되겠네, 안 되겠네’ 금방 안다. 진짜다.
이세간품만 잘 보면 사람을 잘 보고, 자기 자신도 많이 보아진다. 이것이 완전히 큰 거울이다.
거울은 이렇게 수미산만한데 쪼매한 우리, 수건 같은 것 하나 못 비치겠는가. 그 거울에 다 들어간다.
대원경상(大圓鏡上)에는 절친소(絶親疎)라.
상락출리(常樂出離)하야 :항상 벗어남을 즐겨서
불착삼유(不着三有)하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니
항각자심(恒覺自心)하야: 늘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항각자심하야
증무악념(曾無惡念)하며: 악한 생각이 전혀 없다.
생각할 게 없어서 그 못된 생각만을 하느냐? 악한 생각을 보복심이라고 한다. 복중에 제일 지저분한 복이 보복이라.
복중에 제일 훌륭한 복이 극복이다. 극복, 보복.
축구선수들도 남에게 태클을 당해서 쓰러져서 경고를 받았는데, 내가 태글 당했다고 그 사람에게 꿀밤을 한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하면 퇴장이다. 태클로 두드려 맞고 퇴장까지 당한다.
보복을 하면 끝없이 보복이 된다.
옛날 사람들도 아는 것이다.
2차대전 때 싱가포르 회의에서 어떤 수상이 남긴 어록이 있다. ‘서로 보복과 보상으로써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지나간 건 그렇다 치고 다 잊고, 앞으로 우리 어깨동무해서 같이 잘 살아야 된다’
보복을 해서 보상을 받는 것으로는 서로가 평화유지가 안 된다. 그건 거래잖은가. 생멸의 법이다.
불생불멸은 보복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자타카 본생담에서도 다 그렇게 나온다. 내가 이럴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전생에 너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금생이 이만한 결과를 안 받았겠나? 요것까지 받아서 내가 더이상 아상(我相)이 없으면 선세(先世)의 죄업(罪業)이 응타악도(應墮惡道)라도 즉위소멸(卽爲消滅)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보복을 한다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런 말이 있잖은가.
악한 데는 그런 말이 귀에 안 들어간다. 귀에 안 들어가야 제 소임이다.
삼각이절(三覺已絶)하고: 세 가지 그릇된 깨달음을 삼각이절하고
삼업개선(三業皆善)하야: 세 업이 모두 착하게 되고 선해지고
결정요지심지자성(決定了知心之自性)이: 마음의 자성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요지심지자성이다.
“어떻게 요지심지자성이 됩니까?”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즉견노사나(則見盧舍那)다.”
“과거 삼세불이 어떻던가요?”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라.”
시위육(是爲六)이니: 이것이 여섯째니
능령자타(能令自他)로: 자신과 남의
심청정고(心淸淨故)며: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남의 마음이, 없는 쪽으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으로 텅 비우는 것이다.
관찰오온(觀察五蘊)이: 오온을 관찰해서
개여환사(皆如幻事)하며: 모두 환상과 같음을 아는 것이다. 오온이 개공이 되면 분별사식이 끊어져서 정심지(淨心地)라고 한다. 그걸 환희지라고 하고 십지의 초지로 싹 들어가는 것이다.
계여독사(界如毒蛇)하며: 삼계는 독사와 같고
처여공취(處如空聚)하며: 12처는 텅 빈 마을과 같으며
일체제법(一切諸法)이: 일체제법이
여환여염(如幻如焰)하며:환영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여수중월(如水中月)하며: 물속의 수중월이라 수월과 같고
여몽여영(如夢如影)하며: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여향여상(如響如像)하며: 메아리와 같고 영상과 같고 일체유위법이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것이 제일 잘 나오는 데가 화엄경의 야마천궁게찬품 제19권에 각림보살장, 여래림보살장에 보면 이 대목이 너무나 잘 나온다.
참고해 보시면 된다.
화엄경 제19권이다.
19권 각림보살, 60권 화엄경에는 여래림보살이라고 나온다. 여래가 각(覺)이잖은가.
80권 화엄경에서는 각림보살이 아홉 번째 보살이다.
그 보살님 게송이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을 뭐라고 했는가?
‘그대여 과거의 삼세제불을 알고 싶으냐? 응관법계성하라.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고 대목에 나오는 게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 게송이고,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대목 도 있다. 마음이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와 같다는 것.
