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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21(주일) 민수기 32:16~27 ’내 고집 내려놓기‘ 예산수정교회
르우벤 지파와 갓지파 사람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 그리고 족장들에게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해달라는 엉뚱한 요구를 합니다(민32:5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이는 확실히 귀를 의심케 하는 요청이요, 이기적인 제안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40년동안 광야생활을 했던 이유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는 것이었는데, 모압평야에서 가나안 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 건너가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32장 4절에 보니 요단 동편 땅은 가축을 기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가축들이 먹기 좋은 꼴이 많고 비옥한 땅이니 우리는 이 땅을 차지하고 요단강을 건너가 참전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남입니다. 그러나 르우벤은 장자권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사권은 레위에게로, 통치권은 유다에게로, 상속권은 요셉에게로 넘겨주고 말았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르우벤이 장자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동생들이 막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지 말라’는 권고 밖에 못했다는 것은 그의 무능을 입증하며, 그리고 일가족과 함께 벧엘로 올라가던 도중 그의 서모 빌하와 통간했다는 것은 그의 생애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이었습니다.
여기에 서 우리는 아무리 르우벤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장자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신앙으로 그 섭리를 받들지 못할 때 그는 섭리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에게 축복을 받을 때 이렇게 유언의 말씀을 듣습니다. (창49: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자기 잘못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가짐이 삐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반역하는 일에 늘 앞장섭니다. ‘고라의 반역사건’(민16:1~11)에 다단, 아비람, 온이라는 인물이 가담했는데, 이들이 모두 르우벤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르우벤 지파와 함께 요청을 한 갓지파 사람들과는 항상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모세에게 말하기 전에 이미 서로 의논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나의 고집을 내려놓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주님의 복받는 자리에 당당히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책망을 듣고 돌이켜야 합니다(16~19절).
내 고집을 내려놓으려면 책망을 듣고 돌이켜야 합니다. 모세는 그들을 책망합니다(6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하나님을 섬기고 또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살기로 언약한 백성입니다. 언약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따로 떨어져 독립하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자신들이 공동체에서 떨어져 요단동편에서 전쟁도 하지 않고 편안히 살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결정은 다른 지파사람들을 낙심시키는 일이었습니다(7절).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그들의 인구는 1/6입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들이 전쟁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른 지파들도 여기에 눌러 앉아 살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책망을 들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그 책망을 듣고 인정하며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가축을 위해 우리를 짓고 성읍을 건축하여 아이들을 남겨 둔 뒤에 남자들이 무장하여 이스라엘 진의 선봉을 담당하겠다고 합니다(16~18절). 그리고 요단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으므로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않겠고, 가나안 정복이 완전히 이루어진 다음에서야 요단동편으로 돌아와 정착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지파는 모세의 책망을 듣고 이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바꿔 모세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이들이 38년전 ‘가데스바네아’(민13:1~3)에서의 출애굽 1세대 백성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책망을 받아들일줄 몰랐지만, 이들은 생각을 바꾸고 고집스럽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고의 유연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는 일곱 가지 방법 <출처:남자심리학/우종민저>
1. 매사를 즐겨라. 항상 재미를 찾아라. 모든 일에는 재미있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웃을 거리를 찾아서 유머를 구사하라. 그러면 새로운 생각이 잘 떠오를 것이다.
2. 뒤집어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 '실패'란 없다. 오직 '배움'이 있을 뿐이다. 오늘 게임에서 졌다고 치자.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나는 실패를 반복하는 '실패자'가 된다. 그러나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함을 배웠다면, 다음엔 멋지게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다.
3. 뇌 전체를 활용한다. 항상 좌뇌와 우뇌를 골고루 사용하자. 논리에 충실한 좌뇌만 사용하지 말고, 직관적인 우뇌의 판단에도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뇌만 사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뇌도 활용하자.
4.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그들의 말을 잘 들으면서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완전히 그 사람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자.
5. 상대 의견 중 내가 동의할 수 있는부분을 찾는다. 그 의견이 아무리 다른 듯이 보여도 적어도 한두 가지는 공통점이 있게 마련이다.
6. 서로 다른 의견을 합쳐서 새로운 대안을 만든다. 각각의 핵심을 잘 살려서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도록 노력한다.
7. 자기점검 질문을 한다. "내가 지금 이것을 왜 하나? 다른 방법은 없는가? 그냥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을 기억해 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실제로 해보면 재미있다.
