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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 |
重要 史實(年代) |
選定 理由 |
1 |
강화도 조약 (1876) |
일본의 무력행사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이 불평등조약으로 인해 조선은 개항하였으며 이때부터 근대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세에게 휘둘리는 비극적인 역사의 시작이었다. |
2 |
갑신정변 (1884) |
개화당이 그들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일으킨 비상적인 수단. 3일천하라 불리며 실패하였고, 사태는 개화당이 원하는 것과는 더욱 반대로 흘렀다. 즉 개화의 흐름이 매우 늦춰진 것이다. 청에게의 자주, 문벌 폐지와 평등, 국왕의 전제권한 페지 등 개화당이 이루고자 하는 개혁은 혁신적이었다. |
3 |
동학농민운동 (1894) |
반외세 ․ 반봉건을 외치며 일어난 민중봉기. 보국안민을 추구하며 궐기하였다. 폐정개혁안의 제시와 같이 안으로는 양반중심의 부정부패에 저항하고 밖으로는 외국의 침략에 대항하였으나 청과 일본의 개입으로 실패하였다. |
4 |
갑오개혁 (1894~1896) |
일본의 요구에 의한 것이기는하나 새 정부에 의해 독자적으로 추진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에 걸친 여러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짧은 기간동안의 급격한 개혁은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그 중에서 명성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도 있다. |
5 |
대한제국 성립 (1897) |
을미사변 후 고종의 아관파천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년 후 환궁하며 국호를 대한, 연호를 광무라 고치고 왕을 황체라 칭하며 국내외에 둑립 제국임을 선포하였다. 외국인의 손에 이권이 넘어가는 상황에 대한 국민의 비난과 환궁 요청 등 국민 여론의 승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여러 허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대한제국의 개혁은 왕권 유지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
6 |
을사조약 (1905) |
일본의 치밀한 준비 끝에 이루어진 조약.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여 한국의 독립국가로서의 국제적인 지위를 완전히 말살하였다. 아직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만 주권을 상실해버렸다. 이 조약은 국민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으며 자결, 의병항쟁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반발이 나타났다. 또한 이 조약에는 황제의 서명이 없다. 따라서 국제법상으로 조약은 무효가 된다. |
7 |
3 ․ 1운동 (1919)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비폭력 독립운동이다. 일본 유학생들의 2 ․ 8독립선언에 자극받았고,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3 ․ 1운동은 한국역사사상 최대의 독립운동이다. |
다음 발표자 : 김정섭
다음 발표 주제 : 민족운동의 발전
결국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깨우쳐 주는 것이 바로 윤리교육이 할 일입니다. 서로 다름의 차이를 알고 융합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윤리교육의 목표이며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 수고하셨어요.^ ^/////
* 한정아 : 10) 결국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깨우쳐 주는 것이 바로 윤리교육이 할 일입니다. ->> 우리의 학생들에게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깨우쳐 주는 것이 바로 윤리교육이 할 일이라고 한다면 오늘의 세계화 과정에서
이번 위정척사에 대한 발표를 들으면서 저는 온고지신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습니다. 위정척사론의 한계는 근대화 시대에 전통만을 고집하는 고정된 시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근대화 시대로 전환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다원화와 다양화가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시대가 전환되는 시점에서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는 문화융합을 시도했어야 합니다. 저는 문화융합의 방법으로 온고지신 자세는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지식을 넓은 마음으로 수용하면서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는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정척사파는 개항 당시 외국의 침략의도를 파악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 조상의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개항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개항을 하고 개화가 시작된다면 분명히 외국의 간섭을 받을 것이라고 당시 유학자들은 예견한 것입니다. 문제를 현재의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미래까지 생각하면서 바라본 것입니다. 비록 위정척사파의 목적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데에 있었다 해도 이러한 통찰력은 본받고 싶습니다.