전부 오온으로 그림 그려제끼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누가 그리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리고, 말을 하면서도 누가 말하는 줄 모르면서 말을 하고 그러면서도 자기가 똑똑하다고 하는 게 참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한번만 이렇게 살짝 돌아보면 ‘아, 이거 아닌데’ 방거사가 이르시기를 ‘단원공제소유(但願空諸所有) 모든 있는 바도 없다고 해야 될지언정 절물실제소무(切勿實諸所無)라,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말아라’ 하였다.
헛것을 자꾸 이렇게 붙이면 안 된다는 말이다.
있는 것도 여몽환포영으로 봐야 되는데 없는 걸 자꾸 있다고 갖다 붙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망상 많고 못된 사람의 특징은 보이스 피싱하듯이 없는 걸 자꾸 있는 것처럼 부풀려서 얘기하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들은 자기가 어느 정도 높은데도 자꾸 ‘나 모른다, 잘 모른다’ 이렇게 얘기한다. 딱 답을 들어보면 안다.
여공중화(如空中畵)하며: 허공의 그림과 같고
여선화륜(如旋火輪)하며: 불밖에 도는 거 같고
여홍예색(如虹蜺色)하며: 무지개의 빛과 같고
여일월광(如日月光)하야: 해와 달, 빛과 같아서
무상무형(無相無形)하며: 상도 없고 형체도 없고 무상이고 무형이고 무형상이다. 안으로는 무성이고, 바깥으로 사(事)로 따지면 무상이요 이(理)로 따지면 무리라. 무리지(無理之)가 지리(至理)요 불연지(不然之)가 대연(大然)이다.
비상비단(非常非斷)이며: 항상하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고
불래불거(不來不去)며: 불래불거라. 오도 가도 안 하고
역무소주(亦無所住)하야: 역무소주라.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여시관찰(如是觀察)하야: 여시관찰하야 응관법계성하야 이와 같이 법계를 잘 관찰해서
지일체법무생무멸(知一切法無生無滅)이 :일체법이 무생무멸이라. 일체법에 본체가 심체가 없는 것이라. 무생무멸이라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아는 것이다.
시위칠(是爲七)이니 : 이것이 일곱째이니
지일체법(知一切法)이 :지일체법이
성공적고(性空寂故)며: 성공적고니라.대성암 스님 나와 버렸다. 성공이 적고니라. 성공스님은 적이다. 적(寂) 고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저 앞에 우리 시편에도 성공즉시불이 나왔다. 성공이 바로 부처다. 성공즉시불이라. 이름을 잘 지었다. 성공.
저는 이름이 별로 안 좋다. 용,학을 뗀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문일체법(聞一切法)이:일체법을 들음에
무아(無我)며:무아이며
무중생(無衆生)이며:무중생이며
무수자(無壽者)며:무수자며, 뒤에 다 나오는데 괜히 제가 설명했다.
무보가라(無補伽羅)며: 무보특가라며, 보특가라는 일반 구마라지마 금강경에는 안 나오는데 현장법사 금강경에는 꼭 보특가라상이 나온다.
아상 인상 보특가라상 있잖은가.
그대로 나온다. 흔히 인상이라고도 번역을 한다.
조금 개념이 다른가 보다.
무심무경(無心無境)이며: 마음도 경계도 없고
무탐진치(無貪瞋癡)며 : 탐진치도 없다.
탐진치가 사그라들면, 우리한테 오는 현상이 무엇인가. 사람이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진다. 편안해진다. 경안이라. 그러니까 그것도 오위백법.
몸이 안 편하고 마음이 왜 안 편한가? 탐진치가 많아서 안 편하다. 탐진치가 불사그라들듯이 좀 줄면 몸도 좀 홀가분해진다.
홀가분해지면 그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이 뭐냐? 경전공부하고 참선수행할 때 굉장히 힘이 덜 든다.
바라밀행을 할 때 부지런하게 말없이 꾸준하게 농부가 농사 짓듯이 부지런한 농사처럼 계속 열심히 하는 것이다. 아무 힘도 안 들이고, 무공용이다.
힘들고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앉아서,자연스럽게 공부하고 경전을 보든지 참선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한다.
억지생심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잖은가.
부지런해지면 어떻게 되느냐? 이제까지 자기가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서 하나하나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바로 고친다. 수리수리 마하수리가 되는 것이다.