예화) 유연한 사고는 힘이 세다/ 원숭이를 쉽게 잡는 방법
원숭이를 쉽게 잡는 방법에는 어떤것이 있을까요?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방법을 사용합니다. 우선 원숭이가 있는 곳에 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매어놓습니다. 이 가죽자루는 겨우 원숭이의 손이 드나들 정도로 그 입구가 좁습니다. 자루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하나 넣어두는데, 이때 과일은 가죽자루의 입구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크고 단단한 것을 씁니다. 원숭이가 나타나 자루 속을 들여다보고 "이게 웬 떡이냐?" 며 좋아서 냉큼 자루 속에 손을 넣어 과일을 잡겠지요, 그러나 원숭이는 과일을 쥐고서는 손을 빼지 못합니다. 가죽 자루의 입구가 좁기 때문입니다. 원숭이의 손에 있는 과일을 놓으면 쉽게 손이 빠지지만 원숭이는 끝까지 놓지 않기 때문에 원숭이는 결국 사람에게 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원숭이라면 사람에게 잡히지 않고 과일을 먹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가죽 자루를 거꾸로 들여서 털면 됩니다. 사고방식이 유연한 사람들은 금방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를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이 나옵니다. 머리가 이미 굳어 있는 사람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대개 어렵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복잡하게 문제를 푸는 것이 그럴듯해 보이고 지적인 사람처럼 보여진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적 유연성’이 있어야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출처]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는 일곱 가지 방법|작성자 설영진
이처럼 누군가 믿음의 사람이나 공동체나 지도자가 나에게 충고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지적 유연성, 사고의 유연성을 갖고 믿음의 유연성을 갖고 귀 기울여 듣고 나의 죄와 부족을 보는 것이 내 고집을 내려놓고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지름길입니다. 적용) 나는 누군가 나에게 충고하거나 잘못을 지적할 때 그것을 잘 듣고 인정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훈계와 충고에 기분 나빠하며 내 고집대로 합니까?(16~19절)
2. 말씀대로 실행해야 합니다(20~27절).
내 고집을 내려놓으려면,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모세는 갓 지파와 르우벤 자손의 요청을 조건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요청한대로 실행하면 요단강 동편 땅은 그들의 기업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 죄를 지어 심판을 받을 것임을 확실히 일깨워줍니다(20~23절). 특히 모세는 반복해서 그들에게 “너희의 입이 말한 대로 행하라”(24절)고 하면서 그들이 약속한 것을 그대로 실행하라고 요청합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모세의 말을 듣고 주의 명령대로 행하겠다고 약속합니다(25~27절). 모세의 명령에 어떤 조건이나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모세 앞에서 했던 모든 약속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최전방에서 전투에 참여했고,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요단동편의 땅으로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기업을 더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22장에 여호수아가 전쟁을 마친 이들에게 “너희들은 이제 모든 약속을 지켰으니 돌아가도 좋다”라고 합니다. 이들은 이기적인 고집으로 시작했지만, 모세의 책망을 듣고 자기생각을 주장하지 않고 새로운 제안을 내놓고 실행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약속을 지키고 요단 동편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사람들은 이기적인 욕심으로 언약의 백성으로부터 분리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세의 책망을 듣고 자기 생각을 고집스럽게 주장하지 않고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원래 가나안 땅 요단 서편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려고 했지만, 이 지파들 덕분에 요단 동편의 땅까지 가나안 땅이 되었습니다. 길르앗, 요단 동편의 땅이 은혜로운 땅이 된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사람들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죄를 지으려 했던 것이 도리어 합력해서 선이 된 것입니다.
적용)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힘들다고 실행하지 않고 있습니까?
[큐티인 간증] 내 고집 내려놓기 정해성
부모님은 결핵성 뇌막염으로 아픈 저의 여동생을 27년간 간호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병원비를 대느라 집도 땅도 다 파셨습니다. 그렇게 가세라 기운 상황에서 IMF 외환위기까지 찾아오자 저는 모든 꿈을 접고 강원도 건설현장으로 내려가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7년간 용돈으로 생활비를 대신하고 모든 월급을 집으로 보냈습니다.
하루 하루 아무런 희망 없이 살며 스스로 쓸모없다 여기고 있을 때, 친구부부의 소개로 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저는 교회에 오라는 그녀의 말에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를 좋아해주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준비된 게 없던 그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회사에서 강매한 아파트를 팔아 수천만원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돈욕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둘째를 임신한 아내가 그동안 원해온 햇볕이 잘드는 남향집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저렴한 동향집을 구하고, 남은 돈은 은행에 넣었습니다. 이후 둘째를 출산한 아내는 산후 우울증에 걸렸고, 첫째는 천식과 폐렴으로 여섯 번이나 입원했습니다.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요단을 건너가 싸우라고 하듯이, 당시 교회 소그룹 리더는 제게 이사를 권면했습니다(21~22절). 저는 ‘이사비와 이중 복비를 대신 내줄 것도 아니면서 이사를 권한다’는 생각에 속으로 리더를 무시하고 욕했습니다. 하지만 리더의 계속된 설득에 마음이 움직이고, 귀신같이 변한 아내와 아픈 아이들의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요단 동편 땅과 같은 물질을 버리고 요단 서편으로 향했습니다(27절).
그 결과 아내와 아이들은 점점 건강하고 밝아졌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제게 큰 울림을 주셨고, 저는 공동체의 권면에 순종하는 것이 주의 명령대로 행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25절). 앞으로도 내 생각만 옳다며 고집부르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저의 간증을 담대해 전하겠습니다. 적용) 아내를 내 몸의 일부로 생각하라는 공동체의 권면에 순종하겠습니다. 아내가 제 말을 따르지 않을 때 과거 저의 모습을 떠올리며 회개하겠습니다.
결 론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본래 의인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한 의인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죄인들이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라는 선지자들과 전도자들의 책망을 받아들이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큰 구원의 복을 받게 됩니다.
죄인이 책망을 듣고 돌이키는 것은 정말로 복된 일입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나는 죄 없다” 하는 아흔아홉 보다 훨씬 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한 사람이 돌아오면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의인’이라고 고집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갖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살려고 하면 복을 받을 수도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책망, 공동체의 책망을 달게 듣고 받아들여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가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책망을 달게 듣고 돌이켜 하나님의 약속을 실행함으로 하나님 주시는 큰 복을 받아누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