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선희>는 홍상수의 열다섯 번째 장편영화다. 한 여자와 세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는 홍상수 특유의 화법이 잘 살아 있으면서도 대중이 다가서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작품이다.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선 선희(정유미)는 단 며칠 동안 세 명의 남자를 만난다. 그녀의 유학을 위해 추천장을 써준 최교수(김상중)와 그녀의 옛 남자친구 문수(이선균), 학과 선배인 재학(정재영)이 그 인물들이다. 그들은 모두 선희를 만나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선희의 모습을 말한다. 그들에게 그녀는 모두 ‘우리’선희였다.
영화 속의 말들은 모두 출발한 곳으로부터 다른 곳을 거쳐 다시 되돌아온다. ‘파고, 파고, 파봐야 한계가 보이고 그때 자신을 알게 되고, 편안해진다’라는 말이나, ‘선희는 안목있고, 착하고, 똑똑하고, 용기 있으며, 때로는 또라이 같기도 하다’는 말들은 모두 세 남자와 선희의 입을 통해 전해져 순환하는 고리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 고리 속에서 말의 진실이나 신빙성을 느낄 수는 없다.
정말 그들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얼마큼이나 파내려갈 수 있을 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려는 그들의 목적이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다. 드러나는 선희와 인식된 선희 사이에도 믿을 수 있는 연결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그런 이유로 영화 <우리 선희>는 ‘알고 있음’에 대한 허위를 드러내는 작품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그런 영화와 감독의 의도를 읽는 행위와는 다르게 <우리선희>에서 나의 눈길을 끈 장면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문수와 재학이 술을 마실 때와 선희와 재학이 술을 마실 때다. 짝을 이룬 둘은 서로 다른 시간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신다. 이 때 두 장면 모두에서 술집주인이 치킨을 시켜먹자고 둘에게 제안한다. 문수와 선희는 ‘안주를 파는 술집에서 왜 치킨을 시키지?’라고 하는 것 같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반면에 재학은 ‘치킨 좋지’라며 여주인의 제안에 응한다. 그리고 두 짝은 다시 그들만의 대화를 잇는다.
이 두 장면은 모두 롱테이크(Long take)로 찍혔다. 앞 장면이 13분정도로 홍상수 영화에서 가장 긴 것으로 기록되었고, 뒷 장면은 그보다 적은 편이긴 하지만 비슷한 길이를 지닌다. 홍상수는 어떠한 압축도 생략도 없이 미디엄샷으로 그들을 잡아낸다. 첫 장면에서 우리는 치킨이 도착한 것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장면에서는 마침내 치킨은 그들 앞에 놓인다.
이상하게도 이 두 장면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론 반복과 차이는 홍상수 영화의 오래된 영화만들기 방식이다. 반복 속에 차이를 드러내면서 의미를 얻어나가는 그만의 방식은 전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내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이란 말을 쓴 것은 반복과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일상의 풍경 속에 익숙한 조각하나를 떼어낸 것 같아서다.
우리는 보통 치킨을 시키고, 기다린다. 이 때 걸리는 시간은 가게마다 다르지만 15분에서 30분정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한다.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대부분의 영화는 압축과 생략을 통해 시간을 빨리 돌리거나 다른 번잡한 사건들을 보여주면서 그 기다림을 잊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 선희>속에서 그러한 시도는 찾아 볼 수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오로지 두 사람의 대화이고 카메라는 한 치의 움직임과 단절도 없이 그들을 담아낸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치킨이 오는 시간을 올곧이 느껴야만 한다. 이는 술자리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치킨이 배달되기까지의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는 두 개의 차원으로 나뉜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시공간은 서로 교집합을 이루지만 각자의 여집합을 가지고 있다. 시간은 둘로 쪼개져 우리는 공유하고 있는 시간과 공유되고 있지 못하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치킨이 특별한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치킨은 상징이라기보다 시간과 공간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하는 매개체에 가깝다. 치킨으로 인해 우리는 시간이 지연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들의 대화는 치킨에 의해 방해받는 것처럼 보이고 그 대화 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지 의심케 된다. 영화 속에서 돌고 돌아 순환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말의 순환 속에서 그들은 정말 자신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의 표면위에만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우리선희>는 어쩌면 이 질문을 가능케 할 지점들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ㅡ 리뷰어 한창욱
한창욱씨는 영화 촬영을 전공했으며, 현재 예술영화와 대중영화를 넘나들면서 우리에게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를 자문하며, 그 영화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블로그를 통해 활동하며, <서평독토> 모임에서 서평 쓰고 토론하는 걸 즐기고, 영화토론 모임 <영토공감>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첫댓글 여기서 치킨의 역활이 크군요,, 시간과 공간 방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