그럼 바로 고쳐지고 잡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그런 것을 유심하게 그렇게 하다 보면 하루종일 자기하고 짝해서 자기가 살고 있다.
방거사의 게송에 일용사무별(日用事無別)이라는 것 있잖은가.
그 대목이 ‘아, 이런 구절이구나’ 자기가 자기를 하루종일 짝했다는 것이 있다.
번뇌가 다 끝나지 않았지만 서장의 이참정처럼 자도성중(自到城中)으로 포자농손(抱子弄孫)하대 손자하고 사는 모습은 똑같은데 역초경미(亦稍輕微)라. 또한 마음이 점점 홀가분해졌다.
부지런하고 마음이 홀가분하고 그러면 그 사람은 공명정대해진다. 사람이 나와 남이든지 내 편 네 편 하는 것이 없어진다.
상대가 옳다면 크로스보팅, 그쪽에 표를 던질 수 있는 마음이 된다.
결국 마지막에 우리한테 오는 조건이 부처님처럼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정직한 사람의 끝은 뭐냐? 첫째 출발점은 정직이지만 마지막엔 남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는다. 내가 손해본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해를 안 끼친다. 내가 손해본다는 생각이 없어야 해를 안 끼친다. 손해본다는 생각이 있으면 계속 억울해서 언젠가는 보복을 한다. 잊어버리는 것이 제일 낫다.
여기에 그냥 써 놓은 것 같지만, 이런 글이 없었으면 우리가 인간이 됐겠는가. 이걸 봐도 안 되는데.
무신무물(無身無物)이며 :몸도 없고 물건도 없고
무주무대(無主無待)며 :무주무대라. 주인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다, 원래 대(待)라 하기도 하고 반(伴)이라 하기도 한다.
주반(主伴) 화엄경의 주특기가 53선지식을 찾아갈 때, 주인이 있고 객이 아니라 옆에 반이 있다.
대통령이 있으면 비서실장이 늘 옆에서 보좌하며 따라다니는 것과 같다. 그걸 반이라고 한다.
도반처럼 주반이 있다.
십현문에도 나온다.
북극성이 있으면 그 주변에 뱅뱅 도는 북두칠성이 계속 옆에서 장엄을 해 주듯이.
무착무행(無着無行)이라: 무착무행이라. 집착의 행도 없다. 무착무행이라 없다는 것을 듣고
여시일체(如是一切)가 : 이 모든 것이 다 실체가 없어서
개무소유(皆無所有)하야: 개무소유라 이무소득 다 실체가 없어서
실귀적멸(悉歸寂滅)하고: 모두 적멸로 돌아감을
문이심신(聞已深信)하야: 그걸 듣고 확실히 믿어서
불의불방(不疑不謗)이 : 비방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의심하면 여우 족제비다. 호의불신(狐疑不信)이라고 금강경에 나오지 않는가.
시위팔(是爲八)이니: 이것이 제 여덟 번째의
이능성취원만해고(以能成就圓滿解故)며: 원만한 이해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원만한 이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선조제군(善調諸根)하야: 자기 안이비설신의를 잘 다스려서 무심하게 만들어서
여리수행(如理修行)하야: 이치에 맞게 수행하고
항주지관(恒住止觀)하며: 항상 사마타와 비파사나를 잘 챙겨 서
심의적정(心意寂靜)하야: 심의적정하야.
그러니까 오구심이라든지 오위백법이라든지 오온이라든지 이걸 부처님께서 얘기하는 사념처라든지 이와 같은 것들을 제대로 개념을 파악해야 수행을 한다.
일체동념(一切動念)이: 모든 움직이는 생각이
개실불생(皆悉不生)하야 :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기신론에는 이런 걸 갖다가 각즉부동(覺卽不動)이요 동즉유고(動卽有苦)라. 움직인다 하는 것을 업상이라 한다.
업은 다른 말로는 해석하면 업이 뭐냐? 기동이다. 작동이다. 동작이다. 동작하니까 행동이다.
12연기에 보면 무명이 연행한다. 행동 동작, 그럼 안 움직이면 어떻게 되는가. 부동즉(不動則) 각(覺)이라 움직이지 않으면 구래부동명위불(久來不動名爲佛)이라. 부동즉각(不動則覺)이요 동즉유고(動則有苦)라.
