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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 천호성지 자전거 라이딩
☛hiking시간 및 거리 : 11:00-18:00(7시간)
40.0km 왕복 80km
☛hiking코스 : 익산역-목천포자전거길-참새방앗간-비비낙안-신천습지-봉동인락-비봉고산갈림길-비봉-천호성지-귀로
자유인 조동화는
세월앞에 장사없다는 격언처럼 가는 세월 막을수 없어 오늘도 세월과 씨름하며 두발만능자가용으로 자전거페달을 굴리며 천호성지를 목표로 망중한의 세월을 낚고 즐거움을 느끼고자 자전거라이딩 늦은시간 11:00 집을 나서다.
자전거타기는 대지를 달리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땀을 흘리므로서 몸안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신진대사를 이루는 것이다.
자전거페달 굴리는 일은 힘든 일인데 내가 살아있는것을 증명하고자, 열심히 취미활동으로 자전거페달을 굴리는거지요.
아인슈타인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살아있는 생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거지.
자전거도로 길가에 뱀한마리가 살아있는것 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콰리를 뜰고 있어 갈대를 꺾어 흔들어 보니 움직이지 않고 파리들이 달려 들어 자세히 관찰해 보니 죽어있는거여.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이는거여.
만경강 자전거길을 라이딩하며, 삼례비비정의 아름다운경치와 하리교-회포대교간 신천옥결의 자연습지를 구경하며, 자연이 살아 숨쉬는 봉동인락의 경치를 즐기는 기분이 좋았다.
봉동인락에는 10여구루의 수백년 느티나무가 우뚝 서있으며, 조선시대 봉동을 관할하던 관리들의 비석 공덕비가 20여기 설치되여 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운 나그네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심정으로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세월의 여정속에 수확의 계절에 만경강변 자전거도로를 페달을 굴리며 비봉 달이실 페달을 굴리는 중 조동화는 자전거라이딩하며 비봉에서 천호성지 가는길 우측에 달이실마을(내월리의 옛지명)에 고흥유씨가문의 "一門九義士 事蹟碑"가 세워져 있어 관찰하였다.
고흥유씨 비봉 달이실가문에서 9명이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경찰을 습격하여 일제경찰을 몰사시켰으므로서 온가족이 풍지박살되었으니 국가는 고흥유씨 가문 9의사에게 훈장을 수여했구나.
고흥유씨는 전남 고흥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일제에 항거한 유관순열사와 조선시대 대마도 정벌에 승리한 유습장군(양정공)도 고흥유씨가문이다.
천호성지 고산비봉갈림길에서 10km 오르막길을 달려 천호성지에 도착, 천호산이 바라다 보이는 피정의집에서 천호산주변 경치를 30여분 휴식하며 조망하였다.
비봉고산 갈림길에서 천호성지 오르막길 10km 페달굴려 달리는데 1시간 정도 걸린 듯 느껴졌는데, 돌아오는 10km를 내려오는데 15분이 소용되여 힘이 거의 않들어 편하게 거져 내려왔수다.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일까?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이라고 말하겠다.
무수히 많은 인생의 정답중에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좋고 명쾌한 정답은 없다.
최선을 다하며 살자.
행복이 뭐 별거 있습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을거 하면 그게 행복입디다.
두눈이 있어 자연을 감상할수 있어 감사하고,
두발이 쓸만해 자전거하이킹을 할수 있어 감사하고, 집에 까지 무사히 귀로 할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오늘하루가 흘러가다.
감사한 마음으로 세월을 낚으니 행복하였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감사합시다.
행복합시다.
<참새방앗간은 삼일교회 성도님들께서 컨테이너로 13㎡(약 4평) 남짓의 조그마한 ‘방앗간’을 설치하여 누구나 들러 쉴 수 있게 만든 쉼터로서 조동화는 참새방앗간에 들려 커피 한잔하며 잠시 쉬면서 자전거라이딩하는 동호인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남겼다.
