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흑인 소녀가 있어요. 어머니가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여서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 되었고 소녀는 위탁가정에 맡겨졌다가 결국 외조부모에게 입양되었어요. 열아홉 살이 된 소녀의 키는 146cm. 불우한 어린 시절과 작은 키, 흑인이라는 불리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가장 위대한 체조선수로 타임지의 리우올림픽 개막 특집호 표지에 얼굴이 실린 그녀의 이름은 시몬스 바일스 입니다. 5년 전인 2016년 브라질에서 리우올림픽이 열렸을 때 그녀는 미국 대표로 출전해 기계체조에서 금메달 4개, 동메달 1개, 총 다섯 개의 메달을 땄어요. 그녀가 마루 위에서 펼치는 체조 동작을 보면 얼마나 빈틈없이 탄탄하게 움직이는지 놀라울 정도였죠. 힘차게 달리고 높이 점프했다가 다시 바닥을 딛고 점프하여 연속으로 회전하던 모습, 그리고 정적 속에 유일하게 울리던 그녀의 발돋움 소리, 이 작은 체조요정으로 인해 저는 체조 경기를 보면서 무아지경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놀라운 장면을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당시 진로 수업을 하면서 강점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몬스 바일스를 언급하고 그녀의 경기 장면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어요.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는데, 약점 보다 강점에 주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성공한 인물에서 찾아서 보여주곤 했는데 그러한 인물 중 한명이 시몬스 바일스였습니다. 그녀가 체조선수가 된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결론만 얘기하면, 백인 위주의 여자 체조계에서 편견의 벽을 넘어 독보적인 실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은 '흑인'이라는 점과 '작은 키'였습니다. 흑인이었기에 특유의 유연함과 근육의 탄력성이 있었고 남자들처럼 근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술성보다는 기술력에 초점을 맞췄고, 키가 유달리 작아서 체공력과 점프력도 뛰어났습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한 아주 좋은 사례였던 겁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다시 그녀의 이름이 소환되었습니다. 그녀는 스물네 살이 되었고 5년 전보다 더 뛰어난 기량으로 금메달 6관왕을 기대하는 최고의 체조여왕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주목했고, 미국 국민들은 자국의 위상을 높여줄 이 자그마한 체조선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고작 스물네살 소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책임감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이었다는 걸, 시몬스 바일스가 경기를 기권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단체전에서 기대이하의 성적이 나오고 난 후 정신적인 부담과 고통을 호소하며 그녀는 다음 경기를 모두 기권하게 됩니다. "때로는 내 어깨에 온 세상의 짐을 짊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대회 직전에 SNS에 올린 글에서 처연함이 느껴졌습니다.
5년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을 텐데 기권을 하는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기권을 하겠다는 말이 쉽게 안 나왔을 겁니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권한 행동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정말 다행이고 고마웠습니다. 미셸 오바마, 저스틴 비버 등이 나서서 그녀를 자랑스럽다고 격려하고 응원해주었습니다. 국가가 아닌 한 개인의 건강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 문화의 변화도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상담 현장에서, 여러 가지 압박과 책임감 속에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청소년들을 자주 만납니다. 중·고등학생은 학업, 대학생은 취업에 대한 압박이 심각합니다. 특히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과도한 책임감으로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사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금메달 유망주도 자신을 위해서 금메달을 포기하는 세상입니다. 금메달 보다 중요한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과감히 용기 내어 포기를 합니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해라."라는 우스개 소리는 과거의 유물함 속에 넣어두고, 과도한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가 있다면 “포기를 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격려의 말을 품안에서 꺼내주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포기 하려할 때 멈추지 못하도록 채찍질하기 보다는 포기할건 포기할 수 있도록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로 응원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점을 발휘하여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 그녀.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 그녀입니다.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응원과 지지를 받은 시몬스 바일스가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궁금해집니다.
첫댓글 스물네살 소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책임감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포기를 하는 것도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격려의 말..
따뜻한 격려의 응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