각심초기(覺心初起) 심무초상(心無初相)이라.깨달은 생각이 처음 있을 때, 업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상이다. 상 없는 것, 무상이 계속 착각해서 보태다 보니까 유상이 돼 버렸다.
무아무인(無我無人)하며: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며
무작무행(無作無行)하며: 짓는 것도 행하는 것도 없고
무계아상(無計我想)하며: 나라는 생각도 없고
무계아업(無計我業)하며: 내 업이라는 계산도 없다.
이것은 범행품에 보면 또 너무나 자세하게 나온다. 범행품에서 이 이야기를 다 하고 난 뒤에 열 가지 조건을 말하고 나서 마지막에 뭐가 나오는가?
지일체법(知一切法) 일체법이 즉심자성(卽心自性)이라. 모두 마음의 무자성인 자성으로 되어 있는데 성취혜신(成就慧身)에 부처님과 같은 지혜의 몸을, 육신 말고 지혜의 몸을 성취하는 데는 불유타오(不由他悟)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 남에게 빌리는 것이 아니다.
무아 속에서 진아가 있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서 초발심시에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초발심시변정각 그게 초발심공덕품 들어가기 전에 범행품 제일 끝에 나온다고 말씀드렸었다.
지일체법(知一切法) 즉심자성(卽心自性) 성취혜신(成就慧身)에 불유타오(不由他悟)라. 남을 말미암는 것은 아니다.
허공이 다른 데 기대는 것이 없잖은가.
허공이 기댈 데가 어디 있는가.
무유창우(無有瘡疣)하며: 상처도 흉터도 없고
무유반흔(無有瘢痕)하며: 무유반흔하고
역무어차소득지인(亦無於此所得之忍)과 : 여기서 따로 얻었다고 할 만한 인욕조차도 없고
신어의업(身語意業)하야:삼업에 있어서
무래무거(無來無去)하며:오고감도 없고
무유정진(無有精進)하며:정진도 없고
역무용맹(亦無勇猛)하며: 용맹도 없다. 용맹이고 정진이고 나발이고 용맹정진이고 보시고 지계고 인욕이고 이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범행품에는 육바라밀 중에 계율을 아주 중요시해서 딱 해 놨다. 삼보와 계율 그리고 삼업을 가지고.
정진도 없고 용맹도 없으며
관일체중생(觀一切衆生)과:관일체중생과
일체제법(一切諸法)에:일체제법에
심개평등(心皆平等)하야: 마음이 다 평등하여
이무소주(而無所住)하며: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선한법 악한법 유위법 무위법, 일체 모든 법에, 중도에서는 유위법이 무위법이고 무위법이 유위법이다.
그러나 그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유위법과 무위법이 철저히 달라야 된다. 아는 사람,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무위법이 바로 유위법이다.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이다.
심개평등하야 이무소주라.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응무소주다.
금강경을 보고서 무소주가 금강경에 나온다고 하지만, 화엄경을 봐버리고 나면 금강경이고 천수경이고 싹 다 따라오게 되어 있다.
비차안비피안(非此岸非彼岸)이라: 연기도 아니다. 이 언덕도 아니고 저언덕도 아니다. 저 언덕, 피안은 열반이 아닌가. 이 언덕은 생사열반본평등이라.
차피성리(此彼性離)하야: 피차가 이런저런 성품이 다 떠나고 무상이고 무성인데
무소종래(無所從來)며: 무소종래며
무소지거(無所至去)하야: 온 바도 없고 가는 바도 없다.
이거 우리가 많이 보던 것이다.
이래서 이세간품이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수제비 뜰 때 기분 좋게 반죽되는 것 있잖은가.
상이지혜(常以智慧)로: 항상 지혜로써
여시사유(如是思惟)가: 이와 같이 사유한다.
시위구(是爲九)니: 이것이 제 아홉 번째이니
도분별상피안처고(到分別相彼岸處故)며:분별의 상을 건너 피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도분별상피안처고니라.
*
열번째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견연기법고(見緣起法故)로: 연기법을 보기 때문에
견법청정(見法淸淨)하며: 법이 청정함을 보고, 연기가 공이니까 사실은 진공이니까
견법청정고(見法淸淨故)로: 법이 청정함을 보기에
견국토청정(見國土淸淨)하며: 국토가 청정함을 보고
견국토청정고(見國土淸淨故)로:국토가 청정함을 보기에
견허공청정(見虛空淸淨)하며: 허공이 청정함을 본다.
