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층암 모과기둥 이야기
일현 스님의 주선으로 1936년 여름부터 1937년 3월까지 구층암 법당 및 요사 전부를 훼철하여 중건했다. 불사비용은 이리에 사는 불자님의 시주금으로 충당했다.
중건하는 도중인 1936년 8월 27일 오후 태풍 3693호가 한반도 서남해안에 상륙하면서 전국에 걸쳐 막대한 피해를 끼쳤고 이로 인한 사망, 실종자는 무려 1,232명에 달했다. 이 태풍은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한반도에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끼친 태풍이다. 이 태풍으로 화엄사 탑전 건성당이 붕괴되었는데, 1937년에 만우 스님이 이를 중건했다.
이때 구층암에 있는 모과나무 세 그루도 쓰러졌다. 일현스님은 몇 백 년 동안 화엄사 구층대 도량에서 부처님께 달콤하고 향긋한 향공양을 드리고, 수많은 납자와 함께 수행했던 목향불자인 모과나무를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층암 본체요사 기둥 2개와 대중요사체 기둥 1개로 삼기로 하고 모과나무에 대패질조차 아니 하고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기둥을 세웠다. 구층암의 모과나무는 살아서는 부처님께 향공양을 올리고, 죽어서도 등신불처럼 등신목이 되어 도량에 상주하고 있다.
모과 등신목을 보고 있으면 경허선사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1884년 10월 초순의 어느 날, 당시 서산의 연암산 천장암에 머물고 계시던 경허선사가 설법을 위해 동학사에 왔다. 그날 동학사 산중의 대중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법회를 열었다.
동학사의 강백 진암스님이 먼저 설법을 시작했다.
“나무는 비뚤어지지 않고 곧아야 쓸모가 있으며, 그릇도 찌그러지지 아니하고 반듯해야 쓸모가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도 마음이 불량하지 않고 착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이후 경허선사의 차례가 되었다.
“비뚤어진 나무는 비뚤어진 대로 쓰고,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쓰면 됩니다. 즉 불량하고 성실치 못한 사람도 그 나름의 착함과 성실함이 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은 모두 귀한 것, 모두가 부처님이요, 관세음보살입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대중들은 경허선사의 설법을 듣고 감동했다. 잘났든 못났든 차별하지 않고 모두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지금은 비록 까마득하게 보일지언정 수행을 하면 누구든지 성불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부대중은 경허선사의 자비로운 법문에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으니 밖으로 드러난 것은 상에 불과하리라. 어찌 보면 구층암 모과나무는 형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단박에 깨버리는 것 같다. 모과 등신목은 몸도 마음도 다 내려놓고 기둥에 기대어 그저 쉬라고, 쉬어 가라고자리를 내어준다. 살아생전에 향공양 많이 올렸으니 이젠 우리가 차향을 올리겠네. 마음껏 드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