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진짜 은퇴하는 거야??] 치수의 방문턱에 서서 치수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소연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응...] 원래부터 말은 없었지만 치수는 한참을 뜸들이다 힘들게 대답했다.
[오빠 지금 30분 넘게 유니폼만 만지작거리고 있어. 적어도 백호가 돌아올때 까지라도 오빠가 있어줘야 하는거...]
[이제 너 매니저 됐다는 거니?? 내가 있어야 북산이 잘돌아간다고 생각하는거야??]
치수는 소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만지작거리던 유니폼을 벽에 걸기 위해 돌아섰다.
[오빠...적어도 난...오빠가 오빠 자신을 속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소연은 답답하다는듯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소연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연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치수는 유니폼을 벽에 걸고는 침대에 누워버렸다.
[태섭아, 오늘 치수선배랑 준호선배 은퇴한다고 소연이가 그러더라.]
[드디어 올것이 오고야 만건가... 가을 대회까지라도 남아주면 안되는건가? 주장은 지금까지 농구하면서 공부도 잘해왔잖아.]
농구공을 만지작 거리면서 태섭은 한나의 신발 어저리에 시선을 둔체 말을 이어갔다.
[백호도 없는데 주장까지 빠지게 되면...]
[난 은퇴해도 되겠구나. 아무도 나 때문에는 걱정하지도 않는걸?] 한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교복차림의 준호는 태섭을 바라봤다.
[아...준호선배...그런뜻이 아니라...] 순간 당황한 태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태섭의 머리를 약하게 쥐어박은 준호는 태섭을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차기 주장님! Don't mind! Don't mind! 아... 오늘은 나 은퇴하는 날이니까 머리 쥐어박았다고 날라차기하는건 참아줘~!]
준호의 말에 머슥하게 웃어보이는 태섭...한나는 그런 태섭의 모습이 요즘따라 신경이 쓰였다.
[나도 치수를 설득시켜보려고 했는데 무언가 생각이있나봐... 통 말을 듣지도 않고 자기가 빨리 없어져야 애들의 실력이 자라는거라고...이제 원맨팀에서 벗어났으니까 자기가 빠져줘야 할때가 왔다고...이런 식으로만 얘기하더라구...]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나는 자기의 어깨에 올려져있던 준호의 손을 두손으로 잡고는 말했다.
[준호선배…준호선배는 왜 지금 은퇴하시려는거죠? 선배가 없으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순간 태섭은 한나가 준호의 손을 잡았을 때부터 그 장면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난 농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내 체력을 키우기 위한거였던거야. 게다가 농구로 대학가기엔 실력이 너무 모자라잖아. 나야 말로 이쯤에서 빠져줘야 후배들 출전시간도 늘어나겠지? 한나야, 그런 의미에서 내 손도 빠져줘야 우리 후!배!님!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데?]
한나의 손에서 자유로워진 준호는 한나의 등을 가볍게 툭 치며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준호의 말을 뒤늦게야 이해한 태섭은 이미 닦아진 농구공을 집더니 더러운 곳을 발견한듯 손으로 그곳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농구공은 어제 1학년들이 다 닦아놨는데, 태섭이 니 눈에는 뭔가 보이나봐?]
태섭의 행동에 한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곤 작게 웃으면서 체육관으로 향했다. 태섭은 얼굴이 빨개져서 애꿎은 농구공만 손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북산고등학교 체육관에선 우렁찬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악역을 훌륭하게 해냈다. 너희들을 만나서 나는 내 꿈을 이룰수 있었고 그건 준호도 똑 같은 심정일것이다. 이제 노땅들은 물러난다. 물론 아직도 자기가 노땅인지 모르는 노땅이 한명 남아있지만…] 치수는 말을 잠시 멈추고는 대만을 쳐다봤다.
뭐야 이 고릴라야!! 라고 말하려던 대만은 치수의 눈빛을 보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자… 이젠 대만이를 주축으로 가을대회를 위해 열심히 훈련하길 바란다. 물론 주장은 태섭이지만 3학년이 괜히 3학년은 아니니까…잘해줄꺼라고 믿어. 태웅이는 소집이 끝나는대로 합류할꺼고 백호는…아마 이번 대회 참가는 힘들꺼야…치수도…백호도 없어서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도내2위다. 그걸 마음속에 담고 열심히 훈련하길 바란다.]
치수와 대만이 무언의 대화를 하는동안 준호가 나머지 말을 이었다.
[진짜 은퇴하는거냐?] 대만은 치수와 준호를 따라 나왔다.
[훈련이나 하지 뭐하려고 따라나온거냐.] 차갑지만 애정이 느껴지는 치수의 말이였다.
[갈꺼면 확실하게 가라. 괜히 우리 마음만 싱숭생숭 만들지 말라고.]
대만과 치수 그리고 준호 그 셋은 아무말 없이 한동안 그 자리에서 서있었다.
치수와 준호를 따라나갔던 대만은 돌아오자마자 3점연습에 몰두했지만 반절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북산고 농구부는 조용한 훈련을 했다.
[엥 이걸 200번씩이나 하라구요?]
재활센터엔 키도 키지만 붉은 머리 때문에 눈에 확띄는 사내의 외침에 순간 정적이 흘렸다. 정적이 흘렀다기 보단 모든 시선이 빨간머리사내에게 모아졌다.