허공이 청정하다. 청정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진공이라는 것이다.
견허공청정고(見虛空淸淨故)로: 허공이 청정함을 보기 때문에
견법계청정(見法界淸淨)하며: 법계가 청장함을 보며
견법계청정고(見法界淸淨故)로: 법계가 청정함을 보기에
견지혜청정(見智慧淸淨)이: 지혜가 청정함을 본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
수행적집일체지고(修行積集一切智故)라 :수행으로 일체 지혜를 쌓아 성취하기 때문이다.
불자(佛子)야: 불자여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십종지혜조도구(十種智慧助道具)니 :열 가지 지혜의 조도구이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마하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이 법에 편안히 머문다면
즉득여래일체법무장애청정미묘지혜취(則得如來一切法無障礙淸淨微妙智慧聚)니라: 곧 여래의 모든 법에 걸림없는 청정하고 미묘한 지혜의 무리를 얻게 된다.
(19) 菩薩의 有十種明足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明足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善分別諸法明足과不取着諸法明足과離顚倒見明足과智慧光照諸根明足과巧發起正精進明足과 能深入眞諦智明足과滅煩惱業하야 成就盡智無生智明足과天眼智普觀察明足과 宿住念으로 知前際淸淨明足과漏盡神通智로斷衆生諸漏明足이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의 於一切佛法에 無上大光明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밝고 만족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법을 잘 분별하는 밝고 만족함과,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밝고 만족함과, 뒤바뀐 소견을 여의는 밝고 만족함과, 지혜의 빛이 여러 감관을 비추는 밝고 만족함과, 바른 정진을 잘 일으키는 밝고 만족함이니라.
진실한 이치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는 밝고 만족함과, 번뇌의 업을 멸하고 모든 지혜와 남[生]이 없는 지혜를 성취하는 밝고 만족함과 천안(天眼)의 지혜로 널리 관찰하는 밝고 만족함과, 전생의 일을 아는 생각으로 지난 세상이 청정함을 아는 밝고 만족함과, 번뇌가 다하여 없어진 신통한 지혜로 중생의 모든 번뇌를 끊는 밝고 만족함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일체 불법에서 위없는 큰 광명을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유십종명족(有十種明足)
*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유십종명족(有十種明足)하니: 열 가지 밝고 만족함이 있다. 열 가지 명족이 있다. 명행족할 때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열 가지냐?
소위선분별제법명족(所謂善分別諸法明足)과: 이른바 모든 법이 잘 분별하는 밝고 만족함과
불취착제법명족(不取着諸法明足)과: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환하게 밟고 만족함과
이전도견명족(離顚倒見明足)과: 뒤바뀐 소견을 원리전도몽상 전도견, 뒤바뀐 소견을 여읜 밝고 만족함과
지혜광조제근명족(智慧光照諸根明足)과:지혜의 빛이 여러 감각을 비추는 밝고 만족함과
교발기정정진명족(巧發起正精進明足)과: 바른 정진을 겸허하게 일으키는 밝고 만족함과
능심입진제지명족(能深入眞諦智明足)과: 진제지 진짜 이치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면 사람이 착해질 것이다. 그런 밝고 만족함과
멸번뇌업(滅煩惱業)하야:번뇌의 업을 멸하고, 내 번뇌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의 번뇌의 업을 멸한다.
요거는 아까 뭐라고 했는가. 광대심이라고 했다.
앞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심심이다. 계속 이렇게 반복되어 나온다. 깊이 들어간다는 것은 지혜를 상징하고 넓게 된다는 것은 복을 많이 짓는 것이다. 귀의불 양족존이 거기에서 시작된다.
성취진지무생지명족(成就盡智無生智明足)과: 완전히 끊는 지혜와 남이 없는 무생의 지혜를 성취하는 밝고 만족함과
천안지보관찰명족(天眼智普觀察明足)과 : 하늘의 눈, 천안지 보관찰명족이라. 하늘의 눈 지혜로 널리 관찰하는 밝고 만족함과.
화엄경의 이치를 알면 이 육신의 육안 이대로 진리를 볼 수 있다고 그렇게까지 얘기해 놨다.