자전거동호인과 택시기사 및 참새방앗간을 지나는 모든이에세 커피와 물병을 무료로 제공한다.
참새방앗간에는 작은도서관처럼 책이 비치되여 있었고 만경강자전거길 자전거라이딩을 하는 사람과 지나가다가 목이 마른 사람들을 위해 정수기가 설치되여 있고 냉장고에 물병을 가득히 넣어 놓아 하나씩 가져가 물을 먹을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방명록도 비치해 놓았다.
삼일교회는 설립한지가 100년도 넘는 교회(1917년 설립)로서 참새방앗간을 운영하며 자전거동호인들의 생명수 물병 무료 제공에 감사해야지요.>
자전거라이딩하면서 봉동인락에서 쉬면서 만경강 풍광을 30여분 휴식하며 구경하였으며, 조동화는 구수한 멸치국물 맛을 보고자, 점심은 할머니국수에서 국수로 하였는데 멸치국물맛이 구수하여 맛이 좋았다.
☛봉동인락
이곳은 사람과 물이 만나 자연환경과 봉동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곳으로 만경강 7경 봉동인락입니다.
만경강 물길따라 사람과 자연이 모여 즐겁고 안락함을 이루며, 소원과 바램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소원과 바램을 이루어 보세요.
⇒당산제 내력
전설에 의하면 봉동읍 장기리 당산나무 아래는 고산현 관할의 죄인을 처형하는 사형터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죽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당산제를 지내고 힘있는 장사들을 모아 씨름판을 벌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장마철에 호우가 내리면 만경강이 범람하여 제방이 터져 물날리로 사람이 죽고 농작물이 많은 피해를 입어 영혼들을 달래고 제방을 다진다는 의미에서 매년 음력 7월20일에 당산제를 지내고 나서 씨름을 하였다.
그러자 봉동지역에 평안과 풍년이 왔다고 한다.
그후 2009년 10월10일 봉동읍 인구 2만명 돌파를 기념하기 위하여 주민들의 뜻에 따라 이날을 읍민의 날로 변경하고 새로이 제단을 설치하여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봉동읍 현황
2019년11월 봉동읍의 인구는 25,456명이며 2023년6월 24,778명으로 감소되고 있으며, 1973년 봉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였다.
봉동의 특산물로는 봉동생강이 유명하다.
등산할수 있는 산은 봉실산이 있다.
봉실산은 전북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와 비봉면 봉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73m이다. 봉동읍의 서북쪽에 우뚝 솟아 있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사찰 학림사가 있다.
조동화는 자전거라이딩하며 비봉에서 천호성지 가는길 우측에 달이실마을(내월리의 옛지명)에 "一門九義士 事蹟碑"가 세워져 있어 관찰하였다.
고흥유씨한가문에 9명의 의사들이 결집하여 일제의 만행에 항거하여 의병을 일으켜 일본경찰을 토벌 많은 전과를 올리며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고흥유씨는 전남 고흥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일제에 항거한 유관순열사와 조선시대 대마도 정벌에 승리한 유습장군(양정공)도 고흥유씨가문이다.
☛고흥유씨 일문 구의사 사적비( 一門九義士 事蹟碑)
-소재지 : 비봉면 내월리 산1-1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고흥유씨 일문 구의사 사적비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였던 고흥유씨 일문구의사를 기리기 위해 1982년 세워졌다.
一門九義士 : 고흥유씨 한가문에 9명의 독립유공자가 있어 일제하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비봉 고산은 고흥유씨 집성촌이다.
일문구의사선양사업회 주관으로 매년17일 一門九義士 추모제가 열린다.
♣주요공적
-고흥유시 가문의 일문9의사는 비봉면 내월리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1907년 유지명과 같이 의병을 일의켜 고산, 익산을 비롯한 전북일대에서 적을 토벌하였다.
-1909년 유지명이 체포되어 사형 순국하자 유지복을 중심으로 한 9의사는 경술국치 이후까지도 행적을 숨겨가면서 항일지하운동을 계속하였다.