[백호군이 빨리 회복되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럼 다른 사람들처럼 30개만 하시던가요]
40살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백호와 지내면서 백호의 여러이야기-가령 중학교때 여자들에게 수없이 차였다거나 최근에 백호가 속한팀이 전국최강팀을 이겼다는-를 들었고, 백호 본인은 천재이고 나머지들은 평민이라며 자기 때문에 북산이 유지되는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날 평민들과 같이 취급하지 말라구요! 난 서태웅 그 여우 같은 자식보다 일찍 북산으로 돌아갈꺼라구요.]
[어때, 서태웅이란 학생 대단하죠?] 백호가 신문을 다 읽기를 기다린 아주머니는 백호의 자존심을 본의 아니게 건들이고 말았다.
신문을 정리하고 돌아온 아주머니는 아까보다 더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고 있는 백호를 보며 어제일을 떠올렸다.
[여기…강백호란 사람이 입원해 있나요?]
깔끔한 트레이닝복에 Japan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게다가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겨서 지나치는 사람마다 한번씩 돌아보게 만드는 한 청년이 아주머니를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국가대표로 보이는-그때까지는 어느 종목인지는 몰랐다- 한 청년이 입원해있는 백호에게 이 기사를 보여주면서 서태웅이라는 이름을 꺼내면 자기가 알아서 훈련을 열심히 할꺼라는 얘기를 하고는 홀연히 떠나버린 그 청년을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누구인지 몰랐으나 백호의 말을 듣고나니 그가 서태웅이라는 사실을 알게된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백호가 읽은 그 기사를 읽어본 아주머니는 둘의 말로표현하기 힘든 어떤 우정을 생각하며 백호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다시 재활센터로 돌아갔다.
[소연아!!] 소연이의 교실문앞에서 한나가 소연이를 불러냈다.
[어제는 왜 안나온거야?] 한나는 치수의 은퇴 때문에 한나가 안나왔다는걸 짐작은 했지만 한나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서 소연이를 찾아왔다.
[오빠가요. 은퇴하기 전날에 방에서 유니폼을 만지작 거리면서 있었거든요. 제가 은퇴하지 말라고 하니까 오히려 화를 내면서…]소연이는 답답했는지 한나 앞에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나는 소연이를 달래고 교실로 보낸뒤에 운동장으로 나왔다.
운동장에 혼자 앉아있던 한나는 4교시 수업을 받지 않고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 가까이 갈수록 농구공의 소리가 커져갔다.
[나이스 덩크!! 치수선배] 몇분…아니 몇 십분을 한나는 지켜보고 있었다.
치수의 연습은 언제나 진지했지만 한나는 오늘의 모습이 가장 힘있고 잘해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나는 갑작스런 한나의 등장에 놀란 치수에게 다가가 수건과 물을 건냈다.
[한나가 수업을 빠지기도 하네.] 한나가 아무말도 없어서일까? 치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머! 모범생 치수선배도 수업을 빠졌는데요. 뭘~]
한나는 바닥에 떨어진 농구공을 집어다가 림을 향해 던졌다.
공은 림을 튕겨 나와서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속이 답답하면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죠. 이 공이 튕기는것처럼…선배 그러지 말고 좀 말해주실래요? 선배의 속마음을…]
[소연아~ 한나가 안보이네?? 어디갔어??] 태섭은 옷을 갈아입자 마자 한나를 찾았다.
[오늘은 집에 바로 가신다고 하셨어요.] 소연의 말을 듣고 태섭은 얼굴이 순간 굳었다.
[어이~ 주장님! 즐거운 훈련을 해야죠.]
태섭의 귀에대고 대만이 놀림조로 속삭이자 태섭은 말없이 대만을 쏘아봤다.
백호의 부상은 선수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였다. 그러나 안감독의 생각은 부상의 정도가 아니였다.
백호가 입원을 한 뒤, 치수는 안감독님의 집을 찾았다.
백호가 없기 때문에 이번 가을 대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어떤 훈련을 해야하는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치수는 아무것도 물어볼수가 없었다. 백호가 부상인걸 알면서도 욕심때문에 백호를 빼지않고 계속 기용했던 것이 마음속에 걸려 안감독은 이미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였기때문이다.
혼자서 많은 갈등을 한 치수는 백호가 빠진 북산의 성적이 이번보다 저조하면 안감독에게 더큰 상처가 될꺼라고 생각하고는 치수가 일찍 은퇴해서 백호의 빈자리 때문에 성적이 저조해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게 안감독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나는 치수의 속마음을 듣고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의지력이 강하던 치수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안감독 님이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충격일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였다.
[자 토요일이다!! 우리에게 휴일은 없다!! 열심히 하자!!]
[북산- 북산- 파이팅!!]
토요일 오후 썰렁한 학교건물과는 달리 체육관은 훈련의 열기로 가득찼다.
이제 손에 익어가는 매니저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소연에게 드리볼을 연습하던 태섭은 일부러 공을 흘리고는 그리로 달렸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정말 잘 쓰셨네요^^
재미있어요
재밌네요 ㅋ.
재밌어요~ 특히 송군과 이양의 로맨스(?)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