이유리 학우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위정척사 운동은 주체적인 근대화를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전통적인 정치 체제와 사회 경제 질서를 그대로 유지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인 성격이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위정척사운동은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고 자주적인 한국민족주의로 사상적인 체계를 구축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정척사운동은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고루한 이념이 아니라, 조선조 말의 급박한 상황속에서 자기 자신을 심화 발전시키면서 자강아사의 논리를 통해 주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민족자존과 자주의식의 근원이며 또한, 1910년 일제강점 이후 한민족에 대한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정신적 원천을 제공하였다는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국수적인 태도와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우리 것을 지키는 태도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우리의 것을 구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른 문화의 긍정적인 부분을 우리의 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접목시키는 태도는 발전적인 태도요, 폐쇄적인 경향성으로 옛것을 현대에도 이어나가게 하려는 태도는 국수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위정척사운동은 비록 국수적인 태도에 가깝지만, 그 당시 국가 상황에 비추어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외세에 의해 모든 것이 바뀌고 있었던 시기였으나 그들의 저의를 파악하고 순수한 우리 것을 지키자는 신념으로 활동을 하였던 그들은 오히려 날카로운 안목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떤 관점으로 우리의 것을 지키는 행위를 보느냐에 따라 국수적으로, 진정한 애국심으로 판단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점이라는 것은 바로 주체적인 입장에서겠죠. 주체의식에 대한 실제적인 적립이 이루어진 후에 위정척사운동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진정한 애국운동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주체적인 의식은 우리의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이러한 의식을 기르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하고 수많은 기본 소양들을 쌓는 일이 선행되어야겠습니다.
민족과 역사좀 알아조의 발표를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제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많이 어려웠습니다. 내용면에서 조금더 민족과 역사라는 시점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면 더 좋은 발표가 되었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른 학문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갔지만 곧 주체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위정척사를 통해 얻은교훈은 다원성과 다양성이 필요하며 고정된 시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발전적으로 자기자신의 문화를 지키는 것이 애국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것이라는 공통된 범주가 필요해야 할 것입니다.
학우의 발표를 통해서 기존의 교과서와 다른 위정척사를 배웠습니다. 이분법적이고 보수적이며 의를 강조하는 위정척사들만 개화를 반대했었다고 배워왔지만, 유학파 중에서도 어느정도 개화를 반대했다니 다소 생소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정척사파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때 그들은 정말 이해 할 수없군.’이라고 생각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 없는 외국 문물에 대한 수용은 빈껍데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대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 김수환 : 1) 기존의 교과서 이외의 위정척사에 대한 내용을 배웠습니다. ->> * 문장을 좀 더 다듬으세요. 2) 한 쪽의 유학파 무리들 또한 개화를 반대했다니 ->> * 非文입니다. 3) 그 때 그들은 -> 4) 이해 할 수 없군. -> 5)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 없는 수용은 빈껍데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 非文입니다.
* 김수환 : 8) 어느정도 -> 어느 정도 9) 이해 할 수없군. -> 이해할 수 없군.
하지만 개화의 물결은 더 이상 거부 할 수 없는 역사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개화가 불가피 했다면 우리는 거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리 학우, 발표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김수환 : 5) 하지만 개화는 물결은 더 이상 거부 할 수 없는 큰 역사적 흐름이었습니다. ->> * 非文입니다. 6)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개화는 불가피 했을 것이고 ->> 자의든 타의든 개화가 불가피했다면 7) 대처 할 수 있는 쪽으로 더 많은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대처했다고 생각합니다. 7) 유리학우의 발표 수고하셨습니다. ->> 유리 학우, 발표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수정하였습니다.
* 김수환 : 8) 하지만 개화의 물결은 더 이상 거부 할 수 없는 역사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 하지만 개화는 더 이상 거부 할 수 없는 역사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6)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개화가 불가피 했다면 ->> 자의든 타의든 개화가 불가피했다면 9) 우리는 거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고 ->> 우리는 거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했다고