-이사실을 탐지한 일본 경찰은 1910년 10월에 유치복을 체포하여 사형에 처했다.
-1916년에 나머지 8의사가 체포되어 모두 10년이상 징역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조동화는 비봉 달이실(내월리의 옛지명)지나며 “一門九義士 事蹟碑”길 건너편 유습장군사적비를 관찰하였다.
본관 고흥유씨 유습장군은 우리나라 5천년역사에서 대마도를 징벌하고 항복을 받아냈으니 세종대왕은 그 공을 길리 빛나도록 하였구나.
유습장군이 별세하자 세종대왕은 달이실에 가장 좋은 옥토망월형묘자리를 찾게 했고, 묘 앞의 괘등석에서 등불의 불빛이 보이는 곳까지의 땅을 고흥유씨에게 사패지지로 하사해서 달이실 대부분의 땅이 고흥유씨 소유이다.
☛비봉면 달이실(내월리의 옛 지명)유습장군 사적비
유습장군은 1367년(공민왕 16년)에 태어났고 본관은 고흥이며, 고려 말 시중 유탁의 아들이다. 시호는 양정공이며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으로 전라도 충청도 평안도의 도절제사를 역임했다. 유습장군은 세종원년 (1416년) 이종무장군(삼군도절제사) 이숙묘, 황의, 우박 (중군도절제사) 이지실장군(우군도절제사)등과 함께 대마도 정벌에 좌군도절제사로 참여했다. 왜구는 고려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500여 차례 이상 우리나라를 침략해왔다. 조선 수군 10,728명은 전함 227척을 거느리고 1416년 6월 19일(음력) 거제도 견내량을 출발했다. 하룻만에 대한해협을 지나 대마도를 정벌하고 왜구의 항복을 받았다. 이후 대마도를 조선의 정치질서 속으로 편입하고 조선국왕이 관직을 내려 왜구통제의 의무를 주고 무역을 허락했다.
세종대왕은 1439년 애지중지하던 유습이 별세하자 정사를 멈추게 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묘 자리를 찾게 했다. 당대 풍수가(風水家)들은 비봉면 내월리 동리마을 중고개 부근의 옥토망월형의 명당을 추천해 장군의 묘는 이곳 달이실(내월리 옛 이름) 마을에 위치한다. 세종대왕은 묘 앞의 괘등석에서 등불의 불빛이 보이는 곳까지의 땅을 고흥유씨에게 사패지지로 하사했다.
570여년이 지난 지금도 괘등석의 불빛이 보이는 대부분의 토지는 고흥유씨 소유이다. 묘를 이장할 때 학 세마리가 묘지에서 날아갔는데 한 마리는 학소포로 한 마리는 비학골로 다른 한 마리는 학림사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전해지며 묘비에 새겨진 白首歸鄕口不言朝廷事(흰머리 돼 고향에 돌아왔으니 조정일은 말하지 않겠다)했다.
우리나라는 오천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침을 받았음에도 응징하지 못했으나 대마도정벌은 우리 역사상 큰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조동화는 익산역에서 40km를 자전거 페달굴려 천호산 기습에 자리한 천호성지에 도착하여 30여분 주변을 조망하며 천호산경관을 구경하였다.
천호성지 피정의집에 들어서는 길목에는 천주교100년 박해시대에 산새가 험해 사람이 살수 없는 첩첩산중 다리실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교우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이곳에“다리실 순교자 기념관”이 설치되여 있었다.
천호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호성지는 그 이름처럼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해 충청도 지방의 천주교신자들이 숨어서 신앙촌을 이룬 곳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다.
이곳은 1866년 12월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네 명인 이명서, 손선지. 정문호, 한재권 성인과. 같은 해 8월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순교자 열 명이 묻혀 있다.>
♣천호성지
☛위치 :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길 124
천호성지(天呼聖址)는 1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교우촌 천호(天呼) 공소의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있으며,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하여 충청도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이 탄압때문에 숨어들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이 이루어졌다.