능엄경에도 그렇게 해놨다.
숙주념(宿住念)으로: 전생의 일을 아는 생각으로.
화엄경 왕복서에도 ‘범심이(凡心而) 견불심(見佛心)이라’ 이렇게 해놨잖은가.
‘범부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본다’ 이렇게 해놨다.
전생의 일을 아는 생각으로
지전제청정명족(知前際淸淨明足)과: 지난 세상이 청정함을 아는 밝고 만족함과
누진신통지(漏盡神通智)로: 지누진 그러니까 숙명통 누진통 이와 같은 세 개를 얘기하는 것이다.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 삼명
단중생제누명족(斷衆生諸漏明足)이: 생사가 없어진 신통한 지혜로 중생의 모든 번뇌를 끊는 밝고 만족함과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만일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則得如來)의: 여래의
어일체불법(於一切佛法)에: 일체 불법에서
무상대광명(無上大光明)이니라 : 위없는 큰 광명을 얻느니라.
‘보살의 열 가지 법을 구하는 것’부터는 다음 시간에 하겠다.
오늘 앞에 한 30분을 쪼개 먹었다.
좀 많이 남았지만, 다음 달에는 어떻게든 해서 58권을 끝내 보도록 하겠다.
오늘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다음카페 염화실-설법자료를 업데이트 하시는 큰스님
<다음카페 염화실>에 <華嚴經 찬탄偈頌>란에 2월 12일에 ‘각림보살 게송 구절별 해석과 현대적 의미’라는 글이 올라왔다.
“본 보고서는 각림보살의 찬탄게송 전체(譬如工畵師 ~ 一切唯心造)를 한 구절씩 나누어, 한자 원문과 한글 독음을 병기하고, 각 구절의 직역(문자적 의미), 선해석(불교적·화엄사상적 해석), 현대적 해석(현대인의 삶에 적용 가능한 의미)을 구분하여 심층적으로 해설한다. 특히 화엄사상의 핵심 개념인 공성(空性), 연기(緣起), 법계연기(法界緣起), 평등법계(平等法界)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분석하며, 현대적 통찰과 적용 가능성까지 폭넓게 조명한다.”라고 나와 있는데 분량이 많아서 핵심은 빼고, ‘독음과 직역부분’만 뽑아서 염화실지에 싣는다.
이 자료를 올려주신 분은 ‘문수법공양회’인데 “알뜰한 공부를 하게 하십니다.”라는 마니주보살님의 댓글처럼 큰스님의 배려임을 염화실 회원분들은 다 안다.
댓글에영산월 보살님이 “각림보살 게송 100번 쓰기 숙제해서 화엄전 무비스님께 검사 받은적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큰스님께서 화엄경을 유튜브로 강의하시면서 각림보살 게송을 100번 쓰기 숙제를 내주셨었다.
누구든 100번 쓰고 사인을 받으러 오면 사인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유효한지는 여쭤보지 못했다.
이 자료의 전문은 QR코드에 담았다. 사진을 찍으면 나온다.
<다음카페 염화실>에는 그 밖의 자료들이 무궁무진하게 있다.
각림보살 게송 구절별 해석과 현대적 의미
(화엄경 80권본 제19권 야마천궁게찬품 각림보살 찬탄게송)
■서론: 화엄경과 각림보살 찬탄게송의 의의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이하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으로, 우주와 존재의 본질, 그리고 마음의 작용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80권본 제19권 야마천궁게찬품에 등장하는 각림보살(覺林菩薩)의 찬탄게송(게송, 偈頌)은 화엄사상의 정수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 구절로 손꼽힌다. 이 게송은 마음을 화가(工畵師)에 비유하여, 모든 현상과 존재가 마음의 작용임을 설파한다. 특히 마지막 구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으로, 동아시아 불교와 한국 불교사상, 그리고 현대 심리학과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1.1. 게송의 전통적 한자 원문 및 판본 비교
각림보살의 찬탄게송은 화엄경 80권본(당나라 실차난타 역본) 제19권 야마천궁게찬품에 수록되어 있다. 대표적 한자 원문은 다음과 같다:
譬如工畵師,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而有色可得。
心中無彩畫,彩畫中無心。
然不離於心,有彩畫可得。
彼心恒不住,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無法而不造。
如心佛亦爾,如佛眾生然。
應知佛與心,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了佛真實性。
心不住於身,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一切唯心造。
2.1.
