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절기 한로(寒露)가 찾아왔다.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공기는 한결 서늘해졌고, 들녘의 벼는 황금빛으로 고개를 숙이며 숲은 어느덧 오색 빛깔의 가을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결실의 계절이 주는 풍요로움과 함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만추(晩秋)의 초입에서 군민과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시길 먼저 기원한다.
청명한 하늘 아래 단풍을 맞이하러 산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는 이맘때면, 경남 의령의 웅장한 기상이 서린 진산(鎭山), 자굴산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남덕유산의 힘찬 맥을 이어받아 벽계계곡과 한우산을 품에 안은 자굴산은 예로부터 의령을 수호하며 군민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온 명산이다. 하여 2026년 열아홉 꼭지째 칼럼으로 자굴산(闍崛山: 경남 의령군 진산으로 해발 897m) 세 글자를 풀이해 본다.
자굴산의 이름에 담긴 뜻을 한자의 획을 나누어 살펴보는 파자(破字)로 풀어보면 그 기상이 더욱 또렷해진다. 먼저 망대 자(闍)자는 문 문(門)자 안에 사람 자(者)자가 깃들어 있는 글자이다. 문(門) 위에 사람(者)이 올라서서 사방을 멀리, 굽어살피는 성문의 높은 망루를 뜻한다. 가야와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의 지형처럼, 적의 침입을 미리 살피고 백성을 지키기 위해 우뚝 세운 망대(望臺)의 형상이다. 이어지는 우뚝 솟을 굴(崛) 자는 메 산(山) 변에 굽힐 굴(屈) 자가 더해진 글자이다. 아무리 험준하고 굽이치는(屈) 세상의 풍파와 산줄기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홀로 우뚝(山) 솟아오른 기세를 가리킨다.
결국 자굴(闍崛)이란 성문 위의 높은 망루처럼 홀로 웅장하게 솟아올라 사방 백 리를 굽어보며 마을과 백성을 보살피는 산이라는 뜻을 오롯이 품고 있다. 예로부터 자굴산 정상에 서면 멀리 지리산 천왕봉부터 남해의 높은 하늘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으니, 그 이름 그대로 자굴산은 수백 년 동안 경남 의령 고장을 굽어살피는 든든한 파수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찬란한 단풍이 물드는 가을과 메마른 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이 숭고하고 푸른 망루를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비가 적게 내리고 대기가 극도로 건조해지는 늦가을부터 겨울철은 한순간의 방심으로도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나는 취약기이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비바람을 견디며 자라난 울창한 숲이 재로 변하는 데는 단 한 줌의 불씨와 몇 분의 시간으로 충분하다. 특히 겨울철에 발생하는 산불은 바싹 마른 낙엽과 거센 계절풍을 타고 번지기 때문에 진화가 극히 어렵고, 소중한 인명과 재산은 물론 후손에게 물려줄 생태계마저 송두리째 앗아간다.
성문 위의 망루인 자굴산의 파자(破字)처럼, 이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숲을 지키는 든든한 망루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때이다. 산불 예방은 결코 거창한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 첫째, 입산 시 라이터나 성냥 등 인화물질을 소지하지 않는 기본적인 수칙을 지켜야 한다. 둘째, 산림 인접 지역에서의 논·밭두렁 태우기나 농업 부산물, 쓰레기 소각행위를 결단코, 하지 말아야한다. 작은 불씨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산으로 옮겨붙는 것이 산불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셋째,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의 취사나 흡연은 절대로 금해야 하며, 작은 연기나 불씨를 발견했을 때는 지체 없이 119나 산림 관서에 즉시 신고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한로(寒露)의 이슬은 메마른 대지를 적시며 겨울을 준비하게 한다. 자연이 찬 이슬로 계절의 결실을 맺듯, 국민 또한 따뜻한 관심과 세심한 주의로 산림을 지켜내야 한다. 자굴산이 높은 망루에서 오랜 세월 우리를 묵묵히 품어주었듯이, 이제는 국민 모두 자굴산과 조국 강산을 산불의 화마(火魔)로부터 지켜내는 푸른 파수꾼이 될 때이다.
| 闍 | = | 門 | + | 者 |
| 망루 자 |
| 문 문 |
| 사람 자 |
| 崛 | = | 山 | + | 屈 |
| 우뚝 솟을 굴 |
| 메(뫼) 산 |
| 굽을 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