천호성지에는 병인박해(1866)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이명서, 손선지, 정문호, 한재권 등 네 명과 그해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등이 묻혀있고, 또 2년 뒤여산에서 순교한 열 명의 순교자가 묻혀 있다.
아직도 종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천호산 자락에 묻혀있다.
천호는 기해박해(1839) 이후로 박해를 피해와 숨어살던 신자들이 이룬 유서깊은 교우촌이다. 또한 성지 인근에는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체포된 후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미사굴과 1867년 블랑 신부가 처음으로 정주하여 사목한전라도 최초의 사목지 어름골이 있다. 또한 이웃사랑을 실천한 박준복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낙수골이 있다. 천호성지에는 피정의 집과 세상을 떠난 영혼을 모신 봉안경당, 그리고 성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아끼고 아끼다 똥 된다.
석인성시(惜吝成屎)
惜 : 아낄 석
吝 : 아낄 린
成 : 이룰 성
屎 : 똥 시
귀한 그릇, 값비싼 옷은 왜 그렇게 아끼는 것일까?
현재보다 미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 미래가 현재가 되어도 즐기지 못한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지금 즐기자.
'제일 값비싼 그릇은 언제 쓰실건가요?
제일 값비싼 옷은 언제 입을 건가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나중에 귀한 손님이 올 때
쓰려고 아껴둔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는 저렴한 신발에,
허름한 옷을 입고,
싸구려 그릇을 사용하면서,
값싼 그릇만 사용한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물건을 정리해주는
유품정리사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개
제일 좋은 것은 써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그렇게 안 좋은 것만 쓰고, 안 좋은 것만 먹다 죽으면
우리 인생은 안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진 채 끝이 난다.
물건이나 음식뿐만이 아니다.
생각이나 말도 그렇다.
평소 안 좋은 생각과 안 좋은 말만 하다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귀하고 좋은 물건,
좋은 말과 예쁜 웃음,
용서와 사랑과 배려
지금 쓰고, 지금 하고, 지금 베풀면
머무는 이자리가 바로 천국인것을. . .
<좋은 글 중에서 >
누죽걸산
臥死步生(와사보생)과 같은뜻으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이다.
누죽걸산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뜻의 줄인말로 걷기운동이 최고의 만병통치약으로 생활화해야지요.
한자로 찾아보면 臥死步生(와사보생)과 유사하지요..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조선의 명의 허준선생의 동의보감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약보(藥補) 보다는 식보(食補)요,
식보(食補) 보다는 행보(行補)다.
10년동안 65세 이상 노인의 걸음수와 운동효과를 측정한 결과 하루에
1. 하루 4,000보를 걸음 사람은 우울증이 감소했고,
2. 하루 5,000보를 걸음 사람은 치매, 심장질환, 뇌졸증을 예방하고,
3. 하루 7,000보를 걸은 사람은 골다공증, 암을 예방하고,
4. 하루 8,000보를 걸은 사람은 고혈압과 당뇨를 예방하고,
5. 하루 10,000보를 걸은 사람은 대사증후군을 예방할수 있다고 합니다.
(주 5일 이상 실시하면 더 좋습니다.)
모든병은 걷지(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땀과 건강
땀을 보면 건강이 보인다.
조물주는 인체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고 체내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땀’을 선물해주었다. 그래서 땀이 어떻게 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 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다.
땀이 잘 나야 건강하다.
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체온조절이지만 노폐물 배출이라는 다른 기능도 있다. 그래서 땀이 잘 난다는 것은 피부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피부과 의사들에 따르면 아토피나 건선 같은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평소 땀이 잘 안 난다고 한다. 땀과 함께 모세혈관 속 노폐물들이 빠져나가는데 이와 같은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우나나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피부가 매끈매끈해진 느낌이 들지 않던가. 땀을 적당히 흘려야 전신의 노폐물도 잘 배출되고 피부 표면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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