譬如工畵師,分布諸彩色。
비여공화사, 분포제채색.
“비유하자면, 숙련된 화가가 여러 가지 채색을 배분하는 것과 같다.”
이 구절은 ‘마치 그림 그리는 화가가 여러 색을 펼쳐 놓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譬如’는 ‘비유하자면’, ‘工畵師’는 ‘그림을 그리는 장인(화가)’, ‘分布’는 ‘나누어 펼치다’, ‘諸彩色’은 ‘여러 가지 색채’를 의미한다.
선해석(불교적·화엄사상적 해석)
이 구절은 마음(心)을 화가(工畵師)에 비유하는 화엄경의 대표적 상징이다. 화엄사상에서 마음은 모든 현상을 창조하는 근원적 주체로, 화가는 마음의 비유적 표현이다. 화가가 다양한 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듯, 마음은 오온(五蘊)과 세간의 모든 현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채색’은 다양한 현상(色法, 色相)을 의미하며, 이는 곧 마음의 작용이 무한히 다양한 세계를 펼친다는 화엄의 연기론적 관점을 드러낸다.
현대적 해석(현대인의 삶 적용)
이 구절은 우리의 삶과 경험이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의식)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통찰을 준다. 현대 심리학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 이론과도 연결되며,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마음이 그려낸 ‘그림’임을 시사한다. 즉, 각자가 가진 마음의 상태와 관점이 곧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자기 인식과 마음챙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하 각 구절의 선해석과 현대적 해석은 생략( 편집자 주)-
2.2.
虛妄取異相,大種無差別。
허망취이상, 대종무차별.
“허망하게 다른 형상을 취하지만, 근본 요소(대종)에는 차별이 없다.”
‘虛妄’은 ‘허망함, 실체 없는 것’, ‘取異相’은 ‘다른 모양을 취하다’, ‘大種’은 ‘사대(四大), 즉 지수화풍의 근본 요소’, ‘無差別’은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2.3.
大種中無色,色中無大種。
대종중무색, 색중무대종.
“근본 요소(대종) 안에는 색(모양, 현상)이 없고, 색(현상) 안에는 근본 요소가 없다.”
‘大種’은 사대(地水火風), ‘色’은 현상, 모양, 색상, ‘中’은 ‘안에’, ‘無’는 ‘없다’는 뜻이다.
2.4.
亦不離大種,而有色可得。
역불리대종, 이유색가득.
“또한 근본 요소(대종)를 떠나서는 색(현상)을 얻을 수 없다.”
‘亦’은 ‘또한’, ‘不離’는 ‘떠나지 않는다’, ‘而有’는 ‘그래서 있다’, ‘色可得’은 ‘색(현상)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2.5.
心中無彩畫,彩畫中無心。
심중무채화, 채화중무심.
“마음 안에는 그림(채색된 그림)이 없고, 그림 안에는 마음이 없다.”
‘心中’은 ‘마음 안에’, ‘無彩畫’는 ‘그림이 없다’, ‘彩畫中’은 ‘그림 안에’, ‘無心’은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2.6.
然不離於心,有彩畫可得。
연불리어심, 유채화가득.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는 그림(채색된 그림)을 얻을 수 없다.”
‘然’은 ‘그러나’, ‘不離於心’은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有彩畫可得’은 ‘그림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2.7.
彼心恒不住,無量難思議。
피심항부주, 무량난사의.
“그 마음은 항상 머물러 있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이 어렵고 불가사의하다.”
‘彼心’은 ‘그 마음’, ‘恒不住’는 ‘항상 머물러 있지 않다’, ‘無量難思議’는 ‘헤아릴 수 없이 어렵고 불가사의하다’는 뜻이다.
2.8.
示現一切色,各各不相知。
시현일체색, 각각불상지.
“모든 색(현상)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한다.”
‘示現’은 ‘나타내 보이다’, ‘一切色’은 ‘모든 색(현상)’, ‘各各’은 ‘각각’, ‘不相知’는 ‘서로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2.9.
譬如工畵師,不能知自心。
비여공화사, 불능지자심.
“비유하자면, 숙련된 화가가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한다.”
‘譬如’는 ‘비유하자면’, ‘工畵師’는 ‘화가’, ‘不能知自心’은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2.10.
