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문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의 신작 시집『사진관집 이층』. 기교 없이도 묵직하고 가슴 저릿한 시편들을 선보이는 신경림 시인의 시집이다. 시인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민초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하찮은 존재들의 슬픔과 한, 그들의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노래해온 ‘민중적 서정시인’이다.
한평생 시의 외길을 걸어온 시인은 ‘지금도 꿈 속에서 찾아가는, 어쩌다 그리워서 찾아가는’지난날을 돌이키며 빛바랜 추억의 흑백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리운 얼굴들을 현재의 삶 속에 되살려내는가 하면,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고 말하며, 돌아다보니 지나온 길이 그립고 아름답게 빛났음을 고백한다.
그는 이 책에서 한평생 가난한 삶들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소박하게 읊조리며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건네는 맑고 순수하고 단순한 시편들을 선보인다. 지나온 한평생을 곱씹으며 낮고 편안한 서정적 어조로 삶의 지혜와 철학을 들려준다. 올해 팔순을 맞은 시인은 연륜 속에 스며든 삶에 대한 통찰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시 속에 녹여냈으며, 묵직한 울림 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가슴 저릿한 전율과 감동을 자아낸다.
제1부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불빛 나의 마흔, 봄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봄비를 맞으며 찔레꽃은 피고 다시 느티나무가 세월청송로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강마을이 안개에 덮여 설중행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제2부 윤무 초원 역전 사진관집 이층 몽유도원 황홀한 유폐 재회 네 머리칼을 통해서, 네 숨결을 타고 정릉에서 서른해를 가을비 별 호수 달빛 이 한장의 흑백사진 이쯤에서 당당히 빈손을
제3부 두메양귀비 남포 갈매기 원 달러 위대한 꿈 느네쁘르 강, 아름답고 아름다운 낯선 강마을에서의 한나절 신발들 말 블리야뜨의 소녀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이제 인사동에는 밤안개가 없다 담담해서 아름답게 강물은 흐르고 멀리서 망망한 제주를 제주에 와서
제4부 유성 나의 예수 새, 부끄러움도 모른 채 빙그레 웃고만 계신다 누구일까 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모마리아상만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인생은 나병환자와 같은 것이니 빨간 풍선 섬 옛 나루에 비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