而由心故畵,諸法性如是。
이유심고화, 제법성여시.
“그러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모든 법(현상)의 성품이 그러하다.”
‘而由心故畵’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諸法性如是’는 ‘모든 법의 성품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2.11.
心如工畵師,能畵諸世間。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간을 그린다.”
‘心如工畵師’는 ‘마음은 화가와 같다’, ‘能畵諸世間’은 ‘모든 세간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2.12.
五蘊悉從生,無法而不造。
오온실종생, 무법이부조.
“오온(五蘊)이 모두 마음에서 생겨나니,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
‘五蘊’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悉從生’은 ‘모두 ~에서 생겨난다’, ‘無法而不造’는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2.13.
如心佛亦爾,如佛眾生然。
여심불역이, 여불중생연.
“마음과 같이 부처도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다.”
‘如心佛亦爾’는 ‘마음과 같이 부처도 그러하다’, ‘如佛眾生然’은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다’는 뜻이다.
2.14.
應知佛與心,體性皆無盡。
응지불여심, 체성개무진.
“마땅히 알아야 하니, 부처와 마음의 본성은 모두 다함이 없다.”
‘應知’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佛與心’은 ‘부처와 마음’, ‘體性皆無盡’은 ‘본성이 모두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2.15.
若人知心行,普造諸世間。
약인지심행, 보조제세간.
“만일 사람이 마음의 작용을 알면, 온갖 세간을 두루 짓는 줄 알리라.”
‘若人’은 ‘만일 어떤 사람이’, ‘知心行’은 ‘마음의 작용을 안다’, ‘普造諸世間’은 ‘온갖 세간을 두루 만든다’는 뜻이다.
2.16.
是人則見佛,了佛真實性。
시인즉견불, 요불진실성.
“이 사람은 곧 부처를 뵙고, 부처의 참된 성품을 깨닫게 된다.”
‘是人’은 ‘이 사람’, ‘則見佛’은 ‘곧 부처를 본다’, ‘了佛真實性’은 ‘부처의 참된 성품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2.17.
心不住於身,身亦不住心。
심부주어신, 신역부주심.
“마음은 몸에 머물지 않고, 몸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
‘心不住於身’은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는다’, ‘身亦不住心’은 ‘몸도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2.18.
而能作佛事,自在未曾有。
이능작불사, 자재미증유.
“그러나 능히 부처님의 일을 행하니, 그 자재로움이 전례가 없다.”
‘而能作佛事’는 ‘그러나 능히 부처님의 일을 한다’, ‘自在未曾有’는 ‘그 자재로움이 전례가 없다’는 뜻이다.
2.19.
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若人’은 ‘만약 어떤 사람이’, ‘欲了知’는 ‘알고자 한다’, ‘三世一切佛’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라는 뜻이다.
2.20.
應觀法界性,一切唯心造。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찰하라.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應觀’은 ‘마땅히 관찰하라’, ‘法界性’은 ‘법계의 성품’, ‘一切唯心造’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뜻이다.
■결론: 화엄경 각림보살 찬탄게송의 현대적 의의
각림보살의 찬탄게송(譬如工畵師 ~ 一切唯心造)은 화엄경의 핵심 사상인 ‘일체유심조’, ‘법계연기’, ‘평등법계’, ‘사사무애법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 게송이다. 이 게송은 마음의 작용이 곧 우주 만유의 창조 원리임을 밝히며, 모든 존재의 평등성과 상호 연결성을 강조한다. 현대인의 삶에서도 자기 인식, 마음챙김, 공감과 자비, 자기 책임의 원리 등 다양한 차원에서 깊은 통찰과 실천적 지침을 제공한다.
화엄경의 가르침은 단순한 종교적 교리를 넘어, 현대 심리학, 철학, 과학, 사회 윤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적 지혜와 통합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각림보살의 찬탄게송을 깊이 독송하고 명상함으로써, 우리는 자기 마음의 본질을 깨닫고, 세상과의 조화로운 연결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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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다음카페 염화실><감사메모방에>에 큰스님의 연하장이 도착해 있었다.
2026년 설날을 맞이한 것을 무한히 감사합니다.
모든 법우님들께서는
불법의 지혜를 활용하시어
더욱 건강하시고 만복이 충만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설날 아침 여천무비 합장3배
보살은 우담바라꽃
세상에서 